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5. 죄와 벌 (3)
* * *
조롱의 의미였을까.
개화기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비릿한 웃음이었다. 교묘하니 입술까지만 드러난 얼굴이었는데도 그녀의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으므로.
「젊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
찬란하고 흐드러지게 늘어진 금빛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가락에 돌돌 말렸다.
「그 순수한 미덕이 이렇게 활자 너머로도 전해지니까.」
선악의 구별은 언제나 모호하다. 도윤의 생각과 달리 개화기는 악인이 아니었다. 단지 제 욕망과 필요에 따라 행동할 뿐인 여인이었다. 적어도 이 히로인 컬렉션 앱과 그가 연관된 일에서만큼은 그랬다.
「하지만 도윤 군, 지키지도 못할 약속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강자는 약자를 굽어살펴줄 필요가 없다. 물론 개화기는 그런 힘의 논리로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도윤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고, 그 탓에 명확한 교훈을 필요로 했다.
「내가 죽겠다고 한다면?」
「기억이 거세된 자신을 마주하게 되겠지. 어차피 넌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본능에 충실하고 순수한 삶이란 건 말 그대로 죽음조차 예외로 하거든. 그게 네가 치른 대가잖아. 어른이라면 스스로 내뱉은 말에 책임 정도는 질 줄 알아야지.」
도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윽고 이빨에 찢어진 피부로부터 피가 철철 흘러나올 만큼 격분하는 모습이었다. 그조차도 개화기에겐 우습고 같잖은 일에 불과하였지만 말이다.
「게다가 넌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자신에 퍽 취한 나머지 말이야. 따지고 보면 네가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할 필요가 없거든.」
「무슨 소리지?」
「예외는 없어. 개발자인 난 이용자의 삶에 개입하지 않아. 그것이 철칙이야. 솔직히 말해 이렇게 대화를 나눠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나로선 정체를 드러내서 얻을 이득이 없어. 그런데도 이토록 친절하게 대꾸해주는 까닭이 뭐라고 생각해?」
연륜에 걸맞은 정론, 일세기도 더 넘게 살았다던 주장답게 논리적이었다.
「그 바리스타 좆집년을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내가 왜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할까?」
「이나 누나를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
도윤이 발끈해 소리쳤다. 개화기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늘어놓았다.
「네가 정말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거라면, 그냥 곁을 떠나.」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그 모습에서 추궁을 맞받아친단 인상은 조금도 없었다. 애당초 둘 사이의 대화가 어떤 갈등이 아닌, 일방적인 충고이자 훈계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만 않으면 돼. 그걸로 끝이야. 굳이 내 걸작 문라이트와 히로인 컬렉션에 예외를 추가해달라고 징징댈 필요도 없어.」
「이 빌어먹을 스마트폰에 온갖 앱이 깔릴 수 있다고 자랑한 건 너야! 네 말마따나 쓰레기란 표현도 아까울 나지만, 그렇다고 이런 부당함마저 받아들이라고? 누군지도 모를 놈이 네 물건으로 이나 누나를 홀릴지도 모른단 그 사실을? 개소리 집어치워!」
「쯧쯧, 그래서 네가 착각하고 있다는 거야.」
개화기가 측은하다는 듯 혀를 찼다.
「히로인 컬렉션의 이용자는 오직 너 하나뿐이야. 다른 앱들도 그렇겠지. 네가 죽고 나면 또 모를까 다른 잡놈에게 이 축복을 내줄 생각은 없어. 의외로 난 남자 보는 눈이 까다롭거든.」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히로인 컬렉션의 힘은 쉽게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야 개화기 같은 능력의 소유자라면 그마저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단편적으로 드러난 그녀의 성격을 짐작한다면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유형 같았다.
「너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잖아? 그 힘이 네게만 주어진 축복이란 것을.」
간택의 계기는 모른다. 그러나 오로지 제게만 허락된 기쁨이란 건 충분히 유추하고도 남았으리라. 이 스마트폰을 건네준 당사자부터가 다름 아닌 그 계부 스티븐 모리스였으니까.
도윤도 처음 얼마간은 이것이 그의 불쾌한 배려가 아닌가 의심했다. 내심 제게 나쁠 것 없는 상황의 연속에 애써 등한시하였을 뿐.
「결국 결론은 이거야. 네 스스로 그녀를 더럽히지 않을 자신이 없는 거지. 그래서 나한테 그녀만은 예외로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고. 그런 주제에 스스로가 대단한 희생이라도 치르는 양 구는 꼴이 얼마나 같잖은 지 알아?」
「틀려, 난……!」
틀리지 않았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물론 그런 네 모습을 좋아해. 황홀한 유열을 느끼지. 어쩜 그리 내 남편이랑 닮았는지 생각만 해도 짜릿짜릿하다니까.」
개화기가 절정에 가까운 쾌감을 느낀 듯 제 몸을 스스로 감쌌다. 한껏 흐드러진 신음이 도윤의 귓속을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또 그로부터 눈앞에 있는 암컷을 유린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다가, 이내 그런 자신으로부터 커다란 자괴감과 환멸감을 느끼고 절망했다.
「이제 좀 자기 객관화가 돼?」
히죽, 그 짧은 사이 눈동자에 스친 감정을 놓치지 않고 읽어낸 그녀가 덧붙였다.
「난 그냥 내 남자에게만 좀 헤플 뿐인 여자야. 넌 내가 보는 포르노의 주인공일 뿐이고 말이지. 그러니까 날 무슨 대단한 악당이라도 된 것처럼 적대하지 마. 네가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니까. 애써 그 비루한 삶을 바꿔준 사람에게 무례하지 말라고.」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도윤이 넋 나간 사람처럼 개화기의 말을 곱씹었다.
