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5 금사자 ㅇㅃ됨
“자기~ 나 왔어♥”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지는 화창한 어느 날.
언제나 그렇듯 가벼운 체육복을 차려입은 연수가 한껏 공기를 머금은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오, 왔어?”
“후훗♥”
Chu♥
인기척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최우선적으로 앉아있는 내 뺨에 뽀뽀를 한다.
이윽고 킁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앞치마를 두른 미나 쪽을 향한다.
“아침은 샌드위치야? 풀떼기가 많은게 꽤 본격적이네.
나도 하나만♡”
“엑… 좀 빨리 오지.
방금 앉으려고 했단 말이야.”
“으응~ 하나만♡
전에 그쪽 자기가 만들어줬던 샌드위치 맛있었단 말이야.”
“알겠어…
그리고 나한테는 ‘자기’소리랑 오글거리는 콧소리 좀 빼주라. 소름끼쳐”
“후후♥”
오소소 닭살 올라온다는 듯이 어깨를 문질러도 요리솜씨에 대한 칭찬이 썩 나쁘진 않은지 기꺼이 프라이팬을 잡는다.
그렇게 얼마안가 또 하나의 층 높은 샌드위치가 만들어지자, 연수는 맞은편 식탁에 앉는다.
곧장 봉선화빛 손톱이 돋보이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샌드위치를 잡고 우아하게 한입 문다.
콰득!
“으음♡”
크게 베어 무느라 손가락에 어쩔 수 없이 묻은 머스타드 소스는 쪽쪽 빨아먹는다.
언뜻 비위생적인 행위처럼 보여도 연수가 하면 참으로 깔끔하고 이뻐 보인다.
기분 탓인지 오늘따라 더 그렇단 말이지.
“역시 맛있다♡
나도 이런 거 해주는 편리한 가정부 있으면 좋겠네.”
“저기… 나는 배우지 가정부 아니거든?
주인님 집이니까 특별히 해주는 거야.”
“쩝쩝.
으음, 알고 있어.”
“그리고 언니 정도의 벌이라면 가정부는 충분히 고용하고도 남잖아.
언제든 원하는 시간대로 신청할 수 있으니 해봐.”
미나는 어느덧 연수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이차가 있으니 나를 따라서 반말은 하더라도 호칭까지 놓을 수는 없는지 언니는 꼭 붙인다.
오늘따라 식탐이 좋은 연수는 샌드위치 반 정도 해치워 목구멍에 꼴깍 삼킨 뒤, 말을 잇는다.
“그치만 방송인은 사생활이 있어서 꺼려져. 집에 함부로 다른 사람 들이기가 뭐하니까……
아, 우리 자기는 예외야. 앞문이든 몰래 들어오는 뒷문이든 언제나 환영♥”
씁쓸하게 늘어놓다가 매력적인 초승달 입매로 방긋 웃으면서 나에게 윙크한다.
그대로 아이컨텍트를 하자 요염하게 웃어준다.
정말이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그만그만!”
이 므흣한 분위기를 파리 쫓는 손짓으로 날려버리는 미나.
“밥상머리 앞에서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해.
정말이지… 집에 들이닥쳐서 사사건건 주인님한테 꼬리 치는 거 하지 말랬잖아.”
“응?”
거기에 연수는 의아한 듯 가느다란 눈빛으로 미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흐응… 아침부터 옷조각만 맞춰입은 새댁이 놓고 할 소린가?”
“윽…… 하하하….”
지적에 미나는 턱을 틀며 멋쩍게 웃는다.
미나는 앞치마를 입었지만 그 외에는 반라에 가깝다.
속옷에 앞치마라는, 남성의 눈빛을 떼려야 뗄 수 없는 복장을 하고 있다.
사실 일상이 된 부분이라 크게 지적하진 않았다.
“자자, 지금은 식탁이니까 밥이나 먹자고.
어차피 오늘은 일 없으니까 같이 지낼 시간 많아.”
“정말요?!”
“기대되네♥”
그야말로 화목한 가정의 아침이 아닐까 싶다.
“……잠깐.”
허나 짧은 두 음절에 이는 조그마한 파문에 이 무드는 깨지고 만다.
영 아니꼬운지 내 옆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푸른빛 아우라.
당연하게도 이 아우라의 주인은, 화려한 백금발이 선녀의 옷처럼 어울리는 내 연인이자 마누라인 선화다.
“기다려봐.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 거야…?”
“응?”
