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 「No.001 스튜어디스 홍은하」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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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끈한 열기가 정사의 무르익음을 증명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콧대 높던 승무원은 가까스로 절 속박한 사내에게서 벗어났다. 딴에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헤치고 역전할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사실 승부는 이미 진작에 판가름 난 지 오래였다.
임기응변은 임기응변일 뿐이었기에.
제 외모와 능력만 믿고 자존심을 내세웠던 그녀와 달리, 도윤은 은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때를 준비하고 있었다. 애당초 배경에서부터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지 않았나. 하물며 그러할진대 준비성마저 이렇듯 차이가 났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침대 밑으로 내려가.”
“부, 분명 쉬게 해준다고…….”
그 말을 듣고 난 도윤이 차분히 응시했다. 평소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은하는 그 시선을 맞을 때마다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아가 겨우 그런 무언의 압박에 죄책감까지 느꼈다.
“그새 반말이네.”
“내가 더 나이 많잖아……!”
그렇게 말대꾸를 하면서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해일처럼 몰아친 쾌락의 파도가 전신을 뒤집어놓았다. 겪어본 적도 없고, 견뎌본 적도 없는 공격이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아끼던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휴식을 청한 것이었다.
“그런 게 중요해?”
바깥에선 중요했다. 그러나 안에선 아니었다. 슬그머니 눈치를 본 은하가 쭈뼛거리며 바닥으로 내려갔다. 이대로 계속 심기를 거슬렀다간 또 쾌락 어린 지옥에 파묻힐지도 모른단 두려움 때문이었다.
“무릎 꿇어.”
저보다 다섯 살은 더 어린 남자였다. 그런데도 도윤에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능청스러움이 있었다. 굳이 패인이랄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리라.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부잣집 도련님일 거라 여겼는데,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잘생긴 얼굴, 조각 같은 몸매, 어마어마한 재력.
누구나 한 번쯤 갖기를 소망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모두를 갖춘 사람이란 정말이지 찾기 어렵다. 설령 찾더라도 실망스러운 인성을 지녔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윤은 달랐다. 소탈하고 사려 깊은 그는 그럴 수 있음에도 함부로 남의 위에 서려 하지 않았다.
“잘 봐, 네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다만 이렇듯 명분과 실리가 충분할 때만 사정없이 군림할 뿐이었다.
“밖에서 얼마나 잘나가는진 중요하지 않아. 나는 네게 몇 번씩이나 기회를 줬어. 그리고 넌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걸 걷어찼지. 정중히 사과해달란 내 요구를 묵살한 게 바로 너 자신이었음을 잊지 마.”
“그, 그렇지만 쉬게 해준댔잖아…….”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하지만 계속 그렇게 반말을 하면 또다시 힘들게 할지도 모르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도윤이 두 손을 내밀었다. 영문도 모른 채 무릎을 꿇게 된 은하와 깍지를 낀 채 맞잡았고, 그대로 마주하여 교감했다. 그렇게 휴식 아닌 휴식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자, 이제 쉬어도 좋아.”
앞선 정사로 번들거리던 좆이 은하의 얼굴 바로 앞에 있었다. 입술에서부터 콧대를 따라 이마까지 가로지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시원하게 사정하고 난 뒤였을 텐데도 어찌나 맥동하던지 그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낄 정도였다.
“아…….”
무릎을 꿇으라고 한 순간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다. 적어도 제 양손을 붙잡기 전까진 깨달았어야 했다. 도윤은 지금 기내에서, 백화점에서, 그리고 여기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절 앙앙 울부짖게 만들던 물건이 떡하니 시야를 가로막는 판국이다. 열락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선 강렬한 자극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위치도 절묘히 제 눈높이보다 조금 위에 자리를 잡아, 암만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싫은 냄새, 여야 하는데…….’
은하가 움찔거렸다. 너무 잔인한 휴식이었다. 몸을 섞는 내내 맡았던 은은한 체취가 신경을 건드리는가하면, 사정 후 풍기게 된 강렬한 냄새가 정신을 쏙 빼놓았으니까. 거기다 화룡점정 격으로 제 자궁 깊숙이 싸질러진 정액은 무릎을 꿇으면서 주르륵 떨어지기까지 했다.
‘이러니까 마치 숭배하는 거 같잖아…….’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질색해도 소용없었다. 시각을 버려봤자 후각만 더 예민해질 뿐이었다. 애초에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도록 된 구조였다. 휴식을 빙자한 이 행위의 진짜 이름은 세뇌였으니까.
“그만, 이제 그만…….”
“딴소리하지 마. 쉬게 해달라고 한 건 너였어.”
“싫어, 흐윽, 이런 건줄은 몰랐어…….”
도윤이 침묵했다. 이제는 따로 반말을 지적할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 깨닫는 게 아니고서야 교정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으니까. 은하가 마지막 수단으로 깍지 낀 손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한참을 발버둥치다가, 그러고도 꿈쩍하지 않는 수컷의 완력을 실감하고서야 무너져내렸다.
“아직도 네 자존심이 더 중요해?”
짓궂은 물음이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자존심을 다시 한번 짓밟은 행위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악랄한데, 은하 스스로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아니, 요…….”
연하여도 상관없다. 그런 건 바깥에서나 따질 덕목이다. 은하가 비로소 진심으로 존댓말을 했다. 완연한 제 패배를 인정했다.
