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3화 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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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난 후 장체민은 차이링이 사라져 현재 비워져 있는 삼합회의 지부장대행의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차이링이 사라져 버려 처음 얼마 동안은 분주하게 그녀를 찾기 위해 움직였지만 자금은 일성회에서 그녀를 데리고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결과였다.
이미 상하이에도 보고가 올라간 것으로 지금은 그가 지부장대행의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황동개발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그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 폐속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전쟁이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둘러앉은 사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물러선다면 삼합회라는 이미지에 아주 큰 타격을 입는 동시에 입지도 그만큼 좁아질 것이었다.
“두 시간 전에 이시모토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그리하겠다는 말이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던 것대로 함께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동맹을 맺는 것이고 일성회를 무너트린다는 것에 협조를 하겠다는 것인데 원하던 얘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놈들이 순순히 응했다는 것이 영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20대 후반의 사내가 한 말인데 그는 챵으로 이번에 감찰단으로 같이 내려온 사내였다.
“아무리 우선권의 얘기가 있었다고 해도 그걸로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좀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장체민에게 그때의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조건으로 동맹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완전한 믿음이 가질 않는 일이었다.
사실 구미가 당기는 얘기이긴 해도 일성회라는 조직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일도 없거니와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만큼 피해가 커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잘 보았다.”
챵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장체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나 역시 그놈돌이 하는 얘기를 전부 믿지 않는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고 이해타산이 끝난 후에야 결정을 내렸을 거야.”
순진하게 협조하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이 세계를 떠나야할 놈이고 머리에 총 맞기 딱 좋은 표적이 될 것이었다.
“그러면 차이링 지부장님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차이링의 밑에서 일을 해왔던 육중환이 조심스럽게 장체민에게 질문을 해왔다.
“일성회 쪽에서 어떤식으로든 처리를 하겠지...... 고문을 해서 정보를 빼내든지, 여러 가지의 상황을 생각해야 할 때야.”
찹찹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육중환을 두고 장체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일단 중요한 건 지워버리고 치워야겠지.”
그녀와 관련된 일이나 지금까지 벌여왔던 일중에 처리 할 수 있는 건 처리해버려야 했다.
“뭐라도 먹지 그래?”
이만석은 아직 뜯지도 않은 편의점 도시락과 음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얼마 전에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음식을 먹고 행동하던 여자가 어제밤부터 음식에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
아무런 대답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차이링의 표정은 진중했다.
마치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화가 난 듯 보이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한 마디도 없이 그러고만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만석은 들고 있는 도시락을 아주 맛있게 쩝쩝거리며 먹고 있었는데 편하게 앉아 먹는 모습만 보면 천하태평이었다.
“뭔가 생각을 하더라도 먹고 해야지 말이야. 속이 든든해야지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런 거라고.”
캔을 집어 시원스럽게 두어 모금 마신 이만석이 다시 도시락을 일회용 수저를 집어 들었다.
“이젠... 다 끝났어.”
“다 끝나다니 뭐가?”
“설사 이곳에서 나간다고 해도 끝이란 소리야.”
“삼합회에서 널 포기 했으니까... 그동안 쌓아올린 공이 무너져서 갈 곳이 없다 그런 거야?”
“순진한 생각을 하는구나.”
이만석을 올려다본 차이링이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웃음이었지만 이만석은 내색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뭐가 순진하다는 말이야?”
“처음엔 네놈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젠 수긍한다는 거야.”
자신을 꾀려고 하는 말인 줄 생각했던 차이링이었지만 며칠 동안 지내면서 생각을 해보니 정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진 상태고 찾지를 못 하고 있으니 냉정하게 버림을 택했다.
아마도 삼합회 쪽에서 자신에게 손을 쓴 것이 일성회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인데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절차에 벌써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왕이면 죽어버렸으면 하는 게 그들의 생각이겠지.”
“설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생각을 할까?”
“당연히 그럴 거야. 나라도 그렇게 바랄 테니까.”
자신의 처지를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잔인한 말을 내뱉는 모습에 이만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극단적인 생각 아니야?”
“넌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고개를 들어 똑바로 이만석을 올려다본 차이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이 설사 마음을 바꾸고 날 풀어준다고 해도 그들 손에 죽임을 당할 거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이미 손을 썼을 것이고 이젠 돌아갈 집도 없게 된 것이지.”
