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컬렉션-23화 (23/28)

〈 23화 〉 4. 타락은 아직 이르다 (3)

* * *

이나의 집은 카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 단지였다.

본가가 바로 옆동이었음에도 집을 하나 더 얻은 이유는 작업실 때문이라고 했다. 젊고 아리따운 외모에 모두들 깜빡하지만, 그녀는 세계 최정상 수준의 바리스타였으니까. 제 일을 위한 공간 정도야 당연히 필요했다.

물론 그것이 꼭 집에서 가까운 곳일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다.

잘나가던 형사였던 이나의 아버지는 호탕한 한편 딸이라면 껌뻑 죽는 남자였다. 아내가 병상에 눕기 전만 해도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었던 그는 애지중지하던 딸의 독립을 극구 반대했다.

지금 이 순간처럼 애먼 놈과 놀아날 것을 걱정해서였다.

“들어와, 문턱 조심하고…….”

어둑한 현관 저 너머엔 달빛이 내걸린 거실이 있었다. 푸르스름한 월광은 이나의 아파트를 떠돌며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오락실 부근 길가에서부터 현관문 너머 복도에 다다를 때까지와는 또 색다른 기분이었다.

“커피 마실래?”

한발 먼저 실내로 돌아온 이나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괜스레 건넨 물음이 어색한 분위기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가족과 친구 외에는 누구도 들인 적 없던 공간이어서인지 자꾸만 의식을 하게 됐다.

“누나.”

그래서 신발을 벗고 따라온 도윤은 손을 뻗었다. 문이 닫히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 속에서 제 앞에 선 여인을 붙잡았다. 조급하니 답지 않게 서툴고 우악스러운 손길로 자신의 심경을 대변했다.

“지금 제가 바라고 있는 건 단 하나예요.”

어물쩍 넘어갈 방법은 없었다. 그럴 생각조차도 없었지만 그랬다. 늠름하게 자란 이웃집 꼬마는 제 몸을 단단히 붙들고 옭아맸다. 열렬한 구애에 대한 보답으로 무언의 용인을 넘어 육성을 통한 승낙마저 요구했다.

“누나의 모든 것.”

욕망이란 으레 천박하다는 통념이 있다.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하나로든 부족해요.”

하지만 때묻지 않고 순수한 욕망은 때때로 고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게 답을 주세요.”

이나는 절 끌어안은 손길에 나직이 신음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교성에 놀라서 부끄러워하다가, 이내 도윤과 마찬가지로 제 욕망과 마주할 결심을 마쳤다. 그가 용기를 낸 것처럼 저 또한 용기를 내었다.

“……응.”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야 진작부터 굴뚝같았다. 다만 절 아우른 문제가 행여 그의 미래, 그의 어깨를 짓누를까 걱정했을 뿐.

“나도 널 원해…….”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형편이니 까닭이니 하는 것을 따지기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절실했으므로.

“널 기쁘게 해주며 그 온기를 나누고 싶어.”

기꺼이 이 일탈을, 이 죄악감을 즐기기로 마음먹은 이나가 비로소 제 욕망 앞에 솔직해졌다.

“네게 기대며 잔뜩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도윤의 이성은 끊어졌다. 아슬아슬하게 넘실대던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커다란 손으론 도담한 가슴 한쪽을 꾹 붙잡았다. 배꼽을 따라 내려간 치골의 세밀한 음모를 간질였다.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날숨은 이나의 귓가에 속삭이듯 뱉었다. 그렇게나 땀을 흘렸는데도 사라지지 않은 향기를 맡으며 목덜미를 탐했다.

“누나는 제 거예요.”

도윤이 뇌까렸다.

“몸도 마음도.”

아름다운 여체를 뱀처럼 칭칭 동여맨 채로 다시 되뇌었다.

“그러니까 말해요, 똑똑히.”

절대 놔주지 않을 거라는 듯 혀를 날름거렸다. 그리고 그런 속박감을 즐긴 이나는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던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작았던 신음의 크기를 점점 더 늘리며 재정립된 관계에 도장을 찍었다.

“나는, 도윤이 거야…….”

결정타였다. 나지막한 울림이 바지 속에 숨어있던 물건을 발기시켰다. 전희의 여흥조차 포기하게 할 만큼 색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눈동자를 굴린 채 이나를 넘어트릴 곳을 찾던 도윤은 곧 제 손을 포갠 그녀의 제지에 흠칫했다.

“멈추지 않을 겁니다.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어요.”

“나도 그러길 원해. 하지만 먼저 씻고 나서…….”

“안 돼요. 참을 수 없어요.”

“가, 같이 씻어도?”

발칙하기 그지없는 유혹이었다. 이나의 몸을 붙잡고 있던 도윤이 곧 그 속박을 느슨히 했다. 그녀에 대한 욕정이 극에 달한 나머지 오히려 한발 물러선 것이었다. 행여라도 몹쓸 행동 따위가 상처를 줄까 싶어서였다.

“도중에 덮쳐버리고 말 걸요.”

“너라면…….”

말끝을 흐리며 쭈뼛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혼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당장에라도 침대에 눕힌 뒤 무력하게 신음하며 기뻐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도 쭉 자신만의 여인이 될 것을 맹세시키며 범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참아야 했다.

