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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해서 BJ들과 친해지기!-130화 (130/193)

< 130화 > 130. 여기에 사인해

“…….”

“…….”

초저주파라는 것이 있다.

보통 야생에서 호랑이가 적을 위협하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방금 인간도 사용 가능하다는 걸 깨우쳤다.

선화는 현관 앞에서 부동자세로 서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장판파 장비를 조우한 듯, 지리게 무섭다.

폴을 재낀 현관문에서 한 발짝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 우리 사이의 거리를 보여준다.

뿌득뿌득뿌득….

간간히 이를 빠득거리며 여왕님이 내뿜는 살기.

여인내의 노여움에는 나의 부풀어진 근육 따윈 무용지물이었다.

“후우.”

허나 이윽고 공기가 가라앉는다..

여왕님이 고압적인 팔짱을 푼다.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려는지 미간을 꾹꾹 눌러 자신을 억누른다.

“좋아, 선택해.”

“…선택?”

“심장을 적출 당할래, 뇌수를 뽑힐래? 정 아니면 자를래?”

“………다 내키지 않지만 어쨌든 일단 물어볼게. 어디가 잘려?”

“당연히 거기지. 추리고 추려서 셋 다 하려고 했는데, 특별히 하나로 봐줄게. 하나만 해도 너는 뒤질 거니까♡”

생긋 들려진 입꼬리와 대조되게 눈빛은 죽어있어서 무섭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사지를 분해하는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린 모양이다.

‘결국 이 날이 오고 말았나….’

속으로 땅이 꺼져라 탄식한다.

자신이 돌아봐도 구차한 변명이나 잘못했다고 인지한다.

전에도 미나와 놀아나다가 봐줬다는 흐름 자체가 기적이라 믿기에 동거는 빼도 박도 못하고 걸렸다는 점을 명심하고 있다.

허나 아주 할 말이 없진 않다.

목숨을 걸고 해야 저질러야 하는, 많은 리스크를 내포하는 말이지만 딱 하나가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선화에게 전해야 할 말이었다.

“선화야, 내 말부터 들어줄래?”

“해봐. 썩어빠졌어도 남친새끼니 마지막 유언은 들어줘야지.”

“무, 물론 당장 땅에 파묻고 싶을 정도로 화났다는 건 알고 있어. 그만큼 잘못도 했고. ……하지만 나는─”

“주인님? 누가 왔기에 그렇게 오래 있어요?”

작심발언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찰나, 미나가 등장했다.

순진하게 긴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내 옆에 선다.

하필 미나의 옷은 속옷에 에이프런이다.

요즘 부쩍 나한테 호감을 주기 위해 여러모로 위험한 노출을 감행했다.

최근에 저 차림에 발정해서 존나게 박아댔더니 손님이 와도 대놓고 입고 있었다.

“이 시발년이…!”

귀를 기울이던 선화가 보자마자 눈깔이 뒤집어진다.

관자돌이와 꽉 움켜쥔 주먹에 터질 듯한 핏줄이 튀어나온다.

치파오 형태의 원피스 속으로, 다시 마음의 문을 닫듯 팔짱을 낀다.

“진짜였네? 우리 존나게 잘나신 남친님이 다른 여자랑 동거까지 하고 있었네? 여기 여친이 있는데!?”

“그러니까 이건……”

“흐흥♥”

진정시키려고 하는데, 선화의 심기를 거스르는 방탕한 웃음소리.

미나가 도발하듯, 앞치마에 속옷만 입은 부드러운 속살을 내 팔에 낀다.

바게트 안에 소시지를 끼우듯이 울창한 계곡 사이에 팔을 담근다.

“저기… 미나야 지금은 좀…….”

“아잉… 일주일 전부터 매일 하던 거잖아요. 쑥스러워하지 마세요♥”

선화 앞에서 관계를 과시하기.

찰거머리처럼 붙어 팔을 내저어도 결코 떨어지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현재 여친님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는 그대로다.

“이 씹년이… 팔 안 빼?”

“한심하네. 아침에 주인님 집까지 찾아와서 질투하는 거야? 너도 방송 정도야 알고 있었잖아?”

“주인, 주인님…?!”

“아 몰랐어? 나와 주인님은 이런 사이거든♥ 너한테는 비밀이었지만 사실 꽤 오래 됐어♥ 방송 제대로 못 봤나봐? 후후.”

연이은 옆 동네 미사일급 도발과 주인님이란 강렬한 키워드.

