〈 46화 〉 46화 응징
* * *
그날 저녁 이만석의 연락을 받은 박동구는 절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긴 말 하지 않을 테니까, 따로 만나지.]
“따로... 말입니까?”
인사는 뒤로 하고 다짜고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박동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직접 운전해서 혼자 오는게 좋을 거야.]
“예...”
박동구는 아무런 대꾸도하지 못하고 그저 알겠다는 대답만 할 뿐이다.
그렇게 이만석이 반동구에게 알려준 장소는 폐공장의 한적한 공터로 전에 처음으로 일성회와 제대로 부딪쳤던 장소였다.
박동구는 그런 음침한 곳에 왜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불안 했지만 거절 할 수가 없는 일인지라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박동구는 자신의 애마를 몰고 오라고 한 장소로 향했는데 늦은 저녁시간대라 공장은 으스스해 보였다.
문은 녹슬었고 관리를 안 한 것인지 바닥에 무성한 잡초들이 자라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공터로 들어서면서 드러나는 폐자제들은 더욱더 공포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조심스럽게 차를 정차 시키고 시동을 끈 박동구는 금세 주변이 조용해지자 혀로 입술을 축이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자기 발자국 소리만 제외하면 풀벌레 소리만 작게 들려오는 것이 전부라 더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이만석을 다시 봐야 할 생각에 더욱더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안 왔나?’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디에도 모습은 커녕 인기척 조차 없는지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생각 보다 빨리 왔군.”
“히익!”
그때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박동구가 헛숨을 들이키며 움찔했다.
“뭘 그리 놀라는거야?”
“아, 아닙니다.”
고개를 돌리니 바로 뒤에 서있는 것을 보고 박동구가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읊어봐라.”
“읊어보라니 무엇을 말입니까?”
순간 표정이 굳어지는 이만석의 모습에 당황한 박동구가 그제야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는 바로 대답했다.
“서인식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계속 해보라는 듯 물어오는 이만서에게 박동구는 서인식 반장과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부 알려주었다.
만약 그가 잘 못 된 행동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알려주었고 내일 중으로 경고를 한 차례 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자가 완강히 거부했다고?”
“그렇긴 했습니디만 그래도 생각이 없는 자가 아닌지라 제 말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차원에서 내일 중으로 손봐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현실을 직시하겠지요.”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박동구는 이만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았다.
“현실을 직시해야 할 놈은 네놈인 것 같구나.”
“예?”
순간 반문한 박동구는 뭐라 말을 하지 못 하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더니 고통스런 숨소리를 내뱉었다.
사지가 뒤틀리며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끔찍한 고통이 찾아오자 그대로 눈물, 콧물, 침을 흘리며 살려달라 애원했다.
“제, 제발.... 제가 잘 못 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뭘 잘 못했는지 보다는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에 박동구는 애원했다.
하지만 이만석은 그런 박동구를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할 분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렇게 1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박동구는 고통에서 해방 되었는데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자... 네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말해 봐라.”
“그, 그것이...”
순간 박동구는 다시금 바닥에 자지러지며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너무 괴로워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다.
“아아아아악!”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이만석은 박동구에게 자유를 주었다.
“제, 제가 잘 못 했습니다. 제가 못 나서 그렇습니다.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제가 미천해서 그렇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도 의식하지 못 한 듯 무릎을 꿇고 엎드려 두 손으로 싹싹빌며 용서를 구했다.
어렸을 때 죽는 꿈을 꾸고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 말고는 한 번도 그른 적이 없었는데 이보다 더한 굴욕이 더 있을라만은 박동구는 그런 것에 신경도 쓰지 않고 손바닥을 싹싹 빌었다.
“네가 어제 분명히 나에게 말 했다. 그자를 확실히 행동하지 못 하게 손을 쓸 것이라고.”
“예, 그랬습니다.”
“그런데 네가 나한테 뭐라고 했지?”
박동구는 바닥에 머리를 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 그자가 완강히 거부를 했다고 했다. 그랬는데 넌 말로 겁을 주고 돌려보낸 게 전부야.”
이만석은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몸을 떨고 있는 박동구를 사나운 기세로 내려다보았다.
“말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네놈은 마음가짐부터가 틀려먹었구나.”
“죄, 죄송합니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확실히 하겠습니다. 말장난을 하지 않고 확실히 하겠습니다!”
발악하듯 박동구가 이만석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제야 박동구는 이만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들은 것이다.
