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5화 데이트
* * *
“이제 기대도 하지 않아...”
어렸을 때는 그래도 자신이 노력을 하면, 예쁜 짓도 하고 착한 아이가 되면 언젠간 마음을 열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꾹 참고 살아왔고 노력해 왔는데, 이젠 그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가만히 누워 있던 하란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폰을 꺼내들었다.
아무생각이 없이 터치를 하며 폰을 만지 작 거리던 하란은 자연스럽게 카톡 창에 들어가 ‘나의오빠’로 저장되어 아이디의 대화창으로 들어갔다.
카톡 프로필 사진은 같이 다정하게 찍었던 사진으로 되어 있었다.
하란이의 사진 또한 소중하게 손을 잡은 채로 하트가 그려져 있는 사진이었는데 커플이 되고 난 후에 바꾼 사진들이었다.
“흠...”
가만히 그동안 주고받았던 카톡 대화들을 위로 올리며 살펴보는 하란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무슨 일 있는 거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말하는데 아무래도 이만석을 생각하며 하는 말인 듯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2주가 넘도록 만날 수가 없는 거야? 미안하다고만 하고...”
전화 통화를 하면 급한 일 때문에 만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거나 얼버무리는 말을 하며 피하는 것이 하란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고 뭔가 큰 사고라도 났을까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다보니 자신이 혹시 잘 못한 것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그러니까 나 힘들어... 오빠.’
애정이 듬뿍 담긴 카톡대화들을 바라보니 울적한 기분이 느껴졌다.
자신만 바라보면 좋아해주고 이것저것 다 해주려 하면서 사랑받고 있는 느낌을 듬뿍 들게 만들어주는 것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그저 가볍게 만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이만석을 보며 하란은 마음을 열어갔던 것이다.
가족들에게서 받지 못 하는 사랑을 이만석에게서 채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 여전히 사랑 한다 보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만나자고 말을 하면 피하는 것이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그만큼 더 신경이 쓰이고 상처를 쉽게 받는다는데 하린이도 그런 것 같았다.
거기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에게서 소외를 받고 살아오다보니 그게 더 심하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정말로 자신의 어떤 면을 보고 환상이 깨어져서 그런 것이라면 정말로 슬플 것 같았다.
‘이제 정말로 우리 연인이 되었는데 그럴리 없겠지?’
괜한 걱정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오빠?”
이만석은 7억을 받은 후 다시 찾아온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깔끔한 차림으로 외출을 했다.
차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갓길에 정차를 해두었는데 얼굴은 밝아 보였다.
“진짜 오랜만에 보네......”
그동안 삼합회를 상대로 10억을 받는다고 시간을 보냈던 이만석은 오랜만에 만나는 하란이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만나고 싶어도 삼합회 덕분에 혹시모를 위협을 대비하여 피해왔는데 오늘에서야 이렇게 약속을 잡고 나온 것이다.
간만의 데이트라 그런지 절로 흥이 날 정도로 기분이 좋은 이만석이었다.
똑똑!
그때 언제나 기대하게 만드는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자연스럽게 입가에 웃음을 지은채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란아!”
거기엔 발랄하게 손을 흔들며 자신을 바라보는 하란이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하란이를 보면서 이만석은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와~ 그동안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네?”
“정말?”
“그럼~! 내가 빈말 하는 거 봤어?”
“고마워... 오빠도 멋진 걸.”
“하하하...”
기분 좋게 웃음을 지은 이만석은 입술을 내미는 하란이에게 다가가 인사의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동안 보지 못 해서 섭섭했지? 오늘은 내가 아주 제대로 에스코트 해줄게.”
기분 좋게 10억을 다 받아 내었으니 그동안 만나주지 못 해 미안한 이만석은 제대로 하란이를 위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거기다 어제는 오늘 만날 것을 준비하기 위해 200만원을 투자하여 영롱한 빛 갈의 예쁜 보석들이 박혀있는 금목걸이도 구매했다.
“정말?”
“당연하지~! 네가 가고 싶다는 곳 다가고 하고 싶다는 거 다 해줄게.”
“고마워...”
“고맙기는 남자친구인데 당연 한 거지...... 그럼 출발해 보실까요?”
