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6화 마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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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다 만들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이만석은 간만에 양념치킨 한 마리를 시켜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허기진 상태에서 먹는 것이라 그런지 야들야들한 치킨다리가 가히 일품이었다.
입안에서 맴도는 매콤한 맛이 절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배고플 때 이렇게 떡 하니 하나 뜯으면 참 맛있단 말이지...”
어느새 닭다리 하나를 뚝딱 해치워 버린 이만석이 이번엔 닭 날개를 집어서 막 먹으려는 찰나에 폰에서 들려오는 벨소리에 꺼내서 확인을 해보았다.
“아니 이게 누구야?”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전화번호가 폰에 찍혀 있었다.
물론 폰 번호를 스스로 찍어주고 가긴했지만 하란이 먼저 전화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들고 있던 닭날개를 놔두곤 휴지로 손가락을 닦은 이만석이 통화버튼을 터치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나야.]
“하란이?”
[응... 뭐야? 내 번호 저장 안했던 거야?]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만석이 아니라는 듯 서둘러 대답했다.
“그럴 리가.. 당연히 저장했지.”
[오빠 지금 뭐해?]
혼자치킨 뜯고 있었다고 말을 하려던 이만석은 뭔가 없어 보이는 것 같아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집에서 쉬고 있었어.”
[그럼 시간 있다는 거네?]
“응... 그렇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이만석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우리 만날까 오빠?]
속으로 쾌재를 지은 이만석이 흔쾌히 응해주었다.
“가만히 쉬는 것 보다는 좋겠지. 알았어.”
[그러면 카톡 날려줄 테니까 알았지 오빠?]
통화를 끝내고 잠시 동안 폰을 바라보던 이만석의 입이 함자박만하게 벌어지며 웃음보가 터져나왔다.
“크흐흐흐흐~ 길조가 좋아... 암~ 좋고말고! 요것이 먼저 전화를 해올 줄이야... 참으로 발칙한 아가씨로구만......”
늘씬 체격의 풍만한 젖가슴, 거기다 볼륨감 넘치는 엉덩이까지 하란의 외모를 상상하던 이만석이 황홀경에 젖었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고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40년 넘게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한 번 하지 못 한 이만석은 안마방이나 한 두 번씩 기웃거리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도 푼돈을 쥐어주면 웃음을 지어주는 아가씨들이 유일하게 이성과 교제 아닌 교제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이만석 인생에 하란같이 쭉 빠지고 예쁜 미녀는 꿈도 꾸지 못 할 그런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대범하게 먼저 들이대면서 놀래 키더니 이번엔 만나자는 전화까지... 홀홀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던 이만석이 서둘러 먹다 남은 치킨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치킨은 식어도 맛있으니까 나중에 먹자.”
다시 박스에 잘 포장해서 냉장고 안에 넣어둔 이만석이 방안의 쓰레기들을 치우고 서둘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옛날 아저씨의 이만석에서 20대 호남형의 잘생긴 서민준으로 페이스오프를 하고는 벗어서 잘 걸어놓은 정장을 집어 들었다.
“먼지가 묻었군.”
클리너 마법으로 한 번 깔끔하게 정장의 먼지를 제거해준 이만석이 주섬주섬 입고 있는 옷들을 벗어버리고 하나하나 갖춰 입기 시작했다.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고 넥타이를 매고 명품 벨트를 당당하게 허리에 둘렀다.
그 후에 마이를 CF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멋스럽게 한 번 펄럭이며 입어준 이만석이 거울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제 나를 찾는 여자도 있고 이만석 너 출세했다. 가만... 지금은 서민준이라 해야 하나? 하하하하하!”
한 번 호탕하게 웃어준 이만석이 ‘카톡!’거리는 소리에 폰을 들어 확인 해보았다.
거기엔 하란으로부터 몇 시까지 어디로 나오라는 약속장소가 적혀있었다.
“기다려라 예쁜아 오빠가 갈 테니까~!”
신바람이 나는 이만석의 모습이었다.
워프를 해서 주차장 근처에 모습을 드러낸 이만석이 계산을 끝내고 키를 받아들고는 차를 끌고는 나왔다.
“영 익숙치가 않으니... 차차 익숙해지겠지?”
운전하는 게 서툴러서 조심히 차를 끌고 나서는 이만석은 초보운전으로 하란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알려주는 대로 가고는 있지만 이게 영손에 익지를 않으니 신통치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에 벤츠를 끌고 나가는 것이니 자부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참을 나아가다가 전방 300m에서 우회전 하라는 내비게이션의 명에 여러 번 거리를 재며 스크린을 힐끔거리다 우회전 깜빡이를 키고 조심스럽게 커브를 돌았다.
그래도 넉넉히 시간을 잡고 출발해서인지 다행히 제시간에 맞춰 하란과 약속을 잡은 강남역에 도착 할 수가 있었다.
“애가 어디에 있는거지?”
