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내 엘프와 서큐버스가 완전 수라장
* * *
비렌데의 안내로 지하 감옥 밖으로 쉽게 나올 수 있었다.
그녀에겐 엘프 동료가 있다고 설명해 두었지만, 에린델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어떻게 설명할지 정하지 못했는데 입구에 도착했다.
에린델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린델 오래 기다렸지?"
조금 멋쩍은 듯 에린델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그녀의 표정이 이상하다.
"강단백, 너 옆에 그건 뭐야?"
"아 그게 말이지."
어떻게든 설명을 하려는데 비렌데가 내 말을 끊고 나섰다.
"그건 뭐라니 말이 너무 심한데?"
그저 말없이 노려보는 에린델.
"악마라고 생물 취급도 안 해주는 거야? 난 서큐버스고 단백에게 반해서 같이 다니기로 했어. 말하자면 뭐 주종관계 같은 거겠지?"
"주,주종 관계?"
에린델의 목소리가 커진다.
"야! 강단백! 서큐버스랑 주종관계라니 어떻게 된거야?"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솔직히 말해야 할지 조금 망설였지만 어쩔수 없었다.
던전안에서 벽이 돌아가고 나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비렌데가 날 덮쳤고 스위치가 켜진 내가 본격적으로 그녀랑 섹스를 했다는 것.
그리고 크게 만족한 비렌데가 나와 함께 하기로 했다는 것 까지.
"서큐버스를 그런 거로 굴복시키다니 말이 되는 거냐고 강단백."
말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에린델.
"너 강단백 하고 안 해봤어? 얘 장난 아니야. 정신 나가는 줄 알았다고."
비렌데가 한술을 더 뜬다.
아니 선생님 거기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곤란합니다만.
"다, 당연하지 난 아직 그런 거 해본 적 없어!"
붉어진 얼굴로 빼액 소리를 지르는 에린델.
"엘프면 살기도 엄청 오래 살 텐데 더럽게 아끼고 사네. 숙성시켜서 뭐 하려고."
"많이 하고 다닌 게 자랑이야? 서큐버스처럼 정조 관념이 희박하지 않아!"
두 여성분의 말다툼이 길어진다. 이거 말려야겠는데.
"저기요. 여러분? 그만합시다.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넌 조용히 있어!"
"조용해 봐!"
이럴 땐 두 분 마음이 잘 통하시네.
이종족 말싸움에 인간 등이 터질 것 같았다.
****
가운데에서 열심히 중재한 끝에 어떻게든 말다툼을 멈추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겨우 숙소로 돌아와서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냉전은 여전했기에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본처에게 애인을 들켜서 쩔쩔매는 유부남 같은 얼굴로 비렌데에게 말했다.
"안 먹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서큐버스는 주식이 뭐지?"
"정액."
"."
괜히 물어봤다. 분위기만 더 싸해진다.
비렌데의 시선이 더 날카로워진 것 같은 기분.
얼음장 같은 이 분위기를 깨고 싶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야 하는데.
"비렌데. 그 뿔하고 꼬리는 괜찮은 거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긴 하던데."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주변에 뿔하고 꼬리 정도는 안 보이게 하고 다니고 있어."
"마법 같은 건가?"
"일종의 환술 같은 거야. 주변의 눈을 속이는."
"오호~ 환술이라니 신기하네!"
"."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우려 억지로 텐션을 올려보지만 영 시원찮다.
"에린델. 어때? 네가 먹고 싶다던 생선 주문했는데. 맛은 괜찮아?"
"맛있어."
"다행이네. 큰맘 먹고 주문했으니까 맛없으면 큰일 나지~"
"내가 돈 낼까?"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맛있어서 다행이라는 그런 소리야."
"."
저기압인 엘프와 서큐버스의 기분을 좋게 하는 건 모솔인간인 나로서는 무리다.
그래. 절대 무리라고 확신했다.
****
우여곡절 속에 늦은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왔다.
어떻게 자는 게 좋을까?
침대가 꽤 큰 편이지만 하나밖에 없다.
"에린델하고 비렌데가 침대에서 자. 내가 바닥에서 잘게."
"싫어."
"싫은데?"
역시 이럴 때는 한마음 한뜻이신 두 분.
