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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미의 태그술사-55화 (55/57)

〈 55화 〉 망가 용사 성공담

* * *

"대장님! 얼른 가자!"

로지에에게 인사를 하러 갈지 고민했다. 하지만 왠지 작별인사를 하는 기분이 들것 같아서 그냥 떠나기로 했다. 꼭 다시 돌아온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래, 가자 세키돌."

아침은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그래 봐야 수프와 마른 빵이었지만, 일부러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사실 이곳에 오고 나서 식사를 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기분상의 문제였다.

한국에 있을 때도 시험 보러 가기 전에는 든든하게 먹는 게 일종의 의식이었으니까.

"주인, 나 마음이 많이 가벼워진 거 같아."

평소 거침없는 거 같지만 의외로 생각이 많은 비렌데. 그녀는 간밤에 마음을 많이 다잡은 것 같다.

"다행이네. 가벼운 마음으로 가자고."

"최고의 쾌감을 맛보게 해줄 거지?"

"물론이지. 짜릿할 거야 세계를 구하는 쾌감이라는 건."

"흐응 기대할게."

그리고 성문 쪽으로 다 같이 걸었다. 유독 에린델이 말이 없나 싶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강단백, 오늘 컨디션 좋아보이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거는 에린델.

"그러게.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상당히 긴장됐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오히려 설렘이 더 크네."

"아마 단백이 특이 취향의 변태라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 나는 지극히 평범하거든. 그냥 실전파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보여줘. 실전에서."

"믿고 있으라고."

보여줘야만 한다. 아니 보여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린 모두 죽게 되겠지. 그런 엔딩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성문에 도착했고 정찰병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나가기 전에 뒤에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았다.

로지에가 있었다. 멀리서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녀가 어제 한 말이 떠올랐다.

'그냥 나도 같이 갈까?'

사실 그녀가 같이 와준다면 큰 전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게이트가 없어졌다고 해서 이곳에 마물의 침공이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켜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내 말에 납득해주었다.

하지만 사실은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고 얘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왕토벌에 실패했을 경우를 말이다. 로지에 같이 강한 마법사가 남아 있어 준다면 내가 없어도 마왕군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나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성문을 나서자마자 외쳤다.

"에테르 윙(Etherwing)"

나와 동료들 모두에게 투명한 에테르의 날개가 생겼고 곧장 날았다.

"저번에 갔었던 라르디노 성 근처로 가자. 게이트가 있었던 곳 왼편에 큰 다리가 있어. 그게 보일 때까지 일단 빠르게 가자."

"응."

"알았어."

"그래."

셋의 대답을 듣고 내가 앞장서서 날았다.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컨디션은 좋다. 사실 마왕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다.

"내가 살던 곳에 이런 말이 있었어."

다들 내 말에 눈에 물음표를 띄우며 날 쳐다본다.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

"근데 이번 일에는 안 맞는 말 아냐?"

에린델의 재빠른 태클.

"왜 안 맞아?"

"이번에 후회할 일이 생기면 그대로 끝이잖아. 해보고 후회하고 싶어도 말이지."

"아 그렇네. 에라이 날카로운 엘프 녀석. 간만에 멋있는 척하고 싶었는데."

"단백은 그런 거 안 해도 원래 좀 멋있어."

"뭐지. 에린델이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날 칭찬해준다고?"

"누가 그러더라,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한 방 먹었다.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웃었다.

****

멀리 라르디노 성이 얼핏 보였다. 그러자 루시페르와의 혈전이 떠올랐다. 만나게 될지도 몰랐던 강력한 군단장. 이번에도 그런 적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강할지도 모르지.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기부터는 조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얘들아, 왼편에 보이는 구릉 너머에 착지하자."

지상에 착지해서 주변을 살폈다. 정면에 큰 강이 쭉 이어지고 있었고 북동쪽에 큰 다리가 보였다. 강 근처 땅들은 검게 물들어있었다.

"저기 보이는 땅들은 왜 색이 어두운 거지?"

"마족의 기운 때문이야. 마족들이 오래 머무는 곳들은 점차 땅이 변색되거든."

대답해주는 에린델의 말에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검은땅이 보이면 마족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군."

"마음이 아프네. 여긴 진짜 예쁜 곳이었는데."

마왕군에게 침략당하기 전에는 엘프국이었던 곳. 그녀는 검게 물든 땅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다시 아름답게 만들러 가자고."

"응."

다시 비행마법을 쓰고 우선 강을 건너기로 했다. 그 후 높은 곳을 찾아서 주변을 살피면 된다.

그렇게 드디어 마족의 구역으로 처음 들어섰다. 지상이 온통 시커먼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기분 탓인지 조금 오싹한 느낌도 들었다.

주변에 높은 곳을 찾다 보니 멀리 작은 산이 보였다. 우선은 그곳을 목표로 날았다. 숲에는 나무가 많았지만 전부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마치 죽은 나무처럼.

작은 산의 정상에 착지했다.

"천리안(clairvoyance)"

곧장 천리안을 켜고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성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아래도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 할 모양이었다.

"우선 산에서 내려가자. 더 들어가 봐야 하겠어. 역시 여기서는 성 같은 건 보이지 않네. 비렌데, 혹시 아는 건 없지?"