마그네슘이 부족한 듯 백금발 아래 눈가가 바르르 떨린다.

아무래도 선화는 인터넷방송의 컨셉 플레이로 이해했나보다.

얼빠진 틈을 노려 큼직한 가슴에 더 꽉 조여서 포격한다.

“걸레년이… 진짜 안 빼?”

“내가 왜?”

“그건 그… 내, 내 꺼거든!? 여친은 나라고 걸레년아!”

“웅… 세상에 니 것 내 것이 어딨어? 어디 적어두기라도 했나?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슬쩍 자신의 바깥 허벅지를 보여준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하얀 에이프런 뒤에 슬쩍 삐져나온 금사자 얼굴.

그야말로 폭력적인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나의 마크가.

이 문신 하나만으로 우리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소유권 주장이 아니라 본인이 소유 당했다는 증거지만.

허나 선화는 문신 자체가 거슬린 모양이다.

여왕님의 용안이 손끝이라도 닿으면 터질 듯한 풍선처럼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다.

거기에 잿가루를 뿌리듯이 미나는 한껏 더 신나서 약 올린다.

“게다가 너와 달리 나는 주인님이랑 계약까지 한 몸이라 온종일 떨어지지 않아도 되거든♥”

“그거 다 오늘로 끝이야…. 선우랑 할 얘기가 많으니 당장 짐 싸들고 집으로 꺼져 미친년아.”

“내 집이 여긴데? 정식적으로 주소 옮겼어.”

“진짜 돌았냐 이 걸레야?!”

“어머, 한 대 치게? 꺄~♥ 재 무서워요 주인님♥”

속옷만 입은 몸을 치댄다.

선화를 성난 오랑우탄 취급하면서 겁난다는 듯, 등 뒤에 숨어 가슴을 비빈다.

이럴 상황이 아닌데 촉감이 좋아서 환장하겠다.

“저기… 선화야 진정해봐….”

“닥쳐!”

인내심의 한계에 봉착한 샤우팅.

검지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워 나를 콕 집는다.

“이제 이 개짓거리 못 봐줘! 당장 방송을 접어! 그리고 저 년이랑 그 여우같은 년 싹 정리 해. …아니, 나 말고 주변에 여자 싸그리 정리해! 핸드폰에서도 지우고, 이딴 궁궐 같은 집도 옮겨! 그게 싫으면 당장 헤어져!”

한껏 내지른다.

송곳니를 내놓고 으름장을 내놓는다.

이별통보였다.

바람을 폈으니  당연한 절차였다.

사회적 정의가 된 남녀 관계로써 이건 명백한 배신이니까.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허나 나로썬 전해야한다.

아까 던지려던 폭탄을, 하필 감정이 달아오른 이때 전해야 했다.

“미안해 선화야….”

“………미안?”

“미안. 그럴 수 없어.”

“……………………………………………………………뭐?”

선화의 표정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는, 딱 그런 얼굴.

거기에 대고 최대한 차분하게 내 의견을 전한다.

“사실 예전보다 방송 사업을 더 키웠어. 미나랑은 방송에 출연하는 연기자로 정식적으로 계약 체결했고, 이 외에 방송에 거금을 투자해서 이제 멈출 수 없어. 따라서 그 조건은 하나도 못 들어줘.”

“제정신이야…?”

“나, 나도 염치없는 소리인 줄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제 내 직업이 됐거든.”

“나랑 헤어지더라도 하겠다?”

“…………………미안.”

무겁게 나오는 표면적 문구.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덮치고 봤던 나도, 차마 이 말은 직시하고 하지 못했다.

선화에 향한 마음이 거짓이 아니기에 나름대로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필 이럴 때 선화 귀에 걸린 귀걸이가 유독 아름답게 반짝인다.

내가 선물한 금박 결정형 귀걸이가 구슬프게 찰링인다.

“풋, 그렇다는데?”

이 대목에 밉살맞게 끼워 넣는 미나의 마무리 일격.

막타에 정신이 아늑해지는지 백금발을 잡고 꽉 움켜쥐는 선화.

전혀 예상 못한 전개였는지 어떻게 노여움을 표출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이, 이, 이런 씨……!”

끝맺지도 못하고 지리멸렬 찢겨지는 욕설.

꽝!

화를 못 참겠는지 폴이 걸린 문을 발로 차고 나간다.

강하게 충격에 오른발 하이힐 발굽이 부러졌으나, 여왕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을 쩔룩쩔룩 구르며 멀어져간다.

