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컬렉션-12화 (12/28)

〈 12화 〉 2. 시실리안느 (2)

* * *

「히로인 No.001 – 홍은하」

「첫 번째 기록」

「공략 회상을 시작합니다.」

홀로그램의 장점은 그 형태가 실로 무쌍하다는 것에 있다. 일찍이 기록된 영상을 불러온 화면은 여느 값비싼 TV보다도 생생한 화질을 자랑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의 피부가 조금만 거칠었다면 모공마저 보았을 정도로 말이다.

「시청하실 시간대를 지정하십시오.」

「지정하시 않을 시 무작위로 결정됩니다.」

히로인 컬렉션, 가공할 능력을 가진 앱은 간밤에 있었던 정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실로 경악스러운 성능이었다. 영상이 시작된 부분은 정사의 중간쯤 되는 지점이었지만, 아래에 달린 인터페이스로 얼마든지 되감거나 건너뛸 수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가능하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찍지도 않은 영상이 용량조차 알 수 없는 고화질로 담겨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제멋대로 촬영하는 기능이 달려있다고 해도 여전히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은 있었다. 상용화된 기술보다 뛰어난 배율, VR용 360도 카메라보다도 자유로운 시야각, 그리고 UI에 적힌 부가기능이었다.

「실시간 공략 평가를 사용하기 위해선 히로인을 추가로 수집해야만 합니다.」

「실시간 스테이터스를 살펴보기 위해선 히로인을 추가로 수집해야만 합니다.」

「애플리케이션 로그를 켜시겠습니까?」

처음 실행했을 때와 같이 대부분의 기능은 잠겨있었다. 그러나 어느정도 이 앱에 적응된 지금, 도윤은 부수적으로 켤 수 있는 기능이 뭔지를 대강이나마 짐작했다.

실시간 공략 평가는 아마 제가 보았던 공략 포인트처럼 히로인을 함락시키는 데 쓰이는 조언이리라. 스테이터스란 아직 제가 열람할 수 없었던 호감도와 복종도, 그리고 성욕에 속마음 따위였을 테고.

‘애플리케이션 로그라.’

도윤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유일하게 켤 수 있던 부가기능을 가동한 뒤 인터페이스를 조작했다. 간밤의 정사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을 회고하기 위해서였다.

「눈 깔아.」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듣자니 영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 제 육성이었다. 히로인 컬렉션의 기록은 그렇게 도윤만이 볼 수 있는 영상과 음향으로 추억을 시작했다.

「계속 그런 눈으로 바라볼 거면.」

영상 속에서, 허리를 슬그머니 뺀 도윤이 갑작스럽게 움직였다. 동시에 홀로그램 속 인터페이스에선 못 보던 버튼이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멀티 카메라라는 이름의 버튼이었다.

“……?”

느닷없는 출현에 고개를 갸웃한 도윤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커다란 화면 한구석에 별도의 창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보고 있던 각도와는 또 다른 시점의 영상이었다. 단순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기만 한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촬영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단면도였다.

「흐윽, 꺅, 읏…….」

겉물과 애액으로 뒤섞인 질 속이었다. 끈적하고, 축축하며, 또 비좁기까지도 한 그 공간이 훤히 드러났다. 부드러운 자궁 입구와 그것을 짓누르며 사정없이 몰아붙이던 제 물건까지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참 대단한 기능이었다.

밤새 푼 욕구가 다시금 떠오를 만큼 색정적이었다. 그 누가 또 이런 광경을 누릴 수 있겠느냔 생각이 들었다.

「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뭘 알아?」

도윤이 욕망에 충실한 자신을 느꼈다. 그만큼 삶의 보람을 느끼며 기꺼워했다. 나아가 아직 한참이나 남은 영상을 마저 감상했다.

「눈, 깔게…….」

「공략 진척도 상승 (+5%)」

잘나가던 커리어 우먼이 그렇게 제 자존심을 내려놓은 순간엔 그런 문구가 떠올랐다. 앞서 언급된 애플리케이션 로그였다. 영상 속에선 방금 전까지만 해도 31%였던 공략 진척도가 그 발언으로 단숨에 5%씩이나 뛰었다.

「흐윽, 흑, 잘못했어…….」

말마따나 눈을 깔았을 땐 다시 3%가 올랐고,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을 땐 또 2%가 올랐다.

「뭐든 사과할게, 사과할 테니까 조금만 쉬게 해줘…….」

「쉬고 나면 또 신경질 내려고?」

「진짜 미칠 것 같단 말이야!」

물론 그 수치는 무작정 오르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영상처럼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발끈하며 대들었을 땐 7%씩이나 떨어지곤 했으니까.

「나, 흐윽, 이런 거, 흑…….」

이어서 격렬한 교접이 시작됐다. 딸꾹질처럼 박힐 때마다 신음한 은하가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 들었다. 그러나 숨쉴 틈도 없이 몰아붙인 도윤이었기에, 결코 쉽진 않았다.