“니가 기어 들어와서 겸상하는 과정까지 말이야.
왜 점점 더 뻔뻔하게 쳐들어와서 한 가족 같이 행동하는데?”
원래라면 정상적인 태클일 터다.
허나 워낙 이런 마찰이 잦다보니 연수보단 미나가 먼저 질린 눈치로 한숨을 쉰다.
“참나… 넌 지치지도 않냐? 또 털 바짝 세우고 싸우게?”
“아니, 이건…! 이건 해도 심하게 자연스럽잖아!
무슨 왕의 처첩 모임… 후궁들이냐고! 무슨 커뮤니티 관계야 이게!”
“그걸 따지기에는 이제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꽥꽥 소리치기 전에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나 떼시지 공주님?”
“윽…!”
지적을 듣자 선화는 빠릿하게 뺨을 훔친다.
허나 붉어진 뺨과, 흠집 난 위엄은 감출 수 없었다.
여전히 선화는 화가 나 있다.
결혼했으면서 주변에 여자가 득실거리는 이 상황에 무척 예민하다.
그러나 이 관계는 덜그덕 마찰이 빚어지더라도 계속 이어나갔고, 어느덧 익숙해졌으며, 아이러니하게 선화 본인이 해택 보는 변수마저 생겼다.
특히 최근에는 앙숙처럼 다루던 미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시종일관 손톱을 들이댔으나, 미나가 차린 밥상은 입맛에 딱 맞았고, 서랍의 빨래는 하루하루 아름다운 경지로 차곡차곡 개어졌고, 집은 언제나 깨끗했다.
이는 전부 선화의 가사능력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완전무결일 줄 알았던 여왕님이 알고 보니 라면을 요리라고 우기는 어마무시한 스텟을 갖추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동거하면서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혀끝을 호강시키고 본인 방송에도 딱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미나에게 더는 불평할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끼워 맞춰진 퍼즐처럼 그렇게 됐다.
“흥….”
불평 많은 오리처럼 입술을 내미는 선화.
눈치를 보다가 화제를 전환한다.
“그래서, 오늘은 왜 아침부터 온 건데? 또 그냥 놀러온 거야?”
“응? ………아, 아!”
“?”
샌드위치를 깜짝할 사이에 해치운 연수는 깜빡 잊었다는 듯이 눈꺼풀을 올린다.
딱히 별 생각 없이 질문한 선화는 왜 그러나 머리를 갸웃거렸다.
가볍게 입은 저지 포켓을 뒤지던 연수는 무언가를 하나 자랑스럽게 꺼낸다.
예쁜 손끝에 들린 그건, 정말 생각도 못한 아이템이었다.
“나, 생겼다. 1개월♥”
연수가 들고 있는 건 임신테스트기.
정확히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썩은 동태눈알로 그걸 바라본다.
“““……”””
선화, 미나, 나. 셋이서 말이다.
……………어?
처음에는 머리가 멍해졌다.
큰 소음을 내며 멀어지는 육중한 비행기를 바라보듯 멍멍해졌다.
언젠가는 올 수 있는 날이라 여겨왔으나 이건 너무나 갑작스러워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충격이었다.
“너, 너, 너 정말……”
“어… 언니 진짜…?”
“응. 어제 산부인과까지 다녀왔으니까 확실해♥”
이윽고 주변에서 먼저 정신이 돌아오자 나도 현실로 돌아왔다.
‘연수가 임신했다…?
흥분시키기 위한 워딩이 아니라 진짜로?’
최우선적으로 리액션을 떠올렸다.
옆에는 결혼한 선화가 있다.
과연 이 빅뉴스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나는 숙고하고 숙고하다가……
“와아아아앗!”
“응?!”
“진짜, 진짜지?!”
“그, 그, 그렇다니까. ……확실해.”
“시발!”
감탄사로 튀어나온 욕설과 함께 식탁에서 나와 연수를 번쩍 들었다.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워 머리가 아니라 그냥 몸이 따르는 대로 움직인다.
체육복을 입은 가는 허리를 감고 공주님 안기를 시전한다.
“드디어 됐다! 내가 아빠가 된다!”
“지, 진정해봐 자기…!”
“진정하게 생겼어?! 아빠가 된다! 내가 아빠가 된다!”
“……그렇게 좋아?”
“당연히 좋지! 볼 대! 쪽♥ 쪽♥”
“……정말♥”
번쩍 안아든 연수의, 이제 내 아이의 엄마가 될 내 여자에게 볼에 키스세례를 했다.
