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45화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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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이만석을 맞은 차이링은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오던 참이었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있는 상태여서 뽀얀 살결이 다 드러나는 차림이었지만, 들어서는 이만석과 마주하고도 별로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몸을 섞은 사이 이기도 하여 그렇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차이링의 천성이 그러한 영향이 더 컸다.
수줍음을 타거나 다소곳하기보다는 당당하면서도 드센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안으로 들어서는 이만석을 보며 차이링이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하루종일 이만석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에 예상 할 수 있는 것은 일성회와 삼합회의 일처럼 뭔가 일어난게 틀림 없을 거라는 게 차이링의 생각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캔 맥주 하나를 꺼내든 이만석이 가볍게 따서 두어 모금 마셨다.
“별일 아니야.”
“말 해봐... 궁금하니까.”
분명히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차이링이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다.
“박동구... 그자를 만나고 왔어.”
“박동구?”
순간 차이링의 얼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생각하기도 싫은 인물의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인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욕정에 물든 눈으로 자신의 몸을 훑어보던 눈빛이 그려졌는데 참으로 기분이 더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박동구는 왜 만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이링은 이만석이 그와 만남을 가졌다는 것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전혀 생각지 못 한 일이기도 했고, 둘 이서 만날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박동구 쪽에서 이만석에게 관심을 드러내어 접근을 한 것일 수도 있었는데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다.
이만석이 윤정호 의원의 딸과 사귀면서 연관된 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전혀 못 만날 것은 없는 일이다.
그가 어떤 흑심을 가지고 이만석에게 접근을 하여 뭔가 해보려 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날 깜빵에 보내버리겠다고 하더군.”
“깜빵?”
반문했던 차이링은 곧 그것이 협박이며 공권력으로 이만석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귀찮아 지겠는데?”
이만석이 윤정호 의원과 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공권력이 개입이 되면 귀찮아 지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다 박동구는 현재 떠오르는 초선의원에다가 그의 장인어른이 정계의 거물인 김철중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이만석을 누르기로 마음을 먹고 접근을 한 것이라면 귀찮아 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자가 갑자기 깜빵으로 널 집어넣겠다고 한 것은 아닐 거야. 다른 의도가 있음이 분명해.”
맞는 얘기여서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놈인가, 아니면 시정잡배인가 알아보려고 했다더군.”
이만석의 말에 차이링이 눈웃음을 지었다.
“공권력을 이용해서 널 시험하려고 했던 거네? 네 대처 방식이나 성격을 직접 보려고 했던 거야. 과연 정말로 쓸 만 한 자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놈인지 말이야. 아마도 그저 그런 놈이라면 깜빵에 넣는 다는 말이 허언으로 끝나지 않겠지?”
만약 그동안의 이만석의 행적을 보았다면 한 번쯤은 직접 시험해 보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난놈이라면 제대로 접근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건 그것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네? 박동구 그 자가 너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지는 않았을 텐데?”
난놈이라거나 시정잡배라는 그런 얘기를 쓸데없이 이만석에 했을 리가 없을 터여서 차이링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처음에 내가 말했잖아.”
“처음?”
무슨 얘기를 했나 생각한 차이링은 곧 이만석이 집으로 들어서 한 얘기를 떠올렸다.
조금 전의 한 말이어서 잊을 수가 없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별일 아니라는 그 말말이야?”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을 보며 차이링이 다시 맞받아 쳤다.
“설마하니 윤정호 의원을 믿고 그러는 거야? 그렇다면 그건 잘 못 된 생각이야. 아무리 윤정호 의원이 널 정말로 비호해 줄 거라면 그건 순진한 생각 밖에 안 돼. 설마하니 정말로 그런 일을 해준다 하더라도 박동구 그 자가 접근을 하였다면 그만한 준비를 하고 했을 게 틀림이 없어. 무엇보다 그 것 덕분에 순순히 얘기를 털어 놓았을 리가 없잖아.”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차이링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걸 들었는가도 의아했지만 이만석이 만약 정말로 윤정호 의원을 생각하고 그런 것이라면 이건 정말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동구 그 자가 그것도 생각하지 못 할 리가 없으니 사전에 준비를 하고 접근 했을 게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뒤에는 김철중 의원이 버티고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일이 생길게 틀림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윤정호 의원이 힘이 있다고 치더라도 김철중 그자 또한 하나의 계파를 이끄는 수장에다, 당내에도 아직 그를 따르는 의원들이나 주변에도 그와 관여된 사람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동안 일성회와 삼합회와의 분란을 일으킨 이만석을 탈탈 털어서 수를 만들어 잡아넣을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막말로 차이링 또한 이만석을 조사하면서 그에 관한 기록을 하나도 찾을 수 없어 수상쩍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걸 가지고 빌미로 잡아 처넣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뭔가가 있는 거야?”
차이링은 무덤덤해 보이는 이만석을 보며 뭔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글쎄.”
