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4. 타락은 아직 이르다 (4)
* * *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배덕적인 봉사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렇다 할 경험이 없었던 이나는 입으로 하는 행위에 그다지 능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중의 인식과 달리 구강성교는 대단히 난도 있는 체위다. 어설픈 솜씨론 해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간지러울 따름이었다.
쪽, 쪽, 쪽.
새들의 입맞춤처럼 가벼운 전희가 있었다. 청초한 여인이 저지를 음행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배덕적인 광경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덕에 이나의 서투른 봉사는 꽤 색정적으로 느껴졌고, 도윤으로 하여금 쾌락을 느끼게 했다.
쪽, 쪽, 쪽.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이자 곧 경험이었다. 꺼떡대는 물건이 연신 제 뺨을 비볐음에도 개의치 않은 건 그래서였다. 질척하게 흘러나온 겉물이 미끈거리며 달라붙었는데도 멈추지 않은 것 역시 그래서였다.
오히려 그런 맥동이야말로 절 여자로 봐주는 증거라 여긴 이나가 기뻐했다. 흉악하리만치 큼직한 남근을 마치 새신랑처럼 떠받치고 입술을 맞췄다. 나아가 바쳤다. 숭배라도 하듯 홀린 눈빛으로 냄새와 촉감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이윽고 반들거리게 된 입술이 그 윤기를 자랑했다. 립글로스를 바른 것처럼 광택을 내뿜으며 은은하니 야한 냄새를 풍겼다. 일종의 마킹으로, 잔뜩 흥분한 수컷이 제 겉물로 표시한 모양새였다.
“윽…….”
작게 신음한 도윤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채로도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각적 쾌감과는 달리 간지러울 뿐인 촉감이었으나, 그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좌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
물론 이나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는 제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윤의 이변을 깨달았다. 작지만 분명한 침음이 절대 만족스러운 쾌감 때문이 아닌, 외려 더 괴로웠음에도 절 배려하고 또 참느라 난 소리임을 깨달았다.
“방법이 잘못되었을까?”
순수한 눈망울로 그렇게 올려다보는 모습이 어찌나 꼴리던지 모른다. 간질이는 애무와 헌신적인 태도는 그렇기에 오히려 더 독이었다.
좀 더 과감하게.
좀 더 천박하게.
좀 더 음란하게.
사랑하는 만큼 제 욕망에 한껏 부응해주었으면 했다. 이 공허한 마음을 쾌락으로 채운 뒤, 천천히 결실을 맺어나갔으면 했다. 비단 성욕뿐만 아니라 이 인생의 험로를 함께 걷고 싶다는 소망까지도.
“그럴 리가요. 기분 좋아서 낸 소리였어요.”
나아가 그런 레종 데트르까지도.
“힘들면, 참지 않아도 되는데…….”
“왜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이빨이 닿지 않게 입안 가득 물어보라고 하고 싶었다. 기둥을 타고 내려가 달린 것을 핥으며 신음하라고 하고 싶었다. 음란한 말을 가르칠 테니 그대로 내뱉어보라고 하고 싶었다. 있는 가득 싸지를 테니 우물거리며 씹어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윤은 그러지 않았다. 다만 그저 짓궂은 목소리로 놀렸다.
“우리 누나, 생각보다 엄청 야한 여자였구나?”
혹시 몰라 숨을 비축해두던 이나였다. 당장에라도 욕구를 풀고 싶어 안달한 그가 제 머리를 마구잡이로 끌어당길까 긴장하던 찰나였다. 그것이 언젠가 보고 충격을 받은 포르노의 장면이었음에도 거부하지 않으려던 차였다.
콩닥콩닥, 그렇게 마음을 졸이던 그때에 도윤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처음이면 잘하지 못할 수도 있죠. 중요한 건 누나가 해준다는 거잖아요.”
“그, 그렇지만…….”
“조금 아프긴 해도 정말 기분 좋았어요.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려고 하지 마요. 제 쾌락 때문에 누나의 첫경험을 망치고 싶진 않거든요.”
이나를 내려다보는 정복감과 지배감은 분명 상당한 것이었다. 비록 제 욕망을 온전히 충족시킬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그래도 도윤은 기꺼이 감내할만하다고 여겼다.
“정말로 괜찮아?”
“괜찮아요. 정 마음에 걸리면 제가 천천히 알려줄게요.”
일방적이지 않은 관계다. 쌍방으로 이뤄지는 사랑이다. 그리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쾌락이다. 줄곧 결핍에 시달렸던 애정이 차오르는 지금, 도착적인 즐거움 정도는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었다.
“사랑해요. 그러니까 누나도 사랑한다고 말해줄래요?”
“이, 이대로?”
“어서요.”
연상의 여인이 복종하듯 무릎을 꿇은 와중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물건에 간질간질한 입맞춤 세례를 퍼붓던 입이다. 그것을 달싹여 사랑을 속삭인다는 것은 몹시 환락적인 광경이라 할 수 있다.
“사, 사랑해…….”
이나가 애써 분발해 말했다. 한층 수그러들었던 물건이 다시 빳빳이 솟을 정도로 심금을 울리는 고백이었다. 어찌나 피가 몰렸는지 검붉은 색이 한결 더 짙어지고, 귀두의 모양도 힘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해졌다.
