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세계를 속여라(3)
* * *
억지로 텐션을 올려서 개그를 해도, 작고 귀여운 세키돌을 끌어안고 부드러운 감촉을 즐겨도, 불안감은 잘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쉽지 않을 건 분명하지만, 게이트를 부수지 않으면 계속 마물들이 소환될 것이고 결국 마왕군의 공세를 막을 수는 없다. 지금도 언덕 아래로 마물들이 계속 이동하고 있다. 분명 방향은 필리포 성이다. 우리가 늦는다면 결국 수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재차 은신 마법을 걸고 동료들에게 말한다.
"출발하자. 들키지 않는 걸 최우선으로 하고 들킨다면 내가 마법을 쓸 잠깐의 시간만 벌어줘."
"알겠어. 걱정하지 마 단백. 나 오늘 컨디션 좋으니까."
기운차게 대답하는 에린델. 컨디션이 좋은 건 확실하다. 펀치력이 남달랐으니까.
"다치지 말자. 나 어제 병사들 치료하느라 피곤했어."
피곤하다는듯이 얘기하는 비렌데였지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대장님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줄게!"
세키돌의 전투력이라면 분명 가능하겠지. 믿을 수 있다.
"지금 보이는 언덕아래 오른쪽 절벽에 붙어서 천천히 가자."
그 외에도 발걸음 소리를 조심하자는 등의 얘기를 하고 내가 앞장선다.
'나는 상상하는 대부분의 마법을 쓸 수 있고, 내 동료들은 강하다. 불안해 하지 말자 강단백. 할 수 있다.'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걸며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멀리 푸른빛을 내는 무언가가 보인다. 게이트로 추정된다.
주변에 마물들은 상당히 많았다. 필리포 성에서 상대해봤던 윙이나 오크 이외에도 다양한 마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조차 없이 곧장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몬스터의 행렬이 끝이 없다. 시간이 늦어지게 되면 필리포 성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칠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기회다. 게이트 주변에 몬스터가 적다면 게이트만 파괴하고 바로 도망치면 된다.
조심스레 걷는다. 그래도 여러 가지 버프 덕에 경보로 걷는 것과 흡사한 속도. 그렇게 느리지는 않다.
한참을 그렇게 절벽에 붙어서 이동하다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체크한다. 서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에 정해둔 신호가 있다.
방법은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로 벽을 치는 방법이다. 어차피 마물들은 거리가 좀 있고 전진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작은 소리는 괜찮다고 판단했다. 목소리로 해도 되겠지만, 혹여나 말이 길어지거나 볼륨조절에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
딱
내가 무사하다는 신호.
딱 딱
두 번의 신호는 에린델이 잘 따라오고 있다는 신호다.
딱 딱 딱
세 번의 신호는 비렌데가 잘 있다는 신호.
딱 딱 딱 딱
네 번의 신호까지 들었으니 세키돌까지 잘 오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전진하기 시작한다.
점점 게이트와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통로의 폭도 좁아졌고 마물들과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작은 발걸음 소리조차 나지 않게 더욱 조심한다.
괜찮다. 아직 들킬 일은 없다. 모두에게도 게이트에 가까워지면 더 조심하자고 얘기해 두었다. 그렇게 가슴을 졸이며 계속 전진했다.
이젠 정말 게이트가 눈으로 육안으로 잘 보이는 거리. 백 미터도 되지 않을 거리다.
바닥에는 거대한 마석이 있었다. 거기서부터 강렬한 푸른빛이 시작해서 타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강렬한 빛깔에 시선을 뺏겼다.
하지만 곧 해야 할 일을 떠올린다. 들고 있던 돌멩이로 벽을 빠르게 세 번 친다.
따다닥
마법시전을 시작한다는 신호였다. 어느 때보다 더 집중한다. 마나의 아지랑이는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다. 주변의 마나량은 엄청났다.
'한 번에 강한 마법으로 끝내야 한다'
마법을 쓰면 은신이 풀릴 것이다. 다시 재빠르게 은신을 한다 해도 몬스터에게 위치를 들켰다면 공격이 날아올 것이기에 의미가 없다.
