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오크와 함께 춤을
* * *
자신 있는듯한 걸음걸이로 나섰지만 사실 내심 불안했다.
퀘스트 용지에 의하면 오크 무리가 50마리 이상의 대규모였고, 처음으로 수행하는 높은 난이도의 퀘스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묘한 설렘도 나를 감쌌다.
이세계로 넘어오기 전에도 사실 스릴을 즐기는 건 좋아했었다.
게임을 해도 너무 쉬운 퀘스트는 재미가 없었고, 일부러 현재 수준보다 약간 높은 퀘스트를 하는 걸 즐겼었다.
긴장감이 없으면 금세 지루해지고, 지루한 건 하기 싫어하는 성격 탓이 컸었다.
강단백이라는 인간은 재미가 없으면 동기부여가 잘 안되는 사람이었구나.
인생이 너무 재미라는 요소에 휘둘렸나?
조용히 걷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종종 아리따운 에린델과 섹시한 비렌데를 쳐다보기도 하면서, 7할의 불안감과 3할의 설렘을 가지고 오크 부락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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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인가?"
재료가 원시적이라 투박하지만 분명 집의 형태를 한 것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
약간은 불안해 보이는 에린델.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에린델은 오크를 사냥해본 적 있어?"
"아니, 난 엘프치고는 어린편이잖아. 본격적으로 전투해본 것도 마을을 나선 후야."
그러고 보니 에린델은 알지만 비렌델의 나이를 모른다.
딱히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물어야 할 필요성도 못 느꼈었기에.
"그래서 140살이었던가?"
"아니 150살."
"150살이면 많이 어린 건가?"
"응. 수명도 인간보다는 10배 이상이니까. 인간으로 치면 아직 10대지."
그러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비렌데가 끼어들었다.
"뭐야? 아가들이었네? 후훗."
"아가? 비렌데는 몇 살이길래?"
"이 누님은 29살이야. 누나라고 부르도록 해."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비렌데.
"4살 차이? 생각보다 적네? 저번에 살아온 얘기를 듣고 최소 30대 중반은 될 줄 알았는데."
"알았으니까 누나라고 부르도록."
"에이~ 파티 동료끼리 무슨. 잘 부탁해 비렌데."
"누나라고 부르도록!"
"응~ 싫어~."
괜히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더 휘둘릴 거 같아서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긴장은 꽤 풀려있었다.
하지만 그사이에 식별할 수 있는 거리에 오크 몇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싸워야 할까? 최대한 거리를 주지 않고 원거리에서 상대하는 게 편할 것이다.
오크가 가까이 붙었을 경우 검으로 싸워야겠지만, 검술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
다수의 적이 붙었을 경우 분명히 위험할 것이다.
내가 광역마법으로 오크를 최대한 처리하고 남은 오크를 에린델이 처리해주는 식이 좋을 것 같다.
내 계획을 에린델에게 설명해주고 나서 비렌데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비렌데는 어떤 능력이 있지? 전투는 가능해?"
"아니. 나는 환술이나 강화계열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해."
"사실상 전투는 나랑 에린델 둘이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강화계열 마법은 도움이 될 것이다.
스스로 하려고 했지만 오늘 전투는 길어질지도 모르니 비렌데에게 맡기도록 하자.
아직 연속적인 마법사용을 한 적이 없어서 마나의 한계를 모르지만 미리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비렌데. 움직임이 빨라지는 마법은 가능할까?"
"그럼~ 물론이야. 헤이스트! (Heist)"
주문을 시전하자마자 몸이 상당히 가벼워진다.
계획한 대로 전투가 가능하겠군.
"간다! 에린델. 아까 말한 계획대로 가자고!"
"알았어. 조심해."
대답을 듣자마자 앞에 있는 초록색 괴물들에게 바로 마법을 사용한다.
마나를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잠시 집중한 뒤 강렬한 화염구를 상상한다.
"파이어 볼!(Fireball)"
"꾸엑! 꾸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오크들이 나가떨어진다. 네 마리 중에 세 마리는 흔적도 없이 불타버렸고 남은 한 마리도 몸통이 반절 이상 날아가 버렸다.
"성능 확실하구만."
파이어볼의 성능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이 오크들이 바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몰려들었다.
몰려든 오크들을 확인한 후 오크 부락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내가 생각한 전략은 몹몰이.
어릴 적부터 MMORPG 게임을 즐겨하던 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대규모 전투 방식이었다.
먼저 공격을 해서 어그로를 끈 뒤 여러 마리를 모아서 한꺼번에 처치하는 방식.
빠른 레벨업을 위해서 효율적인 사냥이 중요한 MMORPG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냥 방식이었다.
