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발밑에 모든 권력을-31화 (31/31)

〈 31화 〉 외전. 천 년 전의 과거 (31)

* * *

눈을 감고 바란다. 이만 겨울이 물러나기를. 나의 딸에게 봄과 여름의 꽃을 보여주기 위하여.

황태자는 방법을 모색했다. 눈을 감고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하계의 왕자란 무엇인가. 그는 온 세상의 슬픔과 근심을 끌어 모으는 존재.

처음부터 이 세계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인간들 스스로가 존재의 모순을 견디지 못한 탓에.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 살아서 기껏 일구어놓은 것조차, 죽어서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이 존재의 무의미함이라는 수수께끼에서 인간을 떨어뜨려 놓는 존재가 하계의 왕자였다.

끝없는 겨울은 인간의 나약함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그것을 방파제인 황태자가 막아내고 있었는데, 지금 방파제가 무너져버렸다.

존재의 모순을 견디던 황태자, 그의 영혼이 일련의 사건을 거쳐 깨져버렸기 때문에, 황태자가 마음을 다잡는 정도로는 겨울을 물러나게 할 수 없었다.

결국 하계의 왕자 자리를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인간의 긴 역사와 맞물려, 눈덩이처럼 커진 저주는,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유독 황태자가 특출 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출 났다. 이 만큼 오래도록 존재의 저주를 껴안고 버틴 사람이 없었다.

바라노니 지혜를.

어찌하여야 이 세계의 근심과 슬픔을 거두어들일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 답보하였다. 고민을 안고 고심하다 황태자는 선잠이 들었다.

의식이 깨어있는 채로 끝없이 심연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리고……

***

‘여기는…….’

눈을 뜨니 꽃이 피어있는 정원이었다.

꽃은 오랜만이군.

정원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 나시스플로라를 만져보려 했으나, 손이 꽃을 그대로 투과하였다.

이곳은 황태자의 과거 혹은 먼 미래. 황태자는 불청객이었다.

세계는 황태자의 간섭을 바라지 않았다. 황태자는 유령이 되어 정원을 거닐었다.

문득 목소리가 들렸다.

“어마마마! 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봄이에요!”

“그러게요, 우리 태자. 으음∼. 향기로워라!”

“꽃들도 예쁘지만, 그 가운데서 어마마마가 가장 예쁜 것 같습니다!”

“어쩜! 과한 칭찬이에요, 태자. 하지만 기쁘네요. 누굴 닮아서 이리도 말을 예쁘게 하는 걸까요?”

“어마마마를 닮아서겠죠!”

어린 소년이 어머니 앞에서 애교를 부렸다. 그런 아들이 몹시 사랑스럽다는 듯, 어머니는 소년을 꼬옥 끌어안고 뺨을 부볐다.

‘저 소년은…… 누구지?’

소년은 봄의 햇살 아래서도 검푸르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오도록 길러선, 가지런히 머리끈과 함께 묶어놓았는데, 언뜻 보면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 같기도 했다.

귀여운 얼굴에, 얼굴만큼 귀염성 넘치는 애교쟁이였다.

순백의 실크 드레스에, 은빛 머리카락의 어머니는 아들의 애교에 살살 녹아나고 있었다.

행복해보이는 모자였다.

“황후 전하~~! 헥헥! 지금 태자 전하와 노닥거리실 시간이 없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또 사고를 치셨습니다!”

“뭐엇!? 이 인간이 또! 내가 진짜 제 명에 못 산다니까!”

아쉽게도 모자의 산책 시간은 짧았다. 뭔가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미안해하며 아들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태자. 아무래도 이만 돌아 가야할 것 같아요.”

“다녀오세요, 어마마마. 저는 이 봄의 정원을 좀더 둘러보고 싶사옵니다.”

“이잉! 우리 귀여운 태자를 어떻게 혼자 두고 가나요? 몸도 약하면서.”

“으으. 너무 끌어안지 마세요. 덥사옵니다, 어마마마. 얌전히 여기서 기다릴 터이니, 사람 아무나 불러 주세요.”

소년은 봄을 더 즐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강제로 바쁘신 어머니를 떠나보내려 들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마마마. ‘저것’은 제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까요.”

소년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아.’

황태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황태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 많은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황태자의 모후 소피아 아르첼처럼 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북방계의 미인.