천천히 갓길을 벗어나는 이만석은 음악소리를 좀 더 크게 높이며 기분 좋게 도로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이만석은 그동안 하란이와 함께 영화도 보고 번화가를 거닐며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군것질도 했다.
옷 가게에 들러 예쁜 옷도 사보기도 하고 노래방도 다녀갔다.
예전에는 전혀 부를 수 없는 높은 곡도 이젠 시원하게 올라가고 바이브레이션도 깔끔하게 이루어지니 마치 정말로 가수가 된 것 같았다.
더불어 하란이가 좋아해주며 기뻐하니 참으로 만족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렇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 예약해두었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오며 분위기가 좋게 흘러갈 때쯤 이만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하란아...”
“응?”
조심스럽게 고기 한 점을 짚어먹던 하란이 눈을 깜박이며 바라보았다.
“왜 그래 오빠? 뜸들이지 말고 말해도 돼.”
웃음기가 깃든 목소리는 언제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이것도 하란이의 매력이라 생각하며 이만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별일 없으면 된 거지.”
의아한 듯 바라보는 하란이를 보고 얼버무리며 말을 끝내버린 이만석이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배고플 텐데 신경 쓰지 말고 먹어.”
“재미없어... 뭔가 비밀 같은 거 숨기는 듯 뉘앙스를 보이기나 하고...”
삐친 듯 중얼거리며 다시 식사를 이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만석은 괜한 걱정이겠거니 생각했다.
오늘 하란이와 데이트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평소보다는 더 과한 제스처나 반응에 조금 놀랐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발랄하게 행동하며 웃음을 잃지 않은 그런 밝은 아이였지만 오늘은 그게 더 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재미없는 농담에도 정말로 재밌 다는 듯 웃어주고 하나하나 호응해주는 행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전에도 자신의 행동에 좋아해주지 않는 하란이가 아니었지만 오늘은 정도가 더 했기 때문이다.
‘괜한 오해일거야.’
그렇게 넘긴 이만석은 식사가 끝나고 가볍게 디저트와 샴페인 한 잔을 마실 때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예쁘기 포장 되어 있는 선물을 꺼냈다.
“이거 뭐야 오빠?”
“보면 알아.”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으니 고급스러운 함이 모습을 드러내자 놀란 듯 바라보았고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목걸이가 가지런히 빛을 바라며 뽐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만석이 조심스럽게 하란이의 뒤로 이동하더니 목걸이를 들었다.
“가만히 있어봐.”
귀에 속삭이듯 중얼거리곤 조심스럽게 목에 둘러서 연결고리를 이어주었다.
잠시 멍하니 그대로 있던 하란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목에 걸린 목소리를 만져보았다.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작은 선물이니까.”
조심스럽게 하란의 머릿결을 쓸어준 이만석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몸을 앉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목걸이를 만지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란이를 보면서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고마워.”
이만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흐음... 전혀 고마운 얼굴이 아닌데?”
“아니야... 정말로 고마워.”
그러면서 웃음을 짓는데 어딘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선물인가...’
입맛을 다시며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 이만석이었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와 차를 운전했는데 신호에 잠깐 걸려 있는 사이 하고픈 말을 내뱉었다.
“바람도 씌울 겸 드라이브 어때? 서울을 벗어나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서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기분 좋을 거야. 다음날 아침에 바다풍경도 바라보고.”
“오늘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이지.”
“나는 괜찮아. 오빠는?”
“안 될 리가 있겠어?”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 짓는 하란이를 뒤로하고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다.
“오빠하고 단 둘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
“나도 그렇긴 한데 영원히 단 둘이만 있으면 심심하고 질릴걸? 아니다... 싫어질 지도 모르겠다. 이젠 오빠 따위 보는 것만으로도 한스러워 하면서...”
하란이가 하는 말을 듣고 농담 삼아 중얼거린 이만석이‘쿡쿡’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않아.”
“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혼자 재밌다고 히죽히죽 웃던 이만석은 작게 중얼거리는 하란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웃기지 않아 라고 말했어.”
“그래? 나는 조금 웃겼는데.”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하란이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이만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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