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내 히로인이 이렇게 귀여울리가 없어(2)
* * *
어깨는 상처를 입었고 홉고블린은 다가오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든다.
'도망쳐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도망칠 수는 없다. 홉고블린은 둔해 보이지도 않았고, 도망친다면 저 여자가 위험할 것이다.
두려움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망설일 틈은 없다. 일단 질러본다.
"[tag : ahegao]"
홉고블린이 혀를 내밀고 눈을 까뒤집은 괴상한 표정을 짓는다.
아헤가오. 내가 살아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태그 중 하나다.
쉽게 말해 뿅가죽는 얼굴. 음란한 상태가 되었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기에 상당히 좋아했다.
이걸 사용한 이유는 눈을 위로 올리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홉고블린의 눈동자는 위로 올라갔고 움직임은 둔해졌다.
하필 못생긴 홉고블린한테 이 태그를 쓰게 되어 시각적으로 상당히 개 같았지만, 확실히 찬스가 생겼다.
움직임이 둔해진 틈을 타 홉고블린의 후방으로 이동한다. 약한 부상이지만 한쪽 팔로 두꺼운 홉고블린의 목을 한 번에 베어낼 자신은 없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될 일.
"하아압!"
오른쪽 팔의 힘을 다해서 홉고블린의 목을 찌른다.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한 찌르기는 성공적이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홉고블린.
짜릿하다. 히토미 마스터의 힘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다.
생각보다 대단한 힘이다.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단순히 여자를 범하는 데만 쓰는 게 아니라 몬스터에게도 응용이 가능했으니까.
'큭, 어쩌면 나 무적일지도?'
누가 알면 부끄러워질 만한 중2병 대사를 마음속으로 떠올릴 정도로 텐션이 올라갔다.
"대단하시네요. 처음 보는 주문을 쓰시던데 이국의 마법사신가요?"
찰랑거리는 금발,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엘프가 내게 물었다.
"뭐 대단한 마법은 아닙니다만, 이국에서 온 건 맞습니다."
싸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이 여자 엘프 말도 안 되게 예쁘다.
백옥같은 새하얀 피부며 뚜렷한 이목구비, 맑은 목소리까지.
신이 아름다운 것만 모아서 만든듯한 느낌의 생물체였다. 현생에서도 예쁜 여자를 본적은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실 저도 고블린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는데, 갑자기 앞뒤로 둘러싸여서 당황했던 거였어요."
"실전 경험은 많지 않으신가 보군요."
"뭐, 그런 셈이에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상당히 인색한 느낌의 감사 표현. 흔히 말하는 츤데레인가?
그러고 보니 그녀는 활을 들고 있었다.
확실히 활 사용자라면 둘러싸인 상황에선 전투가 조금 어려울 수 있지.
"다치신 거 같은데 제가 치료를 해드릴게요. 간단한 응급처치 용품은 있거든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한테 다가와서 약초를 바르는 그녀. 조금 따갑다.
하지만 젠틀하고 쿨한 모험가를 연출하고 싶다. 신음 따윈 내지 않는다.
이어 내 어깨에 붕대를 감아주는 그녀.
쿨한 척 해야 하는데 부드러운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간다.
"고블린을 잡아서 마석이 많이 생겼네요. 이건 어떻게 할까요?"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들키기 전에 말을 걸었다.
"저는 한 것 없이 구경만 한걸요. 다 가져가시는 게 좋겠네요."
고블린의 마석 7개와 홉고블린의 마석1개.
홉고블린의 마석은 가치를 모르지만 고블린 마석보다는 비싸겠지.
가져가라고 말해놓고선 마석을 흘깃 쳐다보는 게 미련이 있어 보인다.
저런 언행일치가 안 되는 느낌이 묘하게 귀엽다.
"아닙니다. 그래도 고블린들을 모아주신 덕분에 저도 쉽게 여러 마리를 잡았어요. 나누도록 하죠."
조심스럽게 고블린의 마석 4개를 그녀에게 건넨다.
"아, 아니에요. 싸우지도 않았는데 받을 수는."
손사래를 치지만 시선은 여전히 마석에서 떼지 못하는 그녀. 확실히 귀엽다.
"받으세요. 부상 치료도 해주셨잖아요?"
"그래도."
"그냥 받기 뭐하시면 파티로 사냥하시죠. 부상도 크지 않아서 고블린 사냥을 더 하고 갈 거니까."
"그건 좋은 생각이네요! 사실 저도 동료를 원했거든요."
"그럼, 거래 성립입니다."
그녀의 손에 고블린의 마석 4개를 떨궈 놓는다.
"알겠어요. 받죠. 설득력 있는 분이네요. 제 이름은 에린델이에요. 당신은?"
"저는 강단백입니다."
"강,단백? 신기한 이름이네요. 어느 나라에서 오신 거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믿지도 않을 테고.
"상당히 먼 동방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렇군요. 신기하네요. 동방에서 오신 분은 처음 보니까."
정말 신기한 걸 본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녀.
"보통 엘프는 오래 산다고 알고 있는데, 타국에서 온 사람을 본 적이 없나요?"
