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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미의 태그술사-13화 (13/57)

〈 13화 〉 예상치 못한 일

* * *

생각보다 더 깔끔하게 오크 무리 토벌을 성공한 덕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평소에는 가지 않던 고급 식당을 가기로 했다.

오크의 마석도 상당히 많이 주웠고, 골드 선테인과의 내기도 승리했으니 길드에 가기만 하면 10골드가 들어올 것이다.

돈 아낄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마음껏 먹으라고 미리 말을 했고, 그 말에 텐션이 올라간 에린델을 보고 한번 웃어주었다.

간판에 고급스러운 필기체로 엘리시움이라고 쓰여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기운차게 맞이해주는 종업원. 10대 후반의 소녀 정도로 보이는 앳된 외모다.

"몇 분이신가요?"

"세 명입니다."

"네. 그럼 이쪽에 앉으세요~"

에린델은 신이 나서 이것저것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와 달리 약간 뾰로통해 보이는 비렌데.

"비렌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지긋이 날 바라보다가 입을 여는 비렌데.

"그냥 섹스 잘하길래 따라온 건데, 니가 생각보다 강해서 진짜로 마왕군하고 싸우게 되는 건가 싶어서 복잡해."

"아무래도 전 직장이라서 신경 쓰이는 건가?"

"아니, 딱히 소속감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런 건 없는데."

"그럼?"

"마왕군 간부 중에 진짜 미친놈이 있거든. 만나게 되면 우린 무조건 죽을 거야."

진지하게 무섭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

장난기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마왕군 간부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수준인데, 그 녀석은 진짜로 인간을 증오하는 거 같아. 학살을 즐긴다고 해야 될까?'

"괜찮아. 내가 이기면 되지."

"왕국 제1의 소드마스터도 함부로 못 하는 게 루시페르인데, 네가?"

"이름이 루시페르야? 좋아. 딱 기다려라 루시페르! 강단백이 간다!"

내가 너무 자신만만하게 허세를 부리자 웃어버리고 마는 비렌데.

"그런 자신감 있는 모습은 보기 좋네."

"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엔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즐기자고."

"그래, 나도 오늘은 술이나 잔뜩 마실래."

맥주가 상당히 비싸다는 게 떠올랐지만, 어차피 오늘은 돈을 쓰기로 했기에 맘껏 주문하라고 했다.

술과 고기를 맘껏 탐하며 배부르게 식사를 했다.

현실에서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고기를 맘껏 먹고 있다니, 기분은 좋았지만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직까지는 이세계에 적응이 덜 된 느낌.

감각이 아직은 한국에 살던 강단백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생활도 익숙해 질 것이다.

굳이 이런 이질감을 의식할 필요는 없을 거다.

그러나 햄스터가 볼에 음식을 넣어두듯 볼이 빵빵하게 음식을 먹고 있는 에린델과 안주도 없이 연신 맥주를 들이키는 비렌데를 보면서 적응에는 한참이 걸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엘프와 서큐버스가 같은 파티라니 이건 쉽게 적응되면 이상한 거지. 암.

****

"와 정말로 오크 부락 토벌을 하고 오신 거에요?!"

평소에 별로 억양이 없던 말투의 시롬이 웬일로 큰소리를 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 오크 정도는 쉽죠."

"노른 마을에서는 아무도 해결 못 하는 퀘스트여서 다른 지역에 지원 요청을 하려고 했었거든요. 오크 무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어서."

확실히 이곳은 시골 마을이긴 했다.

물론 오크의 숫자가 많았지만 처리 할 수 있는 모험가가 아무도 들리지 않았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해결 불가였던 퀘스트만 해결하시다니. 정말 축하드리고 이거 받아가세요."

퀘스트 완료 보수까지 합해 110골드와 B등급 모험가 배지를 건네는 시롬.

"오. 이렇게 한 번에 단계가 상승하는 방식입니까?"

"네 기본적으로 해결한 퀘스트의 필요등급만큼 랭크가 보장되는 방식이에요."

시롬과 대화하는 중에 들어본 적 있는 걸걸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야. 형씨 설마 오크 무리를 잡은 거냐고."

언제 온 건지 모를 골드 선테인이 내 옆에 와서 섰다.

"어이~ 말이 되는 거냐고 E등급 모험가가 B등급 퀘스트를 이렇게 금방 깨고 왔다고?"

"말했잖습."

기본적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존댓말을 고수하는 편이지만 상대가 계속 반말을 해대니 나도 존칭을 하지 않는 게 낫겠지.

"말했잖아? 단지 길드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돼서 낮았던 거라고."

"형씨, 사기 치는 거 아니지?"

의심하는 그의 눈앞에 오크의 마석들을 내밀었다.

"이거 오크의 마석맞아? 시롬?"

"네. 맞아요. 탁한 초록색 빛이 나는 마석. 틀림없는 오크의 마석이네요."

시롬의 말을듣고 선테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 이거 자존심 상하네. 이 마을에선 내가 최강자였는데, 이런 멸치 따위가 나보다 위라니."

마른 편인 몸매는 맞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멸치 소리에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괜한 분쟁을 반들고 싶지는 않다. 조용히 무시했다.

"몸만 멸치가 아닌가? 도발을 듣고도 그냥 가다니 쫄보 멸치구만 하하하!"

비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치는 골드 선테인.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멸치? 멸치한테 맞아본 적 있나?"

"맞아본 적 있냐고? 우효~ 이새끼 이거 무슨 자신감이지? 광장으로 따라와."

따라오라고 하며 길드 문을 박차고 나가는 선테인.

길드 안에 있는 모험가들도 구경거리가 생겨 흥미롭다는 듯이 웅성거린다.

바로 따라 나가려는데 에린델이 내 팔을 붙잡았다.

