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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미의 태그술사-17화 (17/57)

〈 17화 〉 금지된 장난(3)

* * *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

일정 지역의 중력을 역전 시켜 상대를 공중에 묶어두는 마법.

"뭐뭐야? 내려줘!"

세키돌이라 불린 소녀는 공중에 떠서 허우적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됐다.

리버스 그래비티는 분명 7서클 이상의 초고위 마법이지만, 전생한 나의 마력은 상상 이상인듯하다.

물론 가능하길 바라며 주문을 외쳤지만 정말로 시전되어버리다니. 자신에게 상당히 놀랐다.

"중력을 역전시킨다고? 당신 정체가 뭐야."

하지만 연금술사는 나보다 더 놀란듯했다. 확장된 동공을 감추지 못하고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나? 히토미 마스터라고 불리곤 했지. 여기 와선 아직 별다른 별명은 없네?"

이 연금술사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뻔했다. 내가 저 괴물소녀를 무력화시키지 못했다면 분명히 그랬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연금술사를 죽여버리는 게 맞나?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아직도 난 대한민국에 살던 평범한 모솔아다 강단백의 도덕 관념을 버리지 못했기에 잔인해지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대화를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신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난 당신을 죽이러 온 게 아니야. 데려가서 벌을 받게 하거나 그냥 마을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멀리 내쫓을 생각이었다고."

"데려가서 벌을 받게 한다고? 가면 난 맞아 죽을 거야. 죽인다는 소리나 다름없지. 내쫓는다? 난 기껏 마련한 내 보금자리에서도 나가야 한다는 소리야?"

그녀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점점 화가 차오르는듯한 얼굴.

"어차피 그 마을에 복수만 한다면 난 죽어도 상관없었어. 근데 당신이지? 아까 골렘을 처리한 사람."

"그래. 내가 잡았어."

"그 마을에 내가 만든 골렘을 잡을만한 실력자는 없었어. 너만 아니었으면 내 계획은 완벽했는데!"

바들바들 떨면서 진심으로 분해하는 연금술사.

"왜 그렇게까지 마을에 복수하고 싶어 하는 거지?"

"그 마을 사람들은 타지에서 온 나를 배척했어. 오해가 생겼는데 내 말을 믿지 않았지. 날 괴롭히고 결국."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너한테 설명할 이유는 없어. 어설픈 동정은 관두라고!"

몸 상태가 엉망인 나는 바로 따라가지 못했다. 우선은 비렌데에게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다.

"큐어 힐(cure heal)"

따뜻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상처가 치료되는 동시에 체력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비렌데의 회복마법은 생각보다 뛰어났고 옆구리가 부러진 것도 금세 치유됐다.

그리고 그녀에게 리버스 그래비티의 지속이 얼마인지 모르니 숨어서 에린델의 치료를 해달라고 말했다.

"너무 무리하진 마."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연금술사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렸다.

타인에게 받는 오해. 그리고 멸시. 분명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마을에서 쫓겨난 연금술사만큼의 정도는 아니겠지만, 나 또한 학교 다닐 시절에 따돌림을 당해본 적이 있었고 친구들과 다투기도 했었다.

미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버거운 일이다. 그녀가 마을에서 쫓겨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져 있는 건 분명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쯤에 절벽이 나타났고, 절벽의 끝자락에 집이 한 채 있었다.

투박하지만 주변의 자연환경과는 잘 어울리는 목조 건물. 아마도 연금술사와 세키돌이라 불렸던 소녀가 고생해서 지은 건물이겠지.

집 앞으로 다가가 크게 외쳤다.

"안에 있지? 얘기 좀 하자. 난 널 해칠 생각은 없어."

아무런 대답도 없이 조용한가 싶더니 곧 문이 열리고 그녀가 걸어 나왔다.

"얘기?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지? 넌 날 모르잖아."

"모르지만 네 심정은 이해할 수 있어.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거든."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하려 노력한다.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기는 법이니까.

"아니, 난 사람을 믿지 않기로 했어. 다 언젠간 배신하는 것들이거든. 내겐 세키돌만 있으면 돼."

"내 말을 믿어줄 생각은 없나 보군. 그런데 그 세키돌이라는 소녀는 사람이 아닌 건가?"

