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17화 어림없지
* * *
“내가 김만수올시다.”
“육중환이라고 합니다.”
사내가 내미는 손을 맞잡은 189의 다부진 체격에 100kg이 넘어서는 거구의 김만수가 억센 손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머리는 스포츠 형식으로 밀었고 나이 35살의 그는 성골로 성깔이 드세고 사나웠다.
그는 부천 원미구를 일대로 나이트, 룸살롱, 가라오케 등 세를 떨치던 조직의 보스로 말단 행동대장직부터 시작해서 30살도 채 되기 전에 자기만의 조직을 구축하고 지역기반을 정립한 불세출의 사나이었다.
지금은 일성회의 지역 조직원으로 과장직을 달고 있지만 그의 식구들이 있을 때는 여전히 보스로 통용되었다.
상황을 볼 줄 아는 안목으로 성질을 죽이고 일성회에 들어가 있지만 그는 전형적인 조폭으로 언제고 기회가 되면 이빨을 드러낼 사람이었다.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통성명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자리에 몸을 앉혔다.
예전부터 김만수가 운영해오던 룸살롱의 고급룸으로 이곳에 있는 식구들은 모두 자신의 사람들인 것이다.
“일단 만나기는 했지만 가담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닙디다. 내가 여기 일성회에 들어와 보니까 느끼는 건데 샐러리맨 행세를 하지만 고것이 절대 무시할게 못 된단 말이요. 그 상황에 이빨을 들이밀었다면 나 또한 골로 가는 것이었지.”
컵에 따르지 않고 맥주를 그대로 병나발을 분 김만수가 입가에 흐르는 술을 닦고는 웃음 지었다.
“일단은 나도 일성회의 가족이니 듣는 귀가 있고 실제로 들어오는 얘기들 또한 많습디다. 서민준이라는 놈이 보통내기는 아니라지만 족보도 없는 놈이란 말이오. 지금까지 그놈의 행보를 보면 목숨을 걸고 외줄을 타는 격이나 마찬가지지.”
김만수는 서민준에 대해서 얘기를 듣고 지켜본 결과 실력만 믿고 설치는 놈으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서민준이 때문에 일성회가 소란을 겪었다는 것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렇지... 그놈 때문에 서울 쪽은 꾀나 어수선했지. 물론 지금도 그렇고...”
맞는 말이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김만수였다.
“김만수씨가 지역기반을 어떻게 닦았고 조직을 세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서 조사를 하셨구만....”
쓴웃음을 지은 김만수가 다시 맥주를 두어 모금 마셨다.
“지금 이렇게 눌러 앉아 있지만 거기에 만족할 사람이 아닌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일성회의 조직이 방대해 졌지만 충북은 물론이고 충남의 지역이 완전히 다져진 게 아닙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일어날 이들이 도처에 있지요. 이건 대업입니다.”
“대업이라...”
사탕발린 말이었지만 일성회가 흔들리고 분란이 일어나 그 틈에 신진세력이 일어나는 것이니 대업이라면 대업이 맞았다.
하지만 거기엔 삼합회가 연관이 되어 있고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공만 하면 이곳이 아니라 서울에서 대조직의 기반을 다질 수가 잇는 것이다.
“나한테만 접촉한 것만은 아닐 테고... 전부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하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당연히 조사를 했고 믿을만 한 자들만 접촉하는 것이지요. 준비만 되면 동시다발 적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전쟁이로군.”
일이 시작 되면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순간 목이 타오른 김만수가 다시 맥주병을 들어 마셔대었다.
“아버님과 얘기는 해보았지만 상황이 쉽지 많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일성회가 보통 조직도 아니고 말입니다. 거기다 윤정호 의원이 당대표가 되고 나서 기반을 새롭게 다지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모험이란 말입니다.”
커피잔을 내려놓은 박동구가 진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차이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염치없이 무턱대고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일성회에게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본 후에 본격적으로 얘기를 나누자는 거죠.”
“삼합회가 자신이 있는 모양입니다?”
박동구는 차이링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에 만나서 들은 것이 있어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작은 일 조차 도모할 힘이 없다면 한국에 오지도 않았겠죠.”
“그렇긴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박동구가 다시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러면서 차이링의 몸매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순식간에 일어나 휩쓸고 지나갈 테니까.”
“일만 잘 풀린다면 얘기가 성사되는 것에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힘들긴 하지만 제가 힘을 써보지요.”
차이링은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박동구가 자신의 장인어른에게 아직 별다른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모험이니 어쩌니 하지만 김철중 의원은 윤정호 의원을 벼르고 있었고 상황만 좋게 흐른다면 손을 잡을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박동구는 능구렁이 같은 인물로 자신이 아직 구체 적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뻔뻔하게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나는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사업가 기질도 다분한 사람입니다. 때론 대어를 잡기 위해선 모험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업을 하려면 거래 상대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웃음을 지은 차이링은 커피 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자신을 바라보는 박동구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무시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말처럼 때로는 서로를 더 잘 아는 상태에서야 확실히 일을 일구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결국엔 그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어야 할 것이었다.