그렇게 넓은 마당을 빠져나와 벽 코너로 돌자 완전히 사라졌다.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난다.

3달을 이어온 나와 선화의 관계가.

이토록 허망하게 마무리된다.

“……후우.”

씁쓸한 한숨을 쉬고 집안으로 몸을 돌린다.

순식간에 몸에 기운이 싹 빠져버렸다.

헤어진다는 최악의 선택지를 각오했지만 막상 저지르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터덕터덕 매가리 없이 거실 침대에 걸터앉자, 미나가 애완동물처럼 쪼르르 따라붙어서 쓰다듬어준다.

“웅… 주인님 괜찮으세요?”

“미안해 미나야… 지금은 혼자 좀 있고 싶네.”

“기운 내세요 주인님. 뭐 필요하신 건 없어요? 미나가 다 해드릴게요!”

“아니…… 정말 혼자 좀 있고 싶어. 잠깐만 내버려둘래?”

“혼자 있으면 더 슬퍼져요. 제가 옆에서 위로해드릴게요. 아! 가슴이라도 만질래요?”

서둘러 앞치마를 벗고 속옷을 젖혀서 내놓는 젖.

평소 보면 환장하는 풍만한 빨통이 앞에서 아른거리나 머리를 가로로 돌린다.

“아니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

“헤어져서 슬픈 건 알지만, 조금만 만져보세요. 자.”

앓는 환자에게 죽이라도 주는 것처럼 들이민다.

반응하지 않자 멋대로 손을 훔쳐가서 쥐게 만든다.

물컹한 감촉이 좋긴 하지만… 또 한 번 머리를 돌린다.

“아니야! 이럴 때가 아니야.”

“자, 아니면 주인님이 좋아하시는 피어싱한 배꼽. 예쁘죠♥”

“부위가 문제가 아니라니까……”

“아! 역시 주인님은 여기를 가장 좋아하죠? 미나의 맛있는 보지…♥ 미나의 소중한 곳이 주인님 씨앗을 바라고 있어요♥”

“그러니까─”

10분 뒤.

“이럴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 걸레년아!”

“앙♥ 죄송해요 주인님♥”

“사람 힘들어 죽겠는데 씹보지 벌렁거리면서 혼자 발정해 씨발! 벌로 보지 위로 처들어!”

“죄송해요! 주인님만 보면 발정 나는 암캐라 죄송해욧♥”

좆두덩으로 음부를 쑤시며 흥건한 물기를 맛본다.

결국 미나의 끈질기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다.

여친과 이별한지 고작 10분 만에 허리를 흔들었다.

내 전용 씹에 좆끝을 처넣고 빠구리를 즐긴다.

…솔직히 이 스킨십 덕에 우울감이 날아가 위로가 되긴 했다.

***

부러진 하이힐로 쩔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겉옷 벗어던지고 침대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대로 중천에 뜬 해가 저물 때까지. 시체처럼 몇 시간을 누워있었다.

솔직히 현관문 박차고 나왔을 땐 잡으러 뛰쳐나올 줄 알았다.

평소에 그랬듯, 어떻게든 내 마음을 돌리려고 안달복달할 줄 알았다.

싹싹 빌며 요구사항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줄 거라 판단했으나 아니었다.

우울하진 않다.

프사에 ‘혼자서도 잘살아’같은 글귀 올리고 흐느끼는 계집애들의 꼴깝 이별처럼 눈물을 보이진 않는다.

나는 이선화고, 잘 나가는 인방의 여왕님이다.

부족할 것 없이 살아온 여왕님에게 눈물은 사치다.

그 까짓 바람둥이새끼, 한 시라도 헤어지는 편이 더 나았다.

그렇게 위안한다.

“아 열 받아! 열 받아 시발!”

쿵! 쿵!

허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컴퓨터처럼 이성적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 속에서 응어리지는 불쾌감 감정이 파도치자 침대 위에서 버둥댄다.

긴 머리칼이 귀신처럼 흔들리도록 이마를 시트에 박는다.

“시발 놈! 구멍만 보이면 허리 흔드는 발정난 똥개새끼!”

마침 머리맡에 그 새끼가 사준 라이언 인형이 보이자, 복부에 보디블로를 쑤셔 넣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렇게 땀을 쭉 빼자 금세 숨이 차오르며 나른하게 기운이 빠진다.

체력적으로 지치니 자연히 사색에 잠긴다.

헤어진다.

그건 분명 슬픈 일이다.

“하아… 연애는 끝인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개인적으로 슬픔보단 두려움이 더 컸다.

