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기어오는 혼돈(3)
* * *
에테르윙을 이용해 필리포성에 도착한 나와 세키돌은 예상외의 상황에 놀랐다. 게이트를 부수기 전부터 몬스터들은 필리포성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성이 공격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안으로 들어와 한 병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분명 마왕군이 몰려들었을 텐데 ?"
"많이 몰려왔습죠.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럼 그 많은 마물들은 어떻게 막은 겁니까?"
"마법사의 탑에서 지원이 나왔어요. 수도에서 긴급 지원요청을 했다던가."
이곳으로 출발하는 마차를 타기 전에 분주했던 군사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타국과 용병단체 등 도움이 될만한 곳에는 다 연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흠 마법사의 탑은 타국의 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상황이 상황이니 이럴 수도 있겠죠."
병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곧장 부상자들을 모아놓은 막사로 향했다. 치유사는 없지만, 의사는 있다. 등에 업힌 에린델과 비렌데의 상태를 체크해야한다. 숨은 쉬고있지만 위급해질지도 모른다.
막사에 도착해서 의사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는데 세키돌이 입을 열었다.
"대장님, 저기 봐봐"
"응?"
못 보던 여자가 있었다. 긴 붉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치유마법을 쓰고 있다는 거였다. 많은 병사가 금방 회복되고 있었기에 상당한 실력자란 걸 알 수 있었다.
"치유사 십니까? 지금 두 명이 기절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상태 좀 봐주세요."
내 말을 들은 그녀가 파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치유사는 아닌데? 아, 여기선 높임말을 써야 하나? 당신 계급이 어떻게 되지?"
"십인장입니다만."
"나이는?"
"25살 입니다."
갑자기 취조받는 듯한 기분. 뭐지 이 여자는?
"뭐야 동갑이잖아. 전쟁통이긴 하지만 편하게 하자고 우리. 난 지원 나온 거라 계급은 없어. 대충 부사관급 대우는 받아야겠지만."
동갑? 또래의 여자들보다는 조금 어려 보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의외였다. 갑작스러운 말놓기 제안에 조금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 그 마법사의 탑에서 지원 나왔다는 사람 중 하나가 당신?"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여긴 나 혼자 지원 나왔는데?"
"?"
혼자 나왔는데, 이곳에 몰려온 마물들을 막을 정도로 도움이 됐다고? 자기가 뭔 현자급 대마법사라도 된다는 건가. 납득은 가지 않았지만 우선 용건을 얘기한다.
"우선 내 동료를 봐주세, 아니, 봐줘. 마나를 뺏기는 마법을 맞고 기절했는데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리고 그녀의 옆 간이침대에 에린델과 비렌데를 눕혔다.
"흐응 어디 보자."
그녀의 손에 푸른빛의 작은 마법진이 생기더니 곧 사라졌다.
"충격이 상당한 상태야. 잘못하면 큰일 날뻔했네. 누구한테 이런 강도 높은 마나번을 맞은 거야?"
"제1군단장 루시페르."
"뭐?! 그럼 네가 그 게이트 부수러 갔다는 전생자?"
"맞아. 게이트 부수는 것도 성공했어. 죽을 뻔했지만."
그녀는 놀란 토끼 눈으로 치유마법을 쓰면서 물었다.
"그럼 루시페르는 어떻게 된 거야?'
"죽였어. 힘들었지만."
"그럴 리가. 군단장들은 몇만 명의 병사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 들었는데?"
"대장님은 강해! 무시하지 마!"
옆에서 듣고 있던 세키돌이 내 편을 들었다. 이 녀석은 내가 무시당한다고 느낀 것 같다.
"괜찮아 세키돌. 날 무시한 게 아니야. 놀랄만한 일이니까."
"그치만."
세키돌은 여전히 표정이 안 좋았으나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음, 게이트를 부수고 온 게 사실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사실 아까부터 마물들의 발길도 뚝 끊겼고 말이야."
"그래서 내 동료들은 괜찮은 건가? 곧 일어날 수 있어?"
"마나가 풍족한 상태에서 당하지는 않은 것 같아. 덕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 다만 몇 시간 정도는 더 기절해 있을 수도 있어."
확실히 루시페르를 만나기 전에 에린델과 비렌데 모두 마나의 소모가 컸다. 다행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다행이군. 아무튼, 고마워. 여길 지켜준 것과 내 동료를 치료해준 것 모두."
"뭐, 감사받을 일인가 싶네, 할배들이 시켜서 온 거니까."
그녀는 감사 표현에 익숙지 않은 듯 멋쩍어했다. 그리고 나와 세키돌에게도 가벼운 치유마법을 걸어줬다.
"기절한 동료들은 그냥 쉬게 해주면 일어나겠지?"
"물론이지. 내 치유마법은 성능이 좋거든."
"그럼 이만."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하고 에린델을 업는다. 내가 눈짓하자 세키돌도 비렌데를 업었다.
우리들의 막사로 돌아와서 간이침대에 둘을 눕히고 나도 옆 침대에 누웠다. 리스티앙에게 보고를 하러 가야 하는데, 조금만 쉬고 싶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자칫하면 모두 죽을뻔했지."
누워서 루시페르와의 싸움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매우 강했고, 마나번을 맞지 않았어도 이길 수 없을 상대였다. 태그가 없었다면 말이다.