"그렇다고 셋이 같이 침대에서 잘 순 없잖아?"
"그럼 나랑 단백이 같이 자고 저 엘프보고 바닥에서 자라고 해."
비렌데가 강하게 나온다.
"아니. 내가 원래 바닥에서 잤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하라고 할 순 없지."
그 후로도 한동안 실랑이했지만 결국은 내가 설득에 성공했다.
둘은 정말 같이 자기 싫다는 듯 서로 끝에 붙어서 등진 모양.
어떻게 둘을 친하게 만들지 고민하면서 나도 누웠다.
확실히 당황스러운 전개다.
이세계에 와서 하렘을 이루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엘프와 서큐버스 동료가 생겨버리다니.
전 마왕군 소속이었던 서큐버스를 데리고 마왕을 처치한다?
이것도 상당히 웃기는 얘기다.
아까 넌지시 비렌데에게 마왕에 관해 물어봤을 때 분명 싫어하긴 했다.
싸가지가 없는 태도 때문에 짜증이 났다나 뭐라나.
싫어하는 건 다행이지만 토벌하는 데도 망설임이 없을지?
그 점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가 많았지만 우선 능력치에 대해 확인부터 해야겠다.
아울베어라는 나름대로 강적과 전투를 하기도 했고 비렌데와의 일도 있으니 변화가 꽤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능력치가 알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떠오르는 상태창.
[강단백]
[나이 : 25]
[키 : 177 체중 : 67 성기 : 21cm ]
[성별 : 남]
[능력치 : 힘 : C+ 민첩 : B 체력 : C 지능 : A+ 카리스마 : SS ]
[능력 :
히토미 마스터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장비 : 숏소드]
[변경점 : 힘 경험치 +30 / 민첩 경험치 +30 / 지능 경험치 +50
체력 경험치 +100 / 카리스마+50
체력의 랭크가 D에서 C로 상승하였습니다.
신규 능력을 얻었습니다.
끝을 모르는 정력 색욕의 악마인 서큐버스 마저 굴복시키는 미친 정력의 소유자. 체력이 다 떨어져도 계속 섹스가 가능하다.]
많은 경험치를 얻었지만 눈에 띄는 체력.
비렌데와 격렬한 섹스를 한 탓이겠지. 랭크마저 두 단계 올라버렸다.
아직 낮아서 잘 오르는 거겠지?
게다가 신규 능력까지. 악마를 따 먹는다는 건 확실히 특수한 경험인듯하다.
어쨌든 흥미롭다. RPG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는듯한 느낌.
이게 환생자의 재미구나.
이세계 애니메이션 주인공 놈들 이렇게 재밌는걸 지들만 하고 있었네.
그렇게 한참을 혼자 좋아서 킥킥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랫도리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뭐지? 이 말도 안 되는 기분 좋음은."
비렌데 였다.
자지 않고 있다가 내 자지를 물러온 것이었다.
에린델이 깰까 봐 작게 속삭인다.
"비렌데, 하지마. 에린델도 옆에 있는데 어쩌려고."
"츄릅잠 들었을걸? 츄웁그리고 뭐 들키면 어때? 난 서큐버스라고."
본인의 일에 충실한 건 좋지만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너희들은 저녁 먹었잖아? 난 못 먹었으니까. 지금이라도 먹으려고."
아까 낮에 그렇게 당해놓고도 또 하고 싶은걸까?
서큐버스의 성욕은 상상 이상이구나.
어쨌든 그 입안이 너무 기분 좋아서 강하게 뿌리칠 수 없는 내가 미울 뿐이었다.
정액을 빨아내겠다는 듯이 계속 미친 듯이 빨아대는 그녀를 쳐다보다 눈을 감고 포기해버렸다.
****
아침에 일어나기가 조금 피곤했다.
어젯밤에 비렌데에게 사정없이 빨린 탓일까.
기억나는 건 세 번인데 얼마나 더 빨아간 지는 잘 모르겠다.
중간에 피곤해서 기절하듯 잠들어버렸으니.
잠이 조금 덜 깬 상태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
에린델을 도와 마왕을 처치하려면 아주 많이 강해져야 한다.
마왕의 강함은 모르지만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는 되어야겠지.
마법과 검술 사용에 더 익숙해져서 마검사로서 강해져야 할 터.