까놓고 그 새끼한테 몸을 지나치게 허용해줬다.

프리하게 내주니 정말 물고 빨고 흔들어주면서 온몸을 만족시켜줬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공포감이 조성된다.

무슨 막돼먹은 야설도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됐다.

실제로 선우 그 새끼 만나기 전까지는 섹스로 만족한 적이 없었으니까. 몸이 완전히 길들여져서 돌아버릴 노릇이다.

“게다가 그 암캐년…!”

더구나 나를 보고 비웃던 그 학교동기 년의 면상.

그 가증스러운 미소에 졌다는 패배감이 덧씌워 진다.

무슨 자랑이라고 허벅지에 낙인까지 찍은 년이 실실 쪼개는 얄팍한 웃음소리가 재생된다.

앞에서 속옷만 입은 깐족거림을 참은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후우…….”

화병 도질까 침대에 위로 누워 이마를 꾹 누른다.

다시 진정되니 천장에 선우 얼굴이 아른거린다.

“나쁜새끼… 그렇게 좋다고 해놓고선.”

돌고 돌아서 무엇보다 뼈아팠던 건 남친새끼의 이별 메시지.

그저 미안하다고 하며 끝내버렸다.

지랄발광을 해도 더는 잡지도 않았다.

그렇게 좋아죽던 사이가 하루만에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허무하다.

돌아보니 내 입장은 완전히 패배한 개였다.

다른 여자한테 남자 뺏겨서 울상 짓는 한심한 년이었다.

“흐윽… 읏…?!”

감성에 잠겨 그렁그렁 눈가에 물기가 고이자 서둘러 소매로 닦아낸다.

짝!

곧바로 정신 차리라고 뺨을 한 대 갈기고,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질질 짤 때냐?! 그 쌍년에게 지고, 남자한테 차여서 질질 짠다고? 정신차려 이선화!”

악다구니 쓰며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불어넣는다.

그렇다.

언제나 승승장구하며 남을 울리며 살아온 여왕님 인생에서 패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는 자신의 초라함을 참을 수 없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놈 면상이 떠오르는 라이언 인형을 뺨을 쭉 늘리며 선언한다.

“웃기지 마… 누구 멋대로 끝이야. 이제부터 시작이야 이 새끼야. 내 몸에 별 지랄 다 해놨으니 평생 내 거라고 넌.”

여왕님 사전에 패배 따윈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그간 고귀한 체통을 지켜왔는데 남자에게 휘둘리다 끝난 한심한 그림은 용납하지 못한다.

언제나 그렇듯, 멱살을 쥐고 흔들어야한다.

+++

“…선화야?”

이른 아침에 또 선화가 찾아왔다.

패션은 어제보다 더 화려해졌고, 조금 부어오른 눈을 부라리고 있다.

“상판이 아주 좋아 보이네? 나 갔다고 또 그 년이랑 좋아라 떡치고 놀았냐?”

“아니 그게……”

난처하게 굴리는 눈알.

정답이다.

왠지 한껏 신바람 난 미나가 계속 엉겨 붙어서 온종일 쥐어 짜였다.

때문에 슬퍼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나저나 왜 하루만에 돌아왔지…?’

나름 추측을 해보니, 그게 있었다.

연인과 이별은 처음이지만 연인들이 이별하는 절차에 대해선 숙지하고 있다.

“물건 찾으러 왔어?”

“물건?”

“그게… 헤어졌잖아. 선물해준 물건 찾아온 거 아니야?”

“헤어져?”

“………아니야?”

짧고 불쾌한 단답형에 눈치를 보자, 선화가 내 가슴을 툭툭 친다.

“난 아직 헤어진다고 한 적 없거든.”

“아니라고? 그럼─”

“아 닥쳐. 시끄러우니까 이거나 받아.”

구구절절 더 질문을 받지 않고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핸드백에서 구겨진 A4용지다.

“거기 동그라미 친 곳에 하나도 빠짐없이 기재해.”

“이게 뭔데…?”

“보면 알잖아.”

그 말 그대로 잘 보니 상단에 큼직하게 적혀있었다.

혼인신고서라고.

…………어? 혼인신고서?

설마, 고개를 드니 여왕님이 정색하며 전한다.

“뭐해? 빨리 적어. 오늘 너랑 결혼할 거야.”

“…………………………………………………………………………………………………네?”

되돌아보니 이것이 해킹툴을 받은 이후, 내 인생 두 번째로 큰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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