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두개의 태양
* * *
[막간 금태양의 사정]
골드 선테인은 상당히 우울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마법 멸치에 당해서 얼굴에는 화상을 입고 개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없었으면 자신이 마을에서 가장 잘나가는 모험가였다. 한순간에 자신은 찬밥신세가 됐다.
전생하기 전에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폐인의 삶에 비하면 이곳의 삶은 천국이었다. 신체와 외모 모두 남부럽지 않을 스펙이 된 데다가, 길드에서 간단한 퀘스트를 하면서 벌어들이는 골드 수입 또한 짭짤했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미인 여자친구도 사귈 수 있었고, 몰래 다른 여자들도 만나고 다니면서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흉터 때문에 보기 싫은 얼굴이 되어 여자친구에게도 차였다. 이젠 밖에 나가는 것조차 하기 싫어졌다.
'더 강한 능력을 받았어야 했는데 망할.'
남의 힘을 뺏을 수 있다면 무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순한 생각이었다. 물리적인 힘을 빼앗아도 마법이나 원거리 공격에는 무력했다. 이 힘으로는 그 마법 쓰는 멸치에게 복수를 할 수가 없다며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했다.
그는 강해지고 싶었다.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망쳐버린 강단백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본인이 먼저 시비를 걸어서 생긴 자업자득이란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이세계에 와서 모든 것들이 자신의 마음대로 됐었기에, 자기 생각이 곧 정의였다.
골드 선테인이 숙소에 처박혀서 이런저런 후회와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을 때, 마을에 골렘이 나타나 마을을 부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지만, 그는 멀리서 쳐다보며 골렘이 난리 치는 것을 즐겼다.
'다 부숴버려라. 망할 마을. 다 죽어버리라지."
그에게 더이상 천국이 아니게 된 노른 마을이 피해를 보는 건, 오히려 그에게 기분이 좋았다. 나만 불행해진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다 같이 불행해진다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그런 소망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가장 싫어하게 된 멸치, 강단백이 나타나서 골렘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또 강단백에게 감탄했고 그를 칭찬했다.
'또 저새끼냐. 씨발!'
강단백에 대한 증오가 점점 커져만 갔다. 보란 듯이 자신이 싫어할 만한 짓만 하는 그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었다. 이 온몸을 팔아서라도. 골드 선테인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전에 술집에서 모험가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강해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기존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함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대가는 상당하겠지만, 이미 선테인에게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흑마법사, 흑마법사라면 악마에 대한 정보를 알 거야. 찾아가 보자.'
이 세상의 가장 어두운 것들과 밀접하게 지낸다는 흑마법사라면 분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노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녀의 숲이 있다. 그곳에는 마녀와 흑마법사들이 산다고 들었다.
골드 선테인은 주저 없이 마녀의 숲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늦은 밤, 나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산에서 골렘들과 전투를 할 때 까지만 해도 잘 사용되던 태그가 갑자기 발동이 안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키돌을 맞닥뜨렸을 때부터 안되던 게 몇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몰래 비렌데에게 [tag : ahegao]를 시전해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그의 사용에 조건이 있었나."
사실 이세계로 오고나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능력에 관한 연구는 부족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놔야겠다고 다짐했다.
상태 창에 정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그런 것뿐일지도.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고 강하게 떠올리니, 경쾌한 띠롱 소리가 들리는듯한 느낌과 함께 눈앞에 상태창이 펼쳐진다.
[강단백]
[나이 : 25]
[키 : 177 체중 : 67 성기 : 21cm ]
[성별 : 남]
[능력치 : 힘 : C+ 민첩 : B 체력 : CC+ 지능 : AA+ 카리스마 : SS ]
[능력 :
히토미 마스터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끝을 모르는 정력 색욕의 악마인 서큐버스 마저 굴복시키는 미친 정력의 소유자. 체력이 다 떨어져도 계속 섹스가 가능하다
NTR은 싫어(F) 자신의 힘이나 마력을 뺏기는 것에 대해 저항력이 생깁니다.]
[장비 : 날이 빠진 숏소드]
[변경점 : 힘 경험치 +40 / 민첩 경험치 +70 / 지능 경험치 +300
체력 경험치 +150 / 카리스마+200
지능 랭크가 A+에서 AA+로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랭크가 C+에서 CC+로 상승하였습니다.]
지능이 가장 높은 상승을 보였다. 마법을 수도 없이 난사한 데다가, 고위 마법을 사용했던 덕이겠지.
카리스마도 큰 경험치를 얻었는데, 추측컨대 강한 전투력을 지닌 세키돌을 동료로 들인 것 때문이지 싶다. 애초에 카리스마가 낮았으면 세키돌이 거절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거라 생각이 든다.