온몸에 피가 팽팽 흐르는 흥분을 못 이기고, 안아든 연수와 함께 온 방을 헤집었다.
임신 소식을 들은 이후부턴 곁에 있던 선화나 미나의 얼굴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오전 내내 기뻐서 이런 폭주 상태였다.
***
오후가 지나서야 조금 진정됐다.
연수는 이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오전에만 잠시 들른 터라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애가 생겼으니 쉬라고, 무리하지 말라 일렀지만 오늘은 가봐야 한다면서 진득한 키스만 조금 나누고 떠나갔다.
다음으로 미나는 왠지 급하게 살 물건이 생각났다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왠지 내 추측으론 임신테스트기를 사러간 게 아닐까 추측된다.
따라서, 현재 집에는 나와 선화뿐이다.
“임신…? 기껏 급발진으로 먼저 결혼 땡겼는데… 혼외 자식이 먼저 생긴다…? 더구나 그 얄미운 여우년 몸에서…?
………………시발.”
더구나 상태는 몹시 안 좋아 보인다.
안방 침대에 앉아 입술을 까득까득 깨물며 앉아있는 선화.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백금발은 히스테릭으로 물들여 있다.
그늘진 머리칼이 어두침침해서 곰팡이라도 필 것 같다.
꽈배기 같아진 머리칼을 힘없이 흔들며 함께 침대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한다.
“저…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쑤욱!
먼저 말을 걸자 불쑥 고개를 드는 선화.
나를 노려보는 죽은 눈이 공포영화 같다.
공포영화 속 프랑스 봉제인형 살기에 눌려 반 발짝 뺀다.
“너 말이야… 임신소식에 엄청 좋아하더라?”
“어… 그야 생명의 탄생은 기쁜…거잖아? 축복해야 하고.”
그러자 지나가는 코웃음.
“니가 분별없이 뿌린 씨여서 그렇겠지… 이 새끼야.”
“…그런가?”
“나쁜 놈. 바람둥이새끼. 결혼해도 밖에 싸돌아다니는 좆이 머리를 지배하는 개새끼….”
툴툴거리며 디스한다.
틀린 말은 아니니 지적하기 어렵다.
선화는 그대로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계속해서 “임신… 임신… 여우년이 임신…” 웅얼웅얼 되뇌다가,
벅벅벅벅벅!!!
“아 증말!”
찌질하게 찌그러지기는 도무지 성미에 안 맞는지 머리카락을 박박 긁어서 헝클인다.
“아─ 다 됐어, 나도 더는 못 참아!
야, 채선우!”
“어…… 네?”
비장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여왕님.
금세 원래대로의 선화로 돌아온다.
거만하고 독이 꽉 차오른 여왕님 용안이, 당장이라도 폭탄발언을 저지를 것을 암시한다.
“돌아보니 내가 크게 빼먹은 게 하나 있었어!”
“빼먹은 거…?”
“그래!”
꿀꺽.
긴장의 숨결을 삼키는 사이, 선화는 목청 목을 푼다.
이 다음은 이혼, 합의금 폭탄, 정체폭로.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저 불같은 성격이라면, 갈등이 최고조로 다다른 지금이라면 뭔 짓이라도 저지르고도 남는다.
저벅저벅.
그렇게 죄인에게 선고하기 위해 침대에 일어서 다가온다.
이를 앙 문, 핑크빛 입술이 동그랗게 오므라지며─
“우리 결혼식!”
“기다려! 진짜 그 정도로……!
………………………엥? 결혼식?”
방어자세를 취했다가 결혼식이란 단어에 무너진다.
의외라고 해야 할지, 정말 생각도 못하고 있던 울림이다.
허나 코앞에 여왕님은 진지하다.
“그래, 결혼식!
우리 혼인신고는 예전에 했는데 아직까지 식을 안 올렸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이 타이밍에 결혼식을 왜…?”
“내가 그 여우년한테 질 것 같아?!
그 뱃속에 사생아가 태어나기 전에 결혼할 거야!
어차피 너 돈도 왕창 벌겠다, 헐리우드 스케일로 저지를 거니까 각오하라고!”
“진정해봐. 이렇게 감정적으로 지르면─”
“닥쳐! 최대한 빨리 밀어붙일 거니까 오늘 집에 연락해둬!”
“네, 넵!”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선화.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이상한 도미노현상처럼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는 인생의 2막, 넥스트 스테이지를 향한 카운트다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