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135. 응? 응? 응?
“웅… 방송 이제 재미없는데.”
<강소원 정상가동 프로젝트>
이를 시행하기 위한 수단이자 목표는 하나다.
소원이를 다시 방송을 시작하게 만들기.
본래 종합게임BJ인 소원이는 인방에서 갖은 수모를 겪었으나 방송 자체는 오래 했다.
나름대로 노하우가 쌓였고, 아직까지 게시판에서 찾는 콘크리트가 있다.
더구나 소원이는 10대 나이부터 방송을 해온 노련한 배테랑이다.
트라우마로 자주 나가는 멘탈만 잘 다독여 케어만 해준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정상적인 일상 속으로.
현재 소원이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방송용 컴퓨터를 손보고 있다.
저격으로 방송국 테러 당하고, 시청자가 줄어드니 꼴도 보기 싫었는지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됐지만 가동에 이상은 없다.
“그러면 개인적인 프로그램 몇 개만 설치할게.”
“응.”
여기에 해킹툴을 이용해 손본다.
편리하게도 해킹툴은 데스크탑에도 어플 프로그램을 옮겨서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할 프로그램은 멘탈 약한 소원이를 무사히 이륙시키기 위해 갖은 악플들을 원천 차단할 [매니저]와 [모자이크]를 업로드한다.
소원이는 인방에 정나미가 다 떨어졌지만 나의 간곡한 설득에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본인도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긴 뭐했는지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 최대한 서포트해줄 필요가 있었다.
거기에 방송을 하겠다는 것에는 조건이 있었다.
나도 함께 출현할 것.
내가 곁에 없으면 불안하다며 그야말로 생 때를 썼다.
방송 끝날 때까지 옆에 있어주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겠다고 빼액 드러누웠다.
결국 여기선 타협해야 했다.
여자 밝히는 색마로 떡빵만 찍어본 누추한 몸이나 소원이가 다시 사회로 향한 걸음마를 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단, 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모자이크 처리하는 방식이다.
가면 속에 가려져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어디까지나 일상이 제 궤도로 향하게 한두 번만 하겠다는 조건으로 마무리됐다.
[전송중 22%]
“좋아.”
소원이 컴퓨터에 해킹툴 어플이 전송된다.
다운만 완료되면 내 권한으로 임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째깍째깍…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전송시간에 대신 정적을 메우는 컴퓨터 책상 옆 알람시계.
“저기… 소원아.”
“응♥”
이 자투리 시간을 발판삼아 넌지시 흘려본다.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소원이 속 나에 대해서다.
“소원이는… 내 직업 알지?”
“선우도 방송한다 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방송인지는… 알아?”
“…….”
의미 없는 시선이 모니터를 향하는 와중,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고요한 긴장감을 타고 삐그덕삐그덕 모가지를 돌리자 소원이는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랑 노는 방송.”
본인 입으로 말하기 싫었는지 퉁명스럽다.
직접적인 표현마저 피해간다.
전부터 만나오면서 힌트를 다 제공했다.
그간 대화와 문자를 많이 주고받아서 성인방송을 한다는 것 쯤 알아채기 쉬웠을 거다.
대답을 듣자 안도한다.
사실 이 주제를 들쑤시면 사백안으로 달려들 줄 알았는데, 이 선이라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다른 여자들이랑 접촉이 많다는 것도… 알지?”
“나는 싫은데 그거….”
“싫어도 어쩔 수 없지… 내 일이니까. 열심히 일을 해야 소원이 맛있는 밥도 사주고 같이 놀러 가잖아?”
잔잔한 나뭇가지를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완곡하게 에둘렀다.
“…그건 그렇네.”
소원이는 의외로 얌전했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에 허덕여본 경험이 떠올렸는지 그저 시무룩해질 뿐이었다.
건드리면 연기처럼 모여들 벌집인 줄 알았는데, 고요하다.
그 탓일까, 좀 더 욕심이 난다.
“그리고 말이야,”
“또 있어…?”
“소, 소원이 만나기 한참 전에 일이니 참고해줘.”
크흠! 크흠!
인위적인 헛기침 뒤,
“만약 내가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있다면 어쩔 거야…?”
조심히 다시 벌집에 손을 가져가본다.
소원이의 광기가 어디까진지 가늠하기 위해서 장대로 쳐본다.
