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119. 신사랑 엄마 신아영(37세/미혼모, 귀여움♥)
“여긴… 볼링장인가요?”
함께 도착한 요란한 네오사인 꼭대기에 커다란 볼링핀이 서있는 볼링장.
흔히 연상되는 지하에 위치한 어두침침한 볼링장이 아니라 화려한 조명에 야외주차장까지 갖췄다.
여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밝은 분위기라 밤에 왔다면 화려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네. 혹시 해보셨나요?”
“아뇨. 딱히 여유도 없었고, 어릴 적부터 구기운동은 취약해서….”
“음~ 그렇다면 오늘 특별히 배워보는 식으로 어떻습니까? 스포츠라면 충분히 함께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요.”
“그러죠.”
밀어붙이자 순순히 납득한다.
생소한 장소지만 솔직히 흥미는 있다.
내심 등 떠밀려 들어가는 입장이 좋다.
20대 시절, 육아와 직장에 시달리던 시간.
정장 입고 지나가던 대학생무리를 볼 때마다 부러워했던 젊은 취미 중 하나다.
뒤늦게나마 한참 연하의 남성과 이런 장소에 와보다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때 시절을 거슬러 받는 기분이다.
깡! 까앙!
‘볼링 즐기는 사람이 많네….’
바깥에선 한산해 보였지만 내부에는 가득 찼다.
무릎 보호대까지 차고 프로처럼 꾸민 분도 있고, 특히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더블데이트로 나온 신세대 남녀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서 경쟁 중이다.
홀로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 ‘역시 주책인가…’ 중얼거렸지만 기왕 나온 외출이니 자학은 그만하기로 한다.
딸애의 남자친구, 선우 씨가 카운터에서 대화를 나누더니 우리가 사용할 레인을 배정받았다.
레인에 들어와 커다란 볼링공을 들더니 구석구석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 시작 전에 기본적으로 쥐는 법이랑 규칙을 알려드릴게요.”
“네, 네!”
룰은 간단했다.
알다시피 볼링공을 던져서 핀을 최대한 많이 쓰러뜨리면 된다.
구체적인 점수 계산은 기계가 알아서 다 해주니 알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쥐는 법부터는 머리에서 쥐가 났다.
컨버녀셜 그립이니 세미 핑거라니, 특정 용어가 나오자 멍해졌다.
그래도 세심하게 알려주니 무작정 머리를 끄덕여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시범 보여드리겠습니다.”
비장하게 볼링공을 쥐더니 프로 못지않은 자세로 공을 던지는 선우 씨.
까앙!
“와아!”
“좋았쓰!”
강력한 스윙에 쓰러지는 볼링핀들.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부쩍 어깨에 힘을 줘서 보란 듯이 해낸다.
주먹까지 불끈 쥐고,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싱글벙글 해맑게 웃으면서 내 차례를 챙겨준다.
“자, 다음은 아영 씨 차례. 공은 10이 적힌 걸 쓰시면 될 거에요.”
“네, 네!”
건네받은 무거운 공을 들고 레인 위에 선다.
선우 씨의 플레이를 보고 고양됐는지 비장함이 감돈다.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선우 씨가 했던 그 자세 그대로 재현한다.
마음만큼은 프로였다.
문제는 그 탓에 순간 몸치라는 걸 잊었다.
데굴데굴… 쿠릉!
레인 위에서 비실대는 신아영의 공.
술에 취한 듯 비틀대다가 거터에 빠진다.
흔히 도랑이라고 말하는 사이드 함정에 빠져 씁쓸하게 퇴장한다.
중간도 못가고 바로 빠져버린 형편없는 결과.
“으으….”
폼은 또 멋지게 잡은 탓에 부끄러워서 화끈 달아오른다.
신아영이 혼자 민망하지 않도록 채선우가 다가와 넉살 좋게 위로한다.
“하하, 괜찮아요. 처음 던지면 다 그래요.”
“그런가요….”
“연습만 하면 다 돼요. 다시 한 번 던져보시겠어요?”
다른 볼을 주면서 응원해주는 선우 씨.
너그러운 가르침에 보답하고자 다시 한 번 도전해본다.
데굴데굴… 쿠릉!
“하하, 너무 긴장하시지 마세요. 이번에는 조금 더 힘차게 던져보실까요?”
