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외전. 천 년 전의 과거 (12)
* * *
“한겨울에 목련이라니. 신기하네요.”
침실 맨 오른편 창가. 목련꽃 핀 나뭇가지 하나가 화병에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에스텔은 자기 닮은 그 꽃을 톡톡 건드려보았다.
“황궁 내 수목원 유리 온실에서 키우던 거야. 꽃잎이 희고 순수한 것이, 마치 기도하는 성녀처럼 아름답지.”
알몸의 성녀를 바라보며 황태자가 말했다.
목련이 성녀를 연상케 한다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
성녀 에스텔은 목련을 많이 닮아 있었다.
머리카락이 희고, 속눈썹도 희고, 살결조차 희고 하얬다.
“후훗.”
성녀는 웃음마저도 하얬다.
신성력을 회복한 에스텔은 과거처럼 예쁘고 순수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목련이 마치 기도하는 성녀 같다라. 멋지고, 아름답고, 정말 시적인 표현이에요. 그런데 그거, 저를 비꼬시는 거죠? 태자 전하.”
에스텔은 바닥에 떨어진 목련 꽃잎을 주워,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진 목련 꽃잎은 갈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목련의 생리가 그러하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 적엔 희고 성스러운 자태를 유지하다가, 바닥에 떨어지면 추하게 썩어 문드러진다.
저기 희고 성스러운 성녀 또한 그랬다. 에스텔은 어젯밤 황태자와 함께 침대 위에서 나뒹굴었다.
가늘고 하얀 다리 사이의 음부에, 두 손가락을 넣어 벌리면 드러나는 작은 동굴에 황태자의 물건이 꽂혀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목련 꽃잎처럼 성녀는 더럽혀졌다. 남자에게 안겨 헐떡였다.
하지만 에스텔은 단순히 육욕에 눈멀어 황태자에게 안긴 게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녀로 돌아오기 위한 희생제의.
“살아나거라.”
에스텔이 손에 쥔 목련 꽃잎을 후 불어 날려 보냈다. 성녀의 숨결과 함께 날아오른 꽃잎이 살랑살랑 활공하여, 침대가의 황태자, 그의 손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믿을 수 없게도 목련 꽃잎은 희고 성스러운 자태를 되찾아 뽐내고 있었다.
“어때요? 신기하죠?”
황태자는 목련 꽃잎을 구겨버렸다.
“반신반의했는데, 진짜로 되네. 어이가 없어서, 정말.”
황제가 말했다. 에스텔을 황태자가 안아주는 것으로, 그녀는 잃어버린 신성력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왜냐하면 황태자가 이곳 하계의 주인이기 때문에.
하지만 황태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억이 없었다. 세계를 만든 적 없고,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든 적도 없다.
뜬금없이 아버지께서 ‘네가 바로 신이다.’ 라고 하시는데, ‘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 아들은 없을 것이다.
놀람보다는 짜증남. 자신도 모르던 억대의 빚을 상속받은 듯한 느낌이라, 기분이 영 별로였다.
“나는 신이 아니야. 결코.”
“이 기적을 눈앞에 두고도 그리 말씀하시다니. 자기혐오일까요?”
“나는 인간이야. 신은 존재하지 않아.”
“아아. 태자 전하. 방금 그 말씀은 투정일까요, 심술일까요?”
에스텔은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역시나 성스럽다.
신성력을 되찾은 에스텔은 여유 또한 되찾았다. 한때 사로잡혔던 광기도 언제 있었냐는 듯 지워졌다.
그래서 아름답다.
“태자 전하의 뜻대로, 되찾은 신성력으로 저는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가련한 어린 양들에게 기적을 베풀겠나이다.”
“이제 눈이 그칠까?”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혹독한 겨울이 반복되었지요. 이제 괜찮습니다. 앞으로는 눈이 그치고, 포근한 겨울이 이어질 겁니다.
그 증거로…… 이렇게 눈이 그쳤잖아요?”
그녀가 단언한 순간, 창밖의 눈이 거짓말처럼 그쳐버렸다.
방 안으로 맑은 햇빛이 쏟아져, 에스텔의 머리 위를 후광처럼 장식했다.
에스텔이 겨울을 지운 것이다. 그녀가 내저은 작은 손짓 한 번에 겨울이 물러났다.
