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토미의 태그술사-56화 (56/57)

〈 56화 〉 망가 용사 성공담(2)

* * *

"생각보다 훨씬 큰데?"

에테르 윙으로 쉬지 않고 날아온 결과 마왕성으로 추측되는 곳 앞에 도착했다. 크고 웅장한 검은 성. 내 예상보다 훨씬 높았기에 쳐다보느라 고개가 아플 지경이었다.

날아오는 동안 큰 방해는 없었다. 마물들을 만났지만 날고 있는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 몬스터들은 별로 없었고, 큰 전투 없이 도착할수 있었다.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네"

"마왕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 때문이야, 어우 소름 끼쳐."

비렌데가 양팔을 교차하고 몸서리치는 모습이 너무 호들갑처럼 느껴져서 그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자 다들 따라 웃었다. 큰 싸움이 있기 전의 긴장감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비렌데 덕분에 긴장이 좀 풀리는데? 좋아 가볼까?"

"이렇게 대책 없이 그냥 가도 되나 싶긴 한데, 주인을 믿어야겠지?"

"그럼! 대장님은 강하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리더잖아? 단백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

흐뭇한 소리를 해준다. 이제 우리도 확실히 한팀이라는 유대감이 생긴 걸까.

"갑자기 이렇게 감동시켜도 울진 않을 거니까 말이야."

"이걸 안 울어주네. 빨리 예쁘게 울어줘. 주인."

"대장님의 눈물? 어라? 그건 맛있을지도."

비렌데와 세키돌이 점점 죽이 맞아가는 것 같아 무섭다.

"멈춰! 이 변태들."

"강단백이 우는 건 나도 좀 보고 싶을지도?"

"에린델까지."

평소처럼 날 놀리는 그녀들 덕분에 곧 있을 절망적인 싸움에 대한 공포감도 조금은 줄었다.

"자 그럼, 이제 가보자고."

내 말이 끝나자 다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이번 싸움은 여태까지보다 훨씬 어려울 거라는걸. 대부분 사람이 무모하다고 생각할만한 말도 안 되는 작전.

하지만 애초에 이곳에 온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차피 기적적으로 이세계에서 부활한 나다. 운은 나에게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상상하는 마법을 쓸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능력, 거기에 히토미의 태그술사라는 사기적인 기술까지 쓸 수 있다.

내가 방심만 안 한다면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 옆엔 세 명의 매우 예쁘고 강한 동료들까지 있으니까.

그렇게 몸을 숨기고 있던 큰 바위 뒤에서 나와 마왕성으로 곧장 움직였다. 이상하리만치 주변에 몬스터들은 없었다. 그저 멋진 석상들이 많이 보일뿐뿐이었다.

대충 보는데도 엄청난 퀄리티였다. 살아있는 사자의 얼굴을 떼어놓은 듯한 섬세한 표정. 긁히면 살아남지 못할만한 두꺼운 발톱까지.

하나를 조각하는 데만 몇 달씩은 걸렸을 듯한 실감 나는 조각상들이 수십 개는 있었다.

그렇게 석상을 보며 성 가까이 가는데도 아무런 적이 나타나지 않자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에린델이 입을 열었다.

"이 조각상들은 보통 장인의 솜씨가 아니네?"

다양한 석상 중 용의 얼굴을 닮은 석상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멋있네. 집에 하나 가져다 두고 싶을 정도야."

"이 무거운 걸 어떻게 가져가려고?"

"공간전이 마법이라도 연습해볼까?"

"단백은 진짜 될 거 같아서 무서워."

"근데 포기할래. 생각해보니까 나 집이 없잖아."

자가가 없는 슬픔. 이세계에서도 아직 내 집은 없었다.

"주인은 생각보다 바보라니까. 마왕을 물리친다면 왕이 영지 정도는 하사해주겠지. 거기다 가져다 놔."

"내 집 마련의 꿈! 딱 기다려라, 석상아. 마왕 잡고 온다."

그렇게 석상들을 지나 마왕성의 입구에 들어서려는 찰나.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쿠구구궁

'무슨 소리지?'

"단백! 뒤!"

다급히 뒤를 바라보자 석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날개가 접혀있어서 몰랐지만, 움직이는 석상은 생각보다 더 크고 흉포해 보였다.

"가, 가고일!"

분명히 알고 있는 몬스터다. 활동하지 않을 때는 석상의 모양으로 굳어있지만, 움직인다면 상당히 위협적인 흉포한 몬스터.

"아악!"

가장 뒤쪽에 있던 비렌데가 가고일의 발톱에 긁혀 날아갔다.

젠장할, 이건 내 실수다. 왜 석상을 보고 바로 가고일을 떠올리지 못했지? 분명히 많은 매체에서 접한 적 있는 몬스터인데도!

분노가 치밀어 머릿속이 뜨거워진다. 비렌데를 공격한 가고일을 향해 바로 마법을 사용한다.

"파이어 랜스!! (Fire Lance)"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창이 가고일의 몸을 빠르게 꿰뚫었다. 가슴 부분을 관통당해 상체의 상당수가 날아가 버린 가고일은 그대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다른 석상들도 깨어나고 있었다. 개체 수가 너무 많다. 하나하나 상대하다간 분명 우리도 큰 피해를 본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모두 뒤로 물러나! 세키돌은 비렌데를 챙겨줘!"