우선 퀘스트를 하면서 실전에 익숙해지도록 하자.
그리고 아직 써보지 않은 히토미의 태그들을 떠올려본다.
[tag : mind control]
(마인드 컨트롤)
[tag : invisible]
(투명인간)
[tag : body swap]
(몸 바꾸기)
등등 떠오르는 태그들은 많다.
이래 봬도 커뮤니티에선 히토미의 신이었으니까.
오늘은 조금 규모가 있는 퀘스트를 잡아서 조금 더 대규모의 전투를 해보고 싶다.
이번 퀘스트로 돈 좀 제대로 벌어야겠다.
아무래도 더러워진 평상복을 버리고 장비도 제대로 갖춰야겠지.
오늘은 바쁜 하루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이불과 이별했다.
****
아침 운동을 다녀온 에린델과 식사를 하고 다 같이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또 일행이 늘었다고 말하는듯한 시롬의 시선을 느끼면서 토벌 퀘스트 게시판 앞으로 향했다.
웨어울프 사냥, 오우거 사냥, 오크무리 토벌 등의 퀘스트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저번엔 패스했지만, 오크무리 토벌을 해보는 것도 좋아 보인다.
마법을 익혀서 범위 공격이 가능한 데다 파티 인원도 늘었으니 충분하겠지.
[필요 모험등급 : B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오크의 부락이 새로 생겼습니다.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어서 그 전에 미리 토벌을 해야 합니다. 어림잡아 50마리 이상의 규모이므로 큰 파티를 구성해서 도전하시기를 권장합니다. 보상 : 100골드]
퀘스트를 읽고 용지를 주머니에 넣는다.
그 모습을 보고 시롬이 입을 열었다.
"모험가님. 그 퀘스트는 필요등급이 B에요. 낮은 분도 분명 도전은 가능하지만 불가능하실 거에요."
"처음에 에리나 부인한테 찾아갈 때도 그랬었죠? 전 괜찮아요.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더는 말리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저 눈빛을 바꿔주겠다고 다짐하며 길드를 나서려는데.
"어이, 형씨 그러다 죽어. 오크들이 만만한 줄 아나 보네."
금발에 살갗을 태운듯한 구릿빛 피부의 날티나는 느낌인 남자가 내게 말했다.
"내가 C등급인데도 아직 오크무리는 엄두가 안나는데 형씨는 E등급 아니야?"
내 허리춤에 있는 모험가 배지를 본듯하다.
"누구신데 그러십니까? 남 일에 너무 상관하지 마시죠."
"맞아. 네 할 일이나 해. 괜히 끼어들지 말고."
비렌데가 거들어주었다.
"내 이름은 골드 선테인. 이 마을에선 꽤 높은 등급의 모험가지."
자랑스럽게 본인의 배지를 들어 보이더니 이어서 말한다.
"눈앞에서 사람이 자살하려고 하는데, 말리는 게 도리 아닐까?"
"모험가 길드에 등록한 지가 얼마 안 돼서 등급이 낮을 뿐. 제 실력은 제가 잘 압니다."
"우효~ 자신감이 넘치는구만. 그럼 내기할까? 자신 있으면 여기 시롬한테 10골드 맡기고 가. 네가 실패하면 내거. 네가 성공하면 내가 10골드를 지불하지."
사람을 제대로 깔보는군.
거절할 이유는 없다. 오크무리 정도는 파이어볼로 정리가 가능할터다.
"좋습니다. 같이 맡기도록 하죠. 오늘 저녁 6시까지 길드에 돌아오겠습니다."
끄덕이는 선테인. 주저 없이 시롬에게 10골드를 맡긴다.
"강단백. 괜찮겠어?"
걱정스레 묻는 에린델에게 자신 있게 말해준다.
"알잖아? 내 실력."
저런 금태양 따위에 굽힐 순 없지.
오크 정도는 가볍게 처리해주고 콧대를 눌러줘야겠군.
확실히 평소보다 더 허세를 부렸다.
우선 그의 생김새부터가 불길했다.
순순히 굴다가는 뭔갈 뺏길 것만 같았기에 약하게 나갈 순 없었다.
일부러 더 자신 있다는 듯이 큰 걸음으로 오크 서식지를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