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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미의 태그술사-26화 (26/57)

〈 26화 〉 멋진 사나이(2)

* * *

"미하일 님, 정말 직접 싸우시려는 겁니까?"

훈련장으로 나온 군사 지부장에게 묻는 이카르트.

"저 친구가 자신이 많이 있는 모양이니, 테스트해 봐야겠지."

미하일이라 불린 지부장은 목검을 다잡으며 날 바라봤다. 검을 잡는 자세가 남달랐다. 상당한 실력자인 모양이다.

"최대한 전력을 다해서 덤벼보게, 대충했다간 화나서 자네를 죽여버릴지도 몰라."

섬뜩한 말을 쉽게 내뱉는 그.

"마법을 써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게. 한대만 나를 때려도 이긴 걸로 해주지."

한 대만 때려도 이긴 걸로 해준다니 이 무슨 오만함인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덤볐다.

"피지컬 인챈트 : 올 (Physical Enchant : All)"

신체 강화마법을 걸고 바로 전속력으로 뛰어들어 그의 가슴팍을 향해 목검을 찔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대 반응할 수 없는 속도. 하지만 미하일은 왼발은 움직이지도 않고 오른발만을 뒤로 빼며 몸을 틀어서 가볍게 피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으나 곧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찌르기 위해 검을 두 손으로 잡은 상태 그대로 있는 힘껏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하아압!"

하지만 미하일 목검을 아래로 잡아 여유롭게 막아냈다.

"형편없는 검술이군, 이 정도로 마왕을 잡는다고? 지나가는 개도 말릴걸세."

그의 조롱에 참지 못하고 바로 이어서 공격을 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그의 목검이 나의 옆구리를 때렸다.

"크악!"

도저히 내가 반응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가볍게 때리는 것 같았는데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검술로는 내가 감히 비벼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프로즌 패터 (Frozen Fetter)"

조금 뒷걸음질을 친 후, 요새 쏠쏠하게 써먹고 있는 얼음 족쇄 마법을 시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를 때리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는 법. 마법을 펼치자마자 바로 목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미하일 몸에 내 공격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손에 역공을 받아 목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더 할 텐가? 승산은 없는 거 같네만."

"왜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겁니까?"

미하일의 목검에 맞아 빨갛게 부어오른 손을 잡으며 그에게 물었다.

"나에겐 마법보호의 적성이 있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지. 그래서 마법사 나부랭이들은 나에게 상대가 되지 않네."

마법보호의 적성? 이건 또 무슨 사기 치는 소리란 말인가. 마법에 무적인 검술의 달인이라니 그런 건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나 나오는 설정일 텐데.

"그래서 그렇게 자신이 있으셨군요. 말도 안 되는 적성을 가지고 계시네요."

"자네도 다른 데선 꽤 날렸겠군. 그 정도 신체 능력에 마법까지 쓴다면 시정잡배들은 상대도 못할 테니."

칭찬하는 거 같은 말투였지만 결국 이류라는 얘기였다. 자신 같은 강자에게는 통하지 않을 레벨이라는 거겠지.

"그냥 얌전히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면, 몇 년 뒤엔 충분히 한 부대를 이끌 백인 장은 될만한 재목인데 왜 인형들을 부쉈지?"

"목적이 있으니까요."

"목적?"

"그건 이 싸움을 제가 이기고 나서 말씀드리죠."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까다로운 상대다. 하지만 나에겐 조커 카드가 있다.

"[tag : blindfold]"

시야를 차단하려고 마음먹었다. 고블린전에서 썼던 cum in eye가 떠올랐지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또 성기를 꺼내긴 싫었다. 아헤가오 역시 중년 남자의 그런 얼굴을 보긴 싫었기에 선택하지 않았다.

맞으면서 고민하던 내가 떠올린 회심의 태그. 갑자기 미하일의 눈에 검은색의 눈가리개가 채워졌고, 나는 목검으로 그의 가슴팍을 찔렀다.

"와 대장님이 이겼다!"

"저 알 수 없는 주문은 사기라니까."

"전 왕국제일검 미하일 벨룬님이 이런 녀석에게 당하시다니!"

감탄, 놀라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관객들이었지만, 가장 재밌는 반응은 미하일이었다.

"으윽, 아, 안벗겨지는군! 대체 이건?"

시야를 뺏겨 당황한 미하일은 눈가리개를 벗으려 했지만 벗겨지지 않았다. 마치 순간접착제로 고정된 것 마냥 그의 눈가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글쎄요, 저의 비장의 기술이랄까요. 저도 푸는 법은 모르니 10분만 기다리시죠."

본의 아니게 중년의 검사와 안대 플레이를 하게 됐지만, 이겼으니 된 거다.

****

눈가리개의 지속시간이 끝나고 인사담당관과 미하일은 뭔가 대화를 나눴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미하일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봐선 나에게 당한 게 어지간히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대결에 이긴다면 최고의 대우를 해주신다고 했었는데, 어떤 대우를 생각하고 말씀하신 겁니까?"

둘의 대화가 끝난 것 같아 바로 말을 꺼냈다.

"입대하자마자 이십인장의 직책을 준다면 만족하겠나?"

"아뇨, 그런 직책은 필요 없습니다. 병사를 다뤄본 경험이 없는 제가 바로 부사관이 되어봤자 제대로 지휘할 리 만무하죠."