"싸워봤는데도 모르겠어? 세키돌은 사람이 아니고 인형이야. 내가 만들어낸 자아가 있는 돌(Doll)이지."

놀랐다. 비상식적으로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소녀가 인간이 아니었다니.

"세키돌은 너희들처럼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아. 만들기 위해 정말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보람이 있었어."

"사람들도 다 나쁘진 않아. 대화해 보면 오히려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해."

"아니, 아니야 날 가르치려고 하지 마! 그런 입에 발린 소리 난 안 믿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분노하는 그녀. 그녀의 인간불신은 하루 이틀에 생긴 게 아니다. 내 생각 이상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이 오래된 탑처럼 쌓여있었다.

안타깝지만 그 탑을 허물기에는 나로선 무리다. 이미 나는 그녀에게 적으로 인식되어 있기에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겠지.

"그냥 이곳에서 떠나는 건 안되는 건가? 나도 저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니 널 모른 척 해줄 수는 없어."

"말했잖아? 기껏 내가 살 곳을 만들었는데 또 떠나라고? 그냥 네가 떠나면 되잖아!"

소리치며 병을 던지는 그녀.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병. 폭발포션(explosion potion)이었다.

이 연금술사의 재능은 진짜였는지, 파괴력은 상당했고 내가 피하지 못했다면 온몸이 산산이 조각났을 것이다.

그녀가 도망친 건 집에 있는 이 포션들을 가지러 간 것이었나. 날 무조건 죽일 생각이었던 듯 하다.

대화도 통하지 않고, 까딱하면 온몸이 조각나서 보물찾기를 해야 될만한 강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까지 있다.

'결국 무력화시켜서 강제로 데려갈 수밖에 없나.'

그녀는 자기가 마을로 가게 되면 죽을 거라 했지만, 그렇게 비정상적인 마을로는 보이지 않았다. 골렘 때문에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던 것 같으니 감옥에 갇히게 되는 정도로 끝날 일이다.

리버스 그래비티는 강력하지만 확실히 마나 소모가 심하다. 아까 마법을 사용한 뒤로부터는 마나의 아지랑이가 약하게 느껴진다.

대체할 다른 속박마법을 생각하는 찰나, 그녀가 폭발 포션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신체 강화마법을 걸고 최대한 피하는 데 집중했다.

­콰아앙! 퍼엉!

포션의 크기는 작았는데도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던지는 곳 반경 2m~3m 정도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릴만한 폭발력. 저 포션의 크기가 컸으면 상상도 하기 싫은 폭발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본인이 던지기 용이하게 작게 만든 거겠지.

"죽어! 죽으라고!!!"

그녀는 요리조리 피하는 나 때문에 더 화가 난 듯 여러 개를 마구 던져대기 시작했다. 포션을 던지다 못해 뿌리는 수준의 투척.

강화마법을 걸었다고는 하나 폭주한 그녀의 마구잡이 투척을 가까이에서 피하기에는 무리다. 나는 포션이 소모될 때까지 우선 멀리 거리를 두기로 했다. 멀찍이 뒤로 점프해서 상당히 거리를 벌렸다.

그 순간 마구잡이로 폭발 포션을 던져대던 그녀가 포션을 발밑에 흘렸다.

이성을 잃고 던져대다 손에서 미끄러진 듯 했다.

­콰아아앙!

"아."

그게 그녀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절벽이라는 위험한 위치에서 일어난 폭발은 그녀를 자비 없이 절벽 밖으로 날려버렸고 거리가 멀었던 나도 그녀를 살릴 수는 없었다.

그녀를 이해해줄 사람 한 명만 있었어도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재능있는 젊은 연금술사의 끝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야?"

치료를 마쳤는지, 에린델과 비렌데가 따라와 있었고 에린델이 내게 말을 걸었다.

폭발포션의 여파로 주변의 땅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연금술사가 떨어지게 된 과정에 대해 그녀들에게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내 설명을 들은 건 그녀들뿐만이 아니었는지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야? 주인님이 죽었다고?"

리버스 그래비티의 지속시간이 끝났는지, 뒤늦게 따라온 세키돌이 나에게 되물었다.

그녀의 전투력을 몸소 느꼈기에 긴장했지만, 그녀에게 싸울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에 우선 경계를 낮추고 대답하기로 했다.

