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1화 요주의 인물
* * *
“여의도로 가자고.”
“알겠습니다.”
뒷좌석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주는 수행비서가차에 운전석에 올라탔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의원님, 황석진 실장라고 합니다.”
“황석진? 지금 여의도가는 길이니까 나중에 연락하라고 해.”
살짝 눈살을 찌푸린 윤정호의 말에 다시 전화를 받았던 수행비서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서민준이라는 자 때문에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만...”
“서민준?”
의외의 이름에 이채를 띄었던 윤정호 의원이 폰을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조심스럽게 건네주는 것을 받아든 윤정호 의원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신가, 황실장.”
[여의도 가시는 길인데...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의원님.]
“그래... 뭐, 그건 넘어가기로 하고. 서민준이 때문에 할 말이 있다고?”
[예... 전에 말씀하신대로 경고차원에서 가볍게 손을 봤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이런 일로 전화 한 것에 기분이 상한 윤정호 의원이었다.
하지만 다음에 들려온 말에 다시금 다시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은... 서민준이란 놈이 예사 놈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예사 놈이 아니다?”
[그놈에게 저희 직원들이 크게 당했습니다.]
“자세히 한 번 말해보게.”
[의원님의 말씀대로 그저 그런 놈이라는 생각에 적당한 선에서 손을 썼는데 잡는 거는 고사하고 반대로 당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강과장은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이 돼?”
[예... 아직 깨어나진 못 했는데 다행이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요양은 해야 하겠지요.]
“설마하니 알려진 건 아니겠지?”
[깨어 나봐야 알겠는데... 강과장 성격으로 본건데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장담 할 수 있는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어보는 윤정호 의원이었다.
[물론입니다.]
허나 곧바로 당당히 반문을 해오자 냉기가 흘렀던 목소리가 다시 차분해졌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이딴 걸 보고 할 걸로 연락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윤정호 의원이 본론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의원님께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놈이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데...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힘들 것 같다?”
[예... 사실 영업부 쪽에서 사단이 나서 손실이 좀 있었습니다. 아직 그걸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이 서민준이라는 놈 때문에 피해가 여기서 더 커지면 좀 곤란하게 되어서 말입니다.]
“일성회가 그깟 피라미 하나 때문에 엄살을 피우다니 웃기는구만...”
[요즘 불경기라서 말입니다. 저희 회장님께서도 죄송하게됐다고 말씀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원하는게 뭔가?”
[원하는 것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표정이 굳어진 윤정호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성미가 아니야 나는.”
[그럼 염치불구하고 말씀드리는 것인데... 강원도에도 지부를 낼까합니다.]
“급하게 식사를 하다보면 체하는 법이라네.”
삼년전에 충북을 넘어 충남까지 접수를 한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말이었다.
충북을 접수한지 체 1년이 지나기도 전에 충남에 진출하였고 그 두 곳을 아직 완전히 다지지도 못 한 와중에 강원도에 진출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회장님의 바람입니다...]
잠시 동안 말이 없던 윤정호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나도 도움을 좀 받았으니 그 정도는 해 줄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의원님...]
“도와주겠네... 하지만 그 이상은 탈이 난다는 걸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서민준이라는 그놈 확실히 치워드리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
통화를 끝낸 윤정호 회장이 웃음을 지었다.
“일성회가 요즘 너무 대범해졌어... 안 그런가?”
“예... 의원님.”
“그저 강하기만 한 몽둥이는 부러지는 법이지.”
서울 경기일대를 넘어 충북, 충남을 접수한 일성회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암흑가를 장악해가는 중이었다.
허나 아직은 일성회가 윤정호 의원에게 필요한 집단이었다.
손대기 더러울 일을 처리해줄 이들이 있어야 했고, 그 일에는 그저 뒷골목 집단이 아닌 엘리트를 표방하는 일성회가 아주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윤정호 의원과의 얘기가 있은 후 일성회는 그 뒤로 본격적으로 이만석을 잡기위해 사원들을 풀었다.