“천상에 계신 여제께 맹세코 올해는 풍년일 겁니다. 대규모 감사제를 준비하셔야겠네요. 카이사리아의 모든 땅들은 축복받을지어다.”
“카이사리아 너머 저 멀리 영구 동토까지 축복받을 수 있을까?”
“욕심도 많으셔라. 그런 전례 없는 대규모의 기적을 베풀었다간, 이번에야말로 쪼글쪼글 할머니가 되어버릴지 모르겠어요.”
에스텔은 난처해하지 않았다. 그저 꺄르르 웃었다.
“분명 또 신성력이 텅 비어버릴 거예요. 비어버린 곳간을 다시 채워주실 거라고 약속해주실 수 있나요?”
“…….”
에스텔은 동의 없이, 부끄러움 없이 황태자에게 다가와 안겼다.
그녀의 뺨은 황태자의 가슴에 닿고, 다리 사이의 은밀한 속살은 황태자의 허벅지에 닿았다.
“제발 그러지 마라. 제발.”
“이상하네요. 저는 좋았는데, 황태자 전하께선 싫으셨나요?”
아니다. 그도 좋았다.
에스텔의 하얀 머리카락을 보면 황태자도 욕망이 일었다.
그녀를 껴안을 때마다 마음이 눅진눅진 녹아버리는 것 같아서, 계속해서 껴안고 싶어졌다.
“앞으로 교단의 견습 성녀들을 보내드릴게요. 성녀들을 가득 채워 주세요. 그녀들이 이 세상에 기적을 베풀 수 있도록.
혹시 태자 전하의 취향이 어떻게 되세요? 마른 여자가 좋으세요, 아니면 풍만한 여자가 좋으세요? 최대한 편의를 봐드릴 테니……”
“아무도 보내지 마라.”
황태자는 에스텔의 말을 잘랐다. 에스텔의 어깨를 붙잡고 애처롭게 빌었다.
“사랑 없이 타산적인 관계 따위 맺고 싶지 않아.”
황태자비 위나 아르페지나가 싫고, 황실근위기사단장 율리아 게일포드가 거북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 둘은 자꾸 황태자에게 무언가 요구해온다.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지, 황태자의 고민과 번뇌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곤란하네요. 성녀들의 텅 빈 곳간을 채워주셔야 할 당신께서, 이렇게 미적대고 계셔서야.”
에스텔도 알고 보면 다른 계집들이랑 똑같았다. 그녀는 황태자의 은혜로 신성력을 회복하길 원했지, 진심으로 황태자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알아.”
언제나 그랬듯, 정의와 공리라는 두 명제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황태자의 선택은 공리다.
에스텔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그 기적으로 카이사리아의 백성들을 구원할 것이다.
에스텔은 치유의 성녀였고, 정화의 성녀였고, 구원의 성녀였다.
“알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면 저를 마저 채워주시겠어요?”
방금 이 일대의 겨울을 지워버리는 기적을 일으킨 에스텔이었다. 그 만큼 에스텔의 신성력이 사용되었고, 비어버렸다.
한 번 능력을 잃고 방황했던 그녀라서, 티클 만한 그 공백조차 두려워했다.
성소로 돌아가기 전에 미리 신성력을 가득 채워 넣고자 했다.
“강요는 하지 않을게요. 마음 가는대로, 뜻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태자 전하.”
에스텔이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수줍게 고개를 돌리며 다리를 벌렸다.
“우리는 미친 것 같아. 아니, 신성력을 회복하는 방식이 이따위인 세계가 미친 걸까?”
“신성력만 회복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성소에 모인 병자들 앞에서, 힘을 잃은 저는 무력감만을 곱씹어야 했습니다.”
힘만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깟 순결 따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어제 황태자에게 안겼다.
기적 없는 신앙이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다신 반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
“그러니 안아주세요. 태자 전하.”
에스텔의 입을 떠난 짙은 호소력이 황태자를 뒤흔들었다.
여전히 에스텔은 성녀답지 않은 상스러운 자세로 황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명히도 보인다. 더럽혀지기만을 기다리는 목련빛 꽃잎이.
죄책감과 함께 황태자는 에스텔과 몸을 포갰다.
손가락을 깍지 껴 잡고, 입술을 탐했다.