마법과 검술 모두 아직 부족하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강함에 도달하기 위해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오랜만에 상태 창을 연다. 능력치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강단백]
[나이 : 25]
[키 : 177 체중 : 67 성기 : 21cm ]
[성별 : 남]
[능력치 : 힘 : B+ 민첩 : B+ 체력 : B+ 지능 : S 카리스마 : SS ]
[능력 :
히토미 마스터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끝을 모르는 정력 색욕의 악마인 서큐버스 마저 굴복시키는 미친 정력의 소유자. 체력이 다 떨어져도 계속 섹스가 가능하다
NTR은 싫어(E) 자신의 힘이나 마력을 뺏기는 것에 대해 저항력이 생깁니다.]
[장비 : 블랙 미스릴 소드 / 찢어진 레더 아머]
[변경점 : 힘 경험치 +2000 / 민첩 경험치 +500 / 지능 경험치 +1500
체력 경험치 +1000 / 카리스마+800]
[체력 랭크가 C+에서 B로 상승하였습니다.
힘 랭크가 B에서 B+로 상승하였습니다.
NTR은 싫어가 F에서 E랭크로 상승하였습니다.]
힘 경험치의 폭발적인 상승. 루시페르의 목을 벤 것 때문일까? 사실 태그가 다해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인데 말이지.
민첩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지능도 큰 상승을 보였다. 아낌없이 고위 마법을 난사한 덕이겠지. 물론 그런데도 랭크상승은 없다. 확실히 S랭크부터는 잘 오르지 않는 모양.
체력의 상승치도 높았다. 게이트까지 행군도 했었고, 루시페르 상대로 이기긴 했지만, 많이 두들겨 맞은 게 사실이다. 또 이렇게 내 매집은 강제로 강해지는구나.
카리스마도 생각보다 높게 올랐다.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굳이 되짚어보자면 병사들에게 인정받은 부분이 있긴 하다. 전생자가 왔다며, 누군 대마법사님이 왔다며 좋아했었으니까.
마나번을 맞은 탓이었을까 NTR은 싫어의 스킬랭크가 오른 것도 신기했다. 태그력을 아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태그력의 소모도 심했다. 태그력을 체크한다.
[상세설명
히토미 마스터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본인이 상상할 수 있는 태그라면 어떤 것이든지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태그의 사용에는 일정수치의 태그력이 소모된다. 그 태그력이 모두 소모되면 태그력을 충전하기 전까지는 태그를 사용할 수 없다.
태그력을 충전하는 방법은 성행위를 통한 사정이며 유사 성행위도 포함된다. 특수하게 태그력이 많이 차는 상황도 예외적으로 존재한다.
에인션트급 이상의 몬스터에게는 대량의 태그력이 필요하다.
태그력 180/???]
태그력을 상당히 소모했다. 분명히 400이상 있었는데, 루시페르와의 싸움에서 태그를 난사한탓인지 200도 남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태그력을 채워둬야 한다.
나와 관계하지 않은 여자와 하는 게 태그력 충전 효율이 좋긴 한데, 이곳에 여자라고는 우리 파티원을 제외하면 없다.
아, 생각해보니 두 명 있긴 했다. 리스티앙 사령관과 아까 본 붉은 머리 여자. 하지만 둘에게 손을 대는 건 확실히 쉽지 않을 것이다.
한 명은 보병 사령관이라는 지체 높으신 상관. 한 명은 마법사의 탑에서 지원을 나와준 마법사.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들을 따먹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둘 다 상당히 아름답고 매력 있는 여자들이니까.
하지만 좆을 좆대로 놀리다가 좆되는수가 있으니 우선은 조심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옆 침대에 누워있는 세키돌에게 말을 건다.
"세키돌, 몸 상태는 어때?"
세키돌도 루시페르에게 강한 공격을 여러 번 당했다. 아까 붉은 머리 여자에게 치료를 받긴 했지만, 피로는 상당할 것이다.
"세키돌은 멀쩡해. 대장님은 괜찮아? 그 강한 악마를 잡느라 고생했잖아."
"난 괜찮지. 오히려 기분 좋은걸? 게이트도 부쉈고 군단장씩이나 되는 유명한 악마를 잡았으니까."
"피이 그래도 대장님이 무리하는 느낌이 들어. 그 지렁이 잡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엄청 많이 썼잖아. 그 태그라는 거."
확실히 태그를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건 몸에 무리가 간다. 특히 샌드웜때는 싸움이 끝나자마자 기절했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기절하지 않았다. 조금은 태그의 연속사용에 익숙해진 걸까.
"무리라니? 내 사전에 무리란 없어. 마왕을 물리칠 남자. 용사 강단백이니까."
"맞아. 대장님은 강하지. 날 이겼을 때부터 느꼈어. 뭐든지 할 수 있을 사람이라고."
세키돌은 그렇게 말하더니 내 침대로 넘어와 내게 안겼다.
"어허, 다 큰 처녀가 이렇게 막 남정네에게 안기고 그라믄 안돼."
"내 처녀는 대장님이 가져갔는걸?"
"."
이 인형, 섹드립이 늘었다. 내 탓인가?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진다. 확실히 같이 지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매우 빠르고 강하지만 감정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다, 농담이나 말장난을 흡수할 정도로 학습력도 좋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나는 세키돌을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세키돌, 다른 뜻은 아니고 태그력을 많이 썼잖아? 좀 충전을 해야 할 거 같아."
나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키돌의 부드러운 감촉 덕에 아랫도리에 반응이 왔다.
"다른 뜻은 뭔데?"
"놀리지 말고, 점점 능글맞아지네. 요녀석."
"헤헤, 마침 언니들도 푹 자고 있으니 좋은 기회네. 잔뜩 해줘. 대.장.님."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세키돌 때문에 더는 참기 힘들어졌다. 요망한 인형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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