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예상치 못한 일(2)
* * *
골드 선테인의 동작이 과하게 큰 주먹.
특출나게 기술적인 공격도 아니거니와 분명히 눈으로는 보이는 정도의 속도.
하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데미지도 전혀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가슴팍에 얻어맞았다.
그의 힘만큼은 확실해서 서서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래서 온몸에 생채기가 생겼고 여기저기 찢어져서 피가 흘렀다.
'제기랄 어떻게 해야 하지?'
선테인의 능력은 신체접촉이 있으면 힘을 뺏기는 구조로 예상된다.
잠시동안 힘이 빠지는 정도지만,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기에는 확실한 효과다.
그렇다면 접촉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결국 마법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경꾼들이 상당히 모여들어 있는 상황. 만약에 선테인이 마법을 피한다면 대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투사체를 날리지 않고도 선테인에게 피해를 줄 마법을 생각해본다. 인챈트 웨폰이 떠올랐다.
하지만 무기는 쓰지 않기로 했기에 그 규칙을 무시하기에는 보는 눈도 많고, 자존심이 상한다.
태그를 사용한다면 낙승이겠지만, 이 또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이 멸치, 끝난 거 같은데 무릎 꿇고 빌면서 10골드를 돌려주면 살려는 드릴게."
반격의 움직임이 없자 그가 항복을 권유한다.
하지만 단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는 조건.
"웃기는 소리, 이제 시작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은 떠올랐다. 하지만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하하! 겁 없는 놈이구먼, 내가 사람을 못 죽일 거 같나?"
크게 비웃더니 성큼성큼 다가오는 선테인.
딱 한 번만. 한 번만 맞추면 된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아지랑이가 느껴진다.
오른손에 최대한 마나를 모은다.
그와 동시에 선테인의 무지막지한 훅이 날아온다. 피할 수는 없다.
이번에 이걸 또 맞으면 분명히 못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인지한 순간 두려움이 앞선다.
계획대로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야 한다.
주먹이 나에게 닿기 전에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선테인의 주먹이 내 얼굴에 닿기 전에 뛰쳐나가서 이마로 주먹을 받아냈다.
"뭣?"
주먹의 타격점이 오기 전에 먼저 맞았기에 충격은 미미한 수준.
내 움직임을 예상 못 한 선테인은 당황했다.
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불주먹이다! 이 자식아!"
파이어볼을 쓸 때처럼 화염을 상상했지만 발사하지 않고 손에 머금었다.
머금은 상태로 온 힘을 다해 선테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크아아악!"
뒷걸음질 치며 괴로워하는 선테인.
주먹의 타격보다는 머리에 옮겨붙은 불 때문에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확실히 마무리하기 위해 그대로 달려가서 배에 발차기를 먹였다.
풍덩!
그대로 날아가서 뒤에 있던 분수에 처박히는 골드 선테인.
우와아아아아!
구경꾼들이 환호성이 들린다. 하지만 그 환호성을 즐길 틈도 없이 나도 쓰러졌다.
그의 몸에 닿아 힘이 빠진 데다가 상당히 많은 펀치를 허용했기 때문에 억지로 버티고 서있던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강단백! 괜찮아!?"
어렴풋이 에린델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곧 의식이 끊어졌다.
****
어두컴컴한 방에 갑자기 환한 불이 켜진 듯한 느낌이 들며 눈이 떠졌다.
아까의 싸움 이후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눈이 떠지며 정신을 차렸다.
"강단백! 일어났어?"
에린델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걸 보니 많이 걱정했나 보다.
걱정을 괜히 했다고 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일부러 태연하게 입을 연다.
"아 잘 잤네. 좀 피곤했나 봐. 어제 잠이 부족했나?"
"아까 쓰러진 지 두시간은 지났는데 안일어나서 걱정했잖아. 아까 의사도 불렀었는데, 그냥 의식만 잃은 거고 쉬면 일어날 거라고 하긴 했지만."
"뭘 또 의사까지 불렀어. 난 천재잖아. 이정도로 아무 문제 없어."
걱정이 없어지지 않는 에린델의 말투 때문에 더 허세를 부려본다.
"아니 그게 천재랑 무슨 상관."
"단백. 그렇게 아무에게나 나 맞고 다니면 곤란해. 이래 봬도 넌 내 주인이잖아."
에린델이 태클을 걸려는 찰나 비렌데가 치고 들어온다.아무래도 내가 맞은 것에 대해 상당히 기분이 상한듯하다.
"미안. 그 녀석 예상치 못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거든."
의아하다는 눈빛의 에린델과 비렌데.
"나와 같은 전생자인거 같아. 말투도 의심스러웠고 아무래도 상대의 물리적 힘을 뺏는 거 같았거든."
내 말을 들은 둘은 동공이 커졌다. 특히 비렌데 쪽이 조금 더 놀란듯하다.
"상대의 힘을 뺏는다니, 마치 그 녀석 같잖아."
"그 루시 뭐시기 인가하는 그놈?"
"응. 마왕군 행동 대장인 루시페르."
생각보다 더 걱정해야 할 녀석일까? 평소에 거침없이 행동하는 비렌데가 저렇게 신경 쓸 정도라니,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걸 떨쳐낼 수가 없다.
