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기어오는 혼돈
* * *
[막간 금태양의 삶 ]
"이, 이건?"
골드 선테인은 당황하고 있었다. 구릿빛이었던 피부색은 마치 악마처럼 어두워졌고, 몸 안에 이상한 힘이 감돌았다.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케이션이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후 기절했었다. 그 후 정신을 차려니 몸 안에 기운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공복에 식사한 것처럼 몸 안에 활력이 넘쳤다.
'이게 악마의 힘인가?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군.'
힘. 골드 선테인이 그토록 갈구하던 것이다. 전생하기 이전에 한국에 있을 때도 그리고 이세계로 전생한 지금도.
사실 그에게 힘이 있었다면 이세계에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생에서 그의 이름은 김태양. 태권도 선수였던 김태양은 어린 시절부터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여러 체전에서 메달을 획득했고, 20대 초에는 격투기 단체에 스카우트되었다. 넘치는 태권도 재능에 종합 격투기까지 배운 김태양. 그를 막을 사람은 중소 단체급의 대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패 연승을 달리던 그는 결국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체에 들어가게 됐고 인기선수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거액의 파이트머니 덕에 부유해졌고, 아름다운 여자친구까지 생겨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는 삶.
하지만 상위 랭킹으로 오르기 위한 랭킹전을 하면서부터 그의 삶은 망가져 갔다. 연이은 패배로 인해 그의 인기는 금세 나락으로 떨어졌고 부상까지 겹쳐 파이터로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됐다.
자신감 넘치고 강인하던 그의 성격도 열등감에 짓눌려 우울한 성격이 됐다. 그걸 견디지 못한 여자친구도 그와 멀어졌고, 결국 동료 파이터에게 그녀를 뺏겼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준비한 다음 경기. 이 경기에서 진다면 단체에서도 퇴출당할 위기. 꼭 이겨야 했다.
지금까지 단점으로 지적받던 부분도 고치려 노력했고, 상대 선수에 대한 분석도 완벽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초반 라운드를 잘 가져가나 싶었지만, 결국 처참히 실신 KO 당하며 격투기 단체에서도 퇴출당했다.
인터넷에서 그는 태권도의 위상,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최고의 격투기 선수였다. 하지만 연패 이후 퇴물 선수, 한국의 수치가 되어있었다.
[ㅋㅋㅋㅋㅋ 느그양 수준 저럴줄 알았다. 월클 소리하던 애들 안목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
[맨날 태권도 했다고 국뽕팔이 하던데 망할 줄 알았음 ㅋㅋㅋㅋㅋㅋ]
[여자친구도 NTR 당했다던데 ㅋㅋㅋㅋㅋ 지 이름이 ?태양이면서 ㅋㅋㅋ]
인기가 많고 팬이 많았던 만큼, 까들도 많았다. 김태양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실력과 사생활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고, 그걸 본 김태양은 더욱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김태양은 그 후 폐인이 되었다.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고, 격투기를 포기했다. 그간 쌓아온 인기와 명예는 눈 녹듯이 사라졌고, 모아뒀던 돈도 술과 유흥으로 전부 흥청망청 써버렸다.
천애 고아인 김태양을 도와줄 가족은 없었고, 여자친구는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 평소에 만화를 좋아했던 그는 집안에 처박혀서 서브컬쳐에 심취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등. 그는 그러다 히토미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세계의 모든 성인만화가 미러링 되어 올라오는 곳.
평소 유명만화는 좋아했지만, 음지의 문화까진 잘 알지 못했던 그에게 히토미는 신세계였다. 처음 접해보는 자극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성인만화들을 읽으며 푹 빠졌다.
그러다 접하게 된 NTR 장르의 만화.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남의 여자를 뺏어서 범하는 장면을 보니 전 여자친구가 오버랩되어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히토미를 끊게 된 김태양이었지만, 결국 그 자극을 못 잊고 다시 히토미를 찾았다.