성홍일은 이만석이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그리고 누구와 만나고 무얼 하는지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았다.
절대 가까이 접근하는 법이 없었고 시야에 들어오는 거리를 유지하고, 감시를 당하는 상대의 심리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을 벌이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외모 속에 자신을 감출 줄 아는 자였고 누구보다 바보스러워 질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저 감시만 하는 것이라면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별로 이상할 점이 없어... 그래서 의심스러울 정도야.’
일주일동안 이만석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부터 시작해서 감시에 들어간 성홍일은 특별히 누굴 만나거나 낌새가 보이지도 않았다.
렌트를 해서 차를 바꿔 타는 모습을 보았고, 윤정호 의원의 딸이라고 알려진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사이좋게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일이라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에 의심을 품고 더욱더 이만석에대해 감시를 하는 성홍일이었다.
지독한 놈들은 한 달 동안이나 자신을 꾸미는 놈들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놈들을 상대해 본적이 있는 성홍일이라 이만석도 그런 분류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을 때 성홍일은 자신의 생각이 조금은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지켜보고 바라보아도 이만석은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상생활을 보내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알아 낸 것이라는 것은 돈을 제법 헤프게 쓴다는 것과 윤하란이라는 여자와 정말로 사귀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일성회와 연관된 것이라고는 어떠한 것도 없었다.
한 가지 소득이라면 이만석 그동안 아무일 없이 지내온 만큼 일성회가 이만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실해 졌기 때문이다.
‘머리 쓰는 일은 나에게 맞지가 않아서 이것만으로는 많은 것을 유추해 내기가 어렵구나. 일단 얘기는 해보아야겠어.’
차이링이라면 어쩌면 이것만 가지고도 여러 가지 일을 유추해 낼 수 있을지 몰랐다.
일단 자신은 지금까지 지켜보았던 내용만 그대로 전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만석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 성홍일은 뒤로 몸을 뺐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 전봇대에 몸을 기대고 선 성홍일이 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차이링에게 연락을 취하고 좀 더 지켜보든지 해야 할 것이었다.
“형씨.”
전화를 걸다말고 성홍일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바라보았다.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거요?”
거기엔 쓴웃음을 짓고 있는 이만석이 서있었는데 순간 성홍일의 발이 이만석의 무릎관절을 노리고 날아올랐다.
거리는 가까웠고 행동은 빨랐음으로 피하지 못 할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이만석의 다리 또한 날아오는 성홍일의 발과 거의 동시에 날아올라 맞부딪쳐갔다.
팍!
가볍게 맞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물러섰던 성홍일의 다리가 이만석의 머리를 노리고 쏘아져왔다.
날렵한 동작으로 정확히 맞는다면 그대로 절도할 것이었다.
파악!
잠시 후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건 이만석이 아니라 성홍일에게서 들려온 소리였다.
동물적 감각으로 날아든 공격을 고개를 살짝 숙여 피함과 동시에 드러난 성동일의 사타구니를 그대로 차올리고 턱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품속으로 파고들어 비틀거리는 성홍일의 복부에 두 번의 주먹을 내리 꽂고는 그대로 머리를 잡고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퍼어억!
“컥!”
이미 턱을 맞아 나가버린 상태에서 얼굴이 다시 찍혀버리는 순간 극심한 고통과 충격이 몰려왔고 머리가 흔들렸다.
코뼈가 내려앉은 상태에서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진 성홍일을 보면서 이만석은 한 숨을 내쉬었다.
‘예사로운 자가 아님은 확실 할 텐데...’
이만석은 진즉 부터 이자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체감각이 예민해진 이만석에게 아무리 성홍일이라고 해도 완벽하게 자신의 살기를 지울 수는 없는 일이어서 기감에 잡힌 것이다.
처음엔 일성회의 사람인줄 알았지만 워프를 해서 그의 시야에 벗어난 상태로 일성회와 접촉을 해오다보니 그쪽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삼합회에 대해서 정보를 얻고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해보니 어쩌면 삼합회 쪽의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오늘 결심에 선 이만석은 방안의 불을 끄자 물러나는 성홍일을 보고는 곧바로 워프를 해서 막 전화를 하려는 그를 덮친 것이다.
성홍일의 품을 뒤져 지갑을 꺼내든 이만석은 그가 중국국적의 사람인 걸 알았지만 아쉽게도 들어본 적은 없는 인물이었다.
손을 뻗어 머리를 잡은 이만석은 곧바로 그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고통스런 숨소리를 내뱉으며 정신을 못 차리던 성홍일은 곧바로 몸을 떨다가 손을 때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해결사라...’
심각해진 얼굴로 성홍일을 내려다보는 이만석은 그가 삼합회에서 보낸 해결사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었고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자가 오정권이를 죽여 버린 장본인이라는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 한 일이어서 이만석은 놀랐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했다.
‘일단 이자를 일성회로 넘겨주도록 하자.’
생각을 끝낸 이만석이 성홍일을 들쳐 매고 그 장소를 벗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