운전대를 잡은 채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이만석은 폰벨소리를 듣고 냉큼 전화를 받았다.
[오빠 어디야?]
“나 지금 3번 출구 갓길에 있는데?”
[내가 갈게. 오빠 차 종류 뭐야?]
“검은색 벤츠s350이야.”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잠시 동안 기다리니 누가 조수석의 유리를 두드렸다.
“오빠!”
고개를 돌리는 이만석을 향해 활짝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든 하란이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괜찮아...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하늘거리는 베이지색 원피스 차림의 하란은 풋풋하면서도 깜찍한 매력을 발산했다.
“역시... 예쁘다.”
“오빠도 멋진데 뭘~!”
“그래?”
“응. 그보다 우리 영화 보러 가자! 마침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오늘 만난 김에 오빠하고 보면 되겠다~!”
“영화보러 가자고?”
“왜 오빠는 싫어?”
“아니... 싫기는 나도 좋지.”
영화관에 간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판이어서 어색하게 둘러대는 이만석이었다.
“그런데 이차 1억도 넘는 차 아니야?”
“1억?”
“응... 역시 오빠 능력 되나봐?”
이 차가 1억이 넘는지 2억이 넘는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이만석인지라 그냥 대충 넘어갔다.
“그것 보다 이거 산거 아니야. 렌트한거야.”
“렌트라고?”
“응.”
렌트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던 하란이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렌트라도 돈이 제법 나갈 텐데......”
“여유는 되니까 상관없어. 그보다... 렌트가 한 종류가 아닌 여러 종류의 차를 골라 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서 말이야.”
차마 국세청 때문에 차를 살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이만석이었다.
“그렇구나...”
이만석이 하는 얘기를 알아들은 하란이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란이 잠시 폰을 꺼내더니 영화표를 예매하기 시작했다.
“시작하려면 1시간 20분 정도 남았네.”
“내가 예매하면 되는데...”
“아니야. 내가 영화보자고 했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그보다 나 아직 밥 안 먹었는데 오빠 밥 먹었어?”
“그냥 조금...”
“그러면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 집 있는데 같이 갈래?”
“파스타집?”
“응... 거기 진짜 맛있어~! 친구들하고 자주 가는 곳이야.”
“그럼 거기가자.”
“네비 내가 찍어줄 테니까 그럼 출발해 오빠~!”
차를 출발시킨 이만석은 하란이 찍어주는 대로 조심스럽게 운전해갔다.
“어때 오빠?”
토마토 파스타를 포크로 어색하게 돌돌 말아서 먹고 있던 이만석은 하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
“에이~ 전혀 맛있는 표정이 아닌데?”
입으론 맛있다고 해도 정말로 이만석의 표정은 그저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김치찌개 같이 얼큰한 탕 종류나 매운 양념치킨 같은 고기류는 좋아하지만 이런 파스타는 그리 입에 맞지가 않았다.
맵고 짠 걸 선호하다보니 느끼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한 몫 했다.
“그래 보여?”
“응... 그보다 이것도 먹어볼래? 이건 오빠 입에 맛을 지도 모르는데.”
보기만 해도 느끼함이 살아 꿈틀거릴 것 같은 크림파스타를 권하는 하란의 모습에 이만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괜찮아.”
바로 거절의사를 밝히며 레몬주스를 마시는 이만석이었다.
“그런데 여기 분위기 괜찮네?”
이국적인 인테리어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런 고급스런 파스타집은 처음 오는 이만석은 연신 신기해하며 둘러보았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 것인지 작게 웃음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파스타 먹는 모습도 그렇고 오빠 이런데 처음이야?”
“응...”
외모만 놓고 보면 근사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어도 이상하지 않는 훈남 인데 신기해하며 둘러보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 좀 웃겼다.
“오빠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좋아하는 음식이라...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얼큰한 김치찌개가 당연 최고지... 그거 하나면 밥 두 공기는 뚝딱 이야~ 거기에 가볍게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캬~”
생각만으로도 좋은 지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바라보던 하란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빠... 말하는 게 아저씨 같애.”
“아저씨?”
“표정도 그렇고...”
속으로 뜨끔한 이만석이 서둘러 둘러댔다.
“에이~ 아저씨라니 말이 심하잖아. 그냥 내 취향이라고.”
“후후훗... 그렇게 둘러 될 것 없어... 농담 한 거니까.”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식사를 끝낸 이만석과 하란은 영화 시간에 맞춰 나섰다.
그렇게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상영관을 찾아 향했는데, 하란이 예매한 영화는 할리우드 코믹멜로물이었다.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런 장르는 취향이 아니어서 졸다가 시간을 다 보낸 이만석은 밖으로 나와서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흠... 생각했던 것 보다는 별로였어. 안 그래 오빠?”
“뭐... 그렇지.”
졸면서 봐서 그런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만석은 하란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즐겼다.
영화 보는 것보다 이게 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기만 한 이만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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