"그렇지. 나도 마왕성에는 가본 적이 없어. 거긴 마왕군 간부급은 되어야 가는 곳이니까."

"아마 페르난의 옛 수도 근처에 있을 거 같아. 마나도 풍부한 곳이고 지리적으로도 좋으니까."

에린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땅이 검게 물들고 식물들이 변색되었을 뿐 지리적으로는 변화가 없었기에 그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산에서 내려와서 이동속도 증가 마법을 걸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대장님, 옆에!"

그러던 중 세키돌의 다급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기괴한 몬스터가 있었다. 얼굴은 늑대의 형상, 두 발로 걸으며 온몸에 털이 가득하지만, 몸 일부가 썩어있었다. 마치 좀비와 늑대인간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

나는 망설이지 않고 블랙 미스릴 소드를 칼집에서 뽑아 휘둘렀다.

하지만 좀비 답지 않게 민첩했다. 나에게 달려들던 방향을 틀어서 피해버렸다.

반대편에서 달려들던 또 한 마리의 늑대인간 좀비는 세키돌이 날려버렸지만, 곧바로 일어섰다.

"맷집도 강하고 빠르다는 건가. 성가신 놈들이네."

그렇게 달리던 걸 멈추고 동료들과 서로 등을 맞대며 위치를 잡았다. 그동안 늑대인간 좀비들은 점점 모여들었다.

"조용히 가고 싶었는데, 역시 이미 들킨 모양이네."

"그렇겠지. 사실 투명 마법을 써서 몰래 왔어야 했었을 거야."

"아냐 에린델. 그건 일부러 안 쓴 거야. 사실 수비 병력이 있다면 미리 끌어내고 싶었거든. 마왕과 싸우기 전에 미리 정리하고 들어가야지."

"마왕과 싸우는 도중 수비병력까지 들이닥치는 상황을 피하려는 계산이었던 거야?"

"물론."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에린델. 마왕이라는 존재 앞에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굴당하는 상황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내가 이녀석들을 느리게 할 테니 그 후 바로 공격을 시작해줘. 각자 정면 쪽 적을 맡아달라고. 비렌데는 지원 잘 부탁하고."

"대장님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어차피 주인이 다 잡아주겠지."

"많이 잡을 테니, 돌아가면 맛있는 거 사줘."

그렇게 각자 한마디씩 하고 바로 전투를 시작했다. 우리를 둘러싼 늑대인간 좀비들은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내가 마법을 쓰려 하자 바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프로즌 필드(Frozen field)"

자주 쓰던 얼음 족쇄 마법보다 범위가 넓은 마법을 상상했다. 주변이 전부 차가워지며 그 위에 있는 녀석들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

"하앗!"

세키돌이 기합을 지르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느려지기 전에도 그녀의 속도에는 한참 못 미쳤던 늑대인간들은 맥없이 터져나갔다.

에린델도 작게 중얼거리나 싶더니 갑자기 빛이 나는 화살을 쐈다. 그 화살은 달려들려던 늑대인간에 미간에 명중했고 그 후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마나 블레이드(Mana Blade)"

나도 곧장 마나 블레이드를 켜서 검의 사정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렸다. 느려지기 전에는 맞추기 힘들었지만, 속도가 느려진 늑대인간 좀비들을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각자 수십 마리씩 처리하고 나니 더 이상 남아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내 강화마법은 어땠어? 뭔가 다른 거 없었나?"

확실히 평소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조금 더 편안한 느낌이 있었다.

"이 모든 건 비렌데님 덕이었던 건가? 평소보다 몸을 움직이기 편하던데."

"흐응, 좋아. 그 정도 칭찬이면 기분 좋아졌어."

"아무렴요. 파티 플레이의 꽃은 서포터지. 항상 좋은 버프 팍팍 부탁합니다."

"걱정 마, 이번엔 귀찮아도 전력으로 할 거니까."

그렇게 늑대인간 좀비들을 정리한 후 에린델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문득 세키돌의 건틀릿이 눈에 들어왔다. 못 보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저번 전투에서 그녀의 건틀릿은 부서졌었다.

"세키돌, 그러고 보니 그 건틀릿은 어디서 난 거야?"

"이틀 전에 어떤 병사 아저씨가 줬어. 내가 건틀릿이 부서져서 우울해한다니까 갖다 주더라구."

친화력도 좋은 녀석이다. 나랑 로지에가 해피타임을 보내는 동안 병사들이랑 친해진 모양이었다.

"에린델, 그 수도까지는 얼마나 가면 될까?"

"우리 속도가 빠르다는걸 감안해도, 이틀 정도는 걸릴 거야."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네. 솔직히 이곳에서 야영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잠도 포기해야 하는군."

"그렇지. 언제 덮쳐질지 모르는데."

"별수 없네. 상당히 어그로가 끌리겠지만 날아서 가자."

"날면 몇 시간 내로 도착하겠지만, 괜찮겠어?"

"해야지. 나는 안자고는 못 버티거든."

"엄살 부리지 마. 하루 이틀 안 자는 거 정도야 별거 아니잖아?"

"미남은 잠꾸러기거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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