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내 히로인이 이렇게 귀여울리가 없어(3)
* * *
강제 사정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컸다.
체력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오늘 처음 만난 엘프에게 풀 발기하고 사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상당히 수치스러웠다.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왔다. 서로 말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
게다가 에린델이 날 보는 시선에서 약간의 경멸이 느껴졌다.
조각 같이 예쁜 엘프가 날 보며 찡그리니 묘하게 짜릿했지만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고블린의 마석을 주우면서 말을 건넸다.
"저기, 에린델?"
"왜?"
퉁명스러운 대답.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깨고 싶었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여기까지 오게 된 자초지종을 짧게나마 설명했다.
처음엔 믿지 못하겠다는 눈초리였지만 진지한 내 표정을 보고 조금은 믿게 된 듯하다.
"다른 세계에서 왔고 한 번 죽음을 경험했다? 하아 나 조금 어지러워."
"그렇지만 사실이야. 내가 굳이 너한테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 아까 그것도 여신에게 얻은 능력의 부작용인 거 같아."
아직 이 능력에 대해 마스터하지 못했다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부작용에 대해서는 다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조금 휴식을 취한 뒤 고블린 사냥을 마저 진행했다.
에린델의 든든한 후방지원 덕에 사냥은 어렵지 않았다.
각자의 고블린 마석이 20개 정도 채워졌을 때 내가 말을 꺼냈다.
"해도 저물었고 여기까지 하자. 숙소는 구해뒀어?"
"아니. 사실 이 마을에 온 건 오늘이 처음이야."
"그럼 내가 숙소를 구해뒀는데 거기로 갈래?"
"방 하나를 같이 쓰는 건 좀."
"걱정 마. 난 바닥에서 자면 되니까. 돈이 여유로우면 새로 구해도 되고."
"여유롭진 않아. 그래서 바로 퀘스트를 하고 있던 거였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따라나서는 에린델.
이런 아름다운 엘프가 오늘 밤 나랑 같이 있는다니!
친구한테 자랑이라도 하고 싶다.
자랑할 친구는 없었지만.
****
사냥을 오래 하진 않았지만 첫 사냥이라 긴장을 한 탓인지 배가 아주 고팠다.
우선은 에린델과 식사를 하고 숙소로 올라가기로 했다.
꽤 큰 여관이라 1층에서 식사와 술도 팔고 있었기에 멀리 가지 않았다.
따로 메뉴는 없었고 그냥 '저녁'이라고 적혀있었는데 5실버 50브론즈라는 가격치고는 고기도 푸짐하고 식사의 퀄리티가 괜찮았다.
이세계의 물가는 상당히 안정되어있는 걸까. 이 가격에 이 정도 식사라니.
고기를 먹다 보니. 술도 마시고 싶어졌다.
인심 좋아 보이게 생긴 주인에게 묻는다.
"주인장. 여기 맥주는 얼마나 합니까?"
"맥주는 한잔에 3골드유."
"네? 왜 맥주는 그렇게 비싼 거죠?"
"최근에 마왕군이 주변까지 침공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보리밭이 싹 불타버렸다오."
마왕군 이 반동 노무새끼들. 맥줏값을 이렇게 올리게 만들어?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왕군이었지만 싫어지기 시작했다.
"에린델, 혹시 너 술 좋아해?"
"아니 나는 술이 약해서 별로."
"얼마나 약하길래?"
"예전에 마을에 축제가 있어서 한잔 마셨었는데, 취해가지고 장로님 뺨을 때렸거든."
"와우, 제대로 알쓰네."
"알쓰가 뭐야?"
"아 그 전에 살던 곳에서 술 못 마시는 사람을 나타내는 용어야."
알쓰라는 단어의 어감이 귀엽다며 알쓰알쓰 거리는 에린델을 쳐다보다가 마저 식사를 했다.
밥을 먹으면서 에린델과 대화를 나눴는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행 중이며 동료를 구하는 중이었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여태까지는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나는 맘에 든 거야?"
"아니? 맘에든 건 아닌데, 도움받고 나서 거절하기가 미안하잖아. 나 때문에 다치기도 했고."
맘에 든 건 아닌 데라고 하는 부분이 반복해서 들리는 거 같다.
이 여자 직설적이야.
"단호하네. 여린 내 마음에 상처를 주다니 용서 못 해!"
"상처까지 줬다면 미안해."
"아니, 농담인데 그렇게 진지하게 받으시면 어떡합니까."
조금은 시답잖은 얘기들을 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2층 숙소로 올라가기로 했다.
****
에린델은 피곤했는지 곧바로 침대에 누웠고 나는 의자에 앉아서 생각에 빠졌다.
'히토미 마스터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오늘 있었던 불상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정액이 나가는 것과 관련이 있는 태그는 사용에 주의를 해야겠다.