다만 NTR 태그가 붙어있는지 철저히 확인하고 작품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철저히 NTR 장르를 피하던 김태양은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신작이 올라와서 즐겁게 바지를 내리고 감상 중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평소에 NTR 장르를 그리지 않던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고수위의 NTR 신이 나오는 것이었다.
'씨발 NTR 태그도 없었는데."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 즐겨보던 작가에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끝까지 보고 싶었다.
인터넷 창을 닫지 않고 끝까지 감상했다. 작품 속 금태양이 찌질한 남자 주인공의 여자친구를 뺏어서 능욕하는 장면을 두 눈을 크게 뜨고 끝까지 봤다.
처음엔 어지러웠다. 마치 내 여자친구가 당하는 것처럼 온몸이 떨렸다. 그런데 왠지 더 보고 싶어졌다. 마치 기분 나쁘지만, 더 맡고 싶은 묘한 중독성이 있는 냄새를 맡은 것처럼 계속 더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Tag : NTR]을 검색했다. 정신없이 NTR 장르만 줄곧 감상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일부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 장르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당하는 사람에 감정이입을 하는 게 아니었다. 금태양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정말 재미있는 장르였다.
그렇게 김태양은 수백 수천 개의 NTR 만화를 봤다. 심지어 배덕감을 즐기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이젠 다른 장르는 재미가 없어질 정도로 그 장르에 푹 빠져버렸다.
하지만 계속 NTR 만화를 보고 있을 순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조금의 돈마저 다 써버렸고, 우울증은 더 심해져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신체와 정신 모두 망가진 김태양은 그럴 의지를 가질 수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아무것도 먹기 싫었고, 먹지 않았다. 움직여야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고독사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다시 눈을 뜰 수 있었고 눈을 떠보니 아름다운 여신이 눈앞에 있었다.
삶을 포기한 그였지만 수천 개의 NTR 만화를 보면서 은연중에 깊게 바랐던 것이다.
'아 금태양처럼 살고 싶다.'
그 강한 원념을 알게 된 여신은 그를 살렸고 원하는 능력까지 주었다. 외형까지도 금태양스럽게 바꿨다.
이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김태양은 이제 완벽한 금태양이 되었다. 현생에서보다 더 우락부락해졌고, 태닝을 한 듯 구릿빛 피부를 지녔으며 금발이 잘 어울리지만, 양아치 같은 얼굴.
당장이라도 만화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금발 태닝 양아치. 변화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말투 또한 금태양 처럼 컨셉을 잡으며 이세계에 적응해 갔다.
비밀친구 게시판이라는 재밌는 것을 통해 성욕 맘껏 풀었다. 완벽한 금태양 그 자체가 된 몸은 섹스머신이었고, 만족하지 않는 여자는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과 한 번이라도 더 해달라고 매달리는 여자들뿐. 골드 선테인의 인기가 높아지자, 자기가 여자친구라며 따라다니는 여자도 생겼다. 길드 등급도 높아져 노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가장 잘나가는 모험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드에서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했다. 후드를 쓰고 있었지만, 얼핏 보이는 머릿결은 순백의 블론드.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백금발이었다. 게다가 피부색은 마치 눈이 내린 듯이 새하얬다.
이상형이었다. 이 세계로 와서 본 여자 중에 제일, 아니 여태까지 태어나서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 그는 그 여자가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금태양이 되었다 한들 갑자기 여자를 억지로 가질 수는 없었다.
묘하게 성 관념이 문란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도덕성이 결여된 사회는 아니었기에 그런 짓을 하다간 경비대에 끌려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 여자의 옆엔 남자가 있었다. 곱상하게 생겼지만, 덩치를 보아하니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남자.
그 남자가 접수원인 시롬과 대화하는걸 듣자 하니 오크 무리를 토벌했다고 한다. 골드 선테인은 E등급에 불과한 모험가가 B등급 퀘스트를 깼다는 말을 믿을수 없었다.