집중하고, 마법을 상상한다.
"소닉 트위스트(Sonic Twist)"
모든 것을 분쇄해버릴 만한, 음속을 넘는 속도의 회오리바람을 상상했다. 마석은 물론 게이트에서 소환되고 있는 마물들까지 다 날려버릴 만한 광풍.
콰카카카캉!
불길한 예감이 괜히 들었던 게 아니었나. 소닉 트위스트는 막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힌 듯이 굉음을 내며 부딪히고 있었다.
'칫, 결계인가?'
쩌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반투명한 방어막이 보인다.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모습이었다. 소닉 트위스트는 결국 막혀 사라졌지만 분명 결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크워어!!"
하지만 마법을 쏘는순간 내 모습은 드러났고, 오크들이 나에게 돌진하기 시작했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은 마법을 시전해서 나에게 불구덩이가 날아왔다.
위기의 순간. 처음 보는 마법이 내 앞에 펼쳐졌다.
"홀리 배리어(Holy Barrier)"
비렌데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 눈앞에 금빛이 맴도는 무형의 방어막이 생겨났다. 덕분에 고블린의 파이어볼은 쉽게 막혔고, 오크들도 배리어에 도끼질을 할 뿐, 우리에게 공격할 수 없었다.
"뭐야 비렌데, 너 마법은 못 쓰는 거 아니었어?"
"이것도 신성 마법이야. 마나 소모가 심해서 잘 안 쓰는 마법인데, 주인이 당황해서 넋 놓으니까 그렇잖아. 오래는 못 버텨, 얼른 해줘."
"미안. 그리고 고마워. 정신 차리고 얼른 게이트를 부술게."
비렌데가 쓴 배리어에도 금이 간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서둘러 마법을 상상한다. 마법을 시전하기 직전, 비렌데에게 눈짓한다.
비렌데가 배리어를 풀자마자 곧바로 마법을 외친다.
"헬파이어 트위스트! (Hellfire Twist)"
아까 썼던 음속을 넘는 회오리 바람에 지옥의 불길까지 얹었다. 배리어앞에 쌓여있던 오크들은 불타고 갈기갈기 찢어져 날아갔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한 초고온 불바람의 종착역은 게이트. 이미 금이 간 결계 따위론 내가 간신히 떠올려낸 이 마법을 막을 순 없다.
콰창!
결계는 상쾌한 소리를 내며 깨졌고, 푸른빛을 뿜어내던 마석은 산산이 조각났다.
"성공이야!"
계획이 성공한 데에서 오는 짜릿한 기쁨.
주변에 있던 소수의 몬스터가 달려들었지만 에린델과 세키돌이 금세 숨통을 끊었다.
"강단백! 이제 얼른 돌아가자."
"아아, 계획대로 하자고. 에테르 윙 (Etherwing)"
계획은 이러했다. 은신으로 잡입해서 게이트를 빠르게 부순 뒤 공중을 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해서 빠르게 탈출하는 것.
계획은 완벽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불안감에 떨었던 것이 바보 같다고 여겨질 정도로.
그렇게 나와 파티원 모두에게 마나의 날개를 달아준 뒤 점프해서 절벽 위로 날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몸속이 불타는 듯한 극심한 고통과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나 뿐만 아니라 동료들 모두 날개가 사라지고 갑자기 충격을 받은 듯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대, 대체 뭐지? 크윽 갑자기 엄청난 고통이 다들 괜찮아?"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동료들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호오 신기하군. 고위 마법을 사용하던데, 마나 번(Mana burn)을 맞고도 일어설 수 있다고?"
낮고 거만한 느낌의 남자 목소리.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자, 거대한 뿔을 가진 흑 장발의 마족이 서 있었다.
"누, 누구냐 넌?"
"날 모르나? 핌베르트의 군인은 아닌가 보군. 군인이라면 내 얘기를 못 들었을 리가 없을 텐데."
"루, 루시페르."