여자와의 섹스에 사용할 태그와 전투에 사용할 태그도 분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용한 태그들을 정리해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다면 결국 경험이 더 필요하니 앞으로 더 다양한 태그를 사용해 봐야겠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배가 부른 탓이었는지 깜빡 졸았다.
얼마나 졸았을까?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깼다.
"흐으응 하읏."
뭐지 이 야릇한 소리는? 고개를 돌려보니 에린델이 범인이었다.
이불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침대에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는거 같았다.
"아흣."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른 척 해야 하는 건가?
바로 옆에서 저런 야한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주니어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면 내 기분도 이상해질 것 같았기에 입을 연다.
"에린델, 나 깼어."
"."
신음소리가 멈추더니 정적이 찾아온다.
"개인적인 시간은 존중하지만, 나 없을 때 해줘."
"아아아아! 원래 이런거 자주 안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에린델. 얼굴이 홍당무처럼 시뻘게졌다.
"그렇구나, 자주 안 하는구나."
"그치만 오늘 낮에 본 게 자꾸 생각났어. 그러다 기분이 이상해져서."
낮에 본 거라면 내 주니어를 얘기하는 건가. 크긴 하지 여신님 덕에 업그레이드 됐으니.
"내 우람한 주니어가 인상 깊었나 보네. 왜? 보여줘?"
"무슨 헛소리야!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얼른 자!"
잔뜩 부끄러워하면서 이불을 푹 뒤집어쓴다.
에린델은 왜 이렇게 귀여운 거지.
순간 덮쳐버리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최대한 이성을 붙든다.
그래도 앞으로 모험을 계속하게 될 동료가 될 텐데 벌써 함부로 대할 순 없지.
한참동안이나 서로 아무 말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닥에 여분의 이불을 깔고 누웠다.
아까 조금 졸았던 탓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앞으로 이세계에서 하고 싶은걸 생각해본다.
많은 여자를 내걸로 하고 싶다 즉 하렘마스터가 되고 싶다.
그리고 모험도 해보고 싶다. 그렇지만 목적이 없다.
목적 없는 모험은 재미가 없는데.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들리는 소리.
"자?"
에린델도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아니 생각할 거리 들이 많아서. 잠이 안 오네."
"그렇구나. 아까 단백의 사정을 들었잖아. 사실 나도 말 못한 사정들이 있어."
"말 못한 사정?"
에린델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두운 얘기였다.
마왕군의 침공으로 인해 쑥대밭이 된 엘프 마을 이야기.
그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고 자신도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마왕군에 강렬한 증오를 품고 있고 꼭 마왕을 죽이고 싶다고했다.
"사실 나도 아까 맥주 때문에 마왕이 싫어졌는데, 우리 마음이 통하네."
어두운 분위기를 조금 전환해보려는 장난스러운 말.
다행히도 그녀는 풋 하고 작게 웃어주었다.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새벽까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등.
에린델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엘프 마을에서 탈출한 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많이 방황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방구석에 몇 년간 처박히게 됐던 내 과거가 오버랩됐다.
이 곳. 노른마을에 도착해서야 겨우 마음을 잡고 동료를 모으기로 결정하게 됐다고 했다.
내가 이세계로 와서 처음 도착한 마을도 이곳이니 이 또한 묘하게 비슷했다.
서로 다른 환경. 심지어 다른 세계에 살다 왔는데도 동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신기하게도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대화가 잘 통했다.
마치 원래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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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조금 무겁다.
5분만 더를 반복했던 학창시절만큼 일어나기가 싫었다.
새벽 늦게까지 대화를 나눴던 탓인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자버렸다.
에린델도 아직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침대를 봤지만 그녀는 없었다.
뭐지? 설마 떠난 건가.
새벽에 대화도 잘 나누고 친해져서 동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없어지니 서운함이 몰려왔다.
그렇게 혼자 아쉬움을 만끽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강단백. 일어났어?"
에린델이었다.
"뭐야, 어디 나갔다 온 거야?
"응. 아까 한 시간 전에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하고 왔어."
"운동?"
"가볍게 뛰기도 하고 활도 몇 발 쏴주고? 매일 하지 않으면 무뎌지니까."
거참 바른 생활 하는 엘프일세.
혼자서 괜히 서운해한 거 같아서 무안했다.
그러고 보니 시간.
시간이라. 이세계에는 시계가 있었나?
눈치채지 못했지만 방의 구석에 작은 시계가 있었다.
현대처럼 아라비아 숫자로 쓰여져 있지는 않지만 로마자여도 읽는 덴 지장이 없었다.
"12시가 조금 넘었나. 에린델, 배 안 고파? 밥 먹을까?"
"배고파. 맛있는 거 먹자."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에린델의 미소가 너무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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