아니, 정확히는 소피아 아르첼 본인이었다. 아들을 사랑하고, 다정다감한 남편이 있으며, 현후로서 존경받는 세계선의 소피아 아르첼.

그러나 눈 색만은 이질적이게도 ‘은회색’이었다.

‘어마마마의 눈 색은 맑은 하늘빛이었지. 닮은 사람일 뿐, 나의 어머니는 아니야.’

이쪽 세계의 소피아 아르첼이 황태자에게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인사 올렸다.

“황후 전하? 지금 무엇을 보시고……”

“아무 것도 아니에요, 테르디나 양. 그보다 어서 아슬란이 있는 곳으로 가죠.”

은회색 눈의 소피아 아르첼과 테르디나라는 이름의 시녀가 떠나갔다.

정원에 실체 없는 유령이 된 황태자와 검고 긴 머리카락의 소년만이 남았다.

먼저 소년이 말했다.

“뭘 멀뚱멀뚱 서 있는 거야? 왔으면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예의지!”

꽤나 무례한 꼬맹이였다. 하지만 여기선 황태자가 손님이었으므로, 그는 앞으로 나아 가, 소년에게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부서져버린 영광’이야.”

“…….”

소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싫음이나 불쾌감을 표하는 건 아니고, 그저 놀란 듯했다.

“대단해! 그런 멋진 자기소개는 처음 들어 봐!”

황태자로선 자괴감 곱씹는 자기표현이었으나, 앞의 소년은 퍽 인상 깊게 받아들였다.

연신 감탄을 표하고는 그도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카이‘세’리아의 황태자. 황제 아슬란의 유일한 적장자이며, 미래의 황제. 카이세리아의 제1 시민이자 민중의 보호자이며, 제국의 일곱 번째 군 지휘관이자 이프리타니아의 총독. 덤으로 황태자궁의 악동이란 별칭도 있어.

이름은, 음, 그래! ‘어둠 속의 샛별’이야. 샛별은 희망의 상징이지. 나는 어마마마께 희망이자, 바람이자, 보람이었기 때문에, 어마마마께서 이런 멋진 이름을 붙여 주셨어.”

소년은 으스대었다. 꽤나 말 많고, 잘난 체 심한 녀석이었다.

자기도취가 심해보이니 그 뜻을 존중해주고 싶지만, 일일이 그를 황제 아슬란의 적장자, 어쩌고저쩌고 샛별이 하고 불러주긴 입이 아파 힘든 일이었다.

소년 자신도 잘 알기에, 결국 스스로 호칭을 축약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슈발츠­루시페르 폰 카이젤린베르크. 그게 바로 내 이름이야. 앞으로 짧게 슈발츠라고 불러줘.”

슈발츠……라는 이름이구나.

아마도 이 아이는 황태자의 직계 후손.

그리고 이곳은 카이사리아가 카이세리아가 될 정도로 머나먼 미래.

황태자는 이만 자신의 먼 후손에게 별명이 아닌, 진짜 이름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내 진짜 이름은……”

“클로비스. 맞지?”

“똑똑한 아이로구나. 맞아. 내 이름은 클로비스­아르슬란 폰 레인힐트.

한 때, 제국의 영광이라 찬양받았으나, 스스로 영광을 부셔버린 망국의 왕이야.”

***

클로비스라는 이름에는 영광스런 전사라는 뜻이 있다. 이름 그대로 카이사리아의 황태자 클로비스는 전사였다.

세계의 근심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쉴 새 없이 싸웠다. 그러다 부서졌다.

때문에 그의 이름은 부서진 영광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음. 그랬구나. 베일에 싸여있던, 옛 제국이 멸망한 이유를 마지막 황제 본인에게 듣게 되다니. 신기하넹.”

카이세리아의 황태자, 어린 왕자 슈발츠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정신 사납긴 하지만, 나름 슈발츠 본인은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슈발츠의 긴 머리카락이 클로비스의 턱과 가슴을 간지럽혔다.

슈발츠에게도 신비스러운 힘이 깃들었는지, 소년은 클로비스를 만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어리광쟁이는 클로비스의 품에 쏙 안겨, 옛 전설을 경청하고 있었다.

남자 아이인 주제에 제법 귀엽군. 그리고 껴안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평온해진다.

“너에겐 내가 멸망한 옛 제국의 망령일 지도 몰라. 하지만 나에게 카이사리아는 현실이다.”

