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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미의 태그술사-20화 (20/57)

〈 20화 〉 기묘한 모험(2)

* * *

에린델의 말투가 묘했기에 은근히 기대하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어디야? 에린델. 안 보여."

"이쪽이야. 이쪽으로 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바위 뒤까지 계속 걸어갔다. 뒤쪽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암석.

하지만 그곳에 에린델은 없었다.

바위 뒤를 보는 순간 기분 나쁘게 생긴 노인의 얼굴이 나를 물어뜯었다.

"크윽!"

최대한 회피하려 했지만 왼쪽 어깨를 조금 깊게 뜯겨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왜 피하는 거야 강단백? 좋은 거 안 할 거야?"

내 어깨를 뜯어먹어 피가 묻어있는 그 끔찍한 얼굴에서 에린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허탈했다. 에린델과 좋은 일을 하지 못해서 생긴 허탈함이 아니라 방심한 자신에 대한 기분.

만티코어는 잔혹할 뿐만 아니라 영악한 괴물로 유명했다. 죽일 대상이 아는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해 유혹한 뒤 죽이는 일도 있다고 했다.

당하고 나서야 만티코어에 대해 읽어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답 안 해주는 거야? 나 서운해~"

계속에린델의 목소리로 말하는 만티코어.

너무 역겹고 짜증이 났다. 저딴새끼가 하필 에린델의 목소리를 따라 하다니.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입 닥쳐라. 에린델의 목소리를 따라 하지 마."

소리치며 바로 라이트닝 랜스를 날렸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가볍게 피해버렸다.

"무서워~ 화내지 마~"

에린델의 말투와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목소리는 완전히 똑같았다. 가족이라도 속을만한 완벽한 성대모사.

"하지 말라고 했다. 빌어먹을 놈아."

오른손에 마력검을 소환해서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흥분한 탓에 동작이 커서 맞추지 못하는 건지, 만티코어가 민첩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단 한 번도 맞출 수 없었다.

'냉정해져라 강단백.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많아.'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고 생각했다.

어차피 왼쪽 어깨를 물어 뜯겨서 출혈이 꽤 심한 상황. 장기전은 불리하다. 태그를 사용해 최대한 속전속결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이 하늘로 날아올라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만티코어. 그러더니 곧바로 녹색의 독 구름 같은 것을 뿜어댔다.

시야가 흐려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숨쉬기조차 불편해졌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공포로 내 사고는 마비되지 않았다. 만티코어에 대한 분노가 더 컸기에 전의는 불타올랐고 나는 이내 해결책을 떠올렸다.

"거스트 오브 윈드 (Gust of Wind)"

강한 바람이 휘몰아쳐서 독 구름을 모두 날려버렸다.

이내 시야에 들어오는 만티코어. 주저 없이 태그까지 바로 시전한다.

"[tag : amputee]"

착한 어른이들은 절대 검색하면 안 되는 태그. 신체의 결손을 다루는 장르다.

분노에 찬 내가 떠올린 태그는 효과가 확실한 잔혹한 태그였다.

태그를 외치자 만티코어의 다리들이 예리한 칼날에 베인 듯 모두 잘려 나갔다.

"쿠어어억!"

에린델의 목소리를 따라 하던 더러운 입에서 듣기 싫은 괴성이 흘러나왔다.

지체하지 않고 마무리를 준비했다.

"블러드 데토네이션 (Blood Detonation)"

대상의 상처에서 혈폭이 일어나는 잔인하지만 강력한 마법. 만티코어의 행동에 화가 나 있던 나는 편하게 죽이기 싫었기에 고통스러운 마법을 떠올렸다.

다리가 다 잘려 균형을 잡기 힘든 몸으로도 날아서 도망치려고 했던 만티코어를 완전히 쓰러트렸다. 만티코어는 상처에서 폭발이 일어난 후 바닥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하아."

만티코어가 움직이지 않자 나도 한시름 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피를 많이 흘린탓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멀리서 파티원들이 오는 것이 보였다. 강력한 폭발음을 듣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오는 모양이었다. 비렌데의 치료가 필요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상상 가능한 마법은 무엇이든지 구현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치유마법도 내가 시전하면 될 게 아닌가.

가장 빠른 방법을 놓치고 있었다는 데에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단숨에 온몸이 치료될만한 강력한 치유계 마법을 상상했다.

"그레이트 힐 (Great Heal)"

따뜻한 빛이 내 온몸을 감싸며 치유가 돼 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여전히 내 어깨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우선 옷을 찢어서 대충 지혈을 하고 얌전히 비렌데를 기다렸다.