"강단백. 왜그래? 참아."

"미안. 저 자식은 한번 혼나봐야 될 거 같아."

한국에 살때부터 쓸데없이 자존심은 강한 나였기에 무시당하는걸 잘 참지 못했다.

게다가 첫인상부터 무례하다고 느낀 기분 나쁜 상대.

에린델의 말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바로 광장으로 따라 나간다.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골드 선테인.

확실히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상당하다.

근육질의 몸매에 구릿빛 피부까지 위압감을 주는 데는 충분한 외모.

하지만 난 겁나지 않았다.

신체 강화만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계산.

최악의 경우 태그까지 사용 가능하기에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어이! 멸치! 먼저 덤벼라. 선빵칠 기회정도는 줄게."

구경꾼들을 의식한 건지 도발하는 선테인.

"아 그리고 무기는 쓰지 않을게 죽일 수는 없잖아? 하하하!"

"말이 많군. 간다."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웠다.

"인챈트 피지컬 : 올 (Enchant physical : all)"

온몸에 빛이 스며들며 힘이 넘치는 느낌.

몸에 넘치는 기운. 바로 선테인에게 돌진한다.

달려나간 속도를 그대로 살려서 그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반응하기 힘든 속도의 아주 빠른 훅.

당연하게도 골드 선테인은 방어조차 못 하고 바로 나가떨어졌다.

'뭐야 생각보다 쉽잖아? 무슨 자신감이었던 거지."

시끄럽게 환호성을 질러대는 구경꾼들.

"와우~ 저 녀석 누구야? 우리 마을에 저런 놈이 있었나."

"보이지도 않더라 뭐에 맞은 거야?"

"주먹질 인 거 같은데?"

몇 미터 정도 날아가 쓰러졌던 선테인이 일어났다.

입안이 찢어진 듯 피를 툭 뱉더니 기분 좋다는 듯 씨익 웃는다.

완벽하게 맞아놓고 저런 미소를 짓다니 취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소름 끼쳤다.

"뭐, 오크를 잡은 게 거짓말은 아닌 거 같군. 이젠 내가 간다고!"

바로 뛰어 들어오며 주먹을 내지르는 선테인.

강화된 신체이기에 내 움직임은 일반인과 비교도 안 되는 수준.

가볍게 피해 주면 될 터다.

퍼억­

어지럽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넘어져 있었다.

못 피한 건가? 저 녀석이 인챈트 피지컬을 한 나보다 빠르다고?

단 한 방을 맞았을 뿐인데도 생각보다 머리가 울렸다.

하지만 이대로 질 수는 없다. 어떻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다.

"으아아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선테인은 분명히 처음에 내 주먹에 반응도 못 했다.

내가 먼저 공격을 퍼부으면 유리할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몸을 뒤로 빼서 쉽게 피해버리는 선테인.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 훅과 오른손 훅을 계속해서 휘둘러댔다.

그러나 단 한대도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

고개를 저어서, 그리고 몸을 숙여서 피하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서 완벽하게 회피하는 선테인.

뭔가 이상했다.

맞은 충격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 속도는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허억 너 마법사였냐?"

연달아서 주먹질을 한 탓에 헉헉대며 선테인에게 물었다.

"무슨 개소리지? 난 마법 따위는 전혀 사용 못 한다. 육체파 사나이거든!"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겠지만 마법을 시전 하는 건 보지 못했다.

캐스팅 시간이나 영창 주문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건 상당한 고위 마법사만 가능한 기술일 것이고 이 녀석이 그 정도의 마법사라면 고작 이런 마을에 머물러있진 않았겠지.

그럼 대체 왜 내가 느려진 거지?

게다가 넘쳐 흐르던 기운조차 사라진 느낌이다.

할 수 없다. 다시 주문을 외운다.

"인챈트 피지컬 : 올 (Enchant physical : all)"

몸에 넘쳐흐르는 기운.

"마법은 네 녀석이 사용하고 있잖아? 멸치에 어울리는 잔재주네."

굳이 도발에 어울려주지 않고 바로 공격한다.

빠르게 도약해서 선테인의 몸에 발차기를 한다.

옆구리에 깔끔하게 들어가는 완벽한 미들킥.

하지만 선테인은 작은 신음을 흘렸을 뿐 끄떡도 하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다시 앞차기를 했지만 그는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리고 어느샌가 몸에 힘이 빠져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렇게 지속시간이 짧은 마법이 아닐 텐데.'

머리를 굴린다. 인챈트 피지컬 후 첫 공격은 성공했지만 그 후 바로 다음 공격은 먹히지 않고 힘이 빠졌다.

그렇다면.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더 주어지지 않았고 선테인의 주먹이 무차별로 나에게 쏟아졌다.

퍽­ 퍼억­ 퍽­

"우효~ 하나도 못 피하는 거냐고~ 샌드백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잡몹이구만!"

한대도 피할 수 없었고, 그에게 정신없이 얻어맞아 땅바닥과 키스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강단백!!"

에린델이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괜찮다고 말할 여유조차 없었다.

머리는 어지럽고 입안은 찢어진 건지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 선테인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잡몹. 인터넷 세대인 나에게는 흔한 용어지만 기껏해야 중세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이세계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너. 전생자였군."

흠칫 놀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금세 태연한 척 표정을 바꾸는 선테인.

"갑자기 나타난 놈이 랭크를 빨리 올린다 싶었더니. 멸치 너도 전생자였구만."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는 선테인.

상대는 나와 같은 전생자. 분명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점점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로 봐서 능력은 대충 예상이 간다.

"남의 힘을 뺏는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맞지?"

"하하! 그건 영업비밀이라고 멸치군!"

그 말과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선테인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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