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금지된 장난(2)
* * *
자신 있게 돌덩이들을 범하자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내심 불안했다.
골렘이 얼마나 있는지 상대의 전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렌데도 같이 와주었고, 에린델 또한 아까는 당황했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나름대로 골렘에 대한 대처법을 생각한듯하다. 길드에서 시롬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바로 연금술사의 거주지로 향했다.
마을을 나서면서 보니 부서진 집들이나 건물들이 꽤 많았다. 특히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 들렀던 홍등가 근처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벌써 이곳에 정이 들었는지, 그런 현장을 목격하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강단백, 오늘 저녁에는 맛있는 거 먹자."
내가 침울해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에린델이 말을 걸어왔다.
"150년 묵은 엘프 정도면 최고의 만찬이지 않을까?"
"그, 그런 농담 좀 함부로 하지 마! 정말 수치를 모른다니까!"
홍당무처럼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보니 가학심이 끓어올랐지만, 골렘보다 그녀의 멘탈을 먼저 부술 수는 없기에 참기로 했다.
그렇게 가볍게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지도에 표시된 산 앞에 도착했다. 지도에는 분명 작은 산으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정상이 꽤 높아 보였다.
"등산은 취미가 아닌데."
"힘들면 내가 있잖아. 주인씨."
한 손을 들어 보이며 특기인 강화마법을 어필하는 비렌데.
"주인씨는 좀 어감이 별론데? 님을 붙이도록."
"늬예늬예~ 주인님~."
"건방진 서큐버스한테 교육이 좀 필요하겠는데?"
"앗흥. 오히려 좋아."
"."
골렘과 싸우기전에 서큐버스한테 기를 다 빨릴 것 같았다. 만담은 멈추기로 하고 비렌데에게 강화마법을 부탁했다.
"인챈트 피지컬 : 덱스 (Enchant physical : DEX)"
나와 에린델에게 강렬한 초록빛이 모여들었다. 내가 직접 쓰던 강화마법보다 몸이 움직이기 더 편한 느낌이 들었다.
민첩성 쪽으로 특화된 마법인 데다가 비렌데의 적성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겠지.
"내가 앞장설 테니 너희들은 뒤에서 따라와."
에린델이 곧장 내 뒤에 붙어서 따라왔고, 비렌데도 자신에게도 강화 마법을 걸더니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따라왔다.
"역시 엘프여서 산에는 익숙한건가?"
"물론이지, 꽤 높은 산의 숲속에 살았으니까. 이정도 경사는 편안해."
나보다도 자연스레 산을 오르는 에린델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에린델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조용히 입가에 손을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내는 그녀.
나 또한 주변을 최대한 경계하면서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은 엘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안되는 듯 하다.
그녀의 귀가 쫑긋거리는 게 귀엽다고 느낌과 동시에 골렘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tag : slime]"
인간형의 모습이 조금 부담스럽기에 가볍게 슬라임으로 변화시켰다.
"라이트닝 랜스! (Lightning lance)"
쉬지 않고 바로 좁은 범위에 빠르게 날아가는 랜스로 슬라임을 박살 내버렸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뛰어 올라가서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꽤 넓은 공터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다듬어 놓은듯한 공간.
잡초 같은 것도 제거되어 있었고, 여태까지 올라왔던 산길과는 다른 모습에 강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숨소리만 들리면서 묘한 긴장감만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주의하며 주변을 둘러보다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발밑에서 골렘이 튀어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골렘에 부딪힌 충격으로 꽤 멀리 날아갔다.
"크윽!"
"괜찮아?!"
다급하게 물어오는 그녀들에게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 보이고 곧바로 골렘에게 태그를 시전하고 라이트닝 마법으로 태워버렸다.
하지만 골렘을 없애자마자 사방에서 수도 없이 골렘들이 튀어나와 우리를 둘러쌌다.
나는 당황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놀라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듯한 착각이 들면서 몸에 긴장감이 가득 찼다.
하지만 의외로 머리로는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태그와 마법을 빠르게 반복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주문을 두 단계에 거쳐 반복하는 건 이런 다수의 적에게는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슬라이트닝 랜스 (Smlightning lance)"
[tag : slime] 슬라임 태그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바로 마법 영창에 섞어서 외쳤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기뻐할 새도 없이 바로 다급하게 영창을 반복했다.
"슬라이트닝 랜스! (Smlightning lance)"
"슬라이트닝 랜스!! (Smlightning lance)"
슬라임으로 변하자마자 라이트닝 랜스에 꿰뚫려 터져나가는 젤리들.
하지만 이렇게 태그와 마법을 짧은 시간내에 여러 번 사용한 적이 없었던 탓인지 급격히 지치기 시작했다.
아직 이세계의 마력개념에 대해 이해하진 못했지만, 분명히 한도가 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분명히 지쳤지만, 힘을 쥐어짜네 슬라이트닝 랜스를 반복했고 10마리 이상의 골렘들을 없애버렸다.
"포커싱 샷(focusing shot)"
내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뒤쪽의 골렘들을 에린델이 잡아주고 있었다.
"대단한데! 화살로 골렘을 잡다니?"
"마나를 집속시켜서 강한 관통력을 가지게 한 거야. 강철도 뚫을 수 있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에린델을 칭찬해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태그의 연속 사용 때문에 지친 건지 마법 때문에 지친 것인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갑자기 몰려온 피로에 휴식이 필요했다.