「모든 것은 원칙대로 하면 돼. 네가 본능에 충실하고 순수한 삶으로부터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난 절대로 너에게 개입하지 않겠지. 오히려 가끔씩 도와줄 거야. 여러 방면에서 말이야.」
잘못된 것도, 그릇된 것도 오직 자신뿐.
「하지만 네가 계속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위선을 떤다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군상을 보며 통찰에 이골이 났을 개화기에게 제 모습은 과연 어떻게 보였을 것인가.
「글쎄, 그때는 별로 재미없을 거라고 장담해.」
뼈저린 교훈의 종말이었다. 도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도 사라지질 않는 문라이트의 홀로그램은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이 신세를 나타내는 것만 같아서, 몹시 우울했다.
「네 말이 맞다, 개화기…….」
「흠?」
「어떻게 이리 추악한 짐승이 있을까. 역겨운 위선과 욕망으로 똘똘 뭉친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어. 아마 나는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살겠지. 계부의 부와 히로인 컬렉션에 힘입어서 말이야. 이런 건 결코 나 같은 쓰레기에게 주어지면 안 되는 힘이었는데.」
뒤늦게 고백하는 것이지만 간밤의 정사는 도윤에게 있어 조금도 만족스럽질 않았다. 앞서 받았던 지적처럼 조금도 체질에 맞질 않는 로맨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끝없이 역치를 높이면서 배덕과 유린으로 점철된 자극, 그러한 포르노만을 추구하는 금수였기 때문에.
「삶이 버겁다…….」
진정으로 얻고 싶었던 가족은 모두 죽었다. 사랑을 나누며 함께 행복하고 싶었던 여인에게는 제가 곁에 있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어깰 짓누르는 이 실존 속에서, 난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도윤은 좌절했다. 그의 의지는 꺾이고 있었다. 그리고 개화기는 턱을 괸 채로 가만히 지켜보더니 입을 열었다.
「배금주의로 찌든 세상에선 그 어떤 악덕도 작은 일탈에 불과하지. 스스로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하게 느껴진다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면 돼. 세계를 알고, 너 자신을 알아가는 거야.」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옹호하고 정당화한다. 그 어떤 사상과 행동조차도 옳거나 필요한 일이었다고 합리화할 수 있다. 개화기는 도윤 또한 예외가 아닐 거라고 지적했다.
「언젠간 너도 괴물이 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 피할 수 없다면 즐겨. 너에게만 오롯이 주어진 금권과 그 힘으로 다른 짐승, 다른 괴물과 차별화하는 거야. 저들은 추악하면서도 비루한 자신을 숨길 수 없겠지만 넌 그렇지 않을 테니까.」
기쁜 공허함, 육신의 성적 만족감만을 쫓는 쾌락주의적 삶.
「그러니까 모쪼록 즐기면서 살아. 반반한 암컷이랑 같이 영화관에 가서 다 벗겨버리고 입으로 봉사를 시킨다던가, 구강에 좆물을 잔뜩 싸지르고 팝콘 같은 주전부리를 얹어주면서 맛있게 먹도록 시켜도 좋겠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근사한 저택에 혼자 사는 년을 집에서 우악스럽게 따먹는 것도 괜찮아. 다 쓰고 난 콘돔을 네글리제 같은 옷에 묶어주고 좆물받이란 걸 자각하게 만든다던가. 하얗고 예쁜 신부복을 입혀서 네 자지랑 결혼식 같은 걸 시키는 것도 꼴릴 거야.」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감만 빼면, 분명 그럴 것이다.
「나긋나긋한 년과 카랑카랑한 년을 골라서 동시에 따먹어도 좋고, 좆기둥에 마약 따위를 솔솔 올려놓고 코로 빨아들이게도 시켜봐. 그렇게 약물 중독으로 만들어서 다음엔 헤로인 가루에다 좆물을 섞여서 맛있게 먹이는 거지. 뇌와 신경계를 완전히 절여버려서 너 없이는 못 살게끔 만들어버려.」
개화기의 난잡한 묘사는 그 뒤로도 계속됐다. 도윤은 멍하니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저렇게까지 추악한 군상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야외 노출 좋아해? 크림이 듬뿍 담긴 빵으로 자위를 돕게 시킨 다음 먹이는 건? 문신이나 피어싱으로 따먹은 년마다 네 노리개임을 알아볼 수 있게 표식을 남기는 것도 괜찮지 않아?」
「당신은 정말 미쳤군…….」
「하지만 꼴리지?」
한편으론, 아직도 그런 위선을 떠는 것이냐며 제게 남은 마지막 양심마저 억누르려 드는 욕망의 범람을 실감하였지만 말이다.
「……그래.」
「으음, 솔직해진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아.」
악은 또 다른 악을 알아보는 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복사하는 법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나?」
「얼마든지.」
「왜 하필 나지?」
도윤은 어째서인지 개화기가 절 간택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까 말했잖아?」
「……?」
「우리 남편하고 닮았거든.」
동족 혐오, 그리고 측은지심이 뒤섞인 무언가.
「자, 그럼 이제 작별할 시간이 된 것 같네. 다음에 또 볼일이 있다면 한층 더 성숙한 쓰레기가 되어있길 기대할게. 물론 그동안 계속 지켜보기도 할 거지만.」
변덕스럽고 자기만족에 가까운 자위용 게임 캐릭터.
「어쨌거나.」
그보다 더 제게 걸맞은 형벌이 없었을 것이므로.
「……포르노는 영원한 법이니까.」
이윽고, 문라이트의 홀로그램이 꺼졌다.
* * *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미즈 이브.”
“말씀하세요.”
“지금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고 싶습니다.”
“……준비해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