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36화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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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이 하란이와 서울을 빠져나간 그 시각 한남동의 저택에선 두 명의 인물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양두라고 했나......”
소파에 편한 자세로 기대어 앉아 있는 말숙한 차림의 60대 중반의 남자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덩치는 크고 제법 살집이 오른 체격으로 비만형이었다.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남자는 제법 눈매가 사나웠는데 이마와 팔자주름은 세월을 나타내는 듯 자리했지만 살짝 위로 올라간 입 고리는 고집이 있어 보여 오만해 보였다.
“그렇습니다, 아버님...”
그의 오른 편에 안아 있는 양복차림의 30대 남자는 얼굴엔 긴장감이 어렸고 말도 조심하는 것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30대로 보이는 남자는 박동구로 현재 신정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기도 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초선의원들의 모임을 만들어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 내겠다는 젊은 피를 뽐내는 그 였지만, 지금의 모습에선 도저히 그런 것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박동구는 자신을 이 길로 이끌어준 스승님이자 장인어른이신 김철중 의원의 사위였는데 그가 유일하게 무서워하고 쩔쩔매는 인물이었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걸때나 몸속을 훑고 지나가는 듯 한 특유의 눈빛을 보낼 때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일 수였다.
이렇게 단 둘이 대면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피하는 박동구여서 이 자리가 영 편치가 않았다.
“저번에 넌지시 일성회와 삼합회의 얘기를 꺼내던데 말이야...”
“예...”
“삼합회의 지부장이라던 차이링이라는 계집과 만남을 가졌다지.”
“그것이...”
차 한 잔을 나누며 오랜만에 둘이서 담소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양두의 얘기는 물론이고 차이링과 자신의 얘기까지 꺼내다니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뭐라고 대답은 해야겠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눈치를 볼 것이 없어. 그냥 물어보는 것이니까.”
편안한 목소리로 걱정 말라는 듯 말을 하지만 그런 말에 마음을 놓을 박동구가 아니였다.
그는 김철중 의원의 사위 였고 장인어른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말을 회피 할 수는 없는지라 속으로 안정을 찾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몇 번 만나보았습니다.”
“그래... 왜 만난 것이지?”
질문을 던지지만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는 것을 박동구는 잘 알았다.
“일성회의 일로 그랬습니다.”
“일성회의 일로 삼합회와 만날 일이 무어있어 만난거야?”
“장인어른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일성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세력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형태라 무시 하지 못 할 정도로 성장을 했습니다. 당연히 한국에 기반을 굳히려는 삼합회 쪽에선 그런 일성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언제고 기회만 있으면 무너트리려 벼루는 중입니다. 실제로 삼합회도 무시 하지 못 할 저력으로 비록 세가 크다고 하지만, 아직 까지는 상대 해볼 만하다고 보았고 그래서 뭔가 일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박동구가 김철중의 눈치를 잠시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장인어른께서도 알다시피 일성회는 윤정호 의원과 공생을 하는 관계라 그게 삼합회 쪽에선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접촉을 해온 것인데 아직까지는 깊이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깊이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 선이 어디까지야?”
“먼저 일성회를 크게 흔들고 상황을 본 후에 다시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게 성공을 하고 장담했던 대로 이루어 진다면 일성회는 물론이고 윤정호 의원에게도 타격이 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패했고 말이지?”
“예...”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윤정호 그 자가 일성회로 재미를 좀 본 모양이라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아. 네 말대로 일이 성공리에 이루어졌고 얘기가 잘 흘러갔다면 이쪽도 재미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연출 되었을 테니까.”
거기까지 말한 김철중 의원은 잠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박동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전혀 달라진 것 없는 그대로의 표정이었는데 박동구는 그럼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은 좋았다만 나는 마음에 안 들어. 설사 그 일이 잘 이루어졌고 얘기가 좋게 흘러간다고 해도 마음에 들지가 않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방동구를 지그시 바라보던 김철중 의원의 이마에 주름이 깊이 파였다.
“동구야...”
“예, 예......”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박동구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을 했다.
“국회의원의 되고 방송도 타면서 혁신의 아이콘이니 뭐니 하면서 주변에서 띄어주니 아주 기분이 좋지?”
“자, 장인어른.....”
“박동구야...”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그를 바라보며 윤정호 의원이 다시금 이름을 불렀다.
그러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박동구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제가 잘 못 했습니다! 제 주제를 모르고 설쳤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치욕스럽기도 하건만 박동구는 전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아주 기특하게도 시키지도 않은 일을 척척하면서 기쁘게 해주려 노력도 하고 많이 성장했어. 그래... 기특해. 행동은 기특하고말고.”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다니...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게.”