한낱 암컷으로 전락한 절 돌아보았으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오싹해하며 기다렸다.
“그대로 입 맞춰, 그럼 놓아줄게.”
잠깐동안 주저한 은하가 곧 끄덕였다. 뒤늦은 열패감에 전의를 상실하고 제 위에 선 수컷의 명령을 따랐다. 붉은 입술을 살짝 오므린 뒤 음낭에서부터 등산하듯 힘겹게 남근을 올랐다. 그리하여 등반한 귀두에서 아양하듯 요도에 입을 맞췄다.
“멈추랄 때까지 계속해.”
겉물과 정액으로 반들거리는 입술이 실로 배덕했다. 꺼떡거리는 물건을 상대로 반복하긴 쉽지 않았을 텐데도, 갖은 노력과 함께 애를 쓴 은하는 기어이 성공하고 말았다.
쪽, 쪽, 쪽.
첫 경험인 그녀에겐 과할 정도로 자극이 센 일이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우악스러운 관계여서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상하관계는 분명했지만, 도윤은 은하에게 군림하면서도 그녀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착하네.”
“읏…….”
말로도 쓰다듬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의지하도록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뒤늦게 떠올려보면 저를 관통할 때 역시 전희에 공을 들이지 않았나. 도윤은 단지 제 욕정을 풀기 위해서 자신을 범하는 게 아니었다.
“다섯 번만 더 하고 입 벌려.”
“쪽, 쪽…….”
“혀 내밀고 그대로 날 올려다봐.”
몸만 원했다면 재력으로 충분했다. 마음만 원했다면 얼굴로 차고 넘쳤다. 그러나 이렇듯 제 모든 걸 다해 부딪히는 건 둘 모두를 원해서였다. 홍은하라는 여성의 모든 걸 손에 넣고 지배하길 원해서였다.
울컥, 울컥.
박동을 느낀 은하가 흠칫했다. 세 번째 입맞춤을 끝마쳤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연이은 네 번째엔 음낭이 올라가며 신호를 주었고, 대망의 다섯 번째엔 희고 탁한 정액을 한차례 토해냈다.
“아으, 헤에…….”
이제 혀를 내밀 차례였다. 황급히 입을 벌린 그녀가 제 혓바닥을 밑입술 너머로 융단처럼 내리깔았다. 우스꽝스럽지만, 그렇기에 정복감을 안겨다 주는 표정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사정을 받아냈다.
“잘했어.”
“이제, 놔주세요…….”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은하는 좌절 어린 눈빛으로 신음했다.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호전되진 않은 차였다. 두 번의 사정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강직한 물건에 반해, 저는 너무 많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약속, 했잖아요…….”
따끈따끈하니 갓 사정된 정액이 얼굴에 듬뿍 얹어진 차였다. 그 열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데, 냄새마저 더욱 강렬해졌으니 이성을 붙잡기가 어려웠다.
“아직 안 끝났어. 가르쳐줬잖아.”
도윤이 은하를 아까처럼 차분하게 응시했다. 분명 그 또한 수컷으로서 나름대로의 쾌감이 있었을진대, 별로 성에 차지 않는단 듯이 평정한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다시금 은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아, 그러니까…….”
오만 생각 끝에 제가 받은 교육을 떠올린 은하가 덧붙였다.
“사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소 절 붙잡고 있던 손이 풀렸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였다. 그러나 막상 되찾고 나니 어쩔 줄을 몰랐다. 멍하니 무릎을 꿇고 앉은 은하가 넋 나간 사람처럼 멀뚱거렸다. 그러다 침대 옆에 놓인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옅으나마 쾌감 섞인 눈물로 번진 화장.
몇 차례에 걸쳐 여기저기 흩뿌려진 정액.
립글로스를 바른 것처럼 반들거리는 입술.
어느 것 하나 야하지 않은 게 없었다. 늠름한 수컷에게 정복되었음을 시사하는 제 꼴이 몹시 참담했다. 그래서 결딴난 그녀의 자존심은 다시금 회복할 기미와 함께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이성이 그것을 억눌렀다.
“좀 쉬어. 시간은 많으니까.”
침대에서 일어난 도윤이 자그마한 미니바로 향했다. 몇 배는 더 비싼 값이 매겨진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잘 빠진 근육질의 남성이 나신으로, 목젖을 드러내며 물을 들이켜는 모습이란 대단히 뇌쇄적인 광경이었다.
“또, 해요……?”
“글쎄, 네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렸지.”
필시 저와 같은 강행군이었다. 장장 16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그의 집에서 만난 뒤론 계속 함께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노곤함에 나가떨어진 은하와 달리 도윤은 여전히 멀쩡했다. 잠자리에서조차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제 체력을 과시했다.
“피곤, 한데…….”
“그래?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데이트를 이대로 끝내긴 아쉬운데.”
은하가 새삼 절 어루만지던 수컷의 우위를 느꼈다. 짓궂은 웃음과 함께 던진 덫에도 어쩔 수 없이 걸려버리고, 관계의 지속을 기약하며 내뱉었다.
“하, 한 번이 아니면 되는 거죠?”
“어기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약속, 할게요…….”
도윤이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바닥난 그녀의 신뢰를 이유로 들어 조금 특별한 도장을 찍게 만들었고,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기어이 한 번을 더 사정하고 나서야 은하를 풀어주었다.
“사정, 읏, 해주, 셔서, 가, 감사앗, 합니다아…….”
보람찬 하루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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