내가 주저앉아 있는걸 확인한 듯 다들 허겁지겁 달려와 주었다.

"괜찮아? 주인."

비렌데가 오자마자 바로 치유를 시작했고 에린델과 세키돌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이 정도로는 별문제 없어. 걱정 하지 마. 나 튼튼하잖아."

치유마법의 효과는 확실했고 금세 어깨의 피가 멎고 상처가 회복되었다.

엄청난 효과의 치유마법. 효과를 체감할수록 욕심이 났다.

비렌데에게 아까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마법은 다 잘되는데 어째서 치유마법만 실패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이유는 간단해. 치유계 마법은 적성 없이는 누구도 사용하지 못해. 그게 현자급 대마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이세계에는 다양한 적성이 있지만, 특히나 치유계 마법은 까다로운 적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치유계 적성이 있는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수도원으로 가게 된다고 했다. 본인도 그중 하나였고.

애초에 내가 속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하는 걸 보면 마법사들의 성지인 마법사의 탑에서 날 연구하려 들 거라는 무서운 얘기까지 했다.

'치유계 마법의 적성만 없는 건가. 역시 모든 걸 다 주진 않으셨군요. 여신님."

생각해보면 지금의 상태도 흔히 말하는 먼치킨(munchkin)에 가깝긴 하다.

상상하는 대부분의 마법이 사용 가능했고 거기다가 태그까지 활용한다면 전투에서는 거의 무적. 거기다가 자힐까지 가능했다면 누구나가 욕할 사기 캐릭터의 탄생이겠지.

그렇게 앉아서 치유를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에린델은 만티코어의 시체를 확인했다.

"역시 단백은 대단하네. 이 괴물을 어떻게 잡은 거야?"

만티코어가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한 후 에린델이 나에게 말을 거는 그 순간.

­쐐애액

갑자기 기다란 꼬리 같은 것이 에린델을 찔렀다.

만티코어의 꼬리였다. 끝에는 독침이 달려있었고 전갈의 꼬리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에린델은 독침에 찔려 괴로워했다.

죽은 줄 알았던 만티코어는 아직 살아있었다.. 일부러 죽은 척을 하며 마지막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개 같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끝까지 짜증 나게 하는 영악한 새끼.

마력검을 소환하고 사정없이 만티코어를 마구 난도질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온갖 폭력적인 태그를 남발했다.

"[tag : ryona]"

"[tag : guro]"

"[tag : electric shocks]"

만티코어가 조각조각 찢어지고 그 위에 강렬한 전기까지 떨어졌다. 거기에 폭발 마법까지 난사했다. 만티코어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그래도 흥분이 가시지 않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강단백 나 괜찮아 진정해."

"미안해. 만티코어가 죽은 줄 알았어. 나 때문에."

"괜찮아. 비렌데가 치료해줬는걸."

괜찮다며 애써 웃어주는 에린델이었지만, 미안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튼 어두워지면 성가시기에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기로 했다.

****

지친 탓인지 가는 길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힘들었다. 당장 여관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지만, 실종된 모험가들도 많은 사건이었다. 진상을 빨리 알리기 위해 길드를 먼저 찾기로 했다.

굳이 다 같이 갈 필요는 없었기에 파티원들은 먼저 보내고 나만 길드를 들리기로 했다.

"어서 오세요. 헤르메스 길드입니다."

여전히 조금은 차가운 느낌의 시롬의 인사. 기분 탓인지 오늘은 조금 따스하게도 느껴졌다.

"모험가들이 사라진 이유를 알아 왔습니다."

노른평야 북부에는 만티코어가 있었고 모험가들이 실종된 이유는 만티코어에게 잡아먹혔기 때문이라는 얘기, 키메라들과 만티코어와 싸워서 없앴다고 말했다.

"만티코어라면 인육을 좋아하고 엄청나게 흉포하다는 그?"

"네. 맞아요. 게다가 엄청나게 영악하더군요. 파티원 중 하나의 목소리를 따라 해서 자칫하면 당할 뻔했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을 하시네요."

나를 동경하는 듯한 눈빛의 시롬. 차가워 보이는 미소녀가 저런 얼굴을 하니 상당히 신선했다.

말도 안 되는 건 당신의 가슴이 아닐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저 동경하는 눈빛이 경멸로 바뀔 것이다. 참아야 한다.

"그런데 시체를 깔끔하게 소각해버려서 증거라고 제출할만한 게 이것밖에 없네요."

주변에 떨어져 있었던 만티코어의 털들을 내밀었다.

