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발밑에 모든 권력을-2화 (2/31)

〈 2화 〉 외전. 천 년 전의 과거 (2)

* * *

황태자비 위나 아르페지나는 자신의 친오빠를 사랑한다. 그 더러운 창부가 침실에 자기 오라버니를 끌어들이며, 우리들의 성스러운 왕자를 모독하고 있다.

황궁 안팎으로 나돌고 있는 소문이었다. 황태자의 여동생, 황녀 아스트리아도 황궁 시녀들의 이 은밀한 속삭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를 사랑하는 여동생은 황태자를 사랑하지 않는 황태자비를 따로 불러 물어보았다.

“새언니. 당신의 그 못된 행실에는 이유가 있나요?”

대체 무엇이 불만이고,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글쎄? 아무 것도.”

황태자비 위나 아르페지나가 답했다. 그녀는 황녀를 상대로 푸른색 벨벳 부채를 펼치며 비웃음을 숨기는 것이었다.

“나야말로 묻지. 황녀 아스트리아.”

이내 부채를 접은 위나 아르페지나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는 나의 행동을 ‘못된 행동’이라며 비난하지만, 너는 자격이 없어.

우린 똑같잖아?”

황녀 아스트리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위나 아르페지나는 알고 있었다. 아스트리아가 친오빠인 황태자에게 품은 금기의 마음을.

금발 푸른 눈의 미녀 위나 아르페지나. 갈색 곱슬머리, 갈색 눈의 평범남 루진 아르페지나.

아르페지나 남매는 남매답지 않게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착하고 우유부단한 루진. 표독스럽고 오만한 황태자비 위나.

성격조차도 아르페지나 남매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흑발 흑안의 쌍둥이 남매. 성별만 다를 뿐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해. 그거 나르시즘이야?”

위나 아르페지나는 깔깔깔 웃어댔다. 근친상간이란 금기 앞에서, 루진과 위나는 서로가 너무 달라 남매로 볼 수 없었다는 변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황녀는 황태자를 너무도 많이 닮았다. 황제 아슬란에게서 이어받은 상처처럼 검은 머리카락.

하지만 미모는 황후 소피아 아르첼에게서 물려받았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지는데? 우리 잘나신 황녀 전하께서는 어쩌다 황태자를 사랑하게 되셨을까? 부끄럽지도 않아?”

“그 고결하고 맑은 성품을 누가 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스트리아는 변명했다. 오라버니를 오라버니로서 사랑할 뿐, 결코 남자로 보고 있지 않다고.

당연한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꾹 조여 오는 고통을 아스트리아는 느꼈다.

“아. 시시해.”

황태자비가 예의 그 말버릇을 입에 올렸다. 얼음 가시가 되어, 황녀의 상처를 들쑤셨다.

“나무라고 있는 게 아니랍니다? 여리고 애처로운 나의 시누이 황녀. 남매 사이라고 하는 금기의 커튼을 들추고 나면 네 오라버니, 황태자 또한 남자. 여인이 사내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지.

오히려 남매니까, 더욱 애틋하고 스릴 넘치는 사랑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오라버니 또한 남자. 이 말이 아스트리아의 머릿속을 빙빙 헤집고 다녔다.

“그만해요!”

아스트리아는 저항했다. 몸부림치며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정했다.

“이해할 수 없어요, 위나 아르페지나. 당신은 진심으로 당신의 친 오라버니인 루진을 사랑하나요? 설령 그렇다고 한다면…… 당신은 황태자비 자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었어요.”

이번엔 황태자비 위나 아르페지나가 아픈 표정을 지었다. 다시 부채를 펼쳐 자신의 아픈 표정을 감추었다.

부채 뒤로 위나 아르페지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부채를 접은 순간, 상처 받은 표정은 사라지고 오만하고 퇴폐적인 미소가 위나 아르페지나의 얼굴에 새로이 떠올랐다.

“황태자비의 지위는 아르페지나 가문의 권리니까. 이 좋은 권리를 내가 포기할 이유는 없어.”

아하하하!

위나 아르페지나는 비웃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오라버니도…… 남자?”

황녀 아스트리아는 황태자비가 던져주고 간 수수께끼 때문에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다.

***

황태자는 황제 아슬란을 만났다.

카이사리아 국정 전반에 걸쳐 보고 드릴 일이 많았다.

어쨌거나 아직 황제의 위는 검은 사자 아슬란이 쥐고 있지 않은가.

애증의 아버지. 그러나 황태자는 아버지를 존중해 드리고 있었다.

“잡다구리한 잡일들은 전부 태자 네 뜻대로 하라 하지 않았더냐?”

찻잔을 내려놓으며 황제는 가볍게 응답했다. 전대 아르페지나 공작 프리울드에게 패하며, 송곳니가 뽑혀나간 아슬란이었다.

하지만 발톱은 건재하다. 쓰디쓴 패배에도 불구하고 아슬란은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게일포드 공작을 비롯한 소수의 황제파 귀족들이 여전히 그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폭군 아슬란을 견제하던 구국공 프리울드가 죽어버린 지금. 족쇄 풀린 사자가 포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국정 보고서를 쥔 황태자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카이사리아의 황제는 아바마마이십니다. 보아 주십시오. 올해 카이사리아의 작황이 좋지 않습니다. 과거보단 나아졌다고 하나, 집 없이 떠돌며 굶주리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곧 있으면 그들 모두 도적떼가 되겠구나. 간만에 도적 토벌이나 해볼까?”

