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39화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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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타고 온 차의 뒤 좌석에 몸을 앉힌 이만석은 돌아 온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은 사이에 다시 빠져나가는 격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했던 말 그대로 차도로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잠시 신호를 받다 우회전을 하여 보이는 골목의 커피숍이었다.
잠시 갓길에 정차해 있는 사이 야마다라 소개한 남자와 둘이서 내린 이만석이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커피숍에 들어서 구석진 자리로 이동한 이만석은 야마다가 물러가고 40대의 안경을 쓴 남자와 마주 할 수 있었는데 체격은 좀 왜소했지만 눈빛은 또렷해 살아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이곳은 손님이 별로 없어 조금 한 적한 느낌이었는데 대화하기는 괜찮은 듯 보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동안 별 말이 없었다.
그저 간단한 통성명만 했을 뿐으로 자신을 이시모토, 그리고 서민준으로 소개를 했을 뿐이었다.
본격적인 대화는 직원이 커피를 조심스럽게 놔주고 간 후였는데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시모토라 소개한 남자였다.
“갑자기 이렇게 자리를 마련 한 곳에 와줘서 고맙습니다.”
“직접 근처로 찾아왔다고 하니 온 것으로 감사해 할 것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잔잔한 목소리였는데 본토 억양이 남아 있는 야마다와 다르게 발음도 그렇고 괜찮은 한국어였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것인데 제가 누군지 짐작이 가십니까?”
“삼합회의 얘기를 꺼냈지요.”
“삼합회?”
“야마다라는 그 남자가 말입니다.”
“예...”
고개를 끄덕인 이시모토가 계속 말해라는 듯 바라보자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생각을 해본 건데, 딱히 나하고 연관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찾으면서 삼합회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야쿠자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틀린 것 같지는 않는데 그렇지요?”
“맞습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시모토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보아하니 낮은 분 같지는 않고 높은 분 같은데 그 삼합회처럼 지부장쯤 되는 것 같은데 틀렸습니까?”
“바로 알아보시는 군요.”
느낌이 가볍지가 않고 눈빛을 보면 그 정도의 인물쯤이라는 것을 이제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는 이만석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 전에 제 소개부터 다시 해야 겠습니다. 제 이름은 이시모토 요이치로라고 하고 야마구찌구미의 한국지부를 맡고 있는 지부장이라고 합니다.”
“야마구찌구미?”
“들어 본적 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을 보곤 이시모토가 쓴웃음을 지었다.
“중국에는 삼합회가 있다면 일본에는 야마구찌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본 야쿠자세계에서도 입신을 쌓아올린 조직으로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흔들고 있는 삼합회와 자웅을 겨루고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국제적인 조직으로 위상을 쌓아올리고 있는 것으로 무시 할 수 없는 대 조직인 것이다.
그들의 힘겨루기는 이곳 한국에서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일전에 한 번 있었던 공권력으로 지워버린 조직소탕으로 인해 조폭들이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 근래에 들어 다시 움츠러들었던 조폭들이 하나둘 활동하기 시작하더니 일성회가 결성되고 밤 세계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윤정호 의원이 일성회와 상부상조 하면서 점점 더 밤 조직은 활기를 뛰어갔고 그 사이에 삼합회와 야먀구찌회도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삼합회와 야마구찌회는 그렇다고 처도 일성회가 그들이 무시하지 못 할 정도로 성장을 하여 버티고 있으니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현실이었다.
지역의 작은 조직들과 따로 연계를 맺고 세를 키워나가려고 해도 일성회라는 이름에 짓눌러 있었는데 인천에서 한 번 삼합회와 연계를 하여 사업을 벌이려던 조직이 말끔히 소탕을 당하고 난 후에 더 그러했다.
거기엔 윤정호 의원의 입김도 작용했는데 일성회가 떠나고 난 후에 경찰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순식간에 인천 지역의 기반을 다지고 있던 조직이 삼합회와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조직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니, 그 소식을 들은 지역의 다른 조직들은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구도에서 세 조직은 묘한 긴장감 속에서 조용히 서로를 지켜보며 흘러가고 있었는데, 일성회가 점점 더 세를 불려나가고 있는 사이에 최근 들어 이만석으로 인해 파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만석이 한 일은 절대로 적은 일이 아닌 것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성장해 나가는 일성회를 농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합회에 소동이 벌어지더니 그 일 또한 이만석이 연관되어 있어 화제의 중심거리가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시모토는 어떻게 이만석을 잘 구슬려서 끌어들일 생각을 하여 좋건만 좋다면 얘기가 좋게 흘러 갈 것이라고 보았다.
“알고 있다니 얘기가 편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희와 사업한번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업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동등한 입장의 동반자로써 시장을 창출하고 저변을 넓혀 창업을 하여 수익기반을 다지는 것이지요. 물론 계약은 정식으로 작성을 하여 벌어들인 순이익은 정확히 분배하는 겁니다. 물론 자금은 저희 쪽에서 대는 것으로 서민준씨는 그때그때 행동으로 나서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지도 못 한 얘기였고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만약 이 말대로라면 그들이 하는 일에 밥숟가락만 얹는 것으로 좋은 조건이었다.
“갑자기 그런 얘기를 꺼내는 의도가 뭐요? 내가 뭐가 잘난 것이 있다고 그런 얘기를 꺼내느냔 말이요.”
