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110. 시즌 1호 아수라장
러브젠가란 커플, 술자리 등. 남녀끼리 즐기는 성인용 게임이다.
나무토막에는 답해야할 질문 또는 취해야할 행동이 기재돼 있다.
이 높은 탑에서 하나하나 빼낼 때마다 명령어를 수행하면 되는 간단한 룰.
어찌 보면 전에 했던 왕게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어쩌다 이 셋이 모여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린아이처럼 들뜬 연수가 마저 진행한다.
“자, 룰은 대충 알겠지? 나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시작한다?”
“……기다려. 이딴 조잡한 게임으로 무슨 테스트를 한다는 거야?”
“해보면 알아♪”
툭, 테이블 위에 젠가를 하나 밀어 선화 코앞에 툭 떨어뜨린다.
연수의 도발은 끊이지 않는다.
선화의 일그러진 감정이 당장이라도 터지기 직전이라 보는 내가 살얼음을 걷는 듯 떨린다.
주섬주섬 나무패를 회수해서 살펴보는 연수.
“흐음… 좀 시시한 게 걸렸네.”
살짝 엉덩이를 떼더니,
“자아~ 잠깐 실례할게 자기♥”
찰싹, 내 옆구리에 붙는다.
여성의 매력 포인트인 풍만한 가슴을 비빈다.
입꼬리를 요망하게 올리면서 행복하다는 듯 뺨까지 부빈다.
염장을 지르자 참지 못한 선화가 벌떡 일어선다.
“야이 미친 여우년이 무슨─”
“잠깐. 봐봐. 이런 명령어가 나왔는데, 어쩔 수 없잖아.”
「가장 호감있는 상대에게 30초간 안기기♥」
나무패를 방패삼는다.
확실히 그곳에는 안긴다는 미션이 적혀있다.
연수는 그저 게임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덧붙인다.
“가장 호감 있는 상대, 여기서 호감이 있을 이성은 여기 자기 하나 밖에 없잖아? 아니면 그쪽이 나랑 안고 싶어?”
“그, 그 뜻이 아니라! 이건 방송이 아니잖아…!”
“그래? 그럼 방송 켜고 화끈하게 놀아볼까?”
“내가 미쳤냐?! 아 진짜!!!”
이 외계인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듯 머리를 싸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선화.
일반적인 정조관념을 지닌 선화와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연수는 그야말로 상성 그 자체였다.
그 사이에 30초는 지나가 연수가 제자리에 돌아온다.
선화의 얼굴에 드러나는 희로애락을 양분삼아 실실 웃는다.
“아니면 그만둘까? 그쪽이 집착하길 좋아한다고 인정하면 여기서 끝내줄 의향 있어.”
“……필요 없거든?”
“걱정 마. 남자를 쥐락펴락하고 싶은 여자는 흔하니까, 이해할만 해.”
“닥쳐. 나한테 해당사항 없다고.”
뿌극뿌극 이를 가는 선화.
연수가 꺼내든 무적의 이지선다 선택지에 고전한다.
단숨에 선화의 캐릭터를 파악한, 여우의 농락은 교묘했다.
선화는 당장 이 개 같은 게임 끝내고 싶은 모양이나,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제 와서 도도한 여왕님의 프라이드를 꺾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럼… 내 차례네.”
시계방향으로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다음 차례는 내 턴이다.
조심스럽게 젠가의 이를 하나 빼니, 「옷 하나 벗기」가 걸렸다.
현재 셔츠 추리닝 바지, 팬티 딱 세 개를 입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웃통을 깠다.
“…….”
“크흠!”
여자 앞에선 언제나 자신감 넘치게 몸을 공개했는데, 지금은 조금 불편하다.
정면의 선화 탓에 근육들이 잔뜩 움츠려든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미나와 연수는 몹시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 그럼 다음 차례는 나네!”
내 몸을 보고 군침을 다신 미나가 나무토막을 하나 꺼낸다.
아직 공략할 곳은 많은 덕에 중단부에서 쉽게 빠져나온 그 명령어를 보고 미나가 배시시 웃는다.
「원하는 상대에게 머리 쓰담쓰담 1분간 받기」
불길한 웃음에 혹시 수위가 쌘 걸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 것 아니었다.
“흐흥♥”
당연히 쓰다듬 받을 대상은 나를 선택한 미나.
