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대륙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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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선테인은 내심 불안했었다. 마녀의 숲을 가려면 노른 평야를 지나쳐야 하는데, 최근 모험가가 사라지는 일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별일 없이 마녀의 숲에 도착할 수 있었고, 소문 때문에 괜히 포션까지 과하게 챙겼기에 후회를 하고 있었다.
'괜히 소문에 쫄아가지고, 어떤 새끼가 퍼트린 거냐고."
마녀의 숲은 확실히 다른 곳들과는 이질감이 드는 곳이었다. 토양의 색부터 어둡고 칙칙했고, 주변의 나무들도 시들지는 않았으나 묘하게 기괴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으스스한 분위기에 조금 위축된 선테인 이었지만, 마녀나 흑마법사를 찾기 위해 숲 안으로 들어갔다.
숲에 들어가기 전에 걱정한 것과 다르게 숲은 이동하기 편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듯 숲길이 잘 나 있었고, 덕분에 그는 별다른 고생 없이 마녀의 숲 깊숙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반나절이 넘게 돌아다녀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숲의 풍경은 바뀌는 것 같은데, 걸어도 걸어도 나무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헤매는 느낌은 아닌데, 아무것도 안 나오잖아. 씨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앉았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더니 쉬고 싶어진 그였다.
그렇게 한참을 쉰 후 다시 찾아보자는 생각에 일어나는 순간 빠르게 날아가던 박쥐가 그의 몸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박쥐 새끼까지 짜증 나게 하네."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해 있던 그는 부딪힌 충격으로 떨어진 박쥐를 발로 짓밟았다. 이상하게 밟혀서도 꿈틀거리는 힘이 강했지만, 더 무식하게 밟아버리자 곧 움직임이 사라졌다.
'몇 시간이나 헤매서 처음 만난 게 박쥐라니, 그냥 돌아갈까.'
하지만 막상 돌아가려고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선테인이었다. 이미 숲의 한복판에서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던 선테인의 후두부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커헉."
그의 등과 옆구리에 사정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그는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배를 짓밟은 존재는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요즘 기분 나쁜데, 별거 아닌 인간까지 짜증 나게 하네. 정말 피곤해."
사천왕 최면의 아프리의 종복인 케이션이었다. 정확히는 그녀를 형상화한 분신. 주변을 탐색하고 마녀들과 연락하기 위해 만들어둔 패밀리어(Familiar)인 박쥐가 죽어서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다.
"야, 넌 곱게 지나갈 것이지 왜 마녀의 숲까지 와서 박쥐를 죽이는 거야? 응?"
"커, 컥, 박쥐가 와서 부딪힌 거라고."
"부딪힌 건 그럴 수 있는데 니가 밟았잖아. 죽고 싶어? 저거 만드는데 마력이 상당히 든다고."
"바, 발 치워라 죽여버린다."
선테인은 밟힌 것이 상당히 기분 나빴지만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엄청난 힘.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였다.
"흐응, 입이 험한 인간이네. 사과할 기회는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그냥 죽여야겠어."
선테인을 밟는 발에 더욱 힘을 주는 케이션. 선테인은 복부가 매우 고통스러워졌다.
"크으윽."
선테인은 시간을 끌면 자신의 능력으로 힘을 뺏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션의 분신은 순수하게 마나로 이루어진 존재였기에, 물리적인 힘만을 뺏을 수 있는 선테인의 능력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너, 넌 대체 뭐냐, 괴물?"
"괴물이라니 말이 심하네. 마족이야. 그중에서도 순수한 혈통을 가진 순혈 악마지."
"뭐? 악마라고?"
"그래, 여기 날개도 달려있잖아. 안 보여?"
자랑하는듯이 등의 작은 날개를 보여주는 케이션.
"아니 그렇게 작은 날개가 보였을 리가 없 컥."
자신의 컴플렉스를 건드리자 더욱 화가 난 케이션은 발을 잠시 떼었다가 다시 강하게 선테인의 배를 밟았다.
선테인은 다급해졌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었기에 악마라는 말이 믿음이 가는 상황이었다. 정말 눈앞의 여자가 그토록 만나고 싶던 악마라면 오히려 기회인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악마! 아, 아니 악마님. 잠깐 내 말 좀 들어주세요."