“에잇!”
힘차게 들어가는 도랑.
“하하, 이번에는 약하게! 조금만 약하게 가죠.”
“얍!”
다시 비실비실 들어가는 도랑.
“으음… 이번에는 적당히. 딱 아까의 반만 힘을 섞어서 해보세요.”
“이얏!”
적당한 속도로 쏙 들어가는 도랑.
연어의 귀소본능처럼 귀신같이 찾아 들어간다.
데굴데굴… 쿠릉!
“하하….”
“우웃….”
몇 번을 던져도 결과는 같았다.
─푸하하하하!
마침 옆에서 즐기던 커플무리들이 폭소하는 목소리.
수치심에 귓불이 흔들린다.
나를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본인들끼리 마주한 얼굴들을 보아 필시 착각이겠으나, 워낙 타이밍이 적절했다.
시무룩하게 쳐지는 신아영의 여린 어깨.
“이제 됐어요… 그만할래요.”
“조, 조금만 더 해봐요. 딱 한 번만 성공해보죠.”
“괜찮아요. 역시 몸으로 하는 건 제게 안 맞나 봐요.”
“그러지 마시고, 이번에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네?”
돌아오는 회답 없이 자연스럽게 뒤에 서는 선우 씨.
뒤에 딱 달라붙어 큼직한 몸을 포갠다.
“서, 선우 씨?”
“일단 팔이 마지막에 비스듬하게 흔들리는 게 문제에요. 마지막까지 꼿꼿하게 직선으로 한 번 던져보죠.”
전문가처럼 구체적으로 지적해줬지만 한마디도 안 들어왔다.
니트 위에 감겨오는 남성의 움직임에 전신이 긴장한다.
분명 흑심에 찬 추행이 아니었다.
마치 드라마에서 볼 것 같은 자연스러운 터치.
유능한 체육 강사처럼 자연스럽게 안아서 조목조목 짚어준다.
큰 체구의 단단한 몸이 옷깃에 닿는다.
간접의 간접접촉이지만 그 묵직함이 전해진다.
손을 잡아주는 큼직한 손은 월식처럼 가뿐하게 가렸다.
“자 그럼 이대로 손을 가볍게 쥐시고……”
“…………♥”
많은 조언들이 귓등에서 튕겨나간다.
멋대로 수치를 올리는 맥박수를,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바쁘다.
슥, 슥♥
거기에 엉덩이에 이따금 아슬아슬하게 닿는 이 감촉.
그 감촉은 콧잔등을 간질이는 재채기 같았다.
나의 착각인지 몰라도 엄청 커다란 물건에 닿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남성이 흥분했을 때처럼 단단하진 않았지만 나의 긴장감을 부추겼다.
‘으음…♥’
오랜만에… 아니, 처음 느낀다고 봐도 될 남성의 튼튼한 골격.
데굴데굴데굴데굴… 쿠릉.
“앗.”
집중력을 잃자 신아영의 초록색 볼링볼은 또 도랑에 빠진다.
가르쳐주는 동안 딴 곳에 정신을 팔린 탓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열혈강의가 무색하게 비틀거리다가 중간부터 빠져든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되지….”
멀쩡한 볼링핀이 교체되는 레인을 바라보며 좌절하는 채선우.
이것저것 용어 섞어가며 설명했는데, 선생님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열등생 신아영이 급한 마음에 급하게 뭐라도 해본다.
“저, 저기 선우씨. 가르쳐주는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몸치라서 그래요!”
“그래도 한 번쯤은 성공할만 한데요….”
“음… 아아아아무래도 흉내 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던져도 되나요?”
어떻게든 구겨진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뭐라도 시도한다.
따라하는 행동을 그만하고 본인 편한대로 양손에 든 볼링공을 그대로 바닥에 굴린다.
딱 힘없는 어린애가 공을 던지는 자세다.
떼구르르르… 깡!
“어?”
“응?”
스트라이크.
직선으로 굴러간 볼링공에 무너지는 볼링핀 요새.
“드, 들어갔어요! 선우 씨!”
아마 99% 우연이었다.
허나 어쨌든 생에 처음으로 스트라이크를 했다.
우울했던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한 방이다.
황망히 바라보던 채선우가 뒤늦게 호응해준다.
