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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미의 태그술사-35화 (35/57)

〈 35화 〉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꽃

* * *

일주일 만에 찾은 군사지부. 안으로 들어갔더니 다들 분주해 보이고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때마침 입단테스트때 봤던 인사담당관 이카르트가 앞에서 걸어오는 게 보여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나요? 다들 상당히 바빠 보이는데."

"아, 자네인가. 마왕군과의 최전선이 무너진 모양이야. 최근 들어 마왕군의 기세가 강해지긴 했었는데. 그래서 타국들에 도움을 요청하느라 업무가 바쁘다네. 여러 절차가 있으니까 말이지."

"그렇군요. 전쟁이 길어지면서 어려운 상황이라고는 들었는데, 더 안 좋아진 모양이네요."

"그렇다네. 아무튼 미하일 님은 지부장실에 계시니 가보게나. 나는 일이 바빠서 이만."

그렇게 이카르트는 바쁘게 사라졌고, 나와 동료들은 지부장실로 들어갔다.

"아, 자네 왔는가. 준비는 잘했고?"

"네 일주일간 이것저것 나름대로 준비했습니다. 바로 전선으로 가게 되나요?"

"지금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주지. 마왕군의 기세가 강해져서 전선이 밀린 상태네. 원래 같으면 동기들과 입단식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네. 군용마차는 준비되어있으니 지금 바로 출발해주게."

미하일은 그렇게 말하며 왕국군 배지와 임명서를 내게 주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입단식을 못하게 된 건 아쉬웠지만, 상황이 급박한 거 같았다. 핌베르트 왕국의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니.

그렇게 급작스럽게 핌베르트 최북단으로 향하게 되었다. 핌베르트의 군용마차는 성능이 우수했다. 마부에게 듣자 하니 오래 달리는 데 적합하게 개량된 말에 속도증가 마법을 걸어서 엄청나게 빠른 것이라고 했다.

핌베르트 왕국 한가운데에 위치한 라이오넬에서 최북단까지 이틀도 안 걸리는 모양이었다.

'노른에서도 말을 구했으면 좋았을 텐데.'

노른에서 라이오넬까지지도상으로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아 걸었다가 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장님. 이 마차 엄청 빠르네. 재밌어~"

세키돌은 마치 놀이기구를 탄 듯 신이나 보였다.. 그런 그녀가 귀여워서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표정이 심각해 보이는 비렌데가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 비렌데? 너답지 않은 얼굴인데."

야한일말고는 대부분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렌데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어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마음 정리가 덜 된 것 같아."

"마음 정리?"

"별로 소속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왕군에 있었으니까."

"여러모로 복잡하면 굳이 전선엔 나서지 않아도 돼."

"아니,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야겠지. 이젠 주인의 동료고 왕국군 소속이 됐으니까."

평범한 인간에서 마족으로 타락했을 때도 처음에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주변의 동료 수녀들은 대부분 미쳐버리거나 자살했다는 모양.

자신은 애초에 수녀에 맞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곤 했지만, 속으로는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이다.

"자, 이리 와"

그녀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기보다는 그냥 안아주고 싶었다. 두 팔을 벌려 그녀에게 안기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왜 그래 민망하게. 괜찮아 주인. 그렇게 신경 안 써줘도."

"어허, 주인님 말 들어야지."

"이럴 때만 주인 행세하네! 못말려."

못 이기겠다는 듯이 안겨 오는 비렌데. 그런 그녀를 그냥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

군용마차의 속도는 상당했고 체감 속도는 그 이상이었다. 신나게 달리다가 중간에 작은 마을에서 한번 내려서 숙박하고 일어난 후 다시 달렸더니 도착 직전.

"곧 전선 근처에 도착합니다. 내릴 준비 해주세요."

도착을 알리는 건조한 말투의 마부. 그 말을 들으며 모두들 장비들을 재점검했다.

블랙 미스릴 소드는 잘 있고, 내게 가장 중요한 태그력을 마지막으로 체크했다.

[상세설명

히토미 마스터 ­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태그력 470/???]

현재 태그력은 470. 시롬과 하고 난 후 5일간 비렌데와 세키돌 둘과 잔뜩 섹스한 결과물이었다. 사실 이렇게 매일 여러 번 해대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새로 태어난 강단백의 신체는 튼튼했고 특수 능력인 끝이 없는 정력 효과 덕에 크게 무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 이상은 못 들어갑니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조금 걸어가시면 필리포성 뒷문이 보일 겁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도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마부.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은 어차피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그의 건조한 태도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후우, 오랜만에 마족을 상대하겠네."

한껏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에린델.

"긴장 되는 거야? 에린델."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한편으로는 신나. 복수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결연해 보이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해서 대답할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족들 때문에 삶의 터전과 나라를 잃어버린 에린델은 늘 복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만큼 과거에 당한 아픔이 큰거겠지. 그런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서 그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 그녀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하고 싶었다.

이제 그걸 할 수 있는 상황이 왔다. 망설일 이유는 없다.

"서두르자.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들었어."

"응. 얼른 가자 대장님."