암묵적으로 살포시 기댄다.
거기에 맞춰 머리를 빚어주듯 고운 흑발을 스윽스윽 넘겨주자 더욱 깊은 애정을 갈구하듯 가깝게 들이민다.
언제나 애정이 부족한 강아지의 꼬리가 파닥파닥 흔들린다.
‘뭐, 그래도 이 선이라면 선화도 화는 내지 않을─’
정면에선 사우론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수위가 낮은 명령어에 안심했는데 그늘진 얼굴에 안광을 부릅뜨며 감시하고 있었다.
입모양은 살인예고처럼 ‘좋냐?’라고 두 단어가 들썩였다.
“자, 자아! 그만 할까?!”
“아~ 안 돼! 아직 시간 못 채웠어♥”
벗어나려고 애썼으나 미나가 욕심 가득하게 복사근에 안겨왔다.
내 품에서 온기로 충전되는 배터리처럼, 명령에도 적히지 않은 행동까지 취했다.
실시간으로 내 목숨줄이 바겐세일 되고 있다.
어쨌든 다음은 드디어 선화 차례.
알까기 하듯 나무토막을 강하게 날려 내 가슴에 꽂히게 했다.
전혀 아프진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나에 대한 앙심으로 저격했다는 게 티가 났다.
「맞은편 (없다면 우측) 상대에게 사랑해♥ 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
처음으로 나온 대화미션.
거기에 선화의 맞은편에 앉은 내가 강제로 지목되는 미션이었다.
어째 행동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대화였고, 나온 명령어마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선화는 기계적으로 답했다.
“사랑해. 정말 존나게 사랑해.”
“…….”
사랑을 전하는 세레나데는 몹시 건조했고, 아무런 감정이 안 담겼다는 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요즘 정확도가 부쩍 높아진 구글 번역기를 돌린다면 “죽일 거야. 이 게임이 끝나면 반드시 너를 죽일 거야.”로 출력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한 바퀴를 딱 돌자, 선화의 눈에 띄는 리액션 덕에 골리는 재미가 쏠쏠한지 연수가 시시덕 웃는다.
“의외로 잘 버티네.”
“버텨…? 나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데?”
“음… 불쌍한 자기에게 조언하나 하자면 그릇에 맞지 않게 무리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워. 여자로 태어나 남자 쥐락펴락하며 살고 싶을 수도 있지. 물론, 나는 아니지만♥”
“………닥치고 계속 해. 여우년아.”
“무리하네~♡”
연수의 농락으로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선화는 속행을 선언했다.
이쯤되면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건지, 여우의 함정에 빠져서 눈이 돌아간 건지 모르겠다.
게임에 승부욕까지 발동해 그저 앞만 보고 전진한다.
‘…따져보면 본인만 괴로운 게임인데 말이지.’
그렇게 선화의 무리한 응전으로 게임은 돌고 돌았다.
「왼쪽 상대 귀 깨물기♥」
「오른쪽 상대의 뺨에 짧게 키스♥」
「원하는 상대에게 가장 좋아하는 자세 취하기♥」
「좋아하는 체위 말하기♥」
…
…
…
가속도를 붙여가는 러브젠가.
앙상한 뼈대만 남아가는 나무탑은 갈수록 자극적인 미션을 남겼다.
초반에 소프트한 명령어가 지워지다보니 점점 수위가 쌘 미션들이 출몰했다.
「상대 명령 1회 방어권」
“아 진짜!”
명령어를 확인한 나무토막을 테이블 위에 내팽겨 치는 선화.
그 와중에 선화가 뽑은 명령어는 기가 막혔다.
옷 하나 벗기, 스쿼트 10회, 오른쪽 사람에게 애교부리기.
기분도 최악인데 미션이 죄다 어설펐다. 혼자 헛짓하고 자기를 농락하는 연수에게 마음에도 없는 애교까지 부렸다.
그에 반해 나머지 미나와 연수는 나와 스킨십을 나누는 미션이 곧잘 나왔다.
미나가 등 뒤에서 가슴을 문지르고, 연수는 유연한 몸을 이용해 I밸런스로 섹스어필했다.
양 옆에서 내 오감을 만족시켜줬다.
