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138. 2박 3일 임신여행♥
소원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잠깐이나마 잊고 지내던 아이덴티티를 되찾았다.
혼인이라는 대사건에 하마터면 쭈굴쭈굴 파묻힐 개새끼 DNA를 찾았다.
해킹툴을 받은 이후, 스스로 이 여자 저 여자 후리고 다니며 쓰레기처럼 지내왔다는 건 안다.
공개적 야방이나 찍고 다니고,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할 난봉꾼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어쩌라는 거라는 거냐!
이미 일을 이렇게까지 벌인 이상 멈출 수 없다.
닉네임 그대로 진정한 숫사자가 되어 여자들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거하게 사업도 벌인 이상, 이 묵직한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하룻밤이나 연락도 없이 어딜 싸돌아다닐까?”
아…… 무섭다.
하룻밤 소원이 집에서 보내고 위풍당당 현관문에 입성하자 선화가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다.
당장이라도 머리통을 내려찍고 싶은지 팔에는 울긋불긋 섬세하게 핏줄이 세워져 있다.
“어… 말했지 않나? 누굴 좀 만나러 간다고?”
“연락도 안 받고, 무단외박까지 허락해준 기억은 없는데?”
“다, 다들 그러잖아? 친구 잠깐 만나러 갔다가 분위기 휩쓸려서 술도 마시고 하는 느낌으로……”
“술 마시고 떡쳤다는 거야?! 자랑하냐!?”
“아니아니! 비유를 하자면! 비유를!”
진정하라고 어깨 위로 손바닥을 올린다.
이 와중에 떡친 건 맞다.
항복자세로 날카롭게 이빨을 세우는 호랑이를 진정시킨다.
호랑이에게도 언뜻 귀여운 포인트가 송곳니를 바짝 세워서 귀염성이 사라졌다.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선화는 구제불능 남편을 대하듯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울분을 게운다.
“니가 집 비운 사이에 그 개년이랑 얼마나 싸웠는지 알아?”
“……또 싸웠어? 친하게 좀 지내라니까.”
“친하게 지내?!”
팔짱을 풀고, 가슴팍을 콕 찍는다.
“그 시발년이 내 화장품 절반을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내다버렸다고!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멋대로 방에 들이닥쳐선 ‘어머, 전부 버리는 거 아니었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정리했지 호호호.’ 이 지랄을 떨었다니까! 그거 모으느라 얼마 썼는지 알아!?”
“내가 버린 건 아니거든…?”
“니가 데려왔잖아! 너더러 좆같이 주인님이라 부르잖아! 주인새끼가 책임을 져야지!”
기왕 화난 김에 세트로 묶어서 조질 목적인지 손톱을 세우는 선화.
자세히 보니 밤새도록 투닥거렸는지 수면 부족한 풍성한 백금발이 마구 헝클어져 있다.
따져보면 선화보다 미나가 먼저 터를 잡았다.
허나 그걸 지적했다간 기름만 붓는 격이기에 참는다.
‘화내는 포인트는 알겠지만… 이대로는 안 돼.’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다고 해도 결혼생활이 얼마나 됐다고 가장의 권위가 말이 아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호랑이가 사납지만 여기선 탈압박을 시도해야 한다.
여기선 나의 체면을 세워야 이 혹독한 결혼생활을 이겨낼 수 있다.
“자기야♥”
그런 사고로 흘려갈 무렵, 등 뒤에서 민트처럼 상쾌한 향과 감촉이 닿는다.
느닷없이 현관문을 덜컥 젖히고 들어온 제3의 인물이 등 뒤에 포근하게 안겼다.
놀라서 경직된 근육과 함께 돌아보니, 요가복을 입은 미인이었다.
“어? 어? 연수야?”
“얏호♥”
사기적인 라인을 감추지 않는 타이즈.
요가복만큼 연수의 매력을 표현하는 포인트가 없다.
그 최강의 장비를 장착한 연수가 시시덕 웃으면서 몸을 비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달콤한 케이크라도 먹는 표정으로 연인처럼 엉겨 붙자 바들바들 떨리는 선화의 눈꺼풀.
“야… 여우년. 어딜 남의 집에 함부로 기어들어와?”
“응? 뭐라구?”
“어딜 기 들어 오냐고 물었잖아.”