아무튼 아까의 싸움이 끝난 뒤 그 양아치는 어떻게 됐는지 신경이 쓰였다.
에린델에게 물어보니 잠시 기절해있다가 일어나서 어디론가 허겁지겁 사라졌다고 한다. 얼굴에는 화상을 입은 채로.
본의 아니게 흉터를 남기게 된 것 같지만, 죄책감까진 들지 않는다.
먼저 시비를 건 것도 그 녀석이고 특수한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나도 이기려면 별수가 없었으니까.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린델과 비렌데를 보고 있자니 싱숭생숭해서 정리도 잘 안될 것 같았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
"응."
그녀들이 기분 좋게 대답했다. 특히 에린델쪽이 더 신나보였다.
****
격렬하게 싸운 뒤라서 그런지 유난히 배가 고팠기에 상당히 과식을 했다.너무 많이 먹어서 튀어나온 아랫배를 살살 만지면서 의자에 걸터앉았다.
에린델과 비렌데는 잡화상점에서 살 것이 있다는 모양.
간만에 맞이하는 혼자만의 시간이다.기왕에 오게 된 이세계. 뭔가 목적을 가지고 모험을 하게 되면 더 흥미로워질 거라고 생각해서 에린델의 복수를 돕기로 했다.
게다가 마왕군 때문에 왕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같으니, 혹시나 내가 마왕을 처리한다면 핌베르트 왕국의 왕이 꽤나 큰 상을 줄지도 모른다.
재미와 실리를 둘 다 얻을 수 있는 판단이란 말씀.그러니 최종목표로는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에 우선순위를 정해보자.우선 조금 더 다양한 태그의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히토미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태그들을 아직 극히 일부밖에 사용해보지 않았다.
내 머리로 기억하는 태그의 수에는 분명 한계가 있지만, 이래 봬도 커뮤니티에서 히토미 마스터라 불린 나다.
아직도 내겐 명량해전의 이순신 장군보다 수십 배는 많은 배가 남아있다.
'뻐른 시일내로 태그를 더 활용해봐야겠군.'
그다음 순서는 마법과 검술의 실력을 높이는 것이다.
태그의 활용 가치는 상당히 높지만, 태그 자체만으로는 파괴력이 거의 없다.내 전투력 자체가 높아야 태그와의 시너지도 더 좋을 것이다.
비렌데가 말했던 상대의 힘을 뺏는다는 녀석도 있으니 전투의 양상이 어떻게 하면 될지 알 수 없다.
아직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터무니 없이 약하다.
더 강해지기 위해 실전경험이 많이 필요하다.
나에게 마법과 검술을 가르쳐줄 스승 같은 존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존재는 없다. 스스로 강해져야 할 것이다.
그다음이라면 내가 삶에 미련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 여자다.
물론 비렌데라는 훌륭한 섹스머신 서큐버스를 얻게 되었지만,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육변, 아니 동료를 더 늘려야겠다.에린델도 있지만, 아직은 그녀에게 그런 짓을 하기에는 부끄럽단 말이지.
150년간 처녀인 엘프를 쉽게 범할수는 없잖아. 본인도 거부감이 있는것 같고.아무튼 적당히 생각이 마무리되어가면서 문득 능력치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오크와의 전투도 있었고 금발 태닝 양아치와의 싸움도 있었으니 변화가 있을 터였다.
[강단백]
[나이 : 25]
[키 : 177 체중 : 67 성기 : 21cm ]
[성별 : 남]
[능력치 : 힘 : C+ 민첩 : B 체력 : C 지능 : A+ 카리스마 : SS ]
[능력 :
히토미 마스터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장비 : 숏소드]
[변경점 : 힘 경험치 +50 / 민첩 경험치 +30 / 지능 경험치 +100
체력 경험치 +120 / 카리스마+100
[능력 :
히토미 마스터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끝을 모르는 정력 색욕의 악마인 서큐버스 마저 굴복시키는 미친 정력의 소유자. 체력이 다 떨어져도 계속 섹스가 가능하다]
[새로운 능력을 얻었습니다.
NTR은 싫어(F) : 자신의 힘이나 마력을 뺏어가는 것에 대해 저항력이 생깁니다. 랭크가 존재하는 능력으로 낮은 랭크에서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신나게 쳐맞았던 덕인지 체력 경험치가 가장 많이 올랐다.
몰이 사냥의 덕인지 지능 또한 꽤 높은 성장.
카리스마가 많이 오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전투에서 이긴 탓일까?
랭크의 상승은 없는 듯 하지만 알차게 경험치를 올렸다.
게다가 눈에 띄는 건 새로운 능력.
내 힘을 잔뜩 NTR 당한 탓인지 쓸만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이건 확실히 기분 좋은 능력이다.
앞으로 또 힘이나 마력을 뺏기며 싸울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휘말리게 된다면 좀 더 유리해지겠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에린델과 비렌데가 들어와서 본인들이 사 온 잡다한 아이템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쓸모 있는 건 별로 없어 보이지만 되도록 그녀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신기한 척 어울려 주었다.
오늘 있었던 싸움에 대해서 크게 후회하게 되는 건 아직 훗날의 일.
실컷 떠들고 논 후, 몰려온 피로에 나도 모르는 사이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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