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4화 요주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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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이만석은 정장을 쫙 빼입고 과일바구니와 선물세트를 준비한 채 하란의 집으로 찾아갔다.
딱 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저택의 철문을 바라보면서 이만석은 모텔의 일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오빠를 보고 싶어 하셔.}
{나를?!}
놀란 얼굴로 물어오는 이만석에게 하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만나고 있는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하셨어.}
{음.}
뜻 밖의 말에 얼굴이 굳어지는 이만석의 모습에 하란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아버지가 초대를 하는 것은 오빠가 처음이야. 그래서 나도 많이 놀랐어. 그래서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하란의 말을 들으면서도 이만석은 찝찝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습격했던 일성회가 움직였던 건 하란의 아버지인 윤정호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와줄 거지 오빠?}
하란은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정식으로 이만석을 소개 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았다.
똑바로 처다보는 하란의 시선에 이만석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고마워 오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란이 이만석의 목을 끌어안았다.
‘내가 정치계의 거물을 만나게 될 줄이아.’
꿈에도 생각지도 못 했던 일이 눈앞에 나타나자 긴장이 된 이만석이었다.
목을 가다듬고 인터폰을 누르자 곧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서민준이라고 합니다.”
그 후로 잠시 동안 기다리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이만석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대문이 으리으리한 것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 정원에 다시 한 번 이만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안으로 걸어가면서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화단, 그리고 작은 연못을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정원이 크구나......”
제법 오랫동안 걸어서야 2층 대저택의 현관문 앞에 도착한 이만석은 정장 넥타이를 바로하고 벨을 눌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화란이 밝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서와 오빠.”
생긋 미소 지으며 말하는 화란은 정말로 기뻐보였다.
고개를 끄덕이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선 이만석은 눈앞에 펼쳐진 넓은 응접실과 고급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 까지 말 그대로 티비에서나 보던 재벌가의 집이었다.
하란이 이끄는 대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선 이만석은 가정부들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서오게...”
그때 응접실의 마주보는 곳의 안방으로 보이는 문이 열리면서 50대 초반의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바로 하란의 아버지이자 뉴스로 보았던 윤정호 의원인 것이다.
“허어... 내 하란이한테 듣기는 했지만 참으로 잘생긴 친구로구먼......”
이만석의 첫인상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은 윤정호 의원이었다.
깔끔한 정장차림에 시원스런 이목구비는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렇죠?”
아버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하란이 미소를 지었다.
“서민준이라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이만석은 어색한 느낌을 느꼈다.
유명인을 앞에두고 대하려니 좀 부담스러운 것이다.
“허허허... 그렇게 긴장 할 것 없네... 편하게 생각해 편하게. 여기 가지고 온 선물좀 받아주시오.”
“네, 의원님.”
그때 가정부 아주머니 한 분이 이만석에게 다가오더니 들고 있는 과일바구니와 집들이선물을 양해를 구하고 받았다.
“식사가 다 차려 졌으니 들어가지.”
“예, 예...”
긴장하며 대답한 이만석이 윤종호 의원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두 명의 가정부 아주머니가 열심히 음식을 나르고 있었는데 식탁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한상 가득 차려져있었다.
“앉지.”
윤종호 의원이 앉은 상석 오른쪽에 권하는 자리에 이만석이 몸을 앉혔고 그 옆에 하란이 앉았다.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식사해... 하란이 손님은 내 손님이기도 하니까.”
“감사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만석은 전혀 편하지가 않았다.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는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받으며 식사시간이 지나가고 윤정호 의원은 이만석을 따로 서재로 초대했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노크소리와 함께 하란이가 직접 커피두잔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고맙구나...”
“아니에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지은 하란이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좋은 얘기 나눠 오빠.”
“녀석...”
물러나는 딸아이를 보면서 윤종호 의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들지...”
“예...”
조용히 커피잔을 든 이만석이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가고 윤정호 의원이 입을 열었다.
“내 하란의 말을 들어보았지만 따로 자네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다네.”
“그렇습니까?”