"타국에서 온 사람은 많이 봤어요. 주변국가인 무리뉴국이나 램파르드국에서 온 사람은 흔하니까요."
하지만 동방의 국가에서 온 사람은 본 적이 없다는 거군.
나 이외에도 전생자가 꽤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흔하진 않은 건가?
"엘프들은 대부분 집성촌에서 나오질 않으니까 더더욱 그렇겠지만, 동방에서 온 사람은 정말로 드물 거예요. 150년 사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걸요."
"그렇군요. 그런데 에린델 씨는 150살이신 건가요?"
"네. 맞아요."
고조할머니뻘의 아득한 나이 차이. 나와는 125살 차. 나보고 반말하라고 해야 하나?
"저는 25살인데 그럼, 말을 놓으시는 게."
"무슨 말이에요. 엘프는 천 년 이상 산다고요. 엘프의 시간 흐름으로 따지면 강단백씨가 훨씬 연상이죠. 저는 인간으로 치면 10대라고요!"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인간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거겠지.
"그럼 제가 말을 놓고 에린델씨가 존칭을 쓰는 걸로 할까요?"
"그건 또 이상하죠. 어쨌건 내가 오래 살았으니까. 둘 다 말 편하게 하죠."
어려운 여자다. 아니 그래도 자기주장이 확실한 건 좋다고 느낀다.
"알겠어 해가 지기 전에 얼른 고블린 사냥을 재개하자."
"응."
분명 길드의 퀘스트 보상조건은 마석 10개당 1골드.
최소 13마리 정도는 더 잡아야 서로 1골드씩 교환이 가능할 것이다.
주변을 조심스레 탐색한다. 이상하리만치 한참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키키킥. 키이키킥!"
괴상한 소리가 들린다. 고블린으로 추정되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
"주변에 고블린이 있는 것 같군. 후방지원 부탁해."
아까 상대해보니 일반 고블린정도는 한쪽 팔로 충분하다.
왼쪽 어깨의 부상이 조금은 신경 쓰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수풀을 헤쳐보니 고블린 8마리가 닭 여러마리를 죽이고 있었다.
주변 농가에서 훔쳐 왔겠지. 괜히 퀘스트에 올라온 건 아니군.
"난 앞쪽부터 잡을게 뒤쪽에 있는 녀석들을 쏴줘."
"응. 알아서 피해서 쏠 테니 움직임은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알아서 호흡을 맞춰 주려는 센스가 보이는군. 맘에 든다 이 엘프.
숏소드를 다잡고 맨 앞의 고블린에게 돌진한다.
달려들면서 목을 찌르고 바로 오른쪽으로 휘둘러 옆의 녀석까지 처치한다.
"키에엑! 키엑!"
괴성을 지르고 쓰러진 두 마리.
그걸 보고 다른 고블린이 화가 난 듯 단검을 던진다.
예상 못 한 투척 공격. 큰일 났다고 생각한 순간.
"채앵"
에린델이 화살을 쏴서 단검을 맞춰주었다.
예상외의 실력. 칭찬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다.
아까 만난 고블린들보다 조금 더 지능이 뛰어난 놈들이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도 시야를 차단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아헤가오를 다시 쓰긴 싫었다. 괴물들이 아헤가오가 되는 게 역겨웠다.
"[tag:cum in eye]"
cum in eye. 정액을 눈에 발사하는 장르.
얼굴에 사정하는 부카케 장르 중에서도 좀 매니악한 장르다.
즐겨보진 않았지만, 시야를 차단하는 데는 일품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완벽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태그를 외치는 순간, 내 바지가 벗겨지고 갑자기 풀 발기 된 내 성기에서 정액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퓨슛! 퓨슛! 퓨슈슛!"
'으아아아! 이런 씨발! 이게 뭐야!'
당황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정액이 고블린들의 눈에 정확히 맞아 후속공격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정액이 뽑혀 나가는 상황에 힘이 꽤 빠졌다.
아니 당연히 어디선가 생성된 정액이 발사될 줄 알았는데, 내 몸에서 강제적으로 뽑아갈 줄은.
"꺄아악! 갑자기 벗고 뭐 하는 거야!"
놀란 에린델이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미, 미안해! 일부러 한 건 아냐! 이건 주문의 부작용 같아."
다급하게 변명한다. 우선 그녀를 안심시키고 어서 고블린을 처치해야 한다.
"어쨌든 고블린들의 시야는 차단됐으니 어서 쏴!"
"아, 알겠어!"
호흡을 가다듬고 능숙한 솜씨로 고블린들에게 화살을 날리는 그녀.
"멀티플 샷 (Multiple Shot)"
거의 동시에 쏘는듯한 엄청난 속도로 여러발의 화살이 고블린들에게 발사됐다.
고블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잡는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 확실히 연사속도도 빠르고 명중률 또한 높았다. 게임에서 보던 고렙 궁수처럼.
정확히 여섯 발 쏘고 여섯 발 모두 고블린의 눈에 적중한 내 사정만큼은 아니었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