“장인어른...”
“잘 못을 했으면 벌을 받으면 되는 것을 죽을죄를 졌느니 뭐니 하며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말란 말일세.”
바닥에 머리를 박고 고개를 들지 못 하는 박동구를 내려다보면서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동안 잘 해주었지.”
“......”
“이렇게 충직하게 잘 따라와 주었으니 입문을 해서 입지를 쌓을 수도 있었던 것이지. 그렇게 생활을 하다보면 건방져 질 수도 있는 법이고 대범해 질 수도 있는 게지.”
김철중 의원이 뭐라고 하지 않는 한 바닥에서 절대 잃어나지 않을 것 처럼 그 상태로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한 번 뿐이야.”
“예...”
“일어나게.”
그제야 천천히 머리를 들고 천천히 무릎을 꿇고 있던 것을 바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몸을 앉혔다.
“차이링이라는 그 계집이 사라지고 양두라는 자가 들어왔는데 그 자도 어제 부로 한국을 떠났어. 그 상황이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알아본 바로는 한 명이 설쳐서 제법 소란스러웠다는데 그자와 협상이라도 했을까? 듣기로는 십령방주인가 하는 높은 직위의 자라는데.”
“서민준입니다.”
“서민준?”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말 실수를 하지 않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며 조심히 말을 이었다.
“예, 삼합회의 일이 있기 전에도 일성회화 마찰이 생겼었는데 그때도 피해를 본 것은 일성회 쪽으로 그 때문에 내부에서도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서민준이라는 놈 때문에 일성회는 물론이고 삼합회도 물먹었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장인어른.”
“이해가 가지 않는데? 조력자라도 있었던가?”
“아닙니다. 그 자는 혼자였습니다.”
“한 번 자세히 말해봐.”
한 명에게 두 조직이 물을 먹었다니 심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인지라 김철중 의원이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서민준이 그 자는 실로 비상한 자로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듣기로는 삼합회의 킬러가 서민준이를 노렸는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장체민이라는 상하이에서 온 감찰단의 사람도 서민준이에게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양두라는 그 자가 찾아왔는데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전쟁을 치루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서민준이라는 그 사내는 멀쩡하고 양두는 다시 출국을 했다는 건데... 삼합회라는 이름이 부풀려 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국제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아시아 지역은 그들의 입김이 상당히 강한 편입니다. 그만큼 세력이 크고 넓으며 중국대륙에서는 제일가는 조직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후환을 왜 살려두고 떠나느냐 이거야. 조직의 위상이 더렵혀진 꼴인데 살려 두는 게 이해 할 수가 없어.”
거기까지는 박동구는 알 수 없는 일이어서 더 이상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들어보면 어떻게 죽이려고 킬러도 보내고 노력도 해보았다는 얘긴데...... 포기를 한 건가?”
요즘 들어 일성회의 집안싸움이니 해서 제법 시끄러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삼합회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병원으로 계속 실려 오니 경찰은 물론이고 정계에서도 얘기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게다가 일성회와 삼합회 쪽에서 살인사건도 일어난지라 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일개 조직원이 아니라 간부급인물들이라 더 그러했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일성회화 삼합회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조직들 간의 혈투는 보통 큰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이 미묘하게 흘러갔다.
일성회와 삼합회간의 얘기가 흘러가던 것이 삼합회 내부의 혼란으로 이야기가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 혼란의 중심엔 한 명의 사내가 중심이 되어 있었고 그 자가 바로 서민준이었다.
갑작스러운 양두의 출국으로 왜 그가 다시 돌아갔는지 말이 많아졌는데 어쩌면 내부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이만석과 관계되어 있지 않느냐는 게 화두였다.
“청와대 쪽에서도 주시를 하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경찰뿐만이 아니라 검찰 쪽에서도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안이다.
“지지율이 바닥에서 오를 생각을 하지 않으니 크게 한 방 터트리려는 가 본데...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야.”
윤정호 의원 쪽에서 그걸 가만히 앉아서 내버려 둘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윤정호 의원이 아닌 김철중 의원이 당대표가 되어 장악을 했다면 수월 할 수도 있었다.
그는 대통령과 그리 사이가 나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민준이 그자가 윤정호 의원의 딸과 사귀고 있다고 합니다.”
“윤정호 그자의 딸이라면... 그 입양했다는 여식 말인가?”
“맞습니다.”
“음...”
뭔가 생각을 하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키던 김철중 의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민준이 그 자에 대해서 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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