처음에 골렘에 부딪혀 나가떨어질 때 다친 상처는 비렌데의 치료마법 덕에 금세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오래 쉴 수 없었다. 주변에 인기척이 있어 시선을 향하자 나무 뒤에 숨어있는 후드가 보였다. 아까 본 것과 유사한 실루엣.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도망치는 후드. 역시 골렘들은 그가 준비한 게 맞았던 모양이다.
나도 지체 없이 강화마법을 걸고 그를 따라 달렸다.
확실히 산속이기 때문에 달리기엔 좋지 않았지만, 그건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도망치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강화 마법까지 걸린 내 속도를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따라가는데 나무들이 거슬렸지만, 압도적인 속도를 살려서 금세 따라잡았다.
그 후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뒤 후드를 벗겼다.
"뭐?"
늘어지는 긴 머리. 후드는 여자였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어려 보였다.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곧바로 말을 이었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너 때문에 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분한 듯 나를 한동안 노려보더니 입을 여는 그녀.
"그 사람들이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대체 무슨 일이 있었"
퍽!
말을 마치기도 전에 뒤통수에 엄청난 충격이 왔다. 마치 돌덩어리로 얻어맞은 듯한 상당한 아픔.
"주인님을 괴롭히지 마!"
소녀였다. 160cm도 되어 보이지 않는 작은 체구.
짧은 흑발에 잘 어울리는 붉은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 갔었던 거야 세키돌! 내 옆에 있으라고 했잖아!"
"미안해 주인님. 토끼가 너무 귀여웠거든."
"알았으니까 저 녀석을 죽여버려!"
악을 쓰며 살벌한 명령을 내리는 연금술사.
"죽여? 그래도 되는 거야?"
"안 그러면 내가 죽게 생겼다고! 빨리해!"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거듭된 명령에 소녀는 움직였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내게 다가오더니 날 차버렸다.
"크윽!"
도저히 방어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내가 지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었다.
걷어차인 덕에 나무에 부딪혔다. 나뭇가지에 긁혀서 피부가 찢어지고 몸 이곳저곳이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또 내게 다가왔다. 나는 급하게 숏소드를 뽑아서 그녀에게 휘둘렀다.
챙
하지만 소녀는 손에 건틀릿을 장착하고 있었고 가볍게 내 칼을 튕겨냈다.
그리고 바로 내 멱살을 잡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까의 발차기에 옆구리가 부서진 것 같았다.
"커어억."
"주인님을 왜 괴롭히는 거야? 주인님은 나쁜 사람 아니야."
엄청난 힘이었다. 아담한 체구에서 나온다기에는 너무나 비정상적인 힘.
자신보다 훨씬 큰 남성을 이렇게 쉽게 들어 올리다니 인간이 맞는 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절망적인 격차에 공포감이 들 지경이었다.
슈우욱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화살에 소녀는 날 놓아버리고 뒤쪽으로 피했다.
"강단백!"
"주인!"
에린델과 비렌데였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녀들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상대다.
"도, 도망쳐!"
하지만 몸이 엉망이 된 탓에 목소리는 크게 나오지 않았다.
연금술사는 손짓했고 곧장 소녀는 그녀들 쪽으로 뛰었다.
에린델이 연속해서 화살을 쏘면서 다가오기 어렵게 대처했다.
하지만 소녀의 움직임은 비상식적이었고 화살을 모두 피해냈다.
다가온 그녀에게 에린델이 허리춤에 있던 단검으로 기습적인 공격도 해봤지만, 소녀는 가볍게 건틀릿으로 막아내고 주먹을 휘둘렀다. 에린델은 피하지 못했고 곧장 바닥을 나뒹굴었다.
비렌데도 에린델에게 치유마법을 걸면서 도왔지만 회복속도보다 소녀의 파괴력이 우위였고 둘 다 금세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덕분에 내게 시간이 생겼다. 시야를 차단하면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고블린과의 전투에서 유용했던 그 태그를 사용한다.
"[tag : ahegao]"
히토미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그 표정. 절정을 맞이했을 때 눈을 치켜뜨고 조금 볼썽사나운 얼굴이 되는 그 아헤가오를 정확히 상상하며 외쳤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소녀는 무차별적으로 에린델과 비렌데를 걷어찼고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축 늘어진 그녀들을 보고 울분이 치밀었다.
이렇게 중요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그녀들이 다친 것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젠장! 제기랄! 씨발!!! 왜 안 되는 거야!'
여태까지 태그가 사용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오늘 태그를 너무 남발한 탓인지, 저 소녀에게만 태그가 먹히지 않는 건지 분석할 시간도 없다.
운이 좋게도 내가 원하는 능력을 갖추고 이세계로 올 수 있었다. 이런 데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당장 어떻게든 하야만 한다.
후드를 따라갈 때 신체 강화 마법이 사용됐던 걸 보면 마법은 쓸 수 있을 터, 소녀를 무력화시킬 마법을 상상한다.
내가 읽은 판타지 소설만 수백 권이 넘어간다. 할 수 있다. 분명히 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공격 마법으로는 그녀를 무력화 시킬 수 없다. 움직임이 빠르기 때문에 가볍게 피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고민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다. 지금 필요한 그 마법을 상상하는 데 최대한 집중한다. 머리의 회전이 평소보다 빨라짐을 느꼈다. 감각이 예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마법.
마나를 모은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아지랑이들이 강렬하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생물이라면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마법을 떠올렸다.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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