세키돌과 다시 싸웠을 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높은 카리스마를 주신 여신님께 새삼 감사를.
체력의 상승은 실컷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겠고, 숏소드는 세키돌의 건틀릿과 강하게 부딪힌 탓인지 날이 손상됐다.
아무튼 중요한 건 능력란의 히토미 마스터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설명 이외에 다른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침대 위에 걸터앉아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세키돌이 말을 걸었다.
"그런데 나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해?"
"글쎄, 주인님이면 되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널 책임질 거니까."
세키돌이 조금 애처로운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나한테 주인님은 만들어주신 주인님이야. 다르게 부르고 싶어."
자신을 만들어준 존재. 거기에는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나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부모님에 대해 감사함 정도는 있었지만, 아직 결혼해서 애를 낳아 본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큰 무게감이 있다는 건 알고 있기에 섣불리 세키돌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그 짧은 침묵을 먼저 깬 건 세키돌이었다.
"이 파티를 만든 건 누구야?"
"내가 만들었지. 내가 리더격으로 동료를 모은 거니까."
"그럼 대장님이라고 부를래. 대장님!"
발랄하게 외치면서 갑자기 안겨 오는 세키돌. 참 천진난만한 인형이다.
갑작스레 세키돌이 안기는 바람에 나는 균형을 잡느라 팔을 허우적댔다.
띠롱
허우적대던 손에 무언가가 눌리며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곳은 상태창이 있던 곳. 내 손에 눌려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왜 눌러볼 생각을 못 했지. 멍청한!'
[상세설명
히토미 마스터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본인이 상상할 수 있는 태그라면 어떤 것이든지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태그의 사용에는 일정수치의 태그력이 소모된다. 그 태그력이 모두 소모되면 태그력을 충전하기 전까지는 태그를 사용할 수 없다.
태그력을 충전하는 방법은 성행위를 통한 사정이며 유사 성행위도 포함된다.
태그력 0/???]
태그에도 마나와 비슷한 개념이 있었다. 태그력이라는게 있었고 그걸 다 소모해서 태그가 발동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최대 태그력은 ?로 정확히 표시되지 않았지만, 현재가 0인 것 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섹스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겨버렸군. 크큭.'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마치 능욕물의 주인공 같은 썩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세키돌의 돌발행동 덕에 태그가 사용되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완벽한 사용법까지. 그런 그녀가 고마워서 내게 안겨있는 그녀를 쓰다듬었다.
"흐응~ 벌써 그렇게 친해진 거야? 대단하네."
내가 세키돌을 안고 쓰다듬는 걸 보더니 에린델이 입을 열었다.
"세키돌 덕분에 아까 태그가 사용 안 된 이유를 알았거든."
"뭐 때문이었는데?"
"태그에도 마나처럼 태그력이 필요하대. 그걸 채우려면 섹스를 해야 하고."
"뭐, 뭣?"
귀가 빨개지며 당황하는에린델.
"태그력을 채운다는 핑계로 나한테 야한 짓을 할 생각이라면, 난 협조 안 할 거니까!"
저렇게 부끄러워하면서 안 한다고 하면 오히려 더하고 싶어지는게 남자의 마음입니다만. 에린델씨는 잘 모르시는구나.
성행위를 해야 하는 건 진짜라고 상태창을 보여주려 했지만, 전생자의 특권인지 이 창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걱정 마. 주인의 사정 관리는 내가 하면 되잖아? 당장 할까 주.인.님?"
기다렸다는 듯이 비렌데가 치고 들어온다.
하지만 오늘은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많았다. 서큐버스와 찐한 베드신을 찍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내일 하자고 그녀를 말렸다. 비렌데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물러났다.
그런데 안고 있는 세키돌의 감촉이 예상보다 너무 좋았다. 볼도 아기 피부처럼 보드랍고 가슴도 생각보다 있는 것이.
"대장님 근데 섹스가 뭐야?"
"나중에 알려줄게."
세키돌의 감촉을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도망치듯이 방 밖으로 나왔다.
****
늘어지게 자고 난 다음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회의를 하기로 했다.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상태로 얘기를 시작하려니 왠지 수학여행에 온 기분이 들었다.
"우선은 앞으로 우리가 하려는 일인데, 마왕군과 맞서는 일이야. 세키돌은 처음 듣는 이야기겠지. 마왕과 싸우는 일은 쉽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
"마왕은 많이 강해?"