“미안해. 실언이었어. 형을 화나게 만들려고 한 건 아니야.”

끝없는 겨울에 클로비스의 세계가 부서졌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죄 없는 희생자들에겐 미안하지만, 클로비스가 망가진 것은 필연이었다. 클로비스 또한 나약한 인간이었다. 존재의 버거움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던 겨울이 물러나는 것도 필연이었다.

방법은 아직 모르지만, 겨울은 물러난다. 그 증거로, 이렇게 클로비스의 후손인 슈발츠가 존재한다.

“화나지 않았어. 다만, 조금 질투를 할 수밖에 없게 되네. 슈발츠, 너의 영혼은 맑구나. 사랑받고 컸다는 게 느껴져.”

클로비스의 세계와 다르게, 슈발츠의 세계는 안정적이었다.

그릇 자체는 컸지만 불안정했던 클로비스였다. 반면에, 슈발츠는 영혼의 그릇이 단단하고 안정적일 뿐더러, 그릇의 크기조차도 클로비스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클로비스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슈발츠. 너의 어머니는 너를 사랑하시지?”

“응!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다정하신 우리 엄마야!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주셔!”

클로비스는 슈발츠의 뺨을 만져 보았다. 부드러웠다. 상처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슈발츠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손찌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마마마뿐만이 아니야! 아바마마도 나를 사랑해주셔! 그리고 외삼촌이랑 이모도! 또 유모랑, 황태자궁의 시녀들이랑……”

“외삼촌에, 이모라…….”

클로비스는 가지지 못한 존재였다. 클로비스의 아버지는 어머니 쪽 가문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으니까.

클로비스의 어머니는 전리품이었다. 그 탓에 아들을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클로비스는 슈발츠의 뺨을 계속 매만졌다.

나도 너처럼 사랑받고 컸다면 안 망가지지 않았을까. 그런 시커먼 어둠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할 때쯤.

불쑥 슈발츠가 돌아섰다. 클로비스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나 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어.”

“그래. 행복했겠구나.”

“그래서 말인데……. 나 이 사랑을 모두에게 돌려주고 싶어. 내가 사랑받아 행복했던 만큼, 똑같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나는 반드시 카이세리아의 성왕이 될 거야.”

슈발츠는 클로비스 앞에서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형은 내 머나먼 조상님이지? 그거 알아? 내가 누리는 이 행복한 세상은 형이 물려준 것이기도 해.

형이 이 세상을 지켜주었어. 감사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 정말 고마워! 클로비스!”

“못 당하겠구나. 너를.”

슈발츠의 싱긋 웃음 한 번에 클로비스는 질투의 감정을 잃었다.

깨달은 것이다.

슈발츠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품이 맑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여 클로비스는 말했다. 심술궂게.

“나는 나의 세계를 지키지 못했다니까. 망할 꼬맹아.”

“으에에~ 꼬집지 마아∼.”

이만 클로비스는 슈발츠의 양 뺨을 꼬집던 손의 힘을 풀었다.

“너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나의 세계를 지킬 방법이 있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직 방법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나의 세계에서 겨울을 몰아낼 수 있을까?”

바라노니 지혜를.

클로비스의 소망이 슈발츠에게 공명하여 끌려왔다면, 답은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부디 바라노니 지혜를.

클로비스는 슈발츠의 맑고 검은 눈을 바라보았다.

“형은 내가 답을 알고 있다 생각하는구나?”

“응.”

어린 아이에게 답을 구해야 할 정도로 클로비스는 몰려 있었다.

영혼이 깨어졌다. 깨어진 영혼을 수복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차선은 후계자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영혼의 격이 맞는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 하나같이 모자란 인간들뿐이었다.

겨울이 왔다. 끝없는 눈이 내린다. 클로비스의 마음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작은 불씨가 남아, 그것이 속삭였다.

‘아바마마. 저도 은방울꽃이 보고 싶어요.’

딸이 봄과 여름을 보고 싶어 했다.

“가르쳐주렴. 어둠을 가르고 태어난 샛별이여. 미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불꽃이여.

나 홀로 짊어져야 했던 슬픔을 어찌 하여야 몰아낼 수 있는지를.”

애절히 클로비스는 탄식하였다. 무너져 내려선 그의 세계를 1600일 가까이 방치했다. 그런 주제에 이제와 걱정하는 척 하고 있었다.

