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42화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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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0분이 흘렀을 때 아까전의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는지 이만석은 다시 그 작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감옥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에 처음엔 위축이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떨쳐낸 상태로 긴장 할 것 없이 담담하게 받았다.
“여보세요?”
[조금은 끌 줄 알았는데 제때 전화를 받는구나.]
“내가 피할 것이 무엇 있소?”
[긴말하지 않고 장소를 말 할 테니까 찾아와라. 10분이라는 시간을 주었으니 그 정도면 약속을 취소 할 시간은 충분했겠지.]
“일단 당신이 누구인지 신원을 밝혀야 할 것 아니요?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을 그딴 식으로 하면 듣는 상대의 기분이 어떨 것 같소?”
[그건 만나보면 자연히 알게 돼.]
그리곤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는데 논현동 사거리 세원빌딩 뒤편에 자리한 레니스지나라는 커피숍으로 오라고 했다.
꺼져버린 폰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이만석이었지만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일단 뭐하는 작자인지 만나볼 생각이었으니 망설이지 않고 가는 것이다.
약 15분이 조금 지나서 세원빌딩 근처에 도착한 이만석은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 시키고 시동을 끄고 내렸는데 느긋하게 걸어가도 20분 안으로 도착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뭐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서둘러 갈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저긴가?”
빌딩건물을 돌아서 골목에 들어가니 3층 건물에 2층에 걸려있는 간판의 이름이 들어왔는데 일방적으로 통보했던 그 커피숍이었다.
망설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간 이만석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방울 소리가 들리며 내부의 모습이 들어왔다.
약 50평 가까이 되는 넓이로 보였고 자리마다 거리를 두고 칸막이가 되어 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아보였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긴 이만석은 곧 창가 구석 쪽 자리에 앉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반삭을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까딱이며 이쪽으로 오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는데 이만석은 저자가 자신에게 전화를 한 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않아 대충 커피를 주문한 이만석이 마주보고 앉아 있는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빼지 않고 왔군 그래?”
“내가 뺄 이유가 없지.”
지지 않고 말을 받아친 이만석을 바라보던 사내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하나를 물고 불을 붙였다.
테이블엔 이미 재떨이에 담배꽁초 두어개가 있었는데 이만석이 올 동안 폈던 것 같았다.
폐 속 깊숙이 흡입하듯 빨아들인 남자가 정면으로 담배연기를 내뿜자 자연히 이만석의 얼굴에 그대로 일그러졌다.
“기분이 더러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 남자가 다시 한 번 빨아 당겼다가 내뱉은 그 순간 이만석이 입을 열었다.
“담배만 처 피우지 말고 얘기를 하지.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뭐요?”
“말투가 싸가지가 없어.”
“초면에 반말부터 싸지르는 당신보다는 양반이지.”
마치 기 싸움을 하듯 노려보는 이만석을 향해 말없이 담배를 계속 피우던 남자가 재떨이에 비벼 끄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에 대해선 대충 주시는 하고 있었다. 그놈들이 제 안방인 것 마냥 싸움질을 하여 시끄럽게 하니 자연스럽게 주시를 하게 되는 것이지.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눈에 띄는 놈이 있더라고... 간이 큰 것인지... 아니면 목숨을 도와시하고 설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제정신인 놈은 아니라는 거야.”
“그게 어쨌다는 거요?”
일성회도 그렇고 삼합회와도 제법 소란이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 일 수도 있었다.
“아직 윗선에선 그저 지켜보라는 말만 나온 상황이라 그러고 있긴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거든.”
잠시 후 커피가 놓아 질 때까지 잠시 동안 말을 멈춘 남자가 점원이 물러났을 때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입술을 비틀며 웃음 짓는 남자의 목소리는 이만석을 무시하는 빛이 다분해 보였다.
“당신이 누구요?”
“너 같은 놈들은 모두 싸잡아 깜빵에 처넣는 일을 하고 있지.”
이만석은 방금 전의 말로 눈앞의 남자가 경찰이 맞는 것 같았다.
“형사란 말이요?”
“들어는 봤나? 서울경찰청강력계 수사1반의 김중배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그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데 당연히 들어 본적이 없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요.”
“설치는 놈 치고 주변귀가 어두운 놈이었군.”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살을 찌푸린 김중배가 곧이어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건 넘어가도록 하고... 본론을 말하지. 중국 놈들과 네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소란이 있었고 널 잡으려고 했는지 한자도 빠짐없이 다 털어놔. 그리고 일성회나 그쪽과 연관된 모든 것도 다 말해야 할 거야.”
“뭐요?”
반문을 하는 이만석은 어이없는 심정이었다.
다짜고짜 그들과 자신이 관계된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니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형사라도 그렇지 당신이 뭔데 나보고 정보를 내놓으라 마라요?”
“이봐...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넌 찍힌 거야.”
담배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어 불을 붙인 김중배가 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깊이 빨아들였다.
“윤정호 의원의 딸과 사귄다고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그게 널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지. 나도 얼마 전에 알았지만 서민준이 넌 호적도 없고,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았는지 흔적조차 없어. 한국인이라는 증거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네놈은 불법체류자와 마찬가지로 베일에 가려진 네놈에게 살을 더 붙여서 처넣기만 하면 영원히 썩히는 것도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윤정호 의원이라고 더 이상 널 커버해줄 수가 없어. 그리고 권력은 그 사람한테만 집중되어 있는 게 아니야.”
사납게 자신에게 쏘아붙이는 김중배의 말에 이만석은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 남자의 말대로 서민준이라는 이름과 정보에 관해선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을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외모를 바꾸고 인물을 만들에 낸 게 자신인데 서민준이란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사람 뒤에 누군가가 있구나.’