“서민준씨가 해온 걸 보면 아주 대단하지요. 혼자서 벌인 일 치고는 아주 큰 일로 당당히 그 둘을 농락한 겁니다. 지금 본인은 모르시겠지만 요주의 인물로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아마 이쪽에 몸담고 있는 이들 중에는 존경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단신으로 일성회와 삼합회를 물 먹인 일은 누구도 해내지 못 한 것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만석 본인은 그렇게 크게 와 닿지가 않는 상황이라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본인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 하지만 그 존재가치만 해도 상징적일 수도 있는 일인 겁니다. 게다가 무술의 달인으로 대단하다고 소문까지 나 있으니 전국구의 이름난 싸움꾼도 그에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일성회로 인해 지역 조직계가 몸을 사리고 있다고 하지만 이만석을 내세워 이끌어 가면 그동안 막혔던 숨통도 풀려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단신으로 당당히 양대 조직의 표적이 되고도 살아남는 다는 것은 그만큼 큰일인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혼자서 잘 헤쳐 나왔다고 하지만 언제 삼합회가 손을 다시 쓸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일성회와도 껄끄러운 일이 있었던지라 언제 분란이 생길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젠 단신으로 행동하기 위험한 일입니다. 위태롭게 외줄을 타다간 언젠간 떨어지기 십상이죠.”
아무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을 보면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 이시모토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파격적인 조건으로 구미가 당길 것이었다.
하지만 저 쪽에서 쉽게 믿지를 않을 것이니 계약부터 시작해서 신뢰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었다.
어정쩡한 상태에서 활로를 찾아가기 보다는 이만석을 이용해 지역을 다지고 그 세를 몰아 한 번에 올라서는 게 나은 것이다.
물론 이것도 그저 하나의 방법이니 일이 잘 못 되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그 뒤의 일 또한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할 터였다.
이만석은 일성회로 인해 숨통을 조여 있는 한국시장을 개척할 방법 중에 괜찮은 카드인 것이다.
“나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
커피 잔을 들어 한 목음 마신 이만석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뭔가 얘기가 좋게 흘러갈 것 같은 분위기여서 이시모토가 내심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예?”
뜻 밖의 말에 이시모토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동업자가 되어 사업을 하는 것은 아주 구미가 당깁니다. 거기다 그 쪽에서 자금을 다 대주고도 수익을 정확히 분배를 한다니 그 말대로 계약을 맺고 현실이 된다면 대단한 것이지요. 하지만 거절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미가 당기고 대단하다고 하면서도 거절을 하는 이만석이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바라보았다.
“양두라는 자를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자도 제안을 했었지요.”
“예?”
“그쪽과 마찬가지로 그 자도 저에게 손을 내밀었단 말입니다. 물론 조건이나 얘기는 달랐지만...”
생각지도 못한 말이어서 잠시 동안 눈을 깜박이며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절 가치 있는 자로 평가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커피도 잘 마셨습니다.”
단번에 잔에 있는 내용물을 전부 비워버린 이만석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그리곤 몸을 돌려 유유히 빠져나가는 그 모습을 이시모토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왔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이만석을 차이링이 맞아주었다.
“웃기지도 않아.”
“웃기지도 않다니 뭐가?”
갑자기 피식 웃음을 짓는 이만석이 의아한 듯 처다보았다.
“돌아오면서 이시모토라는 자하고 만났다.”
“이시모토?”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말했던 차이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시모토라면 야마구찌회의 그 이시모토를 말하는 거 같은데.”
“맞아... 그 자가 하는 애기가 좀 웃기지도않더라고.”
이만석은 조금 전에 있었던 얘기를 차이링에게 해주었다.
잠자코 그 얘기를 전부 들은 차이링이 갑자기 재밌다는 듯 웃음 지었다.
“그 조건이 사실이라면 파격적이긴 한데 네 가치를 제대로 평가한 것 같다.”
“가치?”
“그동안 네가 벌인 일을 생각을 해봐. 네가 일성회에서 벌인 일만으로도 난 흥미를 느꼈어. 그래서 너를 이용해서 뭔가 하려다가 이 꼴이 되버렸지만 그 후에 네가 벌인 일은 놀라운 거야. 삼합회의 양두까지 한국에 찾아왔었으니까.”
“그래?”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차이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도 이시모토 그 자는 너를 내세워서 지역기반을 다지려고 했을 거야.”
계속 말 해보라는 듯 듣고 있는 이만석을 향해 차이링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려주었다.
“일성회에 이어서 삼합회마저 너는 단신으로 표적이 되고도 제거되지 않았어.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는 거물이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쉽게 말해 그런 너를 얼굴마담 역할로 이용해서 위축되어 조용히 지내고 있는 지역조직을 움직여서 세를 불린 다음 그 기반으로 치고 올라오겠다는 거야. 너는 모르겠지만 일성회의 입김이 이곳 한국 지역조직들에겐 어느 정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눈치를 보는 입장이야. 그런 상황에서 나는 세를 불려 크게 성장한 일성회의 내부의 불만세력을 너를 이용해 일으켜 제대로 놀아보려고 했는데 일이 틀어진 것이지.”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시모토 그자가 제시한 조건은 좀 파격적인데. 그게 사실일 경우에 한해서 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자다운 행동이야.”
자신을 내세워 일을 벌이려고 했다니 조금 기분이 나빠진 이만석이었다.
하지만 당당히 거절을 하고 나왔으니 상관은 없었지만 나쁜 건 나쁜 일이다.
얘기를 듣자마자 이시모토의 내막을 간파하고 얘기를 풀어놓는 차이링을 보면서 이만석은 내심 이 여자가 삼합회의 지부장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축하해.”
그때 차이링이 웃음을 지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축하한다니 뭘 말이야.”
“일성회에 이어 삼합회 그리고 야마구찌에서도 널 요주의 인물로 올려놓았잖아.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할지라도 넌 이미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어. 적어도 한국에선 말이야.”
말은 축하한다고 하지만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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