가짜마석을 들고 와서 사기 치는 사람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골드 선테인은 저 남자가 사기꾼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남자에게 시비를 걸었다. 사기꾼의 정체를 밝히고 아름다운 여성을 내 동료로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무산됐다. 남자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법적인 재능이 전혀 없던 골드 선테인은 패배했고, 심지어 얼굴에 흉측한 화상까지 입었다.
골드 선테인의 얼굴이 흉해지자 여자친구를 자처하던 여자는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귀찮다고 할 때도 그렇게 달라붙던 여자였는데 한순간에 변하는 걸 보고 현생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감정, 지독한 열등감이 피어올랐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강해지고 싶었다. 이젠 더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정말로 누구나가 무서워할 쓰레기. 모두가 공포에 떨 진짜 금태양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골드선테인은 악마를 만났을 때 주저 없이 영혼을 팔았다.
그리고 지금 악마의 종복이 된 그는 자꾸만 끓어 오르는 힘에 기분이 좋아졌다.
'됐다. 이건 큭큭.'
이세계에 와서까지 자신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한 남자에게 복수할 생각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호오? 벌써 일어난 거야?"
골드선테인의 영혼을 가져간 그 악마의 목소리였다.
"눈이 떠졌습니다. 케이션님 이던가요? 여긴 어딥니까?"
"맞아. 여긴 마왕군 사천왕이신 최면의 아프리님의 성이야. 난 그분의 종복이라 여기 있는 거고, 넌 나에게 영혼을 팔았으니 이곳으로 소환된 거지."
사천왕이나 되는 대악마의 종복에게 영혼을 팔게 된 것을 알게 된 골드 선테인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강한 분의 밑에 들어오게 된 것 같아 좋군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좀처럼 칭찬받을 일이 없는 케이션은 골드 선테인의 입발린 소리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대답했다.
"맞아, 맞아. 나 정도면 엄청 강한 고위 악마라구. 궁금한 건 뭔데?"
"영혼을 팔았으니까, 케이션님이 제 주인이신 거죠?"
"그렇지?"
"그럼 주인의 말에는 절대복종해야 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내 말을 안 들으면 머릿속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질 거야."
"그렇군요. 그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주인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죠?"
"주인이나 종이 죽으면 주종관계가 끊어지겠지. 별 다른 일은 안 생겨."
"제가 죽으면 케이션님에게 해가 된다던가, 혹은 케이션님이 죽었을때 저의 힘이 없어진다던가 그런 건 없는거죠?"
"응응, 그렇다니까, 뭘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귀찮게시리."
어차피 케이션은 골드 선테인에게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오래간만에 맛있는 영혼을 먹어서 기분이 좋았을 뿐이었다. 이 남자를 핌베르트 왕국군과의 싸움에 보내서 공이 생기면 다행이고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골드 선테인은 케이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바로 그녀의 목을 꽉 쥐었다.
"커, 컥! 무, 무슨 짓을"
그의 몸에 닿는 존재는 힘을 빼앗긴다. 그러나 악마화가 진행된 골드 선테인의 능력은 더욱 강해졌다. 물리적 힘뿐만 아니라 마력까지 흡수 할 수 있게 되었다.
"우효~ 이거 좋군요. 마치 초코우유를 처음 먹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릅니다. 아, 남의 힘을 빨아먹는다는 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컥, 난, 네 주인이야, 말, 들어 놔, 놔줘!"
"말을 안 들으면 머리가 아플 거라 하셨는데, 전혀 그런 건 없군요. 시시합니다."
마력까지 빼앗긴 케이션은 골드 선테인에게 고통을 주는 마법도 쓸수 없었고, 그저 무력하게 숨이 막혀갈 뿐이었다.
"아, 걱정은 하지마십쇼. 그래도 저를 강하게 만들어주셨는데, 그냥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골드 선테인은 케이션이 입고 있던 옷을 찢어버리며 말했다.
"최상의 쾌락을 맛보여드리죠. 큭큭."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