지금이 생명이 걸린 최악의 상황인 건 아는데, 솔직히 코앞에 꽃이 세 송이나 피어있으니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매력적인 여성 셋과 게임을 즐기니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 찰나의 표정을 포착한 선화가 테이블에 받친 팔로 턱을 괸다.
“어쭈, 아주 귀에 입이 걸리겠다?”
“아… 아하하….”
“웃어?”
“아뇨.”
다시 무시무시한 사백안으로 돌아와 꼽을 주자 바로 정색.
다소곳하게 무릎을 모아서 꿇어앉는다.
여친이 지켜보는 마당에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허나 아직 최악의 위기는 벌어지지도 않았다.
“자, 또 한 번 내 차례.”
재주 좋게 맨 아래에 달랑 하나 남은 나무토막을 쳐서 빼내는 연수.
어렵게 빼낸 명령어를 확인하더니 나를 보고 입맛을 다신다.
「원하는 상대의 소중이 30초간 귀여워해주기」
“뭣?!”
“이거, 어쩔 수가 없네~♥”
연수가 큼직한 엉덩이를 바닥에 밀면서 옆에 앉는다.
단둘이 침대 위에서라면 밥 먹듯이 하는 행위다.
하지만 공개적인 장소니 그 난이도는 하드코어로 뛴다.
허나 연수는, 옆에서 방실방실 웃는 이 요망한 여우는 무턱대고 저지를 생각이다.
진심으로 바지에 속에 넣으려고 꼼지락 손가락을 움직인다.
“자, 그러면 바지 속에서 답답할 다른 자기를 구해줘 볼까.”
“기다려! 아 기다리라고 미친년아!”
달려들어서 부리나케 막아 세우는 선화.
젠가가 올려진 테이블 위에 발까지 올려서 뛰어들 기세다.
“감히… 감히 그따위 개짓거리하기만 해봐.”
내 눈앞에서 선은 넘지 말라는 듯 나지막이 경고.
차마 거기까진 못 봐주겠다는 듯이, 차갑게 연수를 노려봤다.
옆에서 껴안고 뽀뽀까지는 입술에 피를 흘리며 봐주더라도 거기까진 안 되겠다는 듯이 선을 긋는다.
정적.
얼음여왕님의 노여움에 순간 분위기가 냉랭하게 얼어붙는다.
허나 연수는 그녀의 몸처럼 사고가 유연했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하면 내 소중이 귀여워해주기로 바꿀게.”
“웁?!”
가뿐하게 일어서 앉아있던 내 머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소중이에 비비는 연수.
나의 뜨거운 숨결을 자신의 체육복 바지 안, 음부에 불어넣게 만든다.
역으로 자신의 소중이를 귀여워해주도록 내 뒤통수를 꽉 잡는다.
‘미, 미치겠다…!’
연수의 돌방행동에 행복한 동시에 불행했다.
연수 시큼한 보지향이 느껴졌지만 선화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이대로 발기라도 했다간 선화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질지 안 봐도 비디오다.
꾸우우욱!
그렇기에 연기하는 AV배우처럼 억지로 허벅지를 꼬집어 비틀었다.
이 위기에 흥분하지 않도록 밀려오는 혈기를 억눌러 참았다.
“푸하!”
“후우… 이젠 자기 입김만 받아도 뜨거워지네♥”
30초가 지나 떨어지자, 나는 숨을 골랐다.
예열된 연수는 만족스럽게 몸을 꼬았고, 선화는 초저온으로 식었다.
“…….”
명령어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막긴 했으나,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허나 따져보면 연수가 한 발 양보해준 거라 따지지도 못했다.
코앞에서 여우의 펀치를 또 한 번 먹은 거다.
아까부터 얼마나 당했는지 여왕님의 가슴은 너덜너덜해질 지경이다.
“자… 자 그럼 이번에는 내 차례….”
천만다행히 나는 이 위기에서 별 쓸데없는 명령어가 걸렸고, 다음으로 미나 차례가 왔다.
“좋아…!”
연수의 과감한 행동에 쓸데없이 자극을 받았는지 잔뜩 어깨에 힘을 주는 미나.
몇 개 남지 않은 나무토막을 하나 살살 밀어서 뺀다.
그리고 화투패 확인하듯, 조심스럽게 혼자 패를 확인한다.
“…….”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퉁명스럽게 노려보기.
“아, 손이 미끌어졌다(국어책 읽기)”
그렇게 나무토막을 홱 던졌다.
