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킹해서 BJ들과 친해지기!-166화 (166/193)

EP.166 제 2차 금사자 긴급 대주주총회

“왜 늘어난 거야…?”

주변을 넓은 부채꼴로 훑은 뒤, 눈가를 바르르 떤다.

8명이다.

긴급호출에 모인 여성 8명이 대기업의 중역처럼 모여 방석 깔고 빙 둘러앉아있다.

전에도 벌어진 일이지만, 이번에는 추가멤버로 3명이 더 투입됐다.

화장품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여자들이 바글바글한 이 공간의 공기가 마음에 안 드는지, 본인만 휘황찬란한 금칠된 방석에 앉은 백금발 여왕님의 주먹에선 실핏줄이 터질 듯하다.

“이 새끼 갑자기 바쁘다고 기어나가다니… 이런 거였나?!

진짜 머리털을 왕창 뜯겨봐야 정신을 차려!?”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는 뻔하다.

그녀의 바람둥이 남편이자 만인의 바람둥이 남편님이다.

나에겐 오빠고.

허나 지금 내겐 이 모든 게 연기처럼 보인다.

“…어차피 그래봤자 말만 쌔게 하면서.”

“뭐라?!”

“아! 아, 아니에요. 호호호.”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에 생긋 웃으면서 얼버무린다.

측면에 앉은 내게 괜한 불똥이 튀려하자 볼을 당긴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 관습을 이용한다.

그러자 아주 세트로 뭉뚱그려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뚱하게 노려본다.

“사랑이 너 말이야… 전에도 그렇고 은근히 남 긁는 스타일이다?”

“에이, 설마요~ 그냥 매번 비슷한 포인트에서 화내는 언니가 귀여워서 그렇죠.”

“귀엽다고 하지 마.”

언제나 궁서체로 딱딱한 부분도 포함해서 말이죠….

저 언니는 저렇게 험악하게 구는 ‘척’을 자주 한다.

허나 아무리 허세로 무장한다 해도 결국 감출 수 없는 면이 있다.

우선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점.

또한 오빠 욕을 아무리 입에 달고 살아도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는 부분.

헤어지지 않는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서로 투닥투닥 이를 드러내도 서로 없인 못 사는 커플 같다.

그 부분이 가증스러운 동시에… 쬐끔 부럽긴 하다.

아무튼 선화 언니(친하게 부르면 화냄)는 맴버가 늘어난 이 상황을 쉽게 용인할 수 없다는 듯이 8-5=3 수식을 이용해 새로 들어온 뉴페이스들을 노려본다.

이윽고 네일아트로 붙인 붉은색 긴 인조손톱으로 콕콕콕 세 사람을 찍는다.

“너, 너, 너! 전에 없었지?

분명 참석 안 하면 권리를 포기한 걸로 간주한다 했을 텐데?”

“““…….”””

지적받은 세 사람은 낯선 현장의 눈치를 살폈다.

“저기.”

그러다 먼저 한 사람, 안경 쓴 단발머리 여자가 학급반장처럼 팔을 들었다.

“굳이 입 아픈 변명을 하자면,”

먼저 화두를 던지고 엣흠. 짧게 헛기침을 한다.

오늘 초면이지만 착용한 뿔테안경처럼 지적이고 깔끔한 스타일이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아니꼽게 바라보던 선화 언니가 턱짓을 한다.

“누군지 모르니 이름부터 대.”

“아, 한정아라고 합니다.

현재 사장님… 채선우님의 비서를 맡고 있죠.”

“……아. 그리고 보니 그때─”

“안 돼요! 안 돼! 정아 언니는 아직 유나의 매니저라구요!

오빠한텐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거예요!”

중간에 끼어드는 분홍머리 한 사람.

자신을 한정아라 소개한 여성에게, 돌핀 팬츠와 탱크톱이라는 가벼운 홈웨어로 옆에 앉아있다 코알라처럼 붙는다.

딸기우유향이라도 날 것 같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끼어든다.

‘크긴 하다….’

유나 언니는 척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비주얼이다.

남자들이 환장하는 이유는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지만, 동성으로썬 좀 거리를 벌리고 싶다고 해야 할까… 정말이지 비주얼이 체할 정도로 과하다.

어쨌든 유나 언니가 이야기 중에 쓸데없이 끼어드니 골 땡긴다는 듯이 주최자께서 백금발 머리를 짓누른다.

“있잖아 너 말이야…”

“네?”

“너 나보다도 연상이잖아… 왜 자꾸 선우한테 오빠라 그러고 나한테는 언니라는 건데?”

“웅?”

신장에 맞지 않는 폭력적 귀여움으로 핑크머리를 까딱거리더니,

“그야─ 선화 언니는 언니 느낌이고, 선우 오빠는 오빠라는 느낌이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네.

나도 너한테 언니라는 소리는 하기 싫을 것 같다.”

“그렇죠? 헤헤헤♥”

무방비하게 웃는 유나 언니와 달리, 정말 싫다는 듯이 눈꺼풀이 가늘어진다.