“……결혼? 여자친…구?”
그런 말이 있다.
인간이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언제나 그렇듯, 한 번 욕심을 내는 게 문제다.
주어만 언급하는 섬뜩한 말투는 정말이지 계단 수를 착각해 헛딛는 기분이었다.
딱 앞에까지 했다면 좋은 딜교환이었을 텐데 나는 그걸 넘겨버렸다.
드르륵- 쾅!
“선우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기다려. 지, 진정해 소원아.”
“나한테 이러기야? 결혼한다고? 언제부터 숨겨왔어? 이대로 나 떠나는 거야? 벌써 귀찮으니까 나 피해서 몰래 잠적하게? 정말 이대로 죽는 꼴 보고 싶어!? 응? 당장 부엌에 식칼 가져올까? 응? 응? 응?!”
자신의 게이밍 의자를 밀치고 넘어와서 덮치는 소원이.
씻어서 뽀송뽀송해진 머리칼이 다시 악귀처럼 흩날린다.
불안하게 떨리는 동공은 근처에 칼이 있었다간 무작정 찌르고 동반 자살할 기세였다.
슥슥슥!
소원이를 경험한 바, 광분을 잠재울 패턴은 언제나 하나다.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열정적으로 안아주기다.
“자… 착하지. 착하지.”
“지금 겨우 이런 걸로 될 것 같아!?”
“아~ 향기 좋다. 소원이한테 나는 샴푸향이 환상적이네.(국어책읽기)”
“…………좋아?”
고양이 발바닥처럼 다시 쏙 들어가는 손톱.
“소원이 좋아?”
“당연히 좋아하지. 소원이 몸에서 나는 향이 가장 좋아.”
“가장 좋아…♥”
소원이의 의식의 흐름에 맞춘다.
때 이른 실언을 만회하기 위해 무조건 좋다좋다를 반복한다.
“응… 나도 선우가 가장 좋아♥”
달려든 소원이의 허벅지 근육이 사르르 풀린다.
붉어진 보드라운 뺨을 고양이처럼 가슴에 부비적부비적 비빈다.
그대로 1분간 꽉 안아주자 들썩이던 소원이의 냄비뚜껑이 가라앉았다.
‘살얼음을 걷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어떻게든 위기를 넘겼지만 심장이 떨린다.
역시 소원이는 공생보단 숨겨야할 폭탄이다.
서류상 기혼이 된 마당에 선화라는 기폭제와 만나면 도대체 어떤 폭발을 할지 모르겠다.
[전송완료]
천장에 한숨을 내쉬는 때, 컴퓨터 모니터에 떠있는 알림창.
난리치는 사이 프로그램 전송이 끝났다.
*
잠깐 호러 영화로 바뀌었으나 소원이 의중도 떠봤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방송에 재개할 시간이 왔다.
“자, 그럼 신나는 방송해볼까?”
이제 강소원이 아닌, 의 복귀방송이 시작된다.
따로 게시판에 컴백 예고까지 해뒀으니 부디 성황리에 마치길 기도한다.
“으…….”
막상 메인 게이밍의자에 앉자 나오는 소원이의 긴장된 신음.
소원이는 모니터 앞에 앉기 직전까진 심드렁했다.
허나 오래 방치해둔 방송용 컴퓨터 앞에, 스스로 저주받았다고까지 표현하는 로 돌아올 시간이 되자 떨리는 모양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론 내 손을 꽉 잡는다.
그간 상처를 많이 받은 소원이.
다 잘될 거라는 신호로 책상 아래에 그 손을 맞잡는다.
캠은 바스트샷까지만 잡고 있으니 손 정도는 괜찮다.
⊙On Air
“흐읍…!”
크게 들어가는 숨.
“하, 하이욥! 다다다다들 오랜만이에요! BJ요나에요. 잘… 지냈어요?”
척 봐도 경직된 목소리.
그래도 적절한 방송용 톤이었다.
오래해온 방송 멘트로 스타트 끈을 끊는다.
인사를 한 후에 우리들의 시선은 저절로 채팅창으로 돌아간다.
소원이는 용기를 보였다.
흙탕물에서 홀로 처절하게 싸워온 전장에 다시 발을 딛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다음 채팅창 반응에 달려있었다.
채팅창 댓글은 천천히 하나씩 달렸다.