내 말에 세키돌은 비렌데를 들고 물러났고 에린델도 끄덕이며 뒤로 움직였다.

시간이 없다. 속전속결 해야 한다. 하지만 어설픈 마법으로는 저것들을 쓸어버릴 수 없다.

범위가 넓고 강력한 마법을 떠올린다. 분명히 초고위 마법이다. 내 주변에 마나의 아지랑이가 강렬하게 요동친다.

그것들을 제어해 나의 힘으로 소화한다. 그리고 외쳤다.

"라이트닝 퓨리 오브 더 헤븐(Lightning Fury of the Heaven)"

하늘이 화가난듯 엄청나게 강력한 벼락들이 몰아쳤다. 아직 돌 상태인 가고일들은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고, 몸이 동물로 변한 가고일들은 새카맣게 타버렸다.

"후우"

성능은 확실했지만, 강력한 마법이니만큼 체내의 마나 소모량도 심했다. 로지에에게 배운 메디테이션을 활용한다. 마음을 비워 평정심을 찾고 세계의 힘을 내 것으로 한다.

성공이다! 단 몇 초의 시간이지만 몸 안에 마나가 다시 넘쳐흐르는 게 느껴진다. 명상을 계속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고위 마법을 난사해도 별로 지치지 않을 것이다.

"대장님!"

하지만 내가 명상을 하는 그 짧은 시간 나는 완벽히 무방비하다. 명상이 끝났다고 느꼈을 시점에 라이트닝을 맞지 않았던 가고일이 순식간에 나에게 날아와 발톱을 휘둘렀다.

"크악!"

가고일의 공격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마치 바위에 맞은 것처럼. 그대로 날아가서 돌바닥에 굴렀다. 옆구리가 돌부리에 찍혔는지 아려왔다.

'큭 바위?'

날 공격한 가고일은 움직이는데도 석상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른 가고일들은 분명히 생물의 모습이 되어서 행동했었는데, 돌인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공격받아 주춤거리자 그 녀석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돌로 된 날개를 움직여 나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이 반응하지 못했다. 가고일에게 맞았던 가슴팍과 다친 옆구리가 욱신거릴 뿐 다리가 움직여주지 않았다.

저걸 맞으면 죽는다. 좀 전엔 세키돌의 외침 덕에 조금이라도 피했기에 정통으로 맞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마왕은커녕 이딴 돌덩에 죽는 건가?

하지만 그 순간

"패스트 스나이핑(Fast Sniping)"

에린델 특유의 화려한 빛이 나는 화살. 그녀의 마나집속탄이 가고일의 머리에 정확히 명중해서 박살 내버렸다.

"강단백! 괜찮아?"

"큭, 그럭저럭. 트럭에 치인 느낌이었어."

"트럭?"

"아, 아니. 음 골렘에 치인 느낌이었어. 묵직하더라."

그녀와 얘기하는 사이 정신을 차린 비렌데가 와서 치유를 시작했다.

"고마워 비렌데. 넌 괜찮지?"

"내 걱정은 하지 마. 난 바로바로 치료하면 그만이니까. 맘껏 싸워. 얼마든지 치료해줄 테니까."

오늘따라 더 든든하게 느껴지는 비렌데였다.

"대장님! 저 돌덩이 계속 움직이는데? 마무리할까?"

머리가 박살 났는데도 가고일은 계속 움직였다. 돌로 이루어진 만큼 급소는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할게. 어차피 저건 제대로 부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저녀석은 상당히 빠르다. 맞을 리는 없겠지만, 우선 파이어볼을 날려 견제를 시작한다.

­펑! 퍼펑!

가고일이 피한 파이어볼들이 바닥에 부딪혀 주변을 불태웠다. 그리고 다시 내게 접근한다.

엄청난 속도. 이정도면 세키돌의 돌진속도와도 비슷하다. 알고도 피할수 없는 빠른 속도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움직임이 직선적이다. 그렇기에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가고일이 날아오는 경로로 파이어볼을 다시 한 방 날린다. 가고일은 분명히 이 공격을 피할 것이다. 그때가 기회다.

마나블레이드를 켜고 블랙 미스릴 소드를 손에 쥔다. 그리고 앞쪽으로 조금 전진해 자세를 잡는다. 내가 날린 파이어볼을 어느 방향으로 피할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피하든 상관은 없다. 마나 블레이드로 늘어난 사정거리 덕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 될 뿐.

조금 더 높게 베냐 아래로 베냐의 차이일 뿐이다.

"발검."

흔히 발도술(??)이라 불리는 칼집에 넣은 상태에서 빠르게 칼을 뽑아내 일격. 비렌데의 신체강화마법과 남몰래 꾸준히 연습해온 덕에 생각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가고일을 깔끔하게 두 동강 내버렸다.

머리가 부서진 정도로는 계속 움직이던 가고일도 몸이 완전히 분리되자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강단백! 어떻게 한 거야?"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던데다 마나 블레이드로 사거리도 늘어났기에 멀리서 보기엔 갑자기 가고일이 분리된것처럼 보였을것이다.

"내가 말했지? 믿어보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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