“뭐, 됐고! 니들 관계 따윈 쥐똥만큼도 관심 없어.”

레일을 벗어난 패달을 다시 맞추는지 타겟을 한정아에게 고정시킨다.

“어쨌거나 댁은 그때 참석 안 했지? 따라서 무효처리야.”

“저─”

“딱히 특이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불만따위 없겠지?”

우격다짐으로 몰아넣자, 한정아는 침착하게 손날로 안경테를 살짝 들었다 놓는다.

젖소가 들러붙은 주위 환경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나열한다.

“글쎄요.

결석해야 했던 사유나 특이사항이 딱히 없다고 할 수도 없어서요.”

“…그럼, 있다고?”

“네, 굳이 말하자면 저는 그때 사장님과 선약이 있었거든요.”

“………선우랑?”

“네♥”

예의 바르게 깍듯이 대답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에는 묘하게 승리의 미소가 깃들어있다.

“그때, 사옥을 함께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아서요.”

“…우리가 모였을 때 둘이서 사무실 알아보러 갔단 말이야?”

“네,

그런데 단둘이 함께하다보니 이런 저런 일이 생겨서…♥”

“…….”

선화 언니는 더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단지 말하는 화자의 얼굴이 몹시 여성다워지고, 오빠와 함께했다는 인과 관계로 쉽게 뒷일을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꽂히는 시선을 오히려 즐긴다는 눈치인지, 아니면 그 날 일을 떠올렸는지 헤실헤실 웃으면서 의미심장한 문장을 덧붙인다.

“그 날은 최선을 다해 ‘서포트’해드리느라 바빴습니다…♥”

……

어쩐지 핑크빛 야한 공기가 흐르자 침묵한다.

어색하게 서로의 눈길을 피하면서도 ‘어떤 느낌인지 알지…’ 라는 눈치로 공감한다.

이 중, 언니라고 부르기에는 나이차 많이 나는 요가 아줌마는 “제법이네.”담담한 감상을 늘어놨다.

“그랬구나아아아아!”

선화 언니는 냄비처럼 부글부글 끓는 눈치나 이만하면 내성이 제법 쌓은 지라 한숨으로 삭힌다.

“좋아… 그 새끼 죽일 이유가 하나 추가됐네. 그럼 너!”

“저, 저요?!”

움찔!

다음 사람이 지목받자 나도 덩달아 긴장하고 만다.

현재 선화 언니는 전에 이 모임에 빠진 인원에 대해 추궁하고 있다.

나는 전부터 참석했으나, 예전부터 오빠와 끈끈한 연을 맺은 여성 중에는 당연하게도 내 엄마도 포함되어 있다.

“…어쩐지 사랑이랑 닮은 것 같은데.”

“…….”

“…….”

겉보기에는 어려보이지만 감출 수 없는 분명한 혈연관계.

의도적으로 엄마랑 한 칸 떨어져 앉았으나 나까지 눈치가 보여 슬며시 얼굴을 피한다.

“뭐, 됐어.

너는 뭐 딱히 없지?”

“아니, 저 그게……”

어물쩍 넘어갔으나 조카수준으로 한참 연하의 기에 짓눌린다.

손을 어쩔 줄 몰라 허둥대던 엄마는, 가슴께를 꾹 누른 뒤에 대답했다.

“저…… 그때는 심정이 좀 복잡해서요.”

“니 심정이 복잡하든 말든 안 오면 결격이라 했잖아.”

“문자는 봤어요!

물론, 그쪽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사회적 약송상 그쪽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는 편이 맞긴 하겠지만─”

“땡. 시간초과.

있어봤자 쓸데없이 차지하는 방석 갯수만 늘어나니 그만 가봐.”

“하지만!”

냉정하게 지적하는 선화 언니에 맞서, 답지 않게 성대를 크게 진동시키는 엄마.

붉어진 얼굴로 바들바들 가녀린 어깨까지 떨며 외친다.

“저, 저는 선우 씨에게 그런 일까지 당했으니 이제 돌아갈 수 없어요!

이미 일전에 나랑 사랑이가 함께─”

“엄마아아아!”

혹시나 싶어서 끼어든다.

혹시 무덤까지 가져가야할 막장상황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까발릴까 딸보다 순수한 엄마를 긴급하게 막아 세운다.

“자, 잠깐……… 엄마?”

“어, 어, 어어어엄마?!”

“헤엑?!”

허나 떠올려보니 공공연하게 ‘엄마’라고 부른 이상 늦지 않았을까 싶다.

선화 언니가 눈가를 바들바들 떨며 돌아보자 머리를 푹 숙인다.

미나 언니는 Σ(°ㅁ°) 턱을 쩍 벌렸으며, 누구 지적할 필요 없이 모두의 눈동자가 한가위 보름달보다 둥글게 떠졌다.

“지…… 진짜야?”

“……!”

“나, 나, 나는 저… 핑크머리가 제일 미친년이라 생각했는데…… 너도 완전 미쳤구나?!”

“시끄러워요!

어, 언니가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관계가 있다구요!”