이기적일 수 없어서 희생만 하던 두 사람이, 공리를 핑계 삼아 서로에게 빠져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기도록 해요.”
에스텔은 적극적이었다. 황태자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며, 끊임없이 유혹했다.
아직은 심리적 저항감이 큰 황태자라, 에스텔의 가슴이며, 엉덩이며, 이곳저곳을 매만지며 뜸을 들였다.
“으흠♡.”
에스텔이 식어버리길 바라였으나, 황태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에스텔을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황태자의 육신 또한 달아올랐다.
그도 남자였다.
정신적 거부감과는 달리, 그의 욕망은 에스텔을 바라보고 있었다.
“못 참겠어요. 이제 그만 넣어주세요.”
에스텔이 애원하며 황태자를 바랐다.
황태자는 망설이다가, 이내 자신의 두려움을 에스텔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야!”
“미, 미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에스텔은 어제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직은 남녀 간의 정사에 익숙하지 않았다.
비좁은 틈을 자비 없이 갈라놓은 물건 탓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변하지 않고 순수하게 남은 부분이 아직 있었구나. 왠지 안심이 되었다.
한결 여유를 되찾은 황태자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따뜻해.”
성녀님다우신 관용으로 에스텔은 황태자를 꼭 끌어 안아주었다.
그녀의 안은 뜨겁게 데운 목욕물 같았다.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아아.”
여전히 에스텔은 아파하고 있었다. 혼자 즐기려니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빨리 끝내주는 게 배려일 것이지만, 심장이 슬픔으로 꽉 찬 황태자는 좀더 길게 에스텔과 이어져 있고 싶었다.
좀더 대범하게 에스텔을 희롱해본다.
조심스럽게 허리를 받쳐 들고, 더욱 깊숙이 쑤셔 넣었다.
“아하♡”
방금 신음 속에서 쾌락이 묻어나왔다.
“좋아?”
“성녀된 몸으로 육욕에 빠져들어선 아니 되는데……. 네♡ 좋아요♡.”
성녀가 거짓말을 할 리 없거니와, 밑에서도 찔걱거리기까지 했다.
“다행이야.”
황태자도 좋았다. 거짓된 사랑을 입에 담는 관계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안식의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갔다.
이내 황태자가 에스텔의 속 깊은 면에 목련빛 수액을 쏟아 붓는 것으로,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났다.
***
“응어리진 마음은 이제 풀리셨습니까? 더 이상 꾀병은 소용없으세요.”
머리 위로 미사보를 드리운 에스텔이 황태자를 조용히 타일렀다.
에스텔은 이제 여자가 아닌,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황태자도 제국의 지배자로 돌아왔다.
“다시 이 세계의 부속품으로 돌아갈 때로군.”
짧고도 긴 휴식 시간이었다.
남들의 의심어린 시선을 피하면서, 성녀 에스텔과 침실에 단둘이 있으려면, 병을 핑계 삼을 수밖엔 없었으니까.
본의 아니게 꾀병을 부린 셈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황태자이기 때문에, 대책 없이 드러누워 버릴 수는 없었다.
에스텔이 황궁을 방문하기 전에, 산적한 정치 문제들을 미리 해결해두었다.
아르페지나 가문의 비대해진 힘에 제약을 걸었고, 의회도 열어 황실의 권위를 바로 세웠다. 귀족들이 자기들 잇속 채우는 용도로 악용한 대헌장도 파기해버렸고.
무늬뿐이었던 제국은 이제 진정한 제국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큰 틀은 이미 잡아두었고, 세부사항만 루진, 모렐, 율리아가 다듬으면 끝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역시 내가 문제로군.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중앙집권국가는 이상적인 철인군주를 필요로 하지. 그런데 나는 지금 언제 펑 하고 터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 상태야.”
황태자의 여동생, 황녀 아스트리아의 힘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녀는 흘러넘치는 황태자의 슬픔을 지우는 데에 실패했다.
황태자는 에스텔 앞에서 손을 두어 번 오므렸다 펴보았다.
“보이지? 이 탁하고 어두운 기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슬픔을 모으고 가두는 그릇에 금이 갔다.
슬픔이 스멀스멀 새어 나온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그릇이 완전히 깨어질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음, 사실 무슨 문제가 불거질지는 황태자도 몰랐다.
다만, 끔찍한 재앙이 벌어진다는 건 확실했다.
