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5. 연말의 소소한 파티
크게 특별할 게 없는 술자리였다.
방바닥에 대충 원형으로 둘러앉아 마른안주와 맥주를 홀짝이는 파티.
사실 파티랄 것 없이 딱 대학교 MT저녁이다.
각자 간단하게 소개하고 썰을 풀면서 웃고 떠드는 자리.
몹시 그리운 감각이다.
이 1도 특별할 것 없는 파티가 오히려 좋다.
가볍고, 웃기고, 북적대는 이 공기.
나보다 나이도 두 살 이상 적은 것 같고, 이 가벼운 공기에 우리들의 벽은 금세 허물어졌다.
여자 셋이 거주한다는 아파트에 혼자 와서 내심 긴장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간 안아온 여인들의 품속 덕에 긴장 따윈 되지 않고, 오히려 미칠 듯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정체를 감추기 위한 사자탈 안에서, 시종일관 싱글벙글이다.
“자 간단한 소개도 마쳤겠다, 이번에는 금사자님이 썰 좀 풀어보세요!”
“네? 가량 어떤 썰을?”
“음~ 아! 역시 단기간에 어떻게 이렇게 뜨셨는지? 역시 대기업이라면 업계의 비밀이 있는 거겠죠?!”
“응, 그건 나도 궁금하네.”
포니테일에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 소녀 전나영.
나영이가 운을 띄웠고 숏컷에 진한 갈색빛 건강미가 돋보이는 박혜경이 맞장구 쳤다.
술자리 시작부터 쭈뼛대던, 도자기화장이 돋보이는 백화영은 다리를 쭈그려 모으고 듣기만 하다가 이 주제는 궁금했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음~ 비법이라고 할 건 없는데……”
그래도 기대감이 높으니 일단 들려줬다.
해킹툴이나 한량신의 존재는 믿을 리가 없으니 대충 둘러대서 이야기를 늘어놨다.
주절주절 떠들지만 사실 막무가내로 시작한 방송이라 결국 운이 좋았다나 우연히 시청자들 니즈에 맞았다고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다.
“흥, 다들 운이 따랐다고 쉽게 말하지.”
특별한 비법이 없어서 실망했는지 화영이는 입을 삐죽 내민다.
“에이, 이건 제가 들어도 거짓말 같아요!”
“아니 진짜라니까요.”
“우~ 그러면서 진짜 비법은 그 바지 속에 숨겨둔 칡뿌리라던가 하는 거 아니에요?”
나영이의 눈웃음이 슬쩍 바지 아래로 내려간다.
성적농담에 살짝 당황했으나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켠 혜경이가 “그래? 얼마나 크길래?” 꺄르르 웃자 따라 웃는다.
이야, 적극적인 걸?
나영이의 기습적인 일격에 한 방 먹었다.
팬이라더니, 진짜 본 모양이다.
메일에도 적혀있었지만 여자 팬이 실제로 있을 줄은 몰랐다.
“이야, 부끄럽네요.”
“에이~ 방송에서는 그렇게 짐승처럼 하셨으면서.”
“하하… 정말 부끄럽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나영 씨가 저에 대해 일방적으로 아니까 불리하네요. 밸런스를 맞춰야하니 나영 씨의 비밀 하나를 알려주면 안 될까요?”
“……네? 저요?”
“네.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면 좋잖아요?”
역질문에 당황한 나영이.
순간 주저했으나 하얀색 외국 브랜드 캔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시원하게 토해낸다.
아까부터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왠지 나를 실망시키기고 싶지 않아 보였다.
진짜 팬 같다.
“사실 전에 아이돌 지망생이었는데…… 런을 했어요.”
“오, 아이돌 지망생이요? 실제로 아이돌을 보긴 처음이에요.”
“이렇다 할 데뷔도 못 해봤으니 아이돌이라고 할 순 없지만… 헤헤.”
그래도 듣기 좋은지 쑥스럽다는 듯이 목덜미를 긁는다.
“그런데 그것뿐인가요?”
“아 그게, 도망칠 때 소속사 물건을 왕창 훔치고 달아났어요. 입었던 의상이랑 화장품, 소품, 책상 위에 있던 돈을 조금……”
“훔쳐?! 야, 너 그냥 더럽고 치사해서 깔끔하게 박차고 나왔다며?”
“그, 그 회사 파산 직전이었다고! 잔뜩 밀린 임금도 제대로 지급 못 받았는데 뭐라도 싸들고 나와야지.”