"직책이 필요없다라 그럼 원하는 게 뭔가?"

"저와 제 동료들을 명령을 받지 않는 별도의 부대로 인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을 듣자 미하일의 미간이 좁혀졌다.

"독립적으로 움직일 권한을 달라는 거군.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면 굳이 군에 들어올 필요가 있는 건가?"

"마왕군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규모 병력과 싸우게 될 경우 지원병력도 필요할 겁니다."

"멋대로 싸우고 싶지만, 정보는 필요하다라 정말 특별한 대우를 원하는군."

역시 쉽지 않은 얘기인듯하다. 미하일은 고민에 빠져 보였다.

"라이오넬의 군사 지부장에게도 불가능한 얘기입니까?"

"아니, 우리 지부의 첩보부대라는 식으로 명목을 만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지. 그런데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지? 만약 자네가 첩자라면?"

확실히 그와 나는 오늘 처음 본 사이이다. 게다가 나는 다른 세계에서 전생해온 몸. 신분을 증명할 가문도 없다.

하지만 마왕과 적이라는 증거를 제시할 방법은 있었다.

나는 뒤에 서 있던 에린델에게 다가가 후드를 벗겼다.

"아앗, 무슨 짓이야 강단백!"

후드를 벗기자 드러나는 엘프의 뾰족하고 아름다운 귀.

"에, 엘프다!"

"마왕에게 나라를 뺏기고 멸망한 종족! 아직 살아있는 엘프가 있었다니!"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시끌벅적해졌다. 확실히 이 대륙에서 엘프는 사라졌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동료가 엘프다? 껄껄껄! 이거 재미있군. 첩자라고 의심할 수는 없게 되었어."

호탕하게 웃는 미하일.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네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거야. 하지만 난 자네같이 배짱 있는 사람이 마음에 드네."

"그럼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배짱과 능력이 있는 젊은이. 내가 원하던 인재지. 자네를 도와줄 생각은 드네. 하지만 이건 원수님, 아니 전하께 보고하고 허락을 구해야 할 일이야. 그래도 괜찮겠나?"

수도의 군사 지부에 특수한 부대가 생기는 것이다. 윗선에 연락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물론입니다."

"전하가 자네를 보고 싶어 할 수도 있어. 알현하게 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겠죠. 전하를 뵙는 것에 두려움은 없습니다."

"글쎄. 전하가 자네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군의 재물에 손해를 입힌 것을 추궁해서 벌을 받을 수도 있네만."

입단 테스트용 인형은 비싸다고 했다. 비용을 청구 당할 테고, 만약 내 소지금을 넘어간다면 최악의 경우 구금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보고해주시고 꼭 제가 미하일 님을 이겼다는 내용도 포함해 주십시오."

순간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그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알겠네. 자네의 실력은 뛰어나다고 언급해주지."

"감사합니다."

"아직 정식은 아니지만, 군 소속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이번 일이 안되더라도 자네의 자리는 만들어주지."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나에게 인사를 했고 뒤돌아서서 다시 지부로 들어갔다.

그 후 인사담당관 이카르트가 나에게 지금 묵고 있는 숙소를 물었고 위치를 알려줬다.

"저 말고 다른 동료들은 시험을 안 봤는데, 괜찮은 겁니까?"

"어차피 자네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오늘은 돌아가게. 며칠 내로 연락을 주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파티원들과 같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 군사 지부를 떠나 숙소로 향했다. 조금 고생은 했지만,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귀환길.

"괜찮은 거야 강단백? 갑자기 왕을 알현할 수도 있다니"

"이참에 왕하고 친해지면 좋겠지. 여러모로 편의도 봐줄 거 아냐."

"아니 그렇게 가볍게 말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에린델의 말투.

"괜찮아 다 계획대로야."

사실 왕을 알현할 계획까지는 없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오히려 좋은 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긴 대도시니까 서점은 있겠지?"

"주인, 갑자기 서점은 왜?"

"라이오넬은 없는 게 없지. 서점도 몇 군데 있어. 근데 갑자기 서점을 가자고?"

"왕과 대화하는 법이란 책은 없을까?"

"."

****

결국 서점을 갔지만 그런 책은 없었고, 빈손으로 오기는 뭐해서 검술서적 한 권과 마법서 한 권을 구매했다.

비렌데는 카마수트라를 구매했고 에린델은 이국의 신기한 요리라는 책을 구매했다. 못 말리는 녀석들.

여관으로 돌아와서 내 침대에 누웠다. 검술 서적을 살펴보고 있는데 세키돌이 내 침대에 올라왔다.

"대장님. 나, 이거 읽어줘."

그녀가 내민 건 동화책이었다. 표지에는 빨간 두건을 쓴 소녀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현생에 있던 빨간 모자가 생각나는 비주얼.

"세키돌은 아직 글자를 못 읽던가?"

"쉬운 건 읽을 수 있는데, 못 읽는 글자도 있어서 조금 답답해 대장님이 읽어줘!"

"알았어. 읽어줄게."

전생자의 혜택인지 나는 이 대륙의 글자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이곳으로 와서 언어나 글자 때문에 불편한 적은 없었다. 마치 언어라고 인식하지 않아도 읽히는 모국어처럼.

세키돌은 내 무릎을 베고 누웠고, 그녀를 쓰다듬으며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생기면 이런 기분일까? 그렇게 아빠 체험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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