평소에 늘 밝은 편인 세키돌조차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전쟁터라는 곳의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그렇게 내려준 곳에서 조금 걸어가자 필리포 성의 뒷문이 있었고 경비병이 서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현재는 전시 중이라 일반 출입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특별 부대로 인정받은 강단백이라고 합니다. 뒤에 세 사람은 같은 부대원들이고요."

대답을 하며 미하일에게 받은 왕국군 특별배지를 내밀었다.

"특이한 이름이군요? 아무튼 왕국군 배지는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내 소개를 듣고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던 경비병은 배지를 확인하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미하일은 도착하면 곧바로 지휘부로 가서 사령관을 찾으라고 했다.

"사령관님은 어딜가면 만날 수 있죠?"

경비병은 지휘 막사의 위치를 안내해 주었다. 안내받은 위치는 뒷문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막사 앞에 도착하자 경비병들이 막았으나, 이번에도 왕국군 배지를 보여주자 길을 비켜주었다.

막사 안에 들어서자 한쪽 눈에 모노클을 끼고 있는 영리해 보이는 남자와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인가?"

모노클을 낀 남자가 내게 물었다.

"오늘 자로 최전선에 발령받은 강단백 이라고 합니다."

소개를하며 왕국군 배지를 보여주고 미하일에게 받은 임명서도 건네주었다.

"단독행동을 인정하는 특별부대로 임명한다라 국왕님의 사인까지? 뭐? 전생자라고?"

"한 달 반 전쯤에 핌베르트 왕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미하일 님에게 능력은 검증받았고, 제 어리광을 들어주셔서 특별부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렇군.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사실 누구라도 고마운 상황이지. 현재 상황은 심각해."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안드레아. 그다음은 내가 말하도록 하지."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안드레아라 불린 남자는 곧장 조용해졌다.

알고 보니 상관은 여자 쪽이었던 모양이다.

"난 핌베르트 왕국 고위기사이자 보병 사령관 리스티앙 리에라고 한다. 초면이지만 자네는 십인장급의 부사관이니 말을 편하게 하는걸 양해해줘."

남자와는 다르게 예의를 차려주는 그녀. 첫인상이 좋았다.

"현재 최전선의 상황은 심각해. 마왕군의 기세가 상당히 강해졌어. 얼마 전부터 본적도 없는 마족이 나타나고 수많은 병력들이 희생되고 있지."

"어려운 상황이라고 얘기는 들었습니다."

"원래 우리의 전선은 이 필리포성이 아니었어. 이보다 더 위쪽인 라르디노성 이었는데, 일주일 전에 가고일들과 날개 달린 이상한 마물들이 나타나서 성이 함락당했지."

"날개 달린 이상한 마족?"

최전방에서 마족과 싸워온 사령관도 모르는 마물이 있다니. 궁금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 나도 생전 처음 보는 마물이었으니까.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키메라와도 유사했지만, 두 발로 걸을 수도 있는 이상한 마물이었어. 나도 전장에서 수없이 그 녀석들을 베었지만 결국 많은 병사가 죽었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지."

"그렇다면 일반병으로는 상대가 불가능한 상황이군요."

"맞아. 절망적이지. 그나마 궁병들이 견제는 해줄 수 있지만 마물들의 피부가 단단해서 치명적인 피해는 입힐 수 없는 모양이야."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는 리스티앙.

"지금은 기세가 강하진 않지만, 조금씩 그 마물들이 모습을 보이고있어. 그래서 사실 병력을 더 잃기 전에 이곳 필리포 성에서도 후퇴하고 더 후방에서 전력을 가다듬어야 할지 안드레아와 논의 중이었지."

정확하게 현재의 상황을 내게 알려주는 그녀. 얼굴은 순진하게 생겼지만, 그녀의 말투와 행동에서는 백전노장의 노련함이 엿보였다.

"그렇다면, 그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마물들을 상대하죠."

"패기는 좋아. 근데 그 마물들이 점점 더 많이 몰려오게 되면 감당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저와 여기 뒤에 있는 제 동료들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뒤에 서 있는 에린델과 비렌데, 세키돌을 소개했고 다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미하일 공이 인정한 사람이라면 믿어줘야겠지. 그럼 지금 바로 성문 쪽으로 나가보겠어?"

"좋습니다. 한시가 급하니 당장 가도록 하죠.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경비병에게 길을 따라가면 성문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곧장 달렸다.

성벽에는 많은 병사가 싸우고 있었고 리스티앙이 말한 날개 달린 마물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전쟁이라기보다 참혹한 학살 현장이었다. 창병이 창으로 찔러도 마물에 몸에 창이 들어가지 않았고 검으로 베어도 베이지 않았다.

마물의 큰 발톱에 일방적으로 찢겨져나갈 뿐.

그나마 철퇴나 망치 같은 둔기를 쓰는 병사들의 공격은 충격은 줄 수 있어 보였지만, 마물을 죽이는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예상한 것보다 끔찍한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비렌데, 부탁해."

비렌데에게 신체 강화 마법을 받고 곧장 가장 가까운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참혹한 현장을 본 탓에 손이 떨려왔지만, 필사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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