"그래. 난 그저 무력화시켜서 데려가려고 했을 뿐인데,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 그러다 실수로 폭발포션을 자기 밑에 떨어뜨렸어."

"주인님이 죽다니. 난 주인님 없이는 살 수 없어. 살아보지도 않았는걸."

털썩 주저앉는 세키돌. 마치 주저앉아서 엉엉 우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돌(Doll)이기에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인형이 주인을 잃으면 그냥 방치된다. 그러다 결국 쓰레기장으로 가게 되는 게 운명.

세키돌도 그런 운명이 되어버린 걸까.

갈 곳이 없어졌다는 점이 비슷해서였을까? 절박하던 연금술사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런 세키돌을 바라보다 에린델과 눈이 마주쳤다. 눈짓으로 '어떻게 할 거야? 강단백?' 이라고 묻는듯했다.

내가 이 파티의 리더격이니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 위협적인 존재가 전의를 상실했을 때 빨리 공격하던가 아니면.

"인형씨? 세키돌이라고 했던가?"

"응. 세키돌의 이름은 세키돌이야."

"갈 곳이 없으면 나를 따라올래?"

연금술사의 죽음 때문에 감성적이 됐던 건지 나도 모르게 세키돌에게 그런 말을 건넸다.

"뭐? 주인 미쳤어? 우리가 아까 당한 건 기억 못하는 거야?"

경악하는 비렌데.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지만 사실 얘에게 잘못은 없잖아? 시켜서 했을 뿐이지. 이젠 주인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 거잖아."

"하지만."

비렌데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싸웠던, 아니 일방적으로 맞았던 상대이니만큼 경계 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만약에 인형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도 난 그녀를 무력화 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순진해 보이는 세키돌이 흑심을 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따라 갈래. 당신 강해서 좋아. 아까 날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지. 그건 어떻게 한 거야?"

잠시 생각하는듯했던 세키돌이 입을 열었다.

"그건 고위 마법이야. 근데 괜찮은 거야? 그래도 난 네 주인과도 싸웠던 사이인데 내 말을 믿어주는 건가?"

"당신 강하잖아. 굳이 거짓말을 할 거 같진 않아. 언제든지 나와 주인을 죽일 수 있었던 것 같고."

이 인형이 순진한 건지 똑똑한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인은 확실히 변했어. 마을을 공격하는 것도 난 하지 말자고 했었는데 듣지도 않고.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세키돌이 만들어진 지는 1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상냥한 주인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신경질적으로 되었고 감정의 기복도 심했다고 했다.

마을을 공격할 땐 말렸는데도 강행했고 뭔가 사고가 날건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죽게 될 줄 몰랐지만.

"솔직히 걱정되지만, 난 그래도 찬성이야."

에린델도 입을 열었다.

"앞으로 우리가 마왕 군과 싸우려면 강한 전력이 필요해. 아까 싸워보고 느낀 거지만 이 아이 엄청나게 강하잖아."

전력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역시 현명하신 엘프님.

"알겠어. 하지만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네."

비렌데도 마지못해 승낙했지만, 여전히 조금 못 미더운 듯하다.

"고마워. 다들. 세키돌은 내가 잘 보살필게. 분명히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아까 때린 건 미안해.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었어."

미안하다며 우리에게 고개를 90도로 꾸벅 숙이며 사과하는 세키돌.

애써 웃음 짓는 에린델과 뾰로통한 표정의 비렌데를 보고 미안한 감정과 고마운 감정이 교차했다.

육체와 정신 모두 상당히 지쳤기에 얼른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세키돌과 친해질 때까지는 불편한 동거가 되겠지만, 4인이 되니 파티가 제대로 구성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뿌듯했다.

RPG적 구성으로 보면 전사(세키돌), 궁수(에린델), 마법사(나), 힐러(비렌데) 쯤 되는 건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구색이 맞아가는 기분.

하지만 마냥 뿌듯해하진 못했다. 연금술사의 죽음이 자꾸만 머리에 떠올라서 씁쓸한 감정이 더 컸기 때문에.

­후드득

마을로 가는 도중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비에 누군가는 호들갑을 떨 뻔도 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차분하지만 조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마을로 귀환했다.

비는 아까 흘리지 못한 세키돌의 눈물을 대신하듯, 더욱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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