신민들의 처절한 아우성 때문이 아니라, 딸 아이 하나 때문에. 그 아이에게 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제 와 구원을 바란다는 건 위선일지 몰랐다. 그럼에도 클로비스는 구원을 바라였다.

그 누구보다도, 용서받길 바라였다.

부서진 영광은 어둠 속 샛별의 두 손을 잡았다. 영혼이 공명했다. 클로비스의 죄가 절절히 슈발츠에게 전해졌다.

부친 살해. 어머니와의 근친상간.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자기 합리화.

추한 과거가 샛별 앞에서 낱낱이이 까발려졌다.

슈발츠는 클로비스의 두 손을 떨어뜨려 놓았다.

부서진 영광은 마지막 희망에게도 버려지는가.

“클로비스. 나의 머나먼 조상이여. 내가 해줄 말은 이것뿐이라네.

외삼촌이신 실프러시아 대공께서 말씀하셨지. 슬픔을 나누면 배가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반이 된다. 합쳐서 배반이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선의를 배신하고, 희생을 강요한다.

클로비스가 생애 내내 겪어온 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어.

“거꾸로…… 아닌가?”

클로비스는 자신도 모르게 반박하고 말았다.

기쁨은 혼자 독차지하려 들고, 슬픔은 남에게 전가하는 게 인간이라지만.

아니다.

클로비스는 도리질 쳤다.

기쁨은 나누고 베푸는 것이다. 슬픔은 함께 짊어지며 지워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이다.

“거봐. 클로비스. 겉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형은 인간이 지닌 이타심의 증거야. 형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리 오래 홀로 슬픔을 꾹꾹 눌러 참지 않았겠지.

자. 스스로가 믿는 대로 우리 외삼촌의 거짓된 명언을 고쳐보자. 무엇이 나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그래! 바로 그 거야!”

어둠 속의 샛별이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까르르 웃었다.

“아니야, 슈발츠. 아직 난 잘 모르겠어.”

“음. 이미 충분히 알아들을 만큼 설명한 거 같은데?”

직접 답을 말하지 않음은 슈발츠 나름의 심술이었다. 감히 자신의 뺨을 꼬집은 벌.

“태자 전하~~~!! 어디 계십니까? 이만 튀어 나오십시오. 전 숨박꼭질 별로 안 좋아한단 말입니다!”

마침 어마마마께서 보내온 여기사가 슈발츠를 찾으러 왔다.

이를 빌미로 슈발츠는 달아나버렸다.

“지나!”

여기사의 이름은 지나. 이국의 용병 출신. 그리고 슈발츠가 좋아하는 사람.

“으휴! 또 어딜 쏘아 다니던 겁니까?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

“걸리면 좋지. 지나가 날 걱정스레 꽉 안아 줄 테니까.”

“만약 그랬다간 제가 또 황후 전하께 까인단…… 떨어지십시오. 또 황태자비가 되어달라는 괴상망측한 농담을 한다면, 엉덩이가 네 쪽이 되도록 때려드릴 겁니다.”

“아아앙! 왜 싫다는 건데!”

클로비스는 멀리서 슈발츠와 지나라는 이름의 여기사를 관찰했다.

‘누구지?’

처음 보는 특이한 여자. 장미처럼 붉은 머리카락에 갈색 피부를 가진 이국인이었다.

거친 삶을 살아온 듯, 몸에 군데군데 흉터가 있었다. 키도 크고, 남자 저리가라 싶을 정도로 근육도 빵빵.

카이사(세)리아의 정통적인 미인상과는 천만년 쯤 동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약동하는 생명력이 느껴졌다. 이쪽 세계의 황태자, 슈발츠도 사랑에 빠진 듯한 눈빛을 지나라는 여기사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렇군. 저 사람이 바로 슈발츠, 네가 선택한 별의 불꽃이로구나.’

여자 쪽에서 질색을 하는 것을 보니, 슈발츠도 마냥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아닌 듯했다.

그래.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사랑이 아니지. 고생 꽤나 해보라지.

이만 클로비스는 뒤돌아섰다. 샛별은 수수께끼만 던지고 달아났으니, 이 꿈속 세계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도 없다.

꿈에서 깨기 전까지, 클로비스는 봄의 정원을 산책했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대체 무슨 뜻일까……. 잠깐. 슬픔을…… 나눠?”

클로비스가 샛별이 남긴 수수께끼의 정답에 성큼 다다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