직접적으로 정인철 회장의 말은 없었지만 비서실장이자 전무인 황지환의 신경을 쓰라는 말이 떨어진 순간부터 행안부엔 비상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보통에서 특급으로 분류가 된 이만석은 그 뒤로 일성회로부터 서너번의 습격을 더 당했다.
하란의 아버지가 윤정호 의원이라는 것이 밝혀져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받은 습격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당한 이만석이 아니어서 빈번히 습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일성회에서도 신경이 곤두 설 수 밖에 없었다.
세 번째 습격이 끝이 나자 포위를 이중 삼중으로 해서 회심의 기습을 벌였는데 그 마저도 포위망을 뚫어버리고 유유히 벗어난 것이다.
이일로 인해 행안부의 윗줄에서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질책을 당하게 되었고, 책임자들을 옷을 벗어야 할 판이었다.
행정안전부 쪽에선 영업부에서 일어난 사단을 두고 더 이상 웃을 수만은 없게 되었고, 안 그래도 한 명에게 두 번이나 도박장을 털린 일로 자존심이 상한 일성회는 또 다시 한 명에게 농락당하는 꼴에 전국에 웃음거리가 될 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 지 못하고 있었다.
실은 도박장을 두 번을 급습한 무명인과 농락을 하듯 습격을 할 때마다 놓치는 서민준이라는 인물이 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악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호 의원에게도 들어가게 되었다.
“자네는 어떻게 보는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들려오는 말을 보면 절대 평범한 자가 아닌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수행비서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윤정호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 다른 조직도 아니고 일성회란 말이야. 그놈의 행보는 대놓고 농락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하란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그런 돈 좀 있는 바람둥이 같은 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의 전화엔 생각외의 놈이라는 게 밝혀졌고 이번일로 윤정호 의원은 이만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지금쯤이면... 내가 시킨 것이라는 걸 알았겠지.”
일성회의 표적이 되고도 잡히지 않고 활보를 할 정도면 의뢰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낼 정도의 능력은 되리라 생각했다.
“하란이와 얘기 좀 해야겠어.”
그날 집으로 돌아온 윤정호 의원은 강의가 끝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방에 대기하고 있는 딸을 불렀다.
하지만 하란은 아버지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방에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하는 수 없이 윤정호 의원이 직접 딸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느냐?”
노크를 하고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조심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윤정호 의원은 침대에 엎어져 누워 있는 하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왔어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냉기가 풀풀 풍기는 목소리였다.
“너하고 얘기가 하고 싶어서 말이다.”
“전 아버지 하고 할 말 없어요.”
“계속 이대로 방에만 있기에 힘들지 않느냐?”
“필요없어요, 그러니까 나가요.”
여전히 차가운 딸의 말에 윤정호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서민준이 그놈 때문에 그러느냐?”
그 순간 하란이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손을 쓰신거예요?”
“하란아...”
“약속을 어기고 오빠에게 손을 쓴 거면 용서하지 않겠어요.”
“허어...”
설마하니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윤정호 의원은 헛숨을 내쉬었다.
‘서민준이라는 그놈...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구나.’
하란이가 나돌아 다니는 틈에 이상한 놈이 접근한다 싶으면 그동안 쥐도 새도 모르게 경고를 주고 쫒아버린 윤정호 의원 이었는데 서민준을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 전까진 남자 때문에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애비가 정말로 손을 썼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의외의 반응에 서훈한 감정을 느낀 윤정호 의원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정말......”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부들부들 떠는 하란의 눈동자가 충혈이 되었다.
그러더니 눈 주변이 촉촉이 젖어들면서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선 끝에 방울져 떨어졌다.
충혈 된 시선으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에 당황한 윤정호 의원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농담 삼아 한 말이니까.”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배다른 자식이라고 가족들에게 소외를 받고 자라서 그런지 윤정호 의원은 의외로 하란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설사 그게 강금을 하는 엇나간 행동이라 해도 말이다.
“......”
“정말이란다. 서민준 그놈은 멀쩡히 생활하고 있어.”
“다시는 그런 농담 하시지 마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