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22화 어림없지
* * *
“그 친구에게 한 번 말을 해봐야겠군.”
“서민준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인 정인철 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삼합회가 주시를 하고 있는데 이쪽에서 움직이기는 좀 그렇고 연락을 해서 알아봐달라고 하는 것이지. 그에 대한 지원은 우리 쪽에서 하는 것으로 하고.”
정인철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품속에 갈무리 하고 있던 폰을 꺼내든 황석진 비서실장이 이만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을 기다리는 것인지 그 상태로 있다가 얼마 뒤 머라고 말을 나누었는데 곧이어 조심스럽게 정인철 회장에게 넘겨주었다.
“서민준인가?”
[그렇습니다.]
“갑작스럽게 연락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보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하나 있어서 그런데 말이야.”
[부탁이라고 하시면...?]
정인철 회장은 이만석에게 삼합회에 일어난 일들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쪽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 까지 알려주었는데 그래서 이쪽에서 행동하기 좀 껄끄러우니 알아봐 달라는 말이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지원을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어서였다.
하지만 곧이어 정인철 회장은 이만석에게 뜻 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다행이도 회장님께서는 그 여자를 찾으실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말인가...?”
반문을 했던 정인철 회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하니... 자네가 범인이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
이만석에게선 말이 없었는데 그 순간 정인철 회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이거 내가 제대로 한 방 먹었구만! 한 방을 먹었어!”
그렇게 시원스레 웃음을 터트린 정인철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자네를 다시 보아야 할 것 같군... 그런 일도 저지르고 말이야.”
[원하신다면 그 쪽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모르게 말이지요.]
“아니야아니야... 자네가 납치를 했으니 자네가 데리고 있게. 것 보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갈 것 같구만...... 아주 재미가 있어.”
잠시 동안 삼합회의 행태를 떠올리던 정인철 회장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그쪽과는 재미난 얘기가 오고 갈 것 같은데 당분간은 따로 잘 보관하고 있도록 해.”
[그렇게 말씀 하신다면 제가 계속 데리고 있겠습니다.]
“아무튼 자네는 참으로 사람을 놀래키는 재주가 있구만......”
잠시 감탄사를 터트렸던 정인철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이후로 당분간 난 자네에게 연락을 하지 않겠네. 그 기간 동안엔 나도 그렇고 자네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어야 돼.”
[모르는 것이라면...?]
의문을 표하는 이만석의 목소리에 정인철 회장이 웃음이 깃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이 잘 못 되어도 난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어 손 쓸 이유가 없다는 말이네.”
그제야 무엇을 말하렴인지 알아들은 이만석이 알겠다는 대답을 하자 정인철 회장은 전화를 끊었다.
“아주 재미가 있어... 그렇지 않나?”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황석진 비서실장을 바라보며 정인철 회장이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박동구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손을 쓴 것이 틀림이 없다.”
장체민은 일성회에서 손을 쓴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인철 회장은 차이링의 목을 원하는 상태였고 그 사이에 차이링이 박동구와 뭔가 일을 꾸미는 것을 포착 후에 선수를 친 것이다.
실로 발 빠른 행동이었고 방심하다 뒤통수를 가격당한 격이다.
증거를 찾지 못 한 상황이니 저 쪽에서 저렇게 잡아 땐다면 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정인철 그 자를 얕보았다.”
차이링에게 독사 같은 자라고 들었는데 정말로 말 그대로인 것이다.
그날 저녁 장체민은 비선을 통해 다시 정인철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내 듣기로는 지부장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전화를 주었다는 것을 보아 좋게 생각해도 될 일인가.]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연락을 드린 참이었습니다.”
[좋은 얘기 였으면 좋겠군.]
이미 일성회 쪽에서 손을 썼으면서 저런 식으로 물어오는 모습에 장체민은 어이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이 아니다?]
“지부장에게 변고가 생겼는데... 그것이 우리가 손을 쓴 것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허어... 그러면 일이라도 터진 것이란 말이로군.]
혀를 차는 목소리에 장체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터진 것이지요......”
[그래서... 본론이 무엇인가?]
“목을 드리지요.”
[목을 준다?]
“회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녀의 목을 드리겠다는 말입니다.”
[나는 직접 봐야 믿는다네...]
“그녀가 사라졌다고 해도 조만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좋은 소식을 드리지요.”
