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킹해서 BJ들과 친해지기!-100화 (100/193)

< 100화 > 100. 다 잃어서 폐인이 된 BJ요나(강소원 23세/음침해짐)

뎅~ 뎅~ 뎅~

거실에 틀어둔 TV화면 속, 제야의 종이 울리면서 새해가 간다.

그렇게 여자랑 놀았는데 새해에는 우연찮게 다들 바빠서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타종과 함께 새해를 맞이한다.

선화는 어떻게든 더 놀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대목에 두 번이나 일정을 변경해서 논다는 것은 너무나 수상쩍은 행동이라 단념했다.

어찌 보면 딱 알맞게 새해목표를 설정할 날일지도 모른다.

○○○뱅크 잔액

₩592,969,311

풍족하다 못해 터질 듯한 잔고.

이게 겨우 몇 달 만에 이룬 성과니 돈에 감각이 없어질 것만 같다.

볼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지난 일주일에는 큰 맘 먹고 사치까지 부려봤다.

무려 요플레 뚜껑 안 핥고 버리고, 고급 브랜드 운동화를 사고, 삼시세끼를 프ㄹ닭치킨으로 해결하는 최고급 사치.

허나 잔고에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아침에 켜볼 때마다 무서울 기세로 잔고가 쌓여갔다.

그래도 영리치처럼 무언가 더 저지를 생각이 없었다.

연수에게 빌린 차도 있고, 물욕은 크게 당기지 않아 저축으로 가는 중이다.

이대로 꾸준히 모아 지금 거주하는 집을 살까 했지만, 지금 월세로도 편하고 여기에 터를 확정짓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판단했다.

돈이 없을 땐 없는 대로 걱정이었는데 너무 많아지니 뭘 할지가 고민이다.

“역시 이것 밖에 없겠네.”

그렇기에 답은 정해져있었다.

한 번 더 [함께 즐겨요!] 어플을 업그레이드해서 돈을 불리기에 가속도를 싣기.

이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으나, 벌써 가장 고가의 기능을 구입할 때가 왔─

띠링!

[미션 시작!]

[BJ요나와 합의해서 성관계 맺기]

[미션에 실패할시 계좌의 금액이 싹 사라지는 패널티를 받게 됩니다]

*본 미션은 당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패널티 미션입니다.

*미션 성공까지 당신의 계좌와 [함께 즐겨요!]앱 기능은 잠기게 됩니다.

*상대 의사와 상관없이 겁탈 혹은 강간을 하게 되면 실패하게 됩니다.

너무나 적절하게 끼어든 미션.

거침없이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알림음과 함께 화면이 전환된다.

‘웬일로 미션이래?’

오랜만이다 싶어서 반갑더라도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자 눈가가 부르르 떨린다.

‘과오’와 ‘패널티’라는 단어가 걸리지만 무엇보다 걸리는 점은 3번째 줄에 적힌 계좌에 돈이 싹 사라진다는 문구.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힘을 담고 있다.

“저기요, 열심히 일해서 벌었는데 멋대로 뺏는 게 어디 있습니까?!”

집안에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홀로 분개해버린다.

아무리 한량신이지만 뜬금없고 가혹하다.

게다가 과오라니,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다고 이런 거창한 단어를 쓰는지 모르겠다.

과오에 패널티… 무슨 파울이라도 저질렀나?

일단 억 단위 돈을 뜬눈으로 잃게 생겼으니 마음을 다잡는다.

목표 타겟은 BJ요나. 다소 알쏭달쏭한 이름이다.

들어본 적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생소하다.

그간 만난 BJ나 여자들이 워낙 많다보니 일일이 기억하진 못한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급하게 폰을 꺼내서 검색을 해봤더니 한 명 뜬다.

“……마지막 방송이 2달 전인데?”

이만하면 방송을 접었나, 의심된다.

어쨌든 지난 동영상으로 얼굴을 살펴보니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다.

웨이브 넣은 긴머리에 반반한 외모, 그리고 큰 가슴.

딱 내가 좋아하는 타입.

하지만 워낙 하루하루가 드라마틱하게 넘어가다보니 역시 기억하지 못하겠다.

아마 십중팔구 내가 협박으로 관계를 맺은 여자 중 한 명일 거다.

그런데, 왜 이 타이밍에 한량신은 이 여자를 타겟으로 삼은 걸까.

“……방송도 안 하고, 전화번호는 개인적으로 지운 것 같으니 내일 생각할까.”

지금으로선 상대에 대해 알 방법이 딱히 없으니 내일로 미룬다.

가볍게 샤워하고 나서 침대에 눕는다.

***

BJ요나의 집 앞.

도통 생방송을 켜지 않아서 [블랙마켓] 앱으로 정보를 산 다음, 주소를 알아내 집으로 찾아왔다.

겸사겸사 전화번호도 알아냈지만 무소용이었다.

폰이 항시 꺼져있었다.

해킹해서 정보를 캐내려고 했는데, 24시간 감자상태로 만들어두고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면 아무리 해킹툴이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보다… 방 뺐나?”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여있는 철제문.

악귀를 봉인한 부적처럼 아주 구석구석 빼곡히 붙여있다.

공포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저주받은 집 같다.

비주얼에 지려서 몹시 내키지 않으나 인터폰을 눌러본다.

딩동! 딩동딩동!

허나 3번, 4번 눌러도 집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귀를 대봐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거 방송 접고 이사갔다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면 해킹 툴이라도 무쓸모라고.’