이 부분은 나보다 전 마왕군 출신인 비렌데가 더 잘 알 거 같아 그녀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도 마왕님, 아니 마왕을 직접 본 적은 없어. 하지만 직접 전선에 나서는 행동대장인 마왕군 제1 군단장 루시페르는 본적이 있는데 그에게 마을 하나 날려버리는 건 일도 아니더라고. 게다가 마왕에겐 사천왕이 있는데 루시페르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으로 강하다고 해."
하지만 그런 사천왕들 네 명을 합한 것보다도 마왕이 강하다고 얘기했다.
개념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체감이 안 오는 정도의 절대적인 강함. 현재의 우리로서는 마왕군이랑 싸운다는 게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래도 주인의 태그라는 이상한 힘은 엄청나다고 생각해. 그 태그가 먹힌다면 사실 못 이길 존재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
희망적인 말도 해주는 비렌데. 하지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태그를 잘 활용만 한다면 아무리 전지전능한 존재라 한들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사용조차 해보지 않은 태그들이 많아. 신체를 잘라버린다든가 하는 잔혹한 것들도 많거든. 굳이 그런 방식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필요하면 쓸 수도 있겠지."
잔인한 얘기를 꺼내자 에린델이 조금 표정을 찡그렸다. 제일 오래 산 주제에 제일 애 같다니까.
"대장님은 강해. 그리고 갈 곳 없는 나를 데려와 줬잖아? 어려운 일이라도 따라갈게!"
"고마워."
세키돌에게 두들겨 맞은 게 생각나서 사실 제일 강한 건 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꾹 참고 감사를 표했다.
에린델도 마왕군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가장 떠올리기 싫은 이야기였을 텐데, 본인이 살든 엘프의 숲이 침공당했든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지 그리고 강한지를 설명했다.
일부 악마들에게는 화살도 먹히지 않았으며 마법조차 잘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엘프들중에서도 소드마스터에 버금가는 검사들과 현자급 마법사들이 있었는데도 마왕군의 전력은 압도적이었다는 이야기.
"당시 어렸던 내가 보기에도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어. 정말 강력했거든 그들은."
괴로운 듯 말끝을 흐리는에린델.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좋아. 그들의 강함은 대충 알겠어. 하지만 우리가 더 강해지면 될 일이야."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강해질 수 있는지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사실 이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마나의 개념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기에 에린델에게 물어보았다.
"마나는 우리 몸에도 있고 주변에도 있어. 어디에나 있는 게 마나야. 그런데 각자가 담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달라. 이건 타고나는 영역이야."
항아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고 했다. 모두가 각자 마나의 항아리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 마나가 가득 찬 상태면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
하지만 그 항아리의 크기는 모두 다르고 마나가 다시 차오르는 속도도 다르다고 했다. 뛰어난 마법사는 자신의 마나가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마나를 끌어와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한대의 마나를 사용 가능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마법을 사용할 때 주변의 아지랑이 같은 것을 느낀 적이 많다. 하지만 급할 때는 그냥 마구잡이로 사용했었지. 자신의 마나로만 시전했을때는 확실히 지치는 느낌이 있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엘프 선생님. 역시 오래 살고 볼일이군."
"엘프가 150년이면 오래 산 게 아니라니까."
자신의 젊음을 피력하는 에린델을 제쳐두고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사실 나는 근접 전투도 잘하고 싶거든. 검술 같은 것에 흥미가 있어. 세키돌 나랑 매일 대련해줄래?"
흔쾌히 끄덕이는 세키돌. 역시 이 인형은 귀엽다.
안그래도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에린델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 비렌데에게 말을 걸었다.
"산에서 겪어보니 강화나 회복마법 모두 상당하던걸? 아직 더 좋은 마법들이 남아 있겠지?"
"물론이지 주인님. 나도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게 많아. 앞으로도 날 만족만 시켜준다면야 잔뜩 강하게 만들어줄게♡"
태그력이 부족할 일은 없겠군.회의를 마치고 식사까지 한 뒤 계획대로 훈련하기로 했다.
마나를 다루는연습 이외에는 세키돌과 대련을 위주로 훈련했고 에린델과 비렌데는 마을 밖에서 고블린이나 코볼트들을 잡으면서 퀘스트로 용돈벌이까지 겸했다.
특히 에린델은 좋은 활을 사고 싶다며 내가 걱정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한동안은 그런 생활을 반복해서 지루해 질 때 쯤, 강한 상대와 싸우고 장비도 구할 겸 난이도가 있는 토벌 퀘스트를 하기로 했다.
인간과 엘프, 서큐버스와 돌(Doll)이라는 특색있는 파티 하나가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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