"뭔데? 곧 죽을 놈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사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강해진다는 말을 들어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선테인의 말을 들은 케이션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영혼을 판다고? 그게 무슨 뜻인진 알아?"
"사실 잘 모릅니다. 그냥 무슨 짓을 해서든지 강해지고 싶습니다."
케이션은 선테인을 밟던 발에 힘을 빼고 대답했다.
"흐응, 각오는 되어있는 모양이네. 나야 좋지. 마족에게 가장 뛰어난 마력 공급원이 인간의 영혼이거든. 너무 맛있어."
"그럼 제 영혼을 가져가 주시는 겁니까?"
"그래. 근데 알아둬야 해. 나에게 영혼을 판다는 건 영원히 내 노예가 되는 거야. 물론 그만큼 나도 너에게 강한 힘을 주겠지만."
"좋습니다. 맘대로 부리십시오. 다만,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전 복수하고 싶은 놈이 있어요. 그것만 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복수하고 싶은 놈? 그게 누군데?"
복수라는 단어에 흥미를 느낀 케이션은 얘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졌다.
"갑자기 나타나서 마을 주변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유명해지더니 제 얼굴에 화상을 입힌 놈이 있습니다."
"주변 몬스터를 학살해? 관심이 생기는걸. 혹시 만티코어라고 들어봤어?"
"그게 뭡니까?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평소 고대신화에는 관심이 없던 선테인이었기에 환상종에 대해 알 리 만무했다.
"최근 모험가들이 사라진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잘 모르나 보네, 뭐 일단 알았어. 그럼 나한테 네 영혼을 주는데 동의하는 거지?"
"네, 가져가십시오. 대신 꼭 강한 힘을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고마워~ 동의해줘서! 억지로 뺏는 영혼은 심각하게 맛이 없어지거든."
그 말을 끝으로 선테인은 정신을 잃었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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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으로 출발하기까지 일주일의 시간을 받았기에 재정비를 하기로 했다. 우선 내가 쓸 장비를 사야 한다. 다른 파티원들은 노른에서 어느 정도 맘에 드는걸 찾았으나 나는 맘에 드는 무기를 찾지 못했었다.
마력검이 있었기에 사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마력검은 아무래도 마나의 소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쓰기는 어려웠다. 필요에 따라 검을 쓸 일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오늘은 쓸만한 무기를 구하고 싶은데. 무기상점 좀 다녀올게."
"그래? 같이 가줄까?"
"아니 괜찮아. 혼자 다녀올게."
"이상한 무기에 꽂혀서 덤탱이 쓰지 말고, 조심해."
"이래뵈도 깐깐한 소비잡니다. 잔소리 하는 거 보면, 엄마 같다니까."
그렇게 에린델과 대화를 하다 결국 한대를 얻어맞고 여관에서 나왔다. 세키돌도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금방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 혼자 빠져나왔다.
마을주민에게 물어서 가장 큰 무기상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확실히 수도에서 가장 큰 무기상점답게 다양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서 옵쇼~"
시골인 노른보다 더 구수해 보이는 말투를 가진 주인장의 인사.
"뭐 필요한 거 있으슈?"
"검을 보고 싶습니다. 너무 큰 건 말고요."
"한손검이면 일로 와보셔."
그가 안내한곳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한손검들이 놓여있었다.
정석적인 숏소드, 브로드소드부터해서 곡선형의 세이버까지. 다양한 종류의 한손검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검도 내 마음을 뺏지는 못했다. 꼭 사야만 한다고 느끼게 하는 검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것들 말고 다른 검들은 없나요?"
"있긴 헌디, 그짝은 좀 많이 비쌀것인디."
"괜찮습니다. 보여주세요."
그렇게 주인장은 커텐이 쳐져 있던 상점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으로 따라간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보석이 잔뜩 박혀있는 검부터 해서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격 표기도 기본적으로 다 100골드를 넘어섰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짝은 고급품들만 모아놓는 곳이여, 보다시피 가격이 비싼디 괜찮아유?"
갖고 있는 골드는 130골 남짓. 하지만 허세를 부려본다.
"골드는 충분합니다. 우선 좀 볼게요."
화려한 무기들이 많았지만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흑색 빛의 검이 있었다.