거실의 침대 아래를 향해 던져진 나무토막은 미끄러지듯 쏙 들어갔다.
“야, 뭐하는─”
“아~ 안에 적힌 명령어는 「원하는 상대 원하는 만큼 꼭 끌어안아주기♥」였어.”
“구라치지 마, 사이버창년아….”
손모가지라도 내려칠 기세.
“웃챠♥”
그러건 말건 명령어대로 해야 한다며 내 품에 안겨왔다.
상의 탈의한 내 몸에, 온몸을 비비적거리며 질척한 스킨십을 나눴다.
선화는 서둘러 침대 바닥으로 들어간 나무패를 주우러 다다닥 달려갔으나 돌아왔을 땐 미나는 떨어져 있었다.
손에는「왼쪽에 있는 상대 몸매 칭찬해주기♥」가 쥐어져 있었다.
심리적으로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먼지까지 뒤집어 써 물리적으로도 너덜너덜해진 선화.
홧김에 술병 던지듯, 하드보일드하게 나무토막을 테이블에 버리고 다시 앉는다.
“채선우… 이 게임만 끝나면 각오해.”
“…….”
모든 화(禍)의 스택은 나를 향하고 있다.
둘이 선화를 자극할수록 내 수명만 줄고 있다.
선화는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이 두 X년에게 밀릴 수 없다는 듯이 심기일전해서 빼낸다.
젠가에 나무토막이 몇 개 안 남았기에 정밀하게 상단의 나무패를 노렸다.
반도체 공장의 기계처럼 슬슬슬 미세한 컨트롤로 밀어서 옆으로 빼낸다.
툭, 와르르르르!
그러나 와르르 무너지는 탑.
딱 선화가 잡은 나무도막 하나만 공중에 띄워진 채로, 무너지고 말았다.
앙상한 젠가는 더는 하중을 못 견디고 균형을 잃어서 끝장났다.
“아, 무너졌다.”
설명조로 덧붙이는 연수의 한마디.
완전히 무너져 내린 선화의 멘탈 상태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선화는 집게에 나무토막을 쥐고 무너진 탑을 황망히 바라봤다.
“가만.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음… 보통은 술을 마시거나 고약한 벌칙을 설정해두는데, 딱히 정해두지 않았네.”
“아, 그럼 이참에 게임에서 빠지기 어때요?”
“아, 그거 명안이다! 확실히 그쪽은 머리가 조금은 돌아가나 봐.”
“그럼 경쟁자… 사람 한 명 줄었으니 다시 나부터…♥”
“기다려. 시계방향이니 다시 내 차례지.”
“칫, 욕심 많기는.”
“그쪽이야말로 게임 끝난 틈에 슬쩍 자기 곁으로 붙지 말지?”
“……………………………가.”
선화의 외마디.
고개를 숙이고 엄숙하게 외마디를 던졌다.
연수는 “승복하지 못하는 거야?” 운을 띄우며 재차 농락하려 했으나 슬쩍 상태를 확인하고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거실… 아니, 대지가 진동하고 있었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려는 멸망의 전조가 보였다.
인내의 한계에 봉착했다.
여왕님의 멘탈이 그야말로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미나는 “지가 뭔데 가라 마라야.”덧붙였으나 이 모든 걸 감당해야하는 당사자는 나였기에 자제를 부탁했다.
AK를 든 테러리스트를 그만 자극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럼 잘 수습해봐. 자기.”
재미를 볼대로 본 연수는 영리하게 빠져나갔고,
“음… 선우야, 또 연락할게.”
미나는 조금 버티다가 착잡한 표정으로 떠나갔다.
그렇게 집안에는 단둘이 됐다.
아직은 여친인 선화와 사시나무처럼 떨며 눈치를 살피는 나만 남았다.
“…….”
“저기… 물이라도 떠줄까?”
“필요 없어.”
“어…… 아니면 누워서 쉴래?”
“쉬어? 쉴 틈이 어딨어?”
“그럼─”
“좆부터 꺼내.”
다짜고짜 그렇게 명령한다.
“네?” 되물어보면 백에서 칼이라도 빼들 예감에 삼킨다.
무슨 의도인지 전혀 파악이 안 됐으나 명령대로 한다.
불알이 차이든, 좆이 차이든 여왕님 앞에서 알몸이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