속으로 다급하게 곱씹으며 혹시나 싶어 문고리를 당긴다.

끼이이이익……

열린다.

그런데 문에 녹이라도 슬었는지 몹시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 젖혀진다.

“어…… 저기, 실례합니다….”

일단은 문이 열린 김에 그렇게 음성을 내서 존재를 알린다.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펴보니, 빈 방이 아니라 사람 사는 내음은 나는 장소였다.

문제라면 지나치게 난다.

“이, 이거 너무한데.”

대량의 쓰레기들.

쓰레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가 아니라, 쓰레기장에 같은 집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코 풀은 티슈, 다 먹은 컵라면, 과자봉지, 배달음식 비닐 등. 현관문부터 시작해 발 딛을 틈 없이 빼곡히 채웠다.

겨울이라서 냄새는 지독하지 않으나, 여름이었으면 코를 찔렀을 거다.

각종 벌레들의 파티가 열려지고 파리 번식장이 됐을 터다.

도무지 신발을 벗을 용기가 안 나서 신품 운동화 발끝을 들고 사뿐사뿐 들어간다.

“저기요….”

쓰레기장을 해쳐가며 사람을 찾아본다.

지나가다가 화장실이 보였는데, 거긴 더 심각했다.

이 이상 묘사하면 속이 쓰릴 만한 그로테스크한 현장이 연출돼 있다.

“으…….”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앞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역겨움을 참고 침대가 있는 방까지 도달했으나, 그저 쓰레기만 너부러져 있을 뿐이다.

골치 아프다는 식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이만하면 사정이 있어서 도망친 건가?”

“…………누구?”

“우왓씨!”

측면 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반사적으로 꽉 쥔 주먹.

있었다.

그저 쓰레기 천국이라고 봤던 이 장소에서, 쓰레기와 동화된 사람이 있었다.

구석이라 눈에 띄지 않았으나 분명 사람이었다.

음지에 커다란 자라난 버섯처럼 방구석에 쪼그려 있을 뿐이었다.

삐친머리.

수많은 큐티클이 생겨나 푸석푸석해진 머리다.

전부 라면처럼 베베 꼬여 버렸고, 머리끝에는 자그마한 비닐쓰레기마저 엉켜 있다.

눈동자에는 초점을 잃어버렸고, 나를 불렀음에도 고개를 돌려 오른쪽 벽면만 멍하니 쳐다본다.

당장이라도 실이 툭, 끊어진 인형 같았다.

가벼운 홈웨어를 입었지만 냄새가 코를 찌른다.

며칠을 안 갈아입었는지 하얀색 셔츠 끝자락은 주변에 널부러진 라면국물에 더럽혀져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폐인이 한 명 여기 있었다.

꿀꺽.

다른 의미로 긴장을 하고, 조심스레 물꼬를 튼다.

“저기요… BJ요나 맞지?”

“………? 넌 누구?”

“저기… 내 얼굴, 기억 안 나?”

나는 이 장소, 공주님 침대와 얼굴을 보자마자 떠올려버렸다.

가볍게 스쳐갔으나, 분명 내가 협박해서 관계를 맺은 여자였다.

그때에 비해 매력 스테이더스가 현저히 떨어졌으나, 원본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

목이 덜컥, 하고 매가리 없이 이쪽으로 꺾이더니 초점 잃은 눈동자가 나를 스캔한다.

생기 한 점 없는 눈초리는 한 30초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 것 같았다.

“………아. 그 새끼구나. 협박범 새끼.”

“그, 그래. 기억 나나봐?”

“…그딴 쓰레기 짓거리 했는데 기억 못하면 이상하지.”

“하하… 기억난다니 다행이네.”

“다행……? 다행으로 보여?”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지적.

화난 것처럼 들리지만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조소하며, 나를 비웃는 뉘앙스.

지나치게 음울하고 건조해서 진의는 알 수 없겠다.

그래서 무섭다.

“저기…… 그 후로 많은 일이 있었나봐?”

“응…? 그 후? ……지금 얼마나 지났는데?”

“어… 오늘 부로 새해가 밝았는데?”

“……벌써?”

「그렇게 많이 지났나?」 곱씹듯이 고개를 까딱거려 옆에 빛이 내려쬐는 창문을 힐끗 살피고, 다시 떨어뜨린다.

생각보다 많이 지났다는 뉘앙스였으나, 그냥 그런가 싶으면서 넘어간다.

‘심각하다….’

더는 BJ요나의 상태에 대해서 파악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처지는 딱 주변에 너부러진 컵라면과 같았다.

언제 땅에 떨어졌는지, 언제 버려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안이 텅 빈 쓰레기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는 부분이 포인트다.

사람 한 명이 망가졌고, 재활이 필요한 단계까지 갔다.

나에게 협박당한 충격으로 무너졌는지, 그 이외의 무언가 사건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빛이 닿지 않는 지하까지 무너졌다.

미션은 [BJ요나와 동의해서 성관계 맺기]

이 상황에서 이 미션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지 따져보고 싶다.

미션은커녕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구조 활동을 해야 한다.

딱 뉴스에 나온 <모BJ, 지치고 힘들다며 유서 남기고 목 매달아……>헤드라인이 떠오른다

꿀꺽.

두 번째로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침.

각오의 의미로 외투를 벗고 소매를 걷어붙인다.

그간 날로 먹던 미션과 다르게, 가장 어려운 미션이 될 수 있겠다.

한량신이 왜 나를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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