기상천외한 자백이 나온다.
가까운 친구마저 처음 들었는지 화영이가 경악한다.
나와 혜경이는 그저 웃는다.
재밌는 썰 덕분에 술이 더 맛있어진다.
평소에 딱히 음주를 즐기진 않는데, 다시 대학교 처음 들어온 기분이라 쭉쭉 들어간다.
“그, 그럼 흑역사 고백했으니까 다음은 화영이!”
“내가 왜?! 싫거든!”
“야, 나도 했잖아. 안 하면 분위기 가라앉을 텐데, 치사하게 할 거야?”
“그럼 나부터 할까?”
알코올이 들어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옆에서 무방비하게 헤실헤실 웃는 혜경이가 끼어든다.
맥주를 원샷 때리고 구릿빛 멋진 피부와 짧은 머리를 흔든다.
위아래 스판 소재로 입어서 잘 빠진 몸매에 자꾸 눈이 간다.
목을 조금 풀고 쿨하게 실토한다.
“나 사실 야한 일 할 때마다 사진 찍는다?”
두 사람이 푸웃! 하고 먹던 맥주를 뿜었다. 반면 나는 그저 멀뚱멀뚱.
오늘 처음 접한 캐릭터인데, 두 사람 입장에선 너무나 뜬금없는 고백이었나 보다.
“그, 그딴 걸 왜 말해?!”
“아니… 정말? 그보다 왜 찍는데?”
“음~ 일종에 브이로그 같은 거지. 한창 쌩쌩한 시절의 잘 빠진 몸을 남겨두면 좋잖아?”
“유출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 전에 딱히 듣고 싶지 않았어… 보고 싶지도 않고.”
나는 보고 싶은데 그 사진.
“자, 어쨌든 비밀고백은 했잖아. 이제 화영이만 남았네.”
지목되자 화들짝 놀란다.
친구들의 연달은 비밀고백에 경악에 경악을 금치 못한 화영이가 눈알을 굴린다.
괜히 잘 안 마시고 있던 캔맥주를 홀짝이고, 큰 가슴이 무릎에 닿도록 다리를 좁힌다.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개미만하게 속삭인다.
“나는…………… 없어.”
“그짓말! 금사자님, 얘요, 얘 라운드걸 하다가 짤렸어요!”
“야!”
“옷장에 그때 입었던 옷도 있어요! 돈 문제로 괜히 튕겨보다가 밥줄 잘려서 매일 분통한 얼굴로 보거든요.”
“저, 저 년이 진짜!”
옆에 친구를 웬수처럼 노려보다 빈 캔을 하나 든다.
쥐고 던지려고 하다가 나영이가 날렵하게 내 옆으로 숨어버려서 분하게 내려둔다.
나영이와 혜경이.
두 사람과는 술기운으로 한껏 친해졌으나 화영이와는 아직 어색하다.
아무래도 벽을 허문 활발한 두 친구와는 다르게 낯을 좀 가리는 편 같다.
그렇담 거리를 좁히기 위해 과감하게 끼어들어본다.
“그 옷이 있다면 한 번 입어볼 수 있나요?”
“예에?!”
“보고 싶어서요. 라운드걸은 실제로 한 번도 못 봤거든요.”
“맞다! 그러면 재밌겠네요. 파티에 긴 바지에 셔츠가 웬 말이냐!”
운을 띄우자 냉큼 동조하는 나영이.
놀릴 생각 가득인지 눈에 별빛이 가득하다.
하지만 화영이는 이 끌어올린 분위기에도 망설였다.
어색하게 대하던 나에게도, 너무 친한 척 구는 것 아닌가 불만스러운 눈초리가 보인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 조건을 건다.
“화영 씨가 보여주시면 저도 바지를 벗겠습니다. 어때요, 이럼 공정하죠?”
─오오오!
술도 넘어갔겠다, 재밌겠다는 듯 주변 친구들이 동조한다.
과연 방송한다더니 다들 텐션이 높다.
““벗어라! 입어라!””
리듬에 맞춰 짝! 짝! 손뼉까지 마주치며 화영이를 부추긴다.
노골적으로 화영이 귓가에 다가가서 꽥꽥 소리를 지르자 참다못해 일어서고 만다.
“아 진짜! 입을게. 입으면 되지?!”
“꺄아~ 다시 보고 싶었어요 라운드걸 언니♡ 맞다맞다, 올 때 피켓 하나 들고 섹시하게 입장해봐.”