하는 말만 들어보면 참으로 가차 없는 행동들인데 정말로 그러 할까하는 생각이 든 이만석이었다.
하지만 차이링의 얼굴을 보면 전혀 거짓이 묻어남이 없어 보였고 삼합회의 지부장의 말이기도 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젠 지부장이 아니겠지만 참으로 냉혹하기 짝이 없는 처사였다.
‘하나하나가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차에서 내린 육중환으로 속으로 중얼거리며 빌라 안으로 들어섰다.
서민준의 일부터 꼬이기 시작하더니 이젠 지부장인 차이링 마져 납치를 당한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한 숨을 한 번 내쉬는 육중환의 표정은 좋지가 못 했다.
깊은 밤중이어서 골목은 조용했고 한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싶은 심정이야.’
안으로 들어서면 자신의 전화를 듣고 이미 저녁상을 준하고 기다릴 혜은을 떠올렸다.
삼합회 산하의 좋은 여행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던 여인이었는데 육중환과 눈이 맞아 일을 그만두고 살림을 차린 여인이었다.
눈웃음이 매력적이었고 나긋나긋 한 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여인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육중환은 이 건물에 사는 사람인 듯 옷을 여미고 내려오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힐끗 쳐다보고는 지나쳐 걸어가던 육중환은 순간 아랫배가 불로 지지는 듯 화끈한 느낌을 받고는 발로 걷어 차버렸다.
“새끼...!”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흥건하게 피가 흘러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다시금 달려드는 사내가 자체 칼을 휘둘렀는데 육중환은 옆으로 몸을 재껴 피함과 동식에 턱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퍼억!
강타당한 사내가 뒤로 물러서는 순간 육중환은 찔린 곳을 손으로 막고는 벗어나려 몸을 튼 순간 다시금 화끈한 고통이 복부에서 느껴졌다.
입에서 한 움큼의 피가 흘러내린 그 순간 한 번 더 묵직한 뭔가가 깊숙이 찔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비틀거리던 육중환의 몸이 바닥에 엎어졌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위해 다시 자리한 장체민을 마주하고 이시모토가 먼저 꺼낸 말이었다.
“설마하니 이런식으로 행동을 해올 줄은 몰랐는데 당신의 말대로 정인철 그 자가 얼마나 잔혹한지 실감이 가는 행동입니다.”
“이제 일성회와는 전쟁입니다. 도를 넘는 행동을 벌였어.”
이미 전쟁을 치루는 것으로 반향을 틀었던 장체민이어서 그저 형식적인 말인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이시모토가 차분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쪽에서 그런 행동을 벌였다면 이쪽에서도 못 할게 무어 있겠습니까.”
“같은 짓을 하잔 말이오?”
“당연하지요. 한국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이 있지요.”
장체민도 알고 있는 말이었다.
“중요한 것은 증거이지 다른 것인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자신들이 했다는 증거만 없으면 무슨 짓이든 못 할게 무엇 있겠느냐는 말과도 같았다.
앞으로의 일을 논의 하고 돌아간 장체민이 그렇게 나누었던 얘기를 고씹고 있을 때 챵이 곁으로 다가왔다.
“황석진이라는 자 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황석진?”
순잔 자신도 모르게 반문을 했던 장체민은 곧 그자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정인철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측근인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장체민이 건네주는 폰을 받아 들였다.
“나 장체민이오.”
[황석진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다하고 무슨 일이시오?”
[말씀 드릴게 있어 연락을 취한 것입니다.]
“할 말이 뭐요?”
가시 돋친 말로 질문을 던졌던 장치민의 귀에 의심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육중환이는 우리가 죽이지 않았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조소를 지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장체민의 눈동자는 어느새 신중해져 있었다.
[헛소리를 하려고 전화를 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요?”
[그리고 더 붙여 말하지만 차이링이 사라진 것이 우리 때문이라고 의심을 하는 것 같은데 차이링 또한 우리가 데려 간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농락하는 말이 흘러나오자 장체민이 그대로 통화를 끝내려고 했다.
[며칠 전에 이시모토와 자리를 마련했었지요? 거기서 우리 일성회를 치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 한 말이 튀어나오자 장체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회장님에게 이시모토 그 자가 연락을 취해 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