『블랙 미스릴 소드 : 지금은 갈 수 없는 엘프들의 나라 페르난에서 희귀하게 발견되는 블랙 미스릴로 만들어진 검. 경도와 예리함 모두 최상급이며 일반적인 검으로는 이 검과 맞설 수도 없습니다. 300G 』
주변에 있는 무기들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검은빛이 은은하게 맴도는 아름다운 블랙 미스릴 소드의 자태에 마음을 뺏겨버렸다.
'이거다. 이건 사야해!'
하지만 가격의 압박이 상당했다. 300골드라는 소지금의 두 배도 넘는 엄청난 금액. 한 달간 노른에서 동료들과 비정상적으로 앵벌이를 했어도 200골드 정도 버는 수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비굴한 얘기를 꺼내게 됐다.
"주인 어르신 그 혹시 가격 세일은 안 하시죠?"
"블랙 미스릴이 월매나 귀헌디! 이것도 오래된 검인 데다 족보가 없어서 누가 만든 지 모르는 검이라 싼 거여. 제작자 보증만 됐어 봐 부르는 게 값이여!"
적당한 길이도, 근대의 잘빠진 브로드소드 같은 예쁜 디자인도 너무 마음에 들었기에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제가 일주일 내로 꼭 다시 사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혹시 팔지 않으실 수 있나요?"
"미안헌디 예약은 안받어, 예외로 우리 가게 단골손님들이나 가끔 해주는 거지."
"그렇군요 . 알겠습니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다시 올게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무기상점에서 나왔다. 돈을 벌어야 한다. 난 일주일 뒤에 여길 떠냐아하는 몸. 어디서 단기간에 골드를 벌지?
떠오르는 곳은 모험가 길드뿐이다. 이곳에도 헤르메스 길드가 있을 것이다. 라이오넬에 들어설 때 헤르메스의 모험가 배지로 입장하기도 했고,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길드니까.
번화가로 가서 주민들에게 물어보아 길드의 위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헤르메스 부츠 그림이 달린 간판이 보였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서둘러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
"안녕하세요. 어?"
조금 차가운 말투를 지녔지만 노른 마을 내 최고 쿨뷰티 미녀였던 시롬이었다.
"출장 가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라이오넬에 계셨군요."
"네, 최근에 라이오넬 길드가 바빠졌다고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또 만나다니 반갑네요."
평소 표정 변화가 적은 시롬이 밝은 표정을 보여주었다. 역시 이 여자는 아름다웠다. 노른에서도 시롬과 더 친해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는데 여기서 만난다니 어쩌면 신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
"돈이 좀 급하게 필요해서요. 가능한 높은 보수의 퀘스트를 하고 싶은데, 지금 길드 내에서 가장 보상금이 높은 퀘스트는 뭐죠?"
"보상금이 가장 높다면, 아마 토벌 퀘스트란 쪽에 있는 거대 샌드웜 처치겠죠. 샌드 웜 때문에 상업 국가 무리뉴와 무역에 애를 먹는 모양이에요. 피해를 입은 상단도 한두 군데가 아닌 모양이고."
"거대 샌드웜이라 보상금은 얼마나 되죠?"
"200G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할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높은 보상금 때문에 호기롭게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모험가가 셀 수도 없거든요."
200골드. 그 골드만 있다면 아름다운 빛깔의 블랙 미스릴 소드를 살 수 있다. 망설일 이유는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샌드웜을 잡는다.
"하지 말라구요? 만약 제가 샌드웜을 잡아 오면 어떻게 하실래요?"
"강단백씨가 강한 건 알고 있어요. 그치만 샌드웜은 군 단위로 덤벼도 상대하기 어려운 거대 몬스터인걸요."
"그래서 제가 잡아 온다면,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해주실래요?"
순간 시롬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만약 그러신다면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죠. 하지만 불가능한걸요."
"좋습니다. 샌드웜은 마석을 주겠죠?"
"네 거대한 몬스터의 경우는 마석크기 조차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구별 가능하다고 해요.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럼 다음에 봅시다."
"정말 샌드웜을 잡으러 가시려구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끝까지 말리는 그녀에게 자신만만하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 길드 밖으로 나섰다.
200골드에 시롬과의 데이트권 까지 얻을 기회. 돈먹고 시롬먹을 찬스를 놓칠 수는 없다. 태그력의 높은 충전조건을 확인할 기회기도 하다.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샌드웜과 얼마나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머릿속으로 샌드웜의 약점을 생각해보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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