중력을 거스르고 떠오르는 백금발.
머리칼을 고슴도치처럼 삐죽 날을 세우자 연수가 흠칫 놀란다.
“어머, 저 남자 잡아먹을 얼굴 좀 봐.”
“누가 누굴 잡아먹어! 어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당장 나가!”
“남의 집이라니? 여긴 우리 자기 집인데♥”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얀색 운동화 발끝을 들어 뺨에 뽀뽀한다.
명백하게 여왕님 정면에 맞서는 도발이다.
그야말로 여우처럼 제멋대로 천방지축 날뛰는 얄미운 행동.
선화는 꽉 쥔 주먹까지 떨면서 노여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안면을 싹 바꿔 입매를 올린다.
마치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승리의 미소를 내건다. …화내다 싱긋 웃으니 이건 이거대로 무섭다.
“흐응~ 못 들었어?”
“뭘?”
“이제부터 여긴 내 집이야.”
“? 모르는 사이에 집 매매했어?”
“아니. 일주일 전에 어쩌다 공동명의가 됐거든.”
두 번 곱씹게 만드는 애매한 화법.
‘공동명의’라는 단어로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건 분명 한 방 먹였다는 회심이었다.
나와의 결혼을 간접적으로 비추어 성가시게 굴던 여우의 낯짝을 제대로 짓뭉갰다고 자신한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마무리 일격을 가한다.
“너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선우랑 나는─”
“아~ 결혼했지? 축하해.”
아무 감흥 없는 건조한 축사.
연수가 먼저 선수친다.
그리곤 별 것 아니라는 듯, 나와의 스킨십을 더 중요해 쪽쪽 볼때기를 물고 빤다.
우리 둘의 혼인소식이 연수 입장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나보다.
준비한 회심의 일격 따위 손쉽게 막아서자, 다시 정색한다.
“…알고 있었다고?”
“내부에 정보통이 있거든. 거기서 며칠 전에 들었어.”
“……그 개년이구나. 아주 비슷한 개과 년들끼리 끼리끼리 뭉치네.”
으득으득 아직 방에 자고 있을 미나까지 씹는다.
이내 다시 원래의 불쾌한 눈초리로 돌아오는 여왕님.
“야! 결혼했다는 거 듣고도 왜 발정난 년처럼 달라붙어! 그건 내… 내 남편이라고! 채선우, 너도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아니 이건……”
“어머♥ 화내면 안 되지.”
애정공세를 하던 연수는 최종적으로 내 대흉근에 꼬옥 안겼다.
그리고 국정을 농간하는 경국지색 같은 잔망스런 얼굴로 선화를 비웃는다.
“그 결혼, 조건 걸고 했다며. 우리 자기가 다른 여자들 만나도 괜찮다는 조건으로.”
“…….”
꼬리를 잡힌 호랑이.
미나가 다 불었는지, 바로 맹점을 파고들자 샐쭉해진다.
“결혼만 해도 정신 나간 짓인데, 그쪽은 어지간히 급했나봐? 남자 하나 뺏길까봐 불안했어?”
“……니가 신경 쓸 입장 아니잖아.”
“어쨌든 그 조건대로라면 내가 뭔 짓거리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잖아?”
“그, 그건 그냥 여태껏 만행 눈감아준다는 뜻이었─”
“한 입으로 두 말 하면 안 되지. 그치 자기야♥”
뜬눈으로 더 당해보라는 듯 탱탱한 허벅지까지 포갠다.
내 손을 끌어다가 봉긋 솟은 엉덩이 위에 올린다.
“(뿌득뿌득뿌득)”
그 데미지는 제곱으로 축적돼 둘 사이의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촉감이 아쉬우나 서둘러 손을 떼내 중재한다.
“저기… 현관문에서 이러면 뭐하니까 안으로 들어가자.”
또 한 번 커지려는 불길을 잡는다.
어른답게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하자고 제안하자 선화가 한 걸음도 양보 못한다는 듯, 앙칼지게 눈꺼풀을 치켜든다.
“이 꼴을 보고 저 년을 집으로 들이겠다고?!”
“그… 친하게 지내면 좋으니까. 연수는 일 때문이라도 자주 볼 테니 선화도 너무 화만 내지 마.”
“안 내게 생겼냐!”
