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18화 어림없지
* * *
이만석이 넘겨준 성홍일이라는 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인철 회장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연히 믿을 만한 측근들에게 인계된 것으로 성홍일이 잡혀서 넘겨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았다.
“마음에 들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린 정인철 회장은 사태가 제법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삼합회쪽에서는 해결사라는 이들을 지부로 파견을 하였고 그들은 하나같이 프로라는 것이다.
이만석이 넘겨준 정보는 대단한 것이었는데 그 성홍일이라는 자가 바로 오정권이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자가 이만석을 2주 동안 주시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를 죽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정인철 회장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만석의 말은 지방의 군소 조직과의 접촉성이 있었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이제 성홍일을 어떤 식으로든 고문을 하고 때려잡아서 정보를 케네게 하면 될 것인데 이만석이 가져다준 정보들은 참으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이만석은 백치가 될 정도로 완전히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면 그 자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그 정도의 선까지 쓰기엔 아직은 찝찝한 감이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까지 잡고 있는지 알아내지는 못 했다.
하지만 그자가 무얼 하는 자인지, 그리고 한국에 해결사라는 이들이 급파되었고 그들이 무엇을 벌이려 함인지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서민준이 그 자가 아주 대단한 일을 해주었어.”
“그렇습니다, 회장님.”
황석진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동의를 하자 정인철 회장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깃들었다.
“안 그래도 우리 일성회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섞여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을 이용할 샘이었구만.”
정인철 회장은 일성회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그저 그런 건달패들이나 군소 조직들을 안정을 찾으면 싹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그들과 접촉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벌이려는 것인지 감이 잡힌 것이다.
일성회가 엘리트화가 되면서 그걸 좋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고 실제적으로 떠난 이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일성회의 힘에 짓눌려 찍소리도 못 하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어서 말없이 조용히 따르는 이들도 있었는데 삼합회는 그걸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암... 정리를 해야지. 분란의 싹이 트기 전에 깔끔히 정리해야지.”
만약 분란이 일어났으면 모를 일이었지만 그 전에 그런 종자들을 전부 쓸어버리면 될 일이었다.
설사 반항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한 꺼번에 터져서 일이 커지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서민준이 그 놈은 확실히 보통 놈이 아니야.”
정보를 알려주니 이런 대어를 물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성홍일이 일성회에 넘겨지고 며칠이 지난 후 행안부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척살단을 꾸려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리스트에 오른 이들의 사무실에 급작스럽게 들이 닥쳐 감찰이라는 이름으로 뒤집어엎고는 그동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들이 적혀 있는 자료들을 내밀고는 정리해 버린 것이다.
척살단은 은밀하게 꾸려졌고 동시다발 적으로 들이 닥쳤으며 간부급들만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간 것이다.
처음 이 작전은 제대로 먹혀 들어갔는데 본사에서 내려온 이들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나누다가 그 자리에서 방심을 틈타 순식간에 제압당하는 이도 있었고, 회의를 가지는 틈에 들이닥쳐 한 번에 일망타진 한 적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소식을 접한 다른 이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서로 연대를 해서 반항을 했는데 그때부터는 조금 소란스러워 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인철 회장은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 할 인물이 아닌지라 그대로 밀어 붙이라는 지시만 내릴 뿐이었다.
바야흐로 조직세계에 새로운 피바람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모습이었다.
이 일을 듣고 경찰 쪽에서도 주시를 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일성회의 집안싸움이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인철.... 내가 그자를 잘 못 알고 있었던가?”
차이링은 자신이 바라던 대로 분란이 일어났지만 이건 자신이 바라던 그림이 아니었다.
첫 째로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럴 시기도 아니었다.
두 번째로 성홍일이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 사라졌다는 것이고 이것은 일성회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민준이에 대한 처리를 아직 확정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를 감시하러 떠났던 성홍일에 대한 실종이 크게 걸렸다.
“이건 정인철 회장 그자가 낌새를 눈치 챈 것이 틀림이 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대적인 토벌을 벌일 이유가 없단 말이야.”
성홍일이 실종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성홍일은 정말로 일성회에게 잡혀 들어갔다는 것이고 고문을 당한 끝에 비밀을 불었다고 봐야 할 상황이었다.
일성회에서 일이 벌어진 순간부터 차이링은 발 빠르게 움직였는데 언제고 싸울 준비 태세를 갖춘 것이다.
아무리 일성회라고 해도 대놓고 삼합회를 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준비를 갖추고 있다면 그들의 안방이라고 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서민준...”