비렌데가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쥐어짜내듯 소리쳤다.
루시페르. 많이 들은 이름이다. 비렌데에게 처음 들었고, 여기 와서 리스티앙에게도 들었다. 상대의 마나를 뺏는다는 그 제1 군단장!
듣기로는 분명 상대의 마나를 없애버리는 능력. 급격한 마나 증발에 의한 충격으로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난 버틸 수 있었던 거지? 내 체내 마나 보유량은 엄청날 것이다. 루시페르가 의아해 할만하다. 뭔가 특별한 내성을 지닌 건 없었을 텐데.
아! 불현듯 떠올랐다. 골드 선테인과 싸우고 나서 얻었던 NTR은 싫어. 랭크가 낮았었지만, 피해를 줄여줘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건가.
"흐음 날 아는 녀석이 있군. 뭐야. 네 녀석 서큐버스잖아? 왜 서큐버스가 인간 따위랑 같이 있는 거지?"
"난 원래 인간이야, 마족이 강제로 타락시켰을 뿐이지."
"서큐버스로 타락하고도 인간의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돌연변이군. 마나 번을 맞고 일어선 애송이도 그렇고 돌연변이투성이야. 심기가 나빠지는군."
"하아압!"
갑자기 세키돌이 튀어 나가서 루시페르를 공격했다. 엄청난 속도의 일격. 일반인이라면 눈으로 좇기도 어려울 정도의 쾌속이었다.
하지만 루시페르는 그 회심의 공격을 한 손으로 막았다. 세키돌의 거대한 건틀릿을 너무도 쉽게 막아냈다.
"마나 번을 맞고도 멀쩡하다라. 핫, 이 녀석은 마나가 전혀 없군? 인형인가."
마나가 없었기에 세키돌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은 모양이다. 마나번 자체에도 어느 정도 공격력은 있었지만 마나가 태워지는 것에서 오는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세키돌의 연이은 킥과 펀치 모두 루시페르에게 막혔다. 마치 그의 앞에 무형의 벽이 있는 듯한 느낌.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세키돌의 엄청난 공격들이 하나도 그에게 충격을 주지 못했다.
"아악!"
공격을 퍼붓던 세키돌은 루시페르에게 단 한 방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세키돌!!!"
더는 지켜보고 있을 수 없다. 감히 우리 세키돌을 건드리다니.
신체강화 마법을 극한으로 상상해서 사용한다. 물론 체내의 마나는 바닥났고, 회복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주변이 마나를 사용하면 된다. 주변의 마나는 풍족하다 못해 흘러넘친다.
블랙 미스릴 소드를 꽉 쥔다. 목표는 눈앞의 좆같은 악마. 단숨에 뿔을 잘라 녹용처럼 달여 먹어주겠다.
순간적으로 빠르게 튀어 나가면서 횡으로 벤다.
챙!
루시페르의 결계에 막힌다. 예상했다. 막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을 계속한다.
종 베기, 횡 베기 그리고 찌르기. 멈추지 않는 검의 쾌속 연격. 검을 휘두르는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미친 검무였다.
쩌저적
강철도 두부 써는 것처럼 썰어버릴 수 있는 블랙 미스릴 소드. 루시페르의 결계까 아무리 단단해도 결국엔 균열이 생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쉬지 않고 공격을 이어나갔다. 강력한 신체 강화마법을 걸었지만, 숨도 쉬지 않고 검격을 이어나가니 폐가 타오르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이 녀석을 이기지 못하면 우리 파티는 전멸한다. 멈출 수 없다.
"열심히 하는 건 좋아. 하지만 헛된 희망을 품은 것 같네."
루시페르는 그렇게 말하고 가만히 있던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금이 간 결계는 사라지고 새로운 결계가 나타났다. 내 공격은 무의미했다!
"하악하아 하아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자세를 다잡았다.
"큭큭, 이제 다했어? 간만에 재밌었어. 그럼 잘 가라."
그 말과 동시에 그는 왼손을 내게 휘둘렀고 나는 반응조차 못하고 맞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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