“음~♥ 애써주지 않아도 돼 자기야. 어차피 자기한테 말만 좀 전하러 들른 거거든. 어차피 들어가도 가시방석일 거니 괜찮아.”
스파크가 튀기 전에 한 걸음 양보하는 연수.
그에 반해 선화의 문지기 수호신 같은 팔짱은 풀리지 않는다.
연상이 어른스럽게 나오자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잠깐.”
거기에 대화를 곱씹던 선화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진다.
“기다려 봐. 여우년 너, 선우랑 같이 있다가 따라온 거 아니었어?”
“응? 아닌데?”
“그럼 뭐야. 채선우, 어제 저 여우년 만난 거 아니야? 또 다른 년 만난 거야?”
……왜 최근에는 일이 꼬이기만 하지.
망했다.
또 복잡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겠구나 싶었더니, 연수가 나서서 응수한다.
“또. 또. 또 시작이네. 그쪽은 조금이라도 남자 쥐어짜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나봐?”
“아니! 이건 쥐어짜는 게 아니라─”
“그쪽이 결혼을 서두른 이유를 알겠네. 조심해 자기, 저런 집착 강한 여자는 의부증에 질투심만 가득찼거든.”
“뭣?!”
“심술만 잔뜩 나있는 아내가 싫증나면 언제든 우리 집으로 피난 오고♥”
“야이이…… 이 얄미운 년이 진짜…! 진짜아아아아아악[email protected]#$!”
결국 축적된 화와 폭발하는 선화.
백금발 머리를 박박 긁더니 안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꽝!
방문을 굳게 닫는다.
아무리 그래도 실제 물리적 폭행은 불가능하니, 침대 매트릭스라도 내려치는지 굳게 방에서 퍽퍽 소리가 울린다.
아니면 전에 선물해줬던 사자 인형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티배깅 성공에 흐뭇하게 안방을 보던 연수가 나를 곁에서 올려다본다.
“자, 그럼 방해꾼 사라졌으니 나랑 잠깐 이야기할까♥”
“…소리가 크니까 나가서 하자.”
“응♥”
쿵! 꽝! 꽝! 꽝!
과연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게 아니다.
언제나 여유 넘치는 자유로운 영혼은 선화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다.
*
우리는 차가 주차된 마당으로 나왔다.
연수가 가져온 포르쉐 차에서 뭔가 부시럭거리더니 티켓 두 장을 쫙 편다.
“이게 뭐야. …비행기 티켓?”
간만에 같이 놀러가자는 뮤지컬이나 영화 티켓인 줄 알았는데, 전혀 뜻밖이다.
더구나 시간을 자세히 살펴보니 곧 이륙할 당일 비행기다.
“어디 나가는 거야?”
“후후 거기 적혀 있잖아. 일본이라고. 잠깐 스케줄 비었겠다, 휴식차 해외로 떠나볼까 해서.”
“두 장이라는 뜻은?”
“당연히 자기랑 떠나는 거지♥”
“오호.”
연수와 단둘이 여행.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 반색한다.
“아니 잠깐만.”
허나 기쁨도 잠시.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집을 보니 금세 현실로 돌아온다.
“미안. 오늘은 좀 그렇네….”
“응? 일 있어?”
“선화 때문에. 아까 같은 사태를 벌여놓고 또 집을 비었다간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지, 진심이야? 자기… 많이 약해졌네. 못 본 사이에 얼마나 쥐어 짜인 거야.”
측은하게 바라보더니 목을 감싸고 탱탱한 가슴을 붙인다.
몽긋몽긋 푸딩 같은 가슴골을 힘주어 모은다.
“자기는 언제나 꼭대기에 서서 여자들 지배하는 금사자님이 아니었어?”
“그게… 인간상성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더라고. 선화가 좀 잠잠해지는 날을 잡으면 안 될까?”
“안-돼.”
단호하게 선을 긋고 그르릉 발정난 암고양이처럼 목청을 떨면서 붙는다.
검지로 가슴팍에 글씨를 쓰듯이 간질인다.
“이번 일주일이 중요하단 말이야…♥”
“무슨 중요한 날인가?”
물음에 다시 한 번 잔망스러운 여우 얼굴로 돌아온다.
촉촉하고 달콤해 보이는 입술이 귓가로 다가오더니 나직이 속삭인다.