오크들은 예상대로 동족들이 공격을 받으면 도와주기 위해 더 몰려들었고 방금 한방으로 이미 수십 마리의 어그로가 끌렸다.
하지만 오크들이 넓게 퍼져있어서 파이어볼을 수도 없이 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헤이스트 덕분에 상당히 빠른 움직임이 가능하기에 빙빙 돌기로 했다.
마치 민속놀이의 하나인 강강수월래 처럼.
크게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화가 난 듯이 도끼를 휘둘러대는 오크 들이었지만 내 움직임이 빨라서 닿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듯 더욱 맹렬히 달려드는 오크들.
쳐다보면 조금 무서웠기에 달리는 데에 집중한다.
원을 여러 번 그리면서 오크들을 어느 정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내가 달리면서 파이어볼을 쓸수 있을 정도로 마나를 다루는 데 능숙하지 않다는 것.
게다가 오크들을 모으다 보니 도끼를 사용하는 오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까이 오지 않고 멀리서 활을 써대는 오크궁수도 여럿 있었기에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는 상황.
'결국 태그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나?'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어떤 태그를 사용해야 할지 생각한다.
이 위기를 타파할 지금 딱 어울리는 태그는 뭐지?
그렇지. 떠올랐다.
[tag : invisible(투명인간)]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본다. 투명 인간이 되면 어떨까?
누군가에겐 로망일 것이다. 평소에는 못 들어가는 곳도 투명 인간이 되면 들어갈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러한 상상을 만화로 그려준 작가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투명인간 태그를 사용했다.
갑자기 내 모습이 사라지자 오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지금이다. 마법으로 오크들을 쓸어버릴 찬스.
정신을 집중하고 아지랑이들을 손에 모은다.
긴장한 탓에 더 집중이 잘된 걸까? 마나가 평소보다 많이 느껴졌다.
하지만 파이어볼로는 어림도 없다.
수십 마리의 오크들을 처리하려면 더 광범위한 마법이 필요하다.
상상한다. 수십 마리의 오크들을 처리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폭발을.
느껴진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지금.
"익스플로젼! (Explosion)"
콰아아아앙!
파이어볼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넓은 범위에 폭발이 일어났다.
괴성조차 지르지 못하고 쓸려나간 오크들.
하지만 뒤쪽에 궁수들까지는 범위가 닿지 않았다.
멀리 뒤쪽에서 몸을 숨기고 멍하니 바라보던 에린델에게 외친다.
"에린델. 지금이야!"
"알았어!"
멍때린게 미안하다는 듯이 바로 자세를 잡고 활시위를 당기는 에린델.
"가이디드 애로우(Guided Arrow)"
화살이 오크궁수 한 마리를 궤뚫고도 계속 궤도를 바꿔서 나머지 궁수들을 처리했다.
마치 자아를 가진듯한 화살. 신기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남은 오크는 없는 듯하다.
계획대로군.
깔끔하게 한 번에 성공해서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깔끔하네! 무야호~!"
"무야호? 뭐야 그 이상한 말은?"
나도 모르게 현실세계에 있을때 말버릇이 나와버린 듯하다.
"아 내가 살던 곳에서 기분 좋을 때 하는 말이야. 같이 외쳐볼까?"
에린델과 비렌데는 잠시 멈칫하며 망설였지만, 내가 기분이 좋아 보였던 탓인지 어울려주었다.
"무아호."
"무,무야호?"
"에린델. 무아호가 아니라 무야호야."
"모, 몰라 뭔가 이상해. 그런 거 시키지 마."
싫어하는 에린델을 보니 묘하게 재밌어서 더 시켜보고 싶었지만, 우선은 신나게 오크의 마석을 주웠다.
****
오크의 마석을 다 주운 뒤 숲으로 나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강단백. 익스플로젼은 꽤 고위 마법인 편 아닌가?"
비렌데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가? 솔직히 나도 처음 써보는 마법인데 상상하니까 되더라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녀.
에린델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얘는 이상해. 마법도 사용한 적 없다더니 바로 3서클 마법을 써버리고. 익스플로젼도 5서클은 될텐데, 왕정마법사 수준 아니냐구."
"어허~ 이상하다니. 말이 심하네. 재능이 넘치는 걸로 하자."
"."
"."
내 넘치는 재능에 얼어버린 그녀들을 두고 바로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신나게 싸웠더니 배고프다. 뭐라도 먹어야겠어. 빨리 가자."
"강단백 너 밥 먹은 지 두 시간도 안됐잖아?"
에린델의 태클.
"단백이는 돼지래요~"
비렌데의 놀림.
"원래 영웅은 늘 배고파. 내가 살던 곳에 이런 명언도 있거든. 나는 아직 배고프다."
"돼단백"
새로운 별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