차이링은 이만석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자를 이용해서 판을 키워보려던 것이 엉뚱하게 일이 흘러가 버렸고 감시를 보냈던 성홍일 마저 실종이 되 버린 것이다.
그리고 원치 않은 지금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앉아 있던 차이링은 그때 폰의 벨이 울리자 전화기를 들었다.
처음 보는 번호였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린 차이링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차이링인가.]
처음 듣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로 두 눈을 크게 뜬 차이링이었다.
“누구죠?”
[나야... 당신이 감시를 붙여주었던 자.]
폰에서 말이 들려온 순간 차이링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서민...준?”
[그래.]
생각지도 못 한 이의 전화에 차이링 적잖이 놀라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차분히 말을 받았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신 거죠?”
[날 감시하던 그자를 통해 알아내었지.]
“당신 이었군요.”
성홍일이 실종 되었던 게 감시를 당하는 당사자였던 이만석이라고 알게 되었지만 상황이 변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일성회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가 궁금할 거야...]
“......”
차이링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말을 듣는 순간부터 모두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넌 나를 잘 못 보았다. 네가 꾸미는 싸움에 나를 끌어 들이지도 말았어야 했고, 너희들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나를 건들지 말았어야 했다. 넌 건들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거다...]
순식간에 끝나는 통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차이링은 가슴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서민준과의 통화가 끝이 나고 안 그래도 심란하던 차에 차이링은 이번엔 박동구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일성회의 일은 유감입니다.]
“나쁜 상황만은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감이라는 말에 반발심으로 한 것이어서 좋지 않은 차이링이었다.
[정인철이 그자가 발 빠르게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뭐가 더 나쁜 상황이 있겠습니까. 이러면 아버님께 얘기를 꺼낸 제 입장이 난처해지는데 거참......]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해결 할 테니까.”
[그래도 제가 그렇게 냉정한 사람은 아니니까 도움이 필요 하다면 어느 정도 까지는 도와드리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만나서 얘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
[그럼.]
전화 통화를 끝낸 차이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자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고 이젠 노골적으로 자신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해결한다고 말은 하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큰 방법이 없었다.
발 빠르게 대처를 한 정인철 회장으로 인해 처음의 습격이 타격이 큰 것이었고 반항을 한다고 하지만 이미 크게 한 번 흔들려 버린 그들은 기세에 눌려버려 짧은 시간 안에 소탕될 것이었다.
일성회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일임과 동시에 얕보였던 이미지를 바로 새우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불똥은 자연스럽게 삼합회에 옮겨 붙게 되었다.
이미 증거를 확보한 일성회는 삼합회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했고 이렇게 되면 자신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 소식은 당연하게도 베이징을 넘어 상하이까지 들리게 되어 감찰단 까지 파견을 보낸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 이들은 가양동의 황동개발의 5층 빌딩건물의 건설회사에 들어섰는데 삼합회가 자본을 투자해 세운 회사들 중에 하나였다.
이곳 말고도 여행사부터 시작해 사채업까지 여러 방면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어.”
소파에 몸을 앉힌 30대 후반의 다부진 체격의 남자는
빗어 넘긴 머리에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언뜻 보면 사업가로 비춰질 정도로 반듯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하이에서 한국지부로 파견을 나온 감찰단의 수장격인 사람으로 이번 일을 두고 일성회와 해결을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정인철 회장이 세게나온다고 하지만 그가 증거로 제시한 것은 성홍일 그자 하나뿐이에요. 오정권이를 살해 하였다는 흔적도 없어 확실한 증거라고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미 일은 틀어져 버렸고 일성회만 다시 세를 재정비하게 된 것 아니요.”
“......”
뭐라고 할 말이 없었던 차이링이 침묵을 지켰다.
그 사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은 장체민이 깊이 한 번 들이 마시고는 뿜어내었다.
“박동구 그자와는 어떻게 되었소?”
여기의 일은 어느 정도 알고 나서 온 것이라 차이링이 김철중 의원의 사위인 박동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직 틀어진 건 아니에요.”
“내 듣기로는 그자가 여자를 밝힌다는데...”
“무슨 뜻이죠?”
“이번 일은 당신이 자초한 것이니 한 번 해결을 보란 말이외다.”
고개를 치켜든 차이링은 입술을 깨물었다.
장체민은 지금 자신보고 박동구에게 몸을 내주고 그를 끌어들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