“저런. 한시라도 빨리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전하.”
성녀라는 명성에 걸맞게, 에스텔은 황태자에게서 새어나오는 검은색 기류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 에스텔과 살을 섞은 뒤로 기운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 전에는 타락의 징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검은 기운이 황태자를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대충 감이 잡힌다. 저 불길한 기운을 억누르는 방법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처럼 처녀를 제물로 던져주면 되는 게 아닐까.
더구나 황태자는 기적의 현현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에스텔은 황태자의 우려를 가볍게 흘려 넘겼다.
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나저나 태자 전하. 황제 폐하께서 이미 서거하셨는데, 보위에는 안 오르실 생각이신지요?”
한 순간. 훈훈했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네가 가로챘구나? 아바마마의 시신.”
황제 아슬란은 이미 죽었다. 황태자가 직접 죽였다.
알리바이도 느슨했고, 황제의 죽음과 자신의 범행쯤은 금방 드러날 것이라고 황태자는 생각했었다.
뒷처리가 미흡했던 건, 황태자가 자포자기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부친살해의 죄로 인해 권좌에서 쫓겨난다 해도, 그것으로 족하다 여겼다.
그 때의 황태자는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발견이 너무 늦는다 싶었지. 끝내 내 범행은 밝혀지지 않았고. 율리아 게일포드가 알아서 처리했나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군. 뜻밖의 개입이 있었어.
그래서 아바마마의 시신을 숨긴 이유가 뭐야? 내게서 대체 무엇을 원해?”
살벌해진 황태자의 눈초리를 피해, 에스텔은 겸손히 그녀의 하얀색 속눈썹을 내리 깔았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을 굽어 살피시는 우리들의 완전무결한 왕. 당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없길 바라였을 뿐이옵니다.”
황태자는 기적의 현현이었다. 천상의 여제께서 하계에 남긴 신앙의 증거.
에스텔은 황태자의 명예에 흠집이 나길 원치 않았다. 그는 무오해야 했다. 결점이 있다면 감추어, 없던 것으로 하고 싶었다.
“전하께서 바라신다면 진실을 밝히겠사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견으론, 진실이 영원히 묻히길 바랍니다. 이는 진실이 카이사리아에 혼란만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뿌리까지 썩었나 싶었는데. 다행히 기우였었나보군.”
부친 살해를 빌미로 하여 교권을 확장한다. 얄팍한 협박질을 했다면 오히려 황태자의 손에 교단이 박살이 났을 것이다.
에스텔이 진심으로 황태자를 돕고자 했기 때문에, 도리어 그녀는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었다.
“교단의 성의에 감사한다. 너희들이 일으키는 기적은 카이사리아에 도움이 되긴 하니, 나름 편의를 봐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전하.”
“아바마마의 죽음은 1년 뒤쯤에나 밝히도록 하지. 실족사, 자연사, 심장마비 등 그럴 듯한 이유를 아무 거나 붙여서.”
에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황제 폐하의 서거 소식을 1년 뒤로 미룰 필요가 있으세요? 황태자로서 대리청정 하는 것보단, 직접 황제로 군림하는 편이 국정 운영에 더 수월하신 텐데요.”
어차피 황제 아슬란의 죽음을 꾸며 발표할 거라면, 이르나 늦으나 똑같지 않을까.
오히려 발표를 늦춘답시고 진실을 숨기다, 더러운 파리들이 꼬일까봐 걱정스러웠다.
에스텔의 당연한 의문에, 황태자는 전연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내가 황제가 되면, 어마마마께서는 황태후가 되어버리시니까. 아직 젊고 아름다우신데, 황태후로 만들어 드리기엔 죄송스러워서.”
황태후란 단어는 어감이 영 안 좋다. 왠지 나이 지긋한 할머님을 연상시킨다.
아직 젊고 아름다우신 어머니께 황태후란 칭호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러하기 때문에 어머니께 붙은 황후의 칭호를 남겨두고 싶다.
기상천외한 대답에 에스텔은 웃고 말았다. 실례되지 않게 입가를 가리고 소리를 죽였다.
“재밌는 농담이세요. 태자 전하.”
농담으로 얼버무리시는 걸 보아하니, 뭔가 숨기고픈 노림수가 있으신 거겠지.
에스텔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