확실히 본적 없는 털이라며 시롬이 신기해했다. 하지만 이것이 만티코어의 털이라는 증명을 할 수는 없을 텐데 내 말을 믿어주는 분위기다.

"이게 만티코어의 털이라는 증거는 없는데, 쉽게 믿어주시네요?"

"여태까지 보여주신 모습이 있으니 신뢰라는 게 쌓인 거겠죠."

하긴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어 B등급의 퀘스트 처리, 마을의 위기였던 골렘도 쉽게 잡았으니 날 믿어줄 만은 했다.

하지만 만티코어는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들 정도의 희귀한 몬스터라고 했다. 그런 게 갑자기 나타나다니. 시롬은 뭔가 이상하다며 불안해했다.

"최근에 마왕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제 이 작은 마을도 안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노른마을은 상업이 발달하지도, 유명한 모험가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변에 몬스터들도 많이 나타나고 살기 어려워져서 떠나는 주민들도 많다는 모양이었다.

"그 마왕군 말입니다만 왕국에 그들이 활개 치기 시작한 진 얼마나 됐죠?"

"아직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전까지는 아주 평화로운 나라였죠. 핌베르트 왕국은."

3년 전. 오랜 시간 봉인되어 있던 마왕이 깨어났고, 왕국 전역 몬스터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왕국 측에서도 위기를 느끼고 소드마스터들과 현자들을 모아 마왕을 토벌하려 했으나 마왕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사천왕에게 모두 패배했다고 한다.

당시 마왕토벌대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몇 명 없다고 하며, 지금은 늘어난 몬스터를 상대하기에 급급한 상태라고 했다. 마왕군과 왕국군이 대치하는 전선이 점점 뒤로 밀리고 있어 타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마왕이 나타났으나, 그걸 처리할 스스로 능력이 없는 왕국. 그런 나라에 나타난 나라는 괴물. 용사 탄생의 완벽한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마왕을 잡는 게 아닌, 마왕군에 타격만 입혀도 내 위상은 엄청나게 올라갈 거고 왕국의 영웅이 될 것이다.

"그럼 제가 마왕을 처리하면 바로 영웅이 되겠군요?"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한다면 단번에 왕국의 영웅으로 칭송받겠죠. 어마어마한 하사품도 받을 거고요. 하지만 강단백씨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마왕은."

"하하. 농담입니다. 그저 마왕군을 조금 막아볼 생각은 하고 있어요."

사실 농담이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마왕을 잡고 이세계의 영웅이 되고 싶다. 한 번쯤은 꿈꿔본 로망이었다. 이세계의 영웅이 되어 칭송받는 자가 되는 것. 게다가 에린델의 복수까지 하는 셈이 된다. 거기다 왕이 하사품까지 내릴 터다.

꿩 먹고 알 먹기에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

내 능력이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동료들의 지원도 있고 말이지.

당장은 내 전투 경험이 적어서 어렵겠지만 조금 더 숙련된다면 날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롬에게 현상금 40G를 받고 작별 인사를 건넨 후 여관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오늘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키메라들을 잡을 때의 마법과 마력 검의 연계는 나쁘지 않았다. 비록 흥분해서 난사했었지만 만티코어에게 처음 써본 태그들도 성능이 좋았다.

내 활용도에 따라서 충분히 나는 무적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꽤 강한 상대를 잡았기에 자신감은 꽤 올라갔다. 앞으로는 뒷처리를 더 확실히 해야겠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었고.

돌아가는 길에 빵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정해졌다.

저녁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세키돌이 들어오면서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으로 옮겼고, 방이 커진 만큼 생활하기는 전보다 편안해졌다.

"대장님! 고생했어~ 어서 와!"

발랄하게 내게 안기며 반겨주는 세키돌. 참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다.

"아빠가 맛있는 거 사 왔다."

"누가 아빠야?"

에린델이 태클을 걸었지만, 마다하지 않고 내가 사 온 소시지 빵을 제일 먼저 집었다.

"역시 식욕의 에린델. 그녀를 막을 순 없다."

먹으면서 뭐라고 하는 깃은 델이었지만 발음이 뭉개져 뭐라는지 모르겠다.

비렌데는 음식에 별로 흥미가 없는 편이지만 웬일로 맛있게 먹는 거 같아서 보기 좋았다.

세키돌이야 말할 것도 없이 신난 모습. 나한테 안긴 채로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보드라운 세키돌의 감촉도 즐기면서 소시지 빵을 입에 넣고 생각했다.

'가재로는 재미가 없지, 이왕이면 랍스타를 잡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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