하지만 그런 것보다 이 사람이 말한 권력의 집중이라는 것이 이만석의 신경을 쓰이게 만들었다.
윤정호 의원을 거론 하면서 저런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비슷한 자가 있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왜 이자가 혼자 나타나서 이렇게 말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 할 수가 있었다.
“네놈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정상참작이 되어 상황이 반전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겁 없이 설친 네놈의 인생도 이걸로 종치는 것이지.”
협박어조로 말하는 김중배의 눈빛은 사나웠다.
“이보시오... 형사 양반.”
“왜? 얘기 할 마음이 생겼나? 아니면... 법정에 서고 싶은가?”
“강력계 수사1반의 김중배라는 작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난 모릅니다.”
그렇게 말한 이만석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쏘아 붙이듯 날을 세웠다.
“하지만 당신 하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단독으로 수사하거나 위에서 지시 내린 것이 아닌, 뒤가 구린 자들의 명으로 행동하는 것 같은데... 그런 인물이 당당히 자신을 밝히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게 웃기다고 생각지 않소?”
“뭐라고...?”
눈썹이 치켜 올라간 김중배의 기세에도 이만석은 지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높으신 작자가 그런 명을 했는지는 몰라도... 당신은 사람을 잘 못 보았어. 그까짓 협박으로 깜빵 운운하며 권력으로 날 짓누를 모양인데 그따위 것에 기죽을 내가 아니야.”
“행적을 보면 반쯤 미친놈이라 생각은 했지만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놈이구나. 지금 그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어?”
“이걸로 그 작자들에게 일러바쳐서 날 깜빵에 처넣을 건가.”
“이 새끼가 미쳤나...”
기대고 있던 등받이에서 때어지며 가슴을 부풀리는 김중배가 사나운 기세로 욕설을 내뱉자 이만석도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당신 같은 작자하고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을 것 같으니 이대로 물러가도록 하지.”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데 김중배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이만석을 노려보았다.
“어떤 놈인지 낯짝을 봐야겠다.”
밖으로 나온 이만석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감옥에 처넣느니 마느니 하며 버러지처럼 바라보는 김중배의 시선이 심히 불쾌했고 그 작자에게 자신의 정보를 넘겨주고 일을 시킨 이에 대해서도 상당히 기분이 나빠졌다.
만약 자신에게 힘이 없었으면 어떻게 대처 할 수도 없이 그저 억울하게 당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쥐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서 누르려는 이들에게 전혀 쫄게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와 거리를 벌리고 선 이만석은 중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약 5분의 시간이 흘렀을 까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고 이만석은 뒤로 바짝 걸어가 붙었다.
걸음을 옮기면서 품에서 폰을 꺼내든 김중배가 막 전화를 걸려는 그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바로 뒤에 서있는 이만석을 보고 눈을 크게 뜬 김중배가 뭐라고 말을 내뱉으려는지 입을 벌리려는 그때 뒷목에서 둔탁한 충격을 느끼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산속이었는데 차들이 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뒷산의 인적 드문 한적한 곳인 것 같았다.
“너 이 새끼...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
“닥쳐.”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을 치켜뜨며 욕설을 내뱉는 김중배의 말을 잘라버렸다.
“뭐라고? 방금 나보고 욕을 한 거냐?!”
그러면서 어깨를 치켜세우며 몸을 일으키려는 데 이상하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이게 도대체...?”
마비가 된 것인지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당황한 김중배가 중얼거리는 사이 이만석의 이빨 사이로 조소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움직이려 노력해 봐라. 손 가락 하나 까딱 움직여지나.”
그리곤 손으로 김중배의 머리를 짚었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김중배의 말을 무시한 이만석은 그대로 메모리즈를 시전해서 머릿속을 훑었다.
이번엔 사정을 봐주지 않고 그대로 시전 한 것으로 어쩌면 백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완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바보가 되는 것인데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메모리즈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이번 일에도 대가가 관련 되어 있었고, 돈 쫌 만질만한 사한이다 싶으면 좋게 좋게 돈을 받고 넘긴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것 같아, 구린 놈이라는 걸 안 순간 망설이지 않고 처음으로 백치가 되도 상관없을 정도로 손을 쓴 것이다.
“으으...”
그 순간 자연스럽게 눈의 흰자를 보이며 까뒤집어진 김종배가 몸을 떨었다.
머릿속의 훑어본 이만석이 손을 때어내자 김종배가 그 상태로 바닥에 엎어졌는데 그것을 뒤로하고 이만석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박동구 이놈...’
윤정호 의원과 더불어 당 내의 양대 계파의 하나의 수장을 맡고 있는 김철중 의원의 사위이자 초선의원으로 이름을 날리는 박동구라는 자가 시킨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여기 있는 김중배에게 넘겨주고 협박을 하여 한 번 뭉개주라는 것이었다.
“끝났나 보군...”
손목시계를 보며 연락을 기다리던 박동구는 걸려온 전화번호를 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일단 한 번 김중배를 이용해 이만석의 간을 보려던 박동구여서 어떻게 얘기가 흘러갔을지 궁금했다.
“얘기는 잘 끝났나?”
통화버튼을 누르고 자연스럽게 말문을 연 박동구였지만 들여온 낯선 목소리에 순간 당황해야했다.
[기다려라...]
“당신 누구야? 김중배의 폰을 왜 네가...”
[무엇 때문에 그 작자에게 그런 일을 시켰는지 모르지만 날 감옥에 처넣는다느니 그딴 망발을 내뱉으며 협박하게 만든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서민준...?”
눈을 치켜뜬 박동구가 중얼거렸지만 그것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생각지도 못한 이의 전화를 받은 박동구는 화가 나기 보단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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