그는 잔인하게도 서인식 반장에게 경고 같은 것을 줄 필요가 없이 확실한 행동과 처벌을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 하게, 딴 생각을 품지 못 하게 손을 쓰라는 것이었다.
“모든 수를 동원하겠습니다. 그가 다른 생각을 품지 못 하게 처리 하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이곳에 찾아와라.”
“예.”
그 뒤로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이만석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해야 한다...”
연기처럼 사라진 이만석을 보고 박동구가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무조건 해야 해.”
그의 안색이 상당히 좋지가 못 했다.
“오빠...?”
[미안해.]
“무슨 일 있는 거야? 왜 만나지 못해?”
[사정이 생겨서 그래. 내일 모레는 괜찮으니까 그때 보는 것으로 하자.]
“큰일은... 아닌 거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는 하란의 얼굴에 걱정이 묻어났다.
[그래.]
“알았어... 그러면 내일 모레에 꼭 보는 거다?”
[응...]
그걸로 통화를 끝낸 하란은 잠시 동안 폰을 바라보았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도대체 무슨 사정이기에 자신과 만날 수 없는 것인지 하란은 마음이 심란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하란이는 다른 것 때문에 불안감을 느꼈는데 그건 발로 전화 통화에서 들려온 이만석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평소와 마찬가지로 밝은 음성이기는 했는데 어딘가 모르게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빠...”
작게 중얼거리는 하란이는 더욱 마음이 불안해 졌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약해지면 안 돼.’
이만석과 안면도를 다녀온 후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않 좋은 생각도 했었고, 이만석과 헤어지는 끔찍한 상상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흐르면서 마음을 더 힘들게 했는데, 그럴 수록 자신에게 모든 걸 다해주며 사랑해주던 것들이 떠올랐다.
이것저것 챙겨주고, 아껴주고, 바보같이 운전석에 앉아 창문을 노크를 한 자신을 보고 이름을 부르며 웃음 짓는 얼굴이 말이다.
그동안 허전했던 마음을 채워주고 위로해주며 아껴주었던 이만석에게 하란은 점점 마음을 열어갔다.
가족에게서 받지 못 한 사랑을 이만석에게 받았던 것이다.
그런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고 바보같이 헤실거리며 행복해 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주기만 하는 사랑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아.’
하란은 그동안 착해지려고, 좋은 딸이 되려고, 좋은 여동생이 되려고 노력하며 행동 했던 지난 일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가족들을 사랑하고 좋은 딸로, 여동생으로 다가가면 그들도 언젠가 받아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짝사랑이었고 돌아오는 건 차가운 냉대였다.
‘오빠는 아낌없는 사랑을 나에게 주려고 했어. 내가 잘 표현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날 안면도를 다녀오고 한 동안 마음을 앓았던 하란은 그 뒤로 결심을 했었다.
오빠가 자신을 아껴주었던 것 처럼 자신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조금은 차갑게 변했다면 어떤가, 마음이 식었다면 어떠한가.
노력을 해서, 그만큼 자신이 노력을 해서 다시 끌어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나... 노력할게 오빠.”
하란이는 정말로 이만석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박동구와 만나고 돌아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란이의 전화를 받은 이만석은 입맛을 다셨다.
“저렇게 말하니 좀 미안한데.”
그저 사정만 있다고 하고 만나지 않은 자신을 걱정하는 하란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만석은 내일까지 하란이와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실 만나려면 만날 수 있는 것이지만 박동구를 만나고 온 뒤로 하란이에게 만나자고 전화가 왔어도 사정이 있다는 핑계로 뒤로 미룬 것이다.
씁쓸하게 입맛을 다신 이만석은 곧이어 박동구를 생각했다.
‘괴물이라니...?’
오줌까지 지리며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박동구의 눈 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 빛은 분명히 그를 인간으로 보는 시선이 아니라, 귀신, 또는 괴물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괴물이라...’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들어온 이 힘이,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기뻤고 행복했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
처음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며 용서를 비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그런 것들이 처음엔 조금 놀라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눈빛이 잊히지가 않았다.
‘괴물...’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사람이라면 갑자기 그렇게 회춘을 하듯 다시 젊어 질 수가 없는 일이었고 모습도 마음대로 변형 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성형수술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변할 수 있겠지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만석은 외모만 바뀐 것이 아니라 목소리, 지문, 그리고 키까지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자를 과연 인간이라 할 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과연... 내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처음으로 바뀌어버린 자신에 대해서 이만석은 되돌아보게 되었고 혼란을 느꼈다.
그와 함께 가슴에서 들끓어 오르는 열기가 더욱더 가중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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