“추, 축하드려요. 그런데 자세가 불안정해서 숙달되려면 다른─”
떼구르르르르르르… 깡!
“어?”
“또 들어갔어요!”
혹시나 싶어서 그대로 또 던져보자 스트라이크.
신이 난 신아영이 부츠로 방방 뛴다.
채선우는 금붕어처럼 눈을 깜빡였으나 이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박수쳐주며 더블을 달성한 신아영을 축하해준다.
이후, 정상적인 게임으로 돌아서니 신아영은 이후 도합 4번의 스트라이크를 달성했다.
우연인지 실력인지 어쩌다보니 최종점수로 채선우까지 꺾었기에 점수판을 찍어서 딸에게 자랑했다.
“이거~ 졌으니 어쩔 수 없네요. 점심은 제가 쏴야겠는데요?”
그의 능숙한 멘트로 흘러간 다음 장소는 철판구이 집.
미리 예약해둔 그곳에 화려한 불쇼를 보며 다양한 고기들을 대접받았다.
“밥은 제가 쐈으니 후식은 아영 씨가 쏘는 거죠?”
능란한 말재간으로 카페에서 티타임을 즐긴다.
기꺼이 쏜다곤 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선우 씨에게 많은 서비스를 제공 받았다.
새로운 직장 환경, 싫었던 지난 직장 상사, 딸이랑 재밌었던 추억.
딱히 들어도 쓸데없는 그저 그런 수다들을 카페에 앉아 다 들어줬다.
중간부터 나만 떠들어서 미안했지만 선우 씨는 웃으면서 경청해줬다.
“밤공기가 아직 쌀쌀하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같이 걸으니 따뜻한 거 같지 않나요?”
“그… 그럴지도요.”
문득 정신을 차리니 아무런 허물없이 시내 밤길을 걷는 두 남녀.
이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팔걸이를 꼬옥 잡는다.
볼링장에서 스트라이크를 친 이후부터, 나이차이도 잊고 즐기기 바빴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유려하게 흐르는 전체적인 코스가 좋았지만 선우 씨의 입담이 컸다.
딸이 왜 빠진지 알 정도로 여자를 상대하는 것에 능숙했다.
‘어쩌면 다 의도됐나?’
듣기로는 수컷 개는 승부에서 의도적으로 암컷 개에게 져준다고 한다.
어쩌면 나를 띄워주기 위해서 다 계산됐다고 볼 수 있겠다.
“자 그럼. 아영 씨.”
“네, 네!”
“슬슬 밤이 깊어지니 집까지 바래다드릴까요?”
“아…….”
무심코 나오는 진한 아쉬움이 베어 나오는 외마디.
꺼내보니 그랬다.
휴대폰이 가리키는 현재 시간은 밤 9시 27분.
분명 돌아갈 시간이었다.
“…….”
하지만 몸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응한다.
선우 씨 팔을 더 강하게 잡고 떼쓰는 애처럼, 목석처럼 굳었다.
오늘 한 번 하기로 한 데이트.
만약 이게 마지막이라면 또 언제 이런 날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나이에 또 이런 핑크빛 연애전선이 돌아올까?
더구나 이런 젊은 남성과?
몸은 연장을 원한다.
본심은 이 젊은 남성과 밤을 새기 원한다.
‘전부 사랑이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였고,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무심코 꼭 끌어안은 굵직한 팔을 잡고, 머뭇머뭇 말을 꺼낸다.
“저기……”
“네?”
“어쩐지 피곤한데… 잠깐만 쉬어갈 수 있을까요?”
저지른다.
속으로 꺅! 비명을 지른다.
어쩔 줄 몰라 버둥대다가 팔을 꽉 잡고 얼굴을 숨긴다.
“피곤하시다라~”
‘으…♥’
의도적으로 위를 안 쳐다봐서 알 수 없으나 왠지 웃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반응을 살피며 히죽대다가 팔짱 낀 내 어깨를 꼬옥 끌어안는다.
“쉬어가는 정도라면 얼마든지요.”
기꺼이 응해주는 선우 씨.
나에게 창피를 주지 않기 위해 어깨를 문질러준다.
그럴수록 여성으로서 더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든 마침 근처에 전망 좋은 호텔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