“오늘부터 가장 위험한 날이거든…♥”
“위험…!”
1차로 이성끈이 끊어진다.
단어만으로 잔뜩 기대감에 부푼 좆끝이 바지 속에서 솟는다.
거기에 맞춰 연수가 춤으로 유혹하는 무희처럼 살랑 한 바퀴 돌아 곁에 붙는다.
“매일 임신시킨다고 침대 위에서 외쳤으면서… 다 허세였던 거야?”
“그게 그건…”
“후후♥”
터질 것 같은 탐스러운 허벅다리를 정면에서 비빈다.
과감하게 옷 바깥에 파인 두툼한 도끼자국을 좆에 비빈다.
“반드시 임신시키겠다는 수컷의 각오가 그것밖에 안 되나?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내 보지, 다른 남자한테 빼앗길 수 있어?”
한껏 농축된 암컷의 향.
페로몬 잔뜩 뿌리며 꼬리를 흔드는 여우.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걸 내놓는 적극적인 대시에는 이성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덥석!
“하앗♥”
바로 커다란 손을 내린다.
도톰한 씹보지를 주무르면서 속닥인다.
“바로 시동 걸어. 못 참겠으니까.”
“흐응♥ 무서운 아내를 두고 괜찮겠어?”
“위험일에 연수랑 떡치는 게 가장 중요하지 뭐가 더 중요해. 빨리 타.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으니까.”
“후훗♥”
연수의 유혹에 홀딱 넘어간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 덕에 처음 각오대로 돌아온다.
뭐든지 뒤도 안 보고 저질러야 한다.
우웅! 우웅!
여태껏 들어본 중 가장 거친 RPM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곧장 출반한다.
이 날 처음으로 과속까지 해버린다.
무려 규정속도 3km나 올려서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
깜빡했다.
출국하려면 여권이 필요했다.
활활 타오르는 열정 그대로 무작정 뒤도 안 보고 떠나려했으나 그게 없으면 소용없기에 황급히 유턴해 돌아왔다.
2시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라 서두르지 않으면 타임아웃이다.
끼이익…
급하지만 들켰다간 시간 끌리니까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젖히고 들어온다.
쿵! 쿵!
아직까지 안방에 지진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화가 안 풀리는지 방에서 패기를 발산하고 있다.
덕분에 일이 쉬워질 것 같다.
여권은 아마 2층 서재에 둔 걸로 기억해 살금살금 발끝을 들어서 코너를 돈다.
“우웅… 주인님?”
“으왓?!”
때마침 미나가 방에서 나오는 미나.
언제나 그렇듯 요란한 속옷바람이다.
볼 사람이 나와 선화 밖에 없으니 프리하게 다닌다.
부디 목소리 낮춰달라고 검지를 세우자, 미나가 덜 깬 속눈썹을 귀엽게 깜빡인다.
‘어디 또 나가세요?’
‘그게…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웅… 또 여자 만나러?’
‘……어.’
안방에서 들리는 쿵쿵 울리는 지진소리.
자기 집안을 도둑처럼 깨금발로 돌아다니는 나.
이것만으로 대충 사태파악을 끝난 모양이다.
미나는 장난스런 미소를 내건다.
여기서 “또 여자 만나러 간다구요!?” 소리만 질러도 어떤 스펙터클한 일이 벌어질지 대충 직감한 듯하다.
스윽…♥
그러나 미나는 이 재채기 같은 충동적 쾌락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갖다오면 미나도 잔뜩 이뻐해주셔야 해요♥’
영리하게 딜을 건다.
잿가루를 뿌리기보단 점수를 더 딸 기회라 판단했는지 쿨하게 보내준다.
주물주물♥
야릇한 눈웃음으로 바지춤에 손을 찔러 넣어 불알을 만지는 건 덤이다.
수컷에게 한가득 아양을 떤다.
‘이래서야 좆에 씨가 마를 날 없겠네.’
보답으로 미나 턱을 당겨서 키스해준다.
딥키스로 추잡하게 혀를 엉킨 뒤 목덜미를 쪽쪽 빨아 마크를 새겨준다.
‘갖다오면 미나 물건 씹물 질질 흐르도록 찔러줄게♥’
‘주인님…♥’
그렇게, 미나의 적극적 협조 덕에 여권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뒤에 비로소 여우와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