짧게 대답하고는 다 마신 캔을 찌그러트려 쓰레기통에 버리곤 옷가지들을 챙겨 샤워를 하러 들어가 버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차이링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뭔가 평소의 이만석과는 좀 달라보였기 때문이다.
서인식 반장은 다음날이 되자마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거기엔 산행을 하던 사람에게 발견된 김중배의 전화를 받은 후 부터였다.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가 되었는데 마치 정신연령이 퇴화가 된 것 처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접 찾아서 만나본 서인식 반장은 마치 백치가 된 듯 어벙해 보이는 그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아도 그는 말도 제대로 못해서 답답하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박동구와 만난 일을 곰곰이 생각을 하던 차에 김중배를 보게 되니 적극적으로 행동이 변했다.
어쩌면 이 일이 이만석과 관계된 일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에 돌아와 서민준이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려던 서인식 반장은 곧 박동구의 연락을 받았다.
이른 시간의 전화여서 조금 놀라긴 했는데 박중배를 만나고 온 뒤여서 반갑게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조금 전에 중배를 만나고 왔는데 어제.....”
[시간 되십니까?]
“시간이요?”
[중요한 얘기 때문에 그럽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서인식 반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서민준이 입니까?”
[......]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맞는 것 같았다.
“좋습니다. 만나지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식 반장은 차 뒷자석에 박동구와 에쿠스 뒤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였다.
차안은 둘 뿐으로 그사이 박동구의 수행비서는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서민준이에 대해서 말입니다.”
“혹시 그자가 또 뭔가 사고를 친 것입니까? 아니면 자료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까?”
김중배의 일이 있고 난 후에 적극적으로 변한 서인식 반장이 다짜고짜 이유를 물어왔다.
그의 그런 행동에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박동구가 나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되다니요?”
“그 사이에 일이 틀어졌단 말입니다. 그러니 어제 들었던 얘기는 못들은 걸로 합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못 들은 걸로 하자니요?”
당황한 서인식 반장의 목청이 조금 높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그렇게 도와줄 테니까 판을 벌려보라던 사람이 하루 사이에 못 들은걸로 하라니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말 했잖습니까. 일이 틀어졌다고. 그 내막에 대해서 제 선에서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 쪽에서 이해해 주시지요.”
“그게 될 말입니까? 제가 조금 전에 김중배를 만나고 왔는데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자기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말 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행동했단 말입니다. 의사의 말로는 분명히 뇌에 무슨 큰 이상이 생겨서 그런 것이라고 하는데 외부의 충격도 없고 알 수가 없답니다. 그런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이 됐는데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니요. 분명히 그 서민준이와 무슨 관계가 된 것이 틀림없단 말입니다.”
성토를 하듯 말하는 서인식 반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박동구는 순간 마른 침을 삼켰다.
김중배를 만나고 왔다고 말하며 하는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신의 뇌를 망가트려 병신으로 만든다던 그의 말이 떠올라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쪽일이 원래 좀 복잡해서 말입니다. 아무 조록 좋게 넘어 갑시다.”
“안 될 말이요.”
완강히 거부의사를 밝히는 서인식 반장의 말에 박동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동안의 청춘을 받치고 일해 온 것이 아깝지도 않습니까?”
“그게 무슨...”
순간 서인식 반장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앞으로 진급도 하고 그동안의 일도 보상을 받으면서 사셔야지... 가족도 생각해야지요.”
이 이상 이만석에 대해서 파고들었다간 경찰옷을 벗게 된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내가 그래도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올시다. 경찰 옷을 벗는 것만이 아닌 그보다 더한 피해가 갈 수 있단 말이요.”
이건 협박이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날 옷 벗게 할 수 없소이다.”
“과연 그럴까요? 내 당신에게 보여드리지. 내가 그만한 힘이 있는 가, 없는가를.”
박동구는 서인식 반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서인식을 묻어버릴 생각이었다.
설사 그것이 장인어른인 김철중 의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는 몰라도 자신이 살려면 그 정도는 할 수가 있는 일인 것이다.
지금 그에겐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닌 것이었다.
이만석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웠고, 바닥에 엎어져서 사지를 뒤틀며 눈물, 콧물, 침을 게워내며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 끔찍한 고통을 다시는 맛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고통을 자신에게 안겨주는 이만석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일 수 있다는 것도 경악스러웠고,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과, 저택의 모든 사람들을 잠재워버린 그가 너무나 무서웠다.
무엇보다 서인식 반장이 말 한 것처럼 박중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병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살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가 있는 일이다. 그게 설사 장인어른에게 밉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그는 자신의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목숨을 틀어쥐고 있는 장인어른인 김철중 의원을 두려워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끔찍한 고통과 충격을 안겨다준 이만석이 죽음의 사신으로 보였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지를 뒤틀어버리는 그가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존재여서 일성회와 삼합회가 달려들어도 그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김중배에 대해서는 안타깝기는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우리 가족을 생각합시다. 괜한 객기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서인식 반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박동구의 눈빛은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이 말을 무시하고 행동한다면 확실히 사회에서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당신과 가족이 살려면 서민준이에 대해서 잊어야 한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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