「공략 진척도 상승 (+1%)」

쩍, 쩍! 살갗이 달라붙었다 떨어졌다.

「공략 진척도 상승 (+1%)」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은하의 공략 진척도는 정확히 1%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공략 진척도 상승 (+1%)」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녀의 자궁구가 짓눌릴 때마다였다.

「공략 진척도 상승 (+1%)」

도윤이 실소를 금치 못하고 터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초마다 올라가는 공략 진척도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으니까.

요컨대 은하는 어젯밤 암컷이 되었다. 늠름한 제 수컷에게 박히며 앙앙 울부짖을 때마다 함락에 가까워졌다. 여기 적힌 로그가 바로 그 증거였다.

고작 하룻밤 만에 70%라니 너무 지나친 급등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거라면 오히려 적은 편에 가까웠다.

「모르는, 꺄흑, 데에…….」

「공략 진척도 상승 (+1%)」

박힐 때는 1%씩, 절정에 달할 때는 5%씩,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자존심과 반항심으로 인한 급락은 있었다. 뿐만 아니라 50%대에 와서는 올라가는 수치 역시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은하의 함락은 탄탄대로였다.

「계속 그렇게 반말해.」

몇십 번의 왕복과 몇 번의 절정이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과 존댓말이 더해진 사죄는 정복감을 자극하는 맛이 있었다.

「잘못, 했어요…….」

은하는 그렇게 절 범하던 도윤에게 굴복했다. 일시적이나마 함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뭇 남성의 구애를 받으며 매력을 뽐내던 여인이, 제 위에 올라탄 채 지배하던 사내로 하여금 종속되었다고 선언하는 모습이었으니까.

「용서, 꺄흑, 해주세요…….」

아양을 대신한 신음. 굴종의 뜻을 담은 조아림. 끝끝내 버티다 내놓은 자존심.

「제발, 흐윽,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입 벌려.」

「으흐, 헤에…….」

이후로도 정사는 쭉 이어졌다. 은하의 자궁을 너끈하게 찌른 도윤은 그대로 손을 들어 엉덩이를 때렸다. 주제도 모른 채 건방지게 굴던 승무원에게 애정과 교정의 의미를 담아 매질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은하는 무력한 암컷이 되어 까불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낮에 보인 것과는 달리 제법 훌륭한 태도였다. 그런데도 영상 속의 도윤은 성에 차지 않은 듯 힘찬 사정과 함께 여성으로서 모욕적일 주문을 했다.

「따라 해.」

「사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정, 해주셔서, 감사합니, 다아…….」

물론 은하는 그것을 기꺼이 수행했다. 그러고도 몇 번인가 반항하긴 했지만, 그럴수록 도윤은 저와 제 남근에 대한 숭배를 그녀의 뇌에 각인시켰다. 그리하여 간단한 봉사와 특별한 도장으로 무너트렸다.

「사정, 읏, 해주, 셔서, 가, 감사앗, 합니다아…….」

뚝, 마침내 영상이 끝났다. 간밤에 있었던 일을 제삼자의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편으론 히로인 컬렉션이란 앱이 가진 힘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고, 더 많은 기능의 해금이나 또 다른 여인을 공략해야 할 동기를 부여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가 몹시 기대돼.’

옅은 미소와 함께 스마트폰을 집어넣은 도윤이 커피 머신을 찾았다. 침대가 있는 쪽에서 이불을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서였다. 홀로그램과 그 음향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건 이미 확인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허공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손짓하는 건 지휘자들만으로 충분하다.

“흐음.”

그래서 미리 준비해둔 잔을 꺼내며 머신을 조작했다. 이런저런 기능으로 복잡한 기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능숙하니 버튼을 만졌다. 먼젓번에 넣어둔 원두를 돌려서 추출하더니, 근사한 에스프레소를 한잔 멋지게 뽑아냈다.

겉모습만 보면 어디 유명한 카페의 잘생긴 바리스타로 착각할 만큼 유려한 동작이었다.

“커피 좋아해요?”

이윽고 잔을 든 그가 침대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에스프레소 리스트레토인데.”

이불을 끌어안은 은하는 자는 척 몸을 뒤척였다. 이미 깨어난 걸 눈치챈 도윤을 상대로 눈을 힐끔 떴다가, 곧 시선을 마주하고 화들짝 눈을 감았다. 그대로 잠꼬대인 척 무마하려 들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잘못 봤나?

곯려주고 싶을 만큼 퍽 귀여운 모습이었다.

“분명 일어난 것 같았는데.”

그래서 도윤은 짓궂게도 그렇게 운을 띄웠다.

“으, 으음…….”

“잘 됐다. 그럼 자는 사이에 한판 더 해야지.”

“……아, 잘 잤다!”

정말이지 안쓰러울 정도의 연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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