“응, 더는 못 참겠어요.”
“꺅!”
도윤이 허리를 숙였다. 두 손을 내뻗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서 그런지 잘 빠진 팔뚝으로 이나를 끌어안았다. 나아가 능숙하니 들어 올리고, 당황해하던 그녀를 침실까지 공주님처럼 모셨다.
“도, 도윤아?”
푹신한 침대에 다치지 않게끔 가볍게 내던졌다. 살짝 두려운 마음에 움츠러든 여인을 상대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흡사 미녀와 야수 같은 장면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야수는 오직 성적으로만 그러할 뿐, 모두가 기꺼워할 외모를 지녔다는 사실이었다.
“아프면 말하기에요.”
미녀는 그랬다. 가녀리면서도 육감적인 암컷의 몸뚱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야수는 그랬다. 우락부락하면서도 섬세한 수컷의 손길을 내뻗었다.
“응, 꺄앗……!”
두꺼운 손가락이 비좁은 질을 가볍게 침범했다. 이미 앞서 주고받은 전희 탓인지 조금 눅진한 감이 있었다.
찌걱, 찌걱.
도윤이 손가락을 가볍게 뒤틀었다. 고작 그런 움직임만으로도 침대보를 꼭 쥐고 움찔거리던 이나를 세심히 관찰했다. 이윽고 고통보다는 열락에 가까운 반응이란 걸 확인한 뒤 점점 더 강렬하게 애무했다. 도발적으로 몸을 풀었다.
다가올 제 침범에 대비할 수 있도록 주의시켰다.
“기분 어때요?”
“모, 몰라…….”
“거짓말하면 더 괴롭힐 건데.”
히죽 웃은 그가 이나에게 넣고 있던 손가락으로 살살 간지럽혔다. 구불구불한 질 속을 한 마디씩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약점을 찾았다. 끝내는 글썽글썽한 얼굴로 제게 매달리는 그녀를 보며 확신을 얻었다.
“흣, 읏…….”
“부끄러워하지 마요.”
처음엔 손가락을 꽉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는데, 이제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전신이 말 그대로 쾌락을 위해서 풀어진 셈이었다.
“야한 누나도 좋아요. 천박한 누나도 사랑스럽죠. 상스러운 누나라도 매력적이에요. 음란한 누나라면 오히려 제 쪽에서 더 환영인걸요.”
“흐읏, 변태에…….”
“맞아요. 그렇지만 누나를 사랑하는 변태에요.”
도윤이 이나의 안에 넣었던 손가락을 천천히 빼냈다. 이제는 비로소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침대 위로 흐드러진 그녀에게 다가갔다.
조금 더 가까이, 보다 더 가까이.
그렇게 살을 맞댈 수 있을 만큼 밀접했다. 신음으로 흐트러진 숨소리와 두근두근하는 심장 소리가 귀에 들어올 만큼 거리감을 없앴다. 그리고는 마침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맞췄다.
“넣어도 돼요?”
그런 가운데 도윤은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했다. 당장이라도 허리를 힘껏 올려붙인 뒤 왕복하고 싶던 것을, 끝끝내 이나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물었다. 만에 하나라도 거절한다면 힘겨우나마 물러나려는 듯 태도를 취했다.
“비겁해…….”
그래서일까, 이나가 책망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매달리고 있던 도윤의 몸을 있는 힘껏 끌어당기며 토로했다. 열락에 울먹거리던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이 쭉 내뱉었다.
“이렇게나 안달하게 해놓고서, 묻는 거야……?”
갈망하는 건 어느 한쪽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도윤이 이나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바라고 찾았던 것처럼, 이나 또한 도윤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바라고 찾았다. 결핍된 애정이나 불우한 환경의 보상 심리를 서로에게서 갈구하고 있었다.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인간은 진실로 상호보완적인 존재다.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쾌락이라는 어마어마한 미끼에도 난혼을 택하지 않는 것 역시도 그렇다. 사람에게는 육체적 욕망을 뛰어넘는 충족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
많은 이들이 제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를 그 두 글자로 표현한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기에 스스로도 잘 알 수 없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가리킨다.
“널 원해, 무척 원해……!”
어떤 이는 그런 바람이 불순한 계산이라고 질책한다.
어떤 이는 그런 사랑이 의외로 무가치하다 호도한다.
“줄곧 꿈꿔왔어. 너와 맺어지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무지개로 가득 찬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은 자상한 부모가 들려주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그렇기에 완벽한 사랑이란 없고, 진실된 사랑이란 만들어가는 것이다.
“좀 더, 그리고 좀 더…….”
불순한 계산이라도 좋았다. 의외로 무가치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제 아픔을 메꿔줄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건 사랑이자 우정이었고, 유대이자 곧 믿음이었다. 그런 이름을 한 충족감이었다.
“너와 깊이…….”
이나가 글썽거리며 눈을 감았다. 함께 행복해지자는 듯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 표정으로부터 이 사람과 함께라면 분명, 진실한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여긴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옅은 미소와 함께 몸을 천천히 내밀며 그랬다.
“사랑해요.”
“응, 나도 사랑해…….”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