“대단하네….”

나와 엄마의 모녀 관계가 밝혀지자 집안이 전율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태연하게 앉아있던, 하늘이 무너져도 가부좌 틀고 있을 것 같던 요가 아줌마마저 식은땀을 흘린다.

“저기 너…… 아니, 어머님…? 진짜입니까?”

“네, 사랑이는… 제 딸이에요.”

“그렇다면 말하려던 건─”

“네, 딸애와 함께 선우 씨에게 그런 일을 당해버렸으니 이제 받아들일 수밖에요…♥”

“아- 엄마아!”

어떻게든 그것만은 막으려던 내 노력이 허사로 무너진다.

구체적이진 않으나, 이미 그렇고 그런 쪽으로 해석되도록 뿌려졌다.

나는 창피함에 울상을 지었지만 짓거나 말거나 엄마는 말해서 개운한지, 아니면 이야기를 공유할 커뮤니티 상대들이 많아져서 그저 좋은지 뺨에 손바닥 대고 웃어보이기까지 한다.

“머리가 어지럽네….”

“주인님… 이건 잡식 수준이 아니라 누렁이 아니야?”

“우… 뭔가 진 기분이에요!

아! 저희 엄마도 예쁜데 데려와 볼까요?”

“막장 콘테스트가 아니야….”

여자들끼리 떠들어대는 소란.

이 소음이 잦아들기까진 시간이 좀 걸린다.

선화 언니는 더는 열 낼 힘도 없다는 듯이, 아니면 더 쌘 함정이 나올까봐 두려움이 앞섰는지 힘없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여성을 지목한다.

“너는… 무슨 이유 있어?”

“…….”

외상없이 뇌진탕이 왔는지 이제는 내몰기보단 사유부터 묻는다.

허나 마지막으로 모두의 주목을 받는 뉴페이스는 고요했다.

정확하게는 우울해 보인다고 해야 할지, 얼굴은 당연한 듯 예쁘지만 혼자만 음침하게 쭈그리고 앉아서 구불구불하게 내려앉은 웨이브펌이 마치 미역처럼 보인다.

그녀는 선화 언니의 질문을 한참 곱씹다가 혼잣말하듯 웅얼거린다.

“……선우는 어차피 내 거니까.”

“뭐?”

“……그것뿐이야.”

자기 할 말만 거기까지라는 듯 일방적으로 대화의 맥을 끊는다.

더 할 말이 있겠지 기다렸으나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마이페이스가 많다고는 생각하지만 참 만만치 않다.

“아 정말…!”

자신의 의도는 절대 이게 아니였는지 머리를 헝클이며 성질을 부리는 선화 언니.

“이 새끼가 무슨 동물원 컬렉션을 모아놔선…!

야, 너희들 진짜 이 짓거리를 계속 하겠다고? 그 새끼는 조만간 나랑 결혼식할 거라니까! 더구나 한 년은 임신까지 했고! 너희들 진짜 미쳤어?!”

이것이 오늘 호출한 메인 주제라는 듯 외친다.

약혼한 신부가 목 놓아 외치는, 너무나 상식적인 호소다.

허나 참석한 우리들의 표정은 덤덤했다.

이미 각자 경험한 선우 오빠와의 경험 탓에 상식을 초월해서 평온하게 각자 할 말만 남긴다.

“흠, 그쪽 자기가 하는 소리는 너무 무난해서 오히려 깜짝 놀랄 것 같아.”

“지겹지 않냐? 아무리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유나는 오빠 믿고 제대로 계약까지 했으니 끝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평생 사장님을 보좌해드리겠다고 약조한 터라…♥”

“뭐, 여기까지 왔으니 끝을 봐야죠.”

“후후, 선우 씨도 참 나쁜 남자네♥ 왠지 이젠 그게 더……♥”

“……세간에서 뭐라 하든 상관없어. 선우는 내 꺼니까.”

돌아오는 화답의 논점을 정리하면 ‘여기까지 와서 떨어질 줄 알고?’다.

그 누구도 여기서 하차할 수 없다는 듯이, 빠르게 밑이 안 보이는 미래로 굴러가는 화차에 안전벨트 차고 앉아있다.

“세상 미쳤네 진짜….”

어이가 없는지, 이제 더 용 쓸 기운 없다는 듯이 선화 언니는 그만 항복선언을 한다.

그런 선화 언니에게, 바로 옆에 앉아있던 요가 아줌마가 위로하듯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자기는 그만 어깨의 짐을 내려놓는 편이 좋아.

그 힘 넘치는 남자를 통제하려고 해봤자 머리만 아프다니까?”

“이젠 내가 그만하고 싶다…. 단체로 기생충에 뇌가 파였는지.”

“자자, 여기까지 오게 된 이상, 어차피 계속 볼 얼굴이잖아?재미없는 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이건 어때?”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이 요가 아줌마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벌떡 일어서더니 살랑살랑 걸어가 부엌에서 무언가를 꺼내온다.

“짜잔♥”

양손에 들린 갈색 병.

즉, 차갑게 식힌 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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