굶주린 백성들이 도적 떼가 되기 전에 그들을 구휼한다.

굶주린 백성들이 도적 떼가 되길 기다렸다가 토벌한다. 군사 훈련을 겸해서.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시야가 이렇게나 달랐다. 그것이 누구보다도 사랑받는 왕자와 폭군의 차이.

“의회가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아바마마. 군사를 동원하는 일은 최대한 재고해주십시오.”

“제길! 빌어먹을 배신자 놈들! 벌레 새끼들이 감히!”

과거 황제 아슬란은 전쟁 영웅이었다.

실프러시아, 코르노올리, 를로기아 등의 이웃 나라가 대 카이사리아 동맹을 맺고 이 카이사리아를 침략했을 때, 위기의 카이사리아를 구한 사람이 황제 아슬란이었다.

검은 사자 아슬란이란 별명은 이때 탄생했다.

위기를 막아낸 아슬란은 역으로 카이사리아를 침공했던 이웃 국가를 병탄했다.

를로기아는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치르며 평화를 구걸했고, 코르노올리는 국토의 1/3을 잃었다.

실프러시아는 끝내 멸망했으며, 실프러시아 왕녀 소피아 아르첼은 지금까지도 모국 실프러시아가 지은 죄를 대신해 속죄하고 있었다. 황제 아슬란의 허리 아래에서.

이렇듯 칼의 힘으로 카이사리아의 전성기를 가져온 황제였으나, 돌아온 것은 전쟁광이라는 악명. 그리고 귀족들의 배신.

황제는 복수를 꿈꾸었다.

“전쟁! 전쟁이 필요하다, 태자! 어떻게든 전쟁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라!

권력은 칼에서 나온다. 전쟁을 기회로 하여, 짐의 군권을 되찾아오고, 그것으로 배신자들에게 복수를 하리라!”

평화 시엔 끈 떨어진 허수아비일 뿐이지만, 전장에서의 황제는 막대한 군권을 쥔 총사령관.

때문에 황제는 전쟁을 갈망했다. 새롭게 징병된 군사들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장악하고, 강병으로 키워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황태자는 아버지를 잘 알았다. 황제는 허언을 내뱉지 않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황제 아슬란은 충분히 자기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때가 아닙니다, 아바마마.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황실의 재정이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잘 알기 때문에 황태자는 아버지께 기회를 드리지 않으려 했다.

국가의 근간은 백성들이다. 신민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황제가 권력을 양도받은 것이다.

황제 개인의 야심 때문에 더 많은 권력을 쥐려 한다면, 그 탓에 신민들이 고통 받아야 한다면, 황제는 황제의 자격을 잃는 것이다.

“무르구나. 태자.”

황제는 황태자가 품고 있는 이상을 눈치 챘을까. 황제는 황태자에게 무르다며 가볍게 꾸짖었다.

“짐의 권력은 곧 너의 권력이기도 한 것인데.”

“알고 있습니다, 아바마마. 단지 저는 대규모 내전은 아직 시기상조임을 알려드리려 한 것뿐이옵니다.”

“쯧. 그래. 태자가 그리 말한다면…… 그런 것이겠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던 황제였으나, 그도 사랑하는 존재가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만큼은 한 없이 무른 아버지였다.

황태자의 간곡한 간언에 황제는 자신의 갈망을 한 수 접어주었다.

“하지만 태자. 황궁에 갇혀 지내려니, 꽤나 무료하구나. 사냥터에서 사냥이라도 하며, 이 무료함을 달래야겠어.”

왕과 영주가 사냥을 핑계로 군사 훈련을 한 예가 옛부터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분명 의회는 황제의 숨은 의도를 의심하며 반발한다.

“아까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올해 작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 아바마마께서 여유롭게 외유를 다니신다면 민심이 동요할 것이 뻔합니다.

갑갑하시겠지만 지금은 참아주십시오.”

단순한 사냥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짐의 자유가, 권력이 축소되었는가.

잠시 황제 아슬란의 얼굴에 노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아들인 황태자에게 화를 내진 않았다. 그의 화풀이 대상은 따로 있었다.

“하. 어쩔 수 없구나.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몸이라면, 짐의 황후에게 위로나 받을 수밖에.”

폭군인 황제는 잠자리에서조차 거칠다. 황제 아슬란과 밤을 보낼 때마다, 황후 소피아 아르첼은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었다.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목덜미에 난 상처. 분홍색 젖꼭지에 맺힌 침방울. 그리고 어머니의 음부에서 새어나오는 백탁액을 황태자는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강간당하고 계셨다.

“아바마마……. 조금은…… 어마마마를 아껴드릴 수 없으신 것인지요?”

“아껴? 하하하! 재밌는 농담이로구나, 태자. 미녀는 와인과 같은 것이다. 마시지 않으면 취할 수 없어.”

황제는 황태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억세고 단단하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검은 사자의 손길.

“너의 그 신중함을 가장한 우유부단함을 참아주는 것도 전부 소피아 때문이다. 이 이상 짐의 즐거움에 간섭하지 말려무나, 우리 태자.”

소피아 아르첼을 안는 것으로 황제 아슬란은 자신의 파괴욕을 억누르고 있었다.

소피아 아르첼 한 명의 희생으로 카이사리아의 평화가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인 것인지는 황태자에게 영원한 숙제이자 의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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