“그럼 어서 들어가요. 어물쩍댔다간 정말 장담 못 하니까.”

“으, 으응.”

간신히 풀려난 이나가 옷을 벗었다. 그녀를 따라서 탈의하던 도윤은 한시도 그 광경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나신이 된 두 사람이 욕실로 들어섰다.

“부끄러우니까 너무 쳐다보지 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양새가 부끄러웠던 이나가 그리 말했다. 마치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처럼 제 몸을 가린 채 도윤의 눈치를 살폈다. 그토록 아름다운 몸을 가졌으면서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차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었다.

“쳐다볼 겁니다. 누나는 이제 제 거라니까요.”

물론 이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도윤에게 있어 어려서부터 흠모해왔던 이웃집 누나의 나신은 그저 황홀할 따름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지닌 콤플렉스와 달리 그 육신은 여전히 젊고, 싱그러우며, 아름다웠으므로.

“예쁘네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백옥처럼 하얀 피부를 돋보이게 했다. 당차고 앳되던 얼굴은 어느덧 온화함과 어른스러움이 어려있었다. 도드라진 가슴의 굴곡은 당연한 것처럼 시선을 빼앗았고, 그 아래로 선명한 복근은 그동안의 자기관리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씨, 씻을게…….”

샤워기를 집은 이나가 그제야 제 몸 구석구석을 드러냈다. 수치심을 외면할 만큼 저를 지그시 쳐다보는 도윤의 시선이 좋아서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제게 홀린 듯 구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었으니까.

쏴아, 물줄기가 쏟아졌다.

처음엔 몸을 움츠릴 만큼 물이 차가웠다. 데우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윤은 곧 이나의 손에 들린 샤워기를 벽에 돌려놓았고, 수전을 돌려 천장에 설치된 노즐로부터 물이 분출되게끔 했다.

“이리 와요.”

“아…….”

근사하게 꾸며진 욕실, 그 한 공간에서 깨끗한 비가 내렸다. 망설임이란 이름의 노폐물이 씻겨나가게끔 하며 두 사람을 이어주었다.

“사랑해요, 누나.”

도윤이 이나의 턱을 짚으며 말했다.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입을 맞췄다. 잘생긴 외모가 새삼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감미로웠다.

뒤따라 눈을 감은 그녀가 제 입속을 침범한 혀를 느꼈다. 얼마든지 힘 있게 밀고 들어올 수 있었던 그 혀는 자신의 호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스스로 지닌 욕망을 해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함께 교감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우음…….”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미열이 느껴졌다. 홀로 위로할 땐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맛있어요?”

입술을 떼고 난 도윤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잔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재수 없다고 때리기라도 했을 텐데, 지금은 외려 설렘만 느껴졌다.

“그, 그렇지 않은걸…….”

분명 제가 몇 살이나 더 많았다. 그런데 시종일관 끌려가는 분위기가 어쩐지 자존심 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뻤다. 그 오묘한 기분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계속 쿵쾅거리는 심장이 야속했다.

“누나가 그렇게 부끄러워할 때마다 얼마나 꼴리는지 알아요?”

“꼬, 꼴리다니……!”

천박한 말이 야릇한 느낌을 고조시켰다. 바리스타라는 꿈에만 몰두한 탓에 배덕을 몰랐던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급기야는 허둥지둥 시선을 외면하다가, 도윤의 선명한 복근 아래 빳빳이 솟아오른 물건을 보고 시선을 빼앗겼다.

“아…….”

흉악할 정도로 큼직한 남성기가 그곳에 있었다. 검붉고 핏줄이 툭툭 불거진 게 왜 흔히들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을 쓰는지 알 것 같았다. 기쁨을 나눌 물건으로는 그 인상이 너무나도 과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자꾸만 꺼떡대는 저 살덩어리 막대가 이나는 몹시 안쓰러웠다. 이미 넘어올 대로 넘어온 암컷을 두고도 배려를 위해서 인내하는 것이 거듭 그랬다. 당장에라도 제 몸속을 파고들어 범하고 싶을 텐데도 견뎌내는 모습이 기특했다.

“이거, 나 때문에 커진 거지……?”

“네.”

“많이 아파……?”

도윤이 말없이 끄덕였다. 엄밀히 말하면 아픈 건 과장이다. 그러나 피가 한껏 쏠린 물건을 손 한 번 대지 않고 가만히 놔둔다는 건 분명 뻐근한 일이었다.

다른 남자 같았으면 뒷감당일랑 생각하지 않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내색을 않아서 그렇지 도윤의 정신력은 충분히 경이로웠다. 그리고 때마침 그것을 실감한 이아는 곧 수전을 향하여 손을 내뻗었다.

“사, 상스러운 여자라고 오해하면 안 돼……?”

“오해 같은 거 안 해요. 그리고 상스러운 누나도 좋은걸요.”

줄곧 쏟아지는 물줄기가 끊겼다. 안 그래도 애타던 마음은 가식 없는 포용에 더욱 달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꺼이 봉사할 마음이 들었던 이나는 무릎을 꿇었고, 제가 사랑하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정복감을 주었다.

“변태…….”

그리고는 그런 말과 함께, 제 눈높이와 맞춘 그것에 입을 맞췄다.

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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