“나영이 넌 나중에 레알 죽었어!”
쿵! 쿵!
진절머리 나게 싫었는지 의도적으로 큰 발 구름을 내면서 본인 방에 들어간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문이 열리더니 서서히 조심스럽게 나온다.
“으… 으 진짜아…!”
방심하고 있다가 탈 안에서 턱을 쩍 벌렸다.
라운드걸 복장은 거의 수영복이나 다름없었으나, 그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브레지어에 짧은 숏바지.
이것뿐인데도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큰 가슴에 저 도자기피부가 전부 드러나니 훨씬 야했다.
나라면 아무리 임금 문제로 트러블이 있었더라도 절대 자르지 않았을 거다.
절대로.
문턱에서 쭈뼛대다가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쿵쿵 다가와 아까처럼 쪼그려 앉는다.
노츨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린다.
하필 내 맞은편이라 더 수치스런 모양이다.
물론, 나는 완전 행복하다.
“아 왜 그렇게 부끄러움을 타. TV에도 나온 사람이.”
“시끄러워! 그때도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고!”
“괜찮아. 몸매가 좋아서 정말 잘 어울리거든.”
“맞아요 화영 씨. 엄청 어울려요.”
“아으으….”
쏟아지는 칭찬세례.
관심이 부담스럽지만 칭찬을 받으니 싫은 듯 좋아보였다.
유일한 이성인 나 때문에 그런지, 노출에 대한 내성은 아직 덜 생겼는지 복잡한 심정 같았다.
“자, 그보다 화영이가 입고 나왔으니 약속은 지켜야죠 금사자님!”
“아, 예옙.”
이런 좋은 눈구경을 했는데 내 옷 정도야 뭐가 대순가.
바로 일어서서 벨트를 풀고 쑥 벗는다.
곧바로 점점 차돌처럼 탄탄해지고 있는 대퇴사두근과 달랑 드로어즈 속옷을 입은 하반신이 노출된다.
“““…….”””
공기가 바뀌었다.
벗으라고 해서 벗었는데 벗자마자 모든 기척들이 다 멈췄다.
무슨 문제 있나 싶어서 갈고리표를 찍다가 내려다보니 확실히 남우세스러웠다.
“아, 아~ 이거 좀 쑥스럽네요… 하하….”
무의식적으로 거시기가 커진 상태였다.
앞에 화영이의 빨통과 숏팬츠 아래 쭉 빠진 다리를 보니 조금 달아올라버렸다.
하지만 내가 너스레를 떨어도 다들 긴장 상태였다.
내 몸, 정확히는 팬티에 시선이 꽂혀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 드로어즈 속에 있는 몽둥이가 진짜 크기가 맞는지, 내 눈이 이상한 건 아닌지 보고 또 본다.
두드러지는 맵시 탓에 비치는 흉악한 실루엣은 스스로 내려다봐도 두드러지긴 하다.
“저기요~?”
“아…! 아하하….”
“으, 으흠!”
“…….”
정신을 일깨우듯 되묻자 다들 시선을 피한다.
그러면서도 힐끗힐끗 경계심 많은 삼짐승들처럼 계속해서 타겟이 맞춰진다.
불끈불끈!
젊은 처자들의 관심을 받자 마치 구렁이처럼 꿈틀거린다.
이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다들 더욱 긴장해 등줄기를 꼿꼿이 핀다. 짠 듯이 함께 목구멍을 적셨다.
‘이거 파티라더니, 확실히 점점 더 재밌어지네.’
이때, 마치 이 타이밍을 노렸다는 듯이 나영이가 벌떡 일어선다.
“저… 게임해요 게임!”
“게임요?”
“여, 역시 술자리에는 게임이 빠질 수 없잖아요. 마침 초대석에 남성분도 오셨겠다, 심심풀이용으로 게임 한 판 해봐요!”
“……무슨 게임 할 건데?”
“기다려 봐!”
옆에 화영이가 묻자 크라우칭 스타트로 빠르게 본인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양손에 함께 즐길 오락거리를 가져온다.
코앞에서 보니 손수 제작한 숟가락통에 번호가 적혀있고, 넓은 아이스크림 막대는 제비뽑기였다.
끝에 자그맣게 뭐라뭐라 적혀있다.
“이건…?”
“왕게임이에요!”
나영이가 외친다.
몹시 들뜬 탓에 상기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