조사를 해보았다는 말에 이만석이 긴장 된 빛을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민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하나도 나오는 게 없더란 말이야. 출생지역은 물론이고 어디 학교를 다녔고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하나도 자료가 없어.”
당연한 얘기여서 난감한 심정의 이만석이었다.
“누군가 자네?”
표정이 굳어진 윤정호 의원이 직설적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정체를 숨기지 말고 드러내는 게 어떻겠나? 처음엔 그저 바람둥이라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자네를 파보면 의심이 돼. 부랑자인 이만석이라는 평범한 남자의 이름을 이용해 오피스텔을 구해서 사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접근을 한 것인가. 나를 만나기 위해서인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질문에 이만석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신이 이만석이라고 사실대로 말 할 수도 없고, 가만히 침묵을 지키자니 자리가 편치가 않았다.
“말하기 힘든가 보군...”
쓴웃음을 지은 윤종호 의원이 똑바로 이만석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모종의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나 때문에 딸아이에게 접근을 한 것이라면 떨어져주게. 그 아이에게 상처 입히지 말고.”
“아닙니다.”
“뭐가 말인가?”
“하란이한테는 일부러 접근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란의 아버지가 의원님이시라는 걸 일성회의 습격이 있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이만석의 얼굴을 본건데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네 같은 인물은 처음이야... 위험한 냄새가 나...... 주민등록번호가 말소가 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없던 인물이 뚝하고 떨어진 꼴이란 말이야. 거기다 대단한 재물에다 출중한 실력까지.”
“죄송합니다.”
결국 입을 열지 않는 이만석을 보며 윤정호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기 어려운 비밀도 있는 법이지...”
잠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윤정호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란이... 상처가 많은 아이야. 그것만 알아 줬으면 좋겠어.”
“예...”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온 이만석은 하란이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창가로 이동해 나란히 대문으로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을 보면서 윤정호 의원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긴장했어 오빠?”
“조금...”
“미안해... 그리고 와줘서 고마워.”
조심스럽게 허리를 끌어안으며 가슴에 기대는 하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일성회쪽에서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하지... 이곳은 그들의 안방이니까...... 모르는 게 이상한 거야.”
삼성동 프린스호텔 라운지에서 식사를 끝내고 여유롭게 차 한 잔을 즐기던 차이링이 받아든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거기엔 간략하게 일성회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이만석에대해서 하나하나 적혀 있었는데 며칠동안 조사를 벌였던 결과물들이었다.
앞서 적힌 내용은 알고 있는 것들로 도박장이 털렸던 일과 이만석을 잡으려다 허탕을 친 일들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대충 훑어서 내려가곤 그 밑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대충 보고서를 전부 다 읽은 차이링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지어졌다.
“흥미로운데...?”
이만석이 교재를 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가 윤정호의 딸이라는 것이다.
클럽과 나이트를 다니며 윤정호 의원의 골치를 섞였던 것으로 알려진 딸이 서민준이랑 교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들 말고도 적혀 있는 내용들로 유추해보면 결국엔 윤정호 의원과 서민준이라는 연결고리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뒤 흔들어 놓고 농락을 한 자를 갑자기 잡지를 않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윤정호 그자가 가담되어 있었단 말이지.”
왜 일성회에서 이만석을 끝까지 상대하지 않았는지 감이 잡혔다.
윤정호 그 자가 나선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윤정호 의원이 이만석을 손을 봐주라 시켰고 일이 커져가는 와중에 건들지 말라는 변덕을 부린 것이다.
시작한 것도 윤정호 의원이었고 끝낸 것도 윤정호 의원이었다.
“하지만 부실한데... 서민준이가 어디서 뭘 했는지는 하나도 없어.”
“그것이... 그 전의 행적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오피스텔 또한 명의가 다른 사람이름으로 되어있어 알아보았지만 두 사람에게서 연관성을 찾을 수조차 없습니다.”
“완전히 감추어진 인물이란 말이지?”
어디서 살았었는지, 뭘 하는 인물인지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는 인물이 서민준이었다.
“비록 윤정호 의원 때문에 손을 때게 되었지만 정인철 회장이 아주 벼르고 있을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차이링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저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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