─5252 기다리고 있었다구 ㅠㅠㅠㅠㅠ
─왜 이제 오는 거야!
─해명해! 해명해!
─옆에는 모자이크 땡땡이는 누구야? 이것도 해명해!
썩 나쁘지 않은 반응들.
거기에 시청자수는 250명을 기록하고 있다.
본래 1000명대였던 과거에 비하면 초라하나, 오래 쉰 기간을 돌아보면 이만큼 모여준 것도 기적이다.
근심과 두려움에 가득차던 소원이의 눈주름이 풀린다.
의외로 반기는 분위기에 동했는지 조심스럽게 다음 멘트를 옮긴다.
“그게 저… 죄송해요… 그간 좀 힘든 일이 많아서요. 속상해서….”
─아 나는 그딴 루머들 안 믿음!
─요나 방송밖에 볼 거 없다구 계속 해줘 ㅠㅠㅠ
─멍멍이 샛끼들... 요나 괴롭히지 마!
“여러분들….”
올라오는 응원의 메시지들을 보자 찡한지 가슴팍을 움켜쥐는 소원이.
적잖이 감동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거기에 반해 나는 안도한다.
계산대로 [매니저] 어플을 깔아둔 효과를 돈독히 봤다.
사실 이건 쇼다.
소원이는 몇 달이나 쉬었다.
거기에 회장과 엮인 커다란 이슈가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는데 현실적으로 좋은 글만 올라올 순 없다.
이건 그저 어플의 힘인 거다.
[매니저]는 욕이나 잠적해 까는 댓글 같은 소원이의 억제기가 터지는 패턴을 원천 차단한다.
신이 주신 능력인 만큼 그야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능력이라 소원이 심기 거스르는 하등한 활자 따위는 적히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욕을 하러 온 시청자는 그저 숫자만 채워줄 뿐이다.
본의 아니게 시청해주는 숫자로 도움만 주고 있는 거다.
후후후… 무시무시한 어플의 힘에 속으로 비열한 미소를 짓는 이때, 채팅창에 반복질문이 올라온다.
─그러니까 옆에 모자이크 누구냐고!
“아! 소개가 늦었네요. 옆에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 사촌 오빠입니다! 사랑하는 사촌 오빠! 소원이가 힘들다고 해서 가족으로써 도와주러 왔어요. 하하….”
급하게 둘러댄다.
헤실헤실 들뜬 소원이가 헛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밑에서 손등을 꾹 누른다.
기분 좋을 땐 기분 좋은 대로 현실 분간을 못하는지 나사가 풀린다.
화면 너머에 안면에 씌워진 모자이크에 대해서도 궁금한 모양이나 최신 기술이라고 대충 흘렸다.
다행히 다들 소원이의 근황과 오랜만에 하는 게임방송을 보고 싶다며 아우성이라 넘어갔다.
실제 채팅창을 이용하는 시청자는 적었으나 훈훈한 그림으로 방송이 재개된다.
그간 못 들었던 썰을 풀고, 시청자 참가형태로 간단한 게임을 하고, 하하호호 떠든다.
과거 소원이가 긴 시간 가꾸면서 이룩해뒀던 동화 속으로 돌아간다.
여기까지 왔다면 해피엔딩일 거다.
소원이가 다시 직업을 찾고, 점점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휴먼 드라마.
우뚝!
하지만 하늘에 계신 한량신께선 그딴 흔해빠진 전개 따윈 질색하는 모양이다.
“…….”
“? 갑자기 왜 멈춰?”
옆에서 빵긋빵긋 웃으면서 움직이던 마우스가 멈춘다.
급속냉동으로 무표정하게 얼은 눈빛이 채팅창 한 곳을 노려본다.
“……그 놈이야.”
“뭐라고?”
“그 돼지새끼 방금 들어왔어.”
“으, 응?! 뭐라고? 돼지고기 먹고 싶다고!?”
애써 포장하나 오디오에는 분명 새나갔을 거다.
차갑고도 냉혹하게 되뇐 “돼지새끼”가.
돼지새끼란 누굴 말하는지 명백하다.
소원이를 지원해주던 전 회장이다.
BJ요나를 잠적 은퇴시킨 장본인.
'아… 좀 쉽게쉽게 가자고….'
꼭 무슨 일을 벌이면 끼어드는 이레귤러.
인생이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언제나 피부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