통화를 끝낸 장체민이 인상을 굳혔다.
박동구와는 이미 그때 관계가 틀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제부로 상하이 쪽에서도 차이링을 구하는 쪽 보다는 처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어느새 해가지고 늦은 밤이 깊은 시각 장체민은 수유동의 한 일식집 안이었는데, 그는 40대 중반의 안경 쓴 처진 눈이 인상적인 호리한 체격의 남자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젓가락을 이용해 회 한 점을 집어먹은 장체민이 잔에 따라진 술을 가볍게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나쁜 조건은 아닐 것이외다.”
“나쁜 조건이 아니라... 하지만 장선생...... 이건 그쪽과 일성회의 문제가 아닙니까?”
“삼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세가 강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다음엔 그 쪽으로 이빨을 들이 밀 것이 확실하단 말이외다. 그리고 일성회만 무너진다면 그들이 선점하고 있는 기반의 우선권을 그대들에게 먼저 넘긴바 일년동안 개입 또한 없을 것임을 약속하지요.”
“차이링이 정말로 일성회에서 데려갔다고 생각하시오?”
“정황으로 보면 확실합니다. 정인철 그 자는 독사같은 자로 아주 냉혹하고 잔인한 인물이지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잔을 들어 단번에 술잔을 비웠다.
“확실히 일성회가 너무 덩치가 커서 이쪽에서도 버거운 건 사실이지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본국에 연락을 해봐야 알겠지만 생각은 해보겠소이다.”
“좋은 답변 기디라지요.”
장체민의 입가에 가는 웃음이 깃들어졌다.
“개수작이다.”
장체민이과 헤어지고 차에 올라탄 이시모토는 보좌관 타카시를 옆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자는 지금 일성회와의 더러운 싸움에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조용히 일성회와 삼합회간의 일들을 멀리서 지켜보았던 이시모토는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연락이 와서 자리한 장체민의 행동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자의 속셈대로 놀아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개입 못 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이시모토가 곧장 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는데 다른 어디도 아닌 일성회 쪽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다른 번호로 두 번의 전화를 더 걸었을 때에야 이시모토는 정인철 회장과 통화를 할 수가 있었다.
[어이쿠~ 이시모토 지부장 아니시오?]
“그간 잘 계셨습니까?”
[나야 언제나 잘 지내지... 그보다 나에게 중요한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인철 회장의 말에 이시모토가 사람 좋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삼합회의 감찰 장체민이라는 자와 식사를 같이 하였는데 아무래도 차이링의 일이 잘 못 된 것이 일성회 쪽에서 손을 쓴 것이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허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요?]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이렇게 연락을 취한 것입니다.”
[그것 뿐만은 아닐 것 같은데...?]
정인철 회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시모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손을 잡자고도 했지요. 일성회에게 척을 지고 싶지 않은 입장인지라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렇구려... 아무튼 연락은 좋게 생각도록 하지.]
그대로 통화를 끝낸 이시모토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성회가 너무 오랫동안 독주를 한 것이야... 이제 좀 날개를 접을 때가 되었지.”
“생각이 짧아서 지부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시지요.”
타카시가 하는 말에 쓴웃음을 지은 이시모토가 말을 이었다.
“삼합회의 속셈대로 놀아날 것은 없다지만 일성회가 너무 커져버렸다는 것에는 동감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다음 타켓이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아무래도 네 생각은 틀린 것 같군?”
“뭐라고?”
자신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이만석의 말에 차이링이 눈을 치켜뜨며 바라보았다.
“삼합회에서 아무래도 널 포기한 것 같단 말이다.”
“헛소리 하지마.”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어서 차이링이 냉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만석은 진심으로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게 당신 삼합회의 지부장이잖아? 그렇게 쉽게 포기 할 수가 있나?”
이만석은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이 삼합회에게 요점지역 중에 하나로 그곳의 지부장으로 올 정도면 어느정도 위치기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버려지다니 참으로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자신을 농락하는 말에 차이링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성질을 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게 이만석이 바라는 꾀로 생각해서 넘어가지 않으려 그런 것이다.
“알아 본 바로는 정말로 처음과 확연히 달라졌어.”
그렇게 말한 이만석이 차이링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인생이로군”
이만석은 혀를 차며 차이링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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