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94. 연말의 소소한 파티
연말에는 파티가 많다.
인방이든, 공중파든 축제의 도가니다.
크리스마스도 끝났겠다, 본격적으로 고생한 한 해를 보내기 위한 바쁜 준비가 한창이다.
따져보면 나도 BJ나 스트리머의 입장이다.
가을쯤에 늦게 데뷔했지만 나도 혹시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하는 느낌으로, 내가 영상을 송출하는 플렛폼들에는 소소한 오프라인 파티만 있을 뿐, 실제로 접촉하는 파티는 없었다.
시상식이 없고, 명분도 없고, 플렛폼들이 작아 자금마저 없었다.
아무래도 방송이 방송이니 접촉을 최소화하는 분위기다.
주력 콘텐츠가 남사스러우니 고개 떳떳이 못 들지 못하고, 모두들 숨어버린다.
“…금사자TV님께 혹시나 해서 여쭈어봅니다?”
그러던 차에, 메일이 하나 왔다.
제목은 말한 그대로다.
중요한 알맹이, 내용은 이러하다.
「금사자TV님, 연말에 한가하신가요? 다름 아니라 저희들의 소소한 파티에 오실까 싶어서 또 한 번 초대장을 드려 여쭈어봅니다. 보잘 것 없는 파티지만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해보겠습니다! 평소 팬이라서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아아!!!」
나머지는 파티 일정과 장소가 적혀있었다.
혹시 몰랐는지 위험하게 실제 전화번호까지 기재해뒀다.
간추려 요약하자면 간이 연말파티를 준비했고, 나를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일주일에 걸쳐 3번이나 온 메일이다.
그간 스팸이나 장난인 줄 알았다.
이번에는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선지 사진까지 끼워 보냈는데, 참가자 명단이라며 참고하라고 첨부했다.
왜 사진을 보내나 싶어서 다운 받아보니 입에서 저절로 휫바람 소리가 나온다.
“오… 다 예쁜데?”
세 명의 여성 사진이 있었다.
첫 번째는 귀여우면서 풋풋한 느낌이 드는 포니테일 여성.
BJ나대나대 (전나현)라고 기재돼 있다.
두 번째는 화려한 링 귀걸이에 가슴이 큰 도자기화장의 여성.
BJ화영 (백화영)
세 번째는 숏컷에 운동을 하는지 탄 피부에 육체미가 돋보이는 여성.
박혜경. BJ이름 없이 그냥 박혜경이었다.
다들 프로필 사진을 올린 것 같은데, 묘하게 야했다.
첫 번째는 브라 노출까지 보였고, 세 번째는 스포츠 브라에 땀 흘리는 모습이 포착된다.
특히 두 번째 여자는 노출이 과감한데다 몸이 그래서 그런지 야한 냄새가 풀풀 났다.
“그런데 왜 나한테 메일을 보낸담?”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은 다른 유명 메이저 플랫폼 BJ들이었다.
검색해보니 안타깝게도 대부분 시청자가 많이 나오질 않은 모양인데, 연말 축제에 초대받지 않은 외톨이들끼리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듯 놀아보자는 의도다.
이 쓸쓸한 느낌의 파티에, 하물며 다른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나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팬이라고 했으니, 그저 팬심인가?’
공교롭게도 섹프들이 전부 바쁘다.
선화도 나와 놀다가 밀린 방송을 해야 한다며 카톡 답장까지 늦는다.
초대받은 날은 정규적인 방송도 없다.
뭐, 심심한데 잘됐네.
어차피 비공식 파티니 별 탈 없겠지 싶다.
대체 무슨 파티를 한다는 걸까, 호기심에 수락을 해봤다.
***
“!!! 야, 야! 대박! 대박! 대박! 답장 왔어!”
무심코 열어본 메일에 답장이 와있자 호들갑을 떨며 달려간다.
옆방에 함께 사는 룸메이트이자 동업자인 화영이에게 달려간다.
방문을 젖히자, 침대에 걸터앉아 페디큐어를 바르고 있는 화영이가 보인다.
호호 입김 불어가며 말리다가 째릿 나를 노려본다.
“야 들어올 때 노크하랬지!”
“아니, 그깟 발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답장이 왔다니까?”
“무슨 답장? ………설마 전에 말했던 그 탈 쓴 놈?”
“그래! 금사자님이 답변해주셨어.”
기껏 희소식을 전했더니 오만상을 쓴다.
“그딴 헛짓하기 전에 방송시간이나 늘려! 파티라고 해봤자 우리끼리 그냥 술만 까먹다 끝날 거면서.”
“허, 헛짓이라니! 이 분 되게 유명하다고! 방송 못 봤어?”
“그거 야방이잖아! 시발 더럽게 남이 떡치는 방송을 왜 봐?”
“아니 실제로 뭔가 보면 엄청나다니까. 같은 인종이 아닌…느낌?”
우연히 본 방송이었다.
길거리에서 헌팅한 여성과 잠자리까지 간다는 미친 방송이었다.
나도 우연히 접하기 전에는 화영이 같은 반응이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엄청났다.
침대 위에서 이만큼 여자를 능숙하게 다룬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중고로 구매한 컴퓨터에 깔려있던 AV도 그냥 연기한다는 느낌이었지, 이런 생생한 리얼함은 보지 못했다.
심지어 몇 시간을 한다.
그런데도 금사자 탈을 쓴 그는 마지막까지 팔팔했다.
침대 위에서 쓰고 있는 금사자 탈처럼 끝까지 영롱하게 빛났다.
그렇게 매일 챙겨보다 보니 어느덧 팬이 돼버렸다.
그런 팬심에 혹시나 싶어서 초대 메일을 보내보면서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지하기 위해 사진까지 첨부했더니 드디어 성공한 거다.
물론, 두 사람의 사진은 무단으로 도용했지만.
“아 시끄럽고 취소해. 월세라도 제대로 내려면 방송시간이라도 늘여야하고, 내 방에 그런 변태 못 들여놔.”
“치잇… 꽉 막힌 년.”
“이 시발년이…? 야, 너 다음 달까지 내 돈 안 갚으면 죽어 진짜.”
“응~ 안 들려.”
에베베 귀를 후빈다.
있는 힘껏 빈정대자 상대하기 싫은 표정으로 외면하는 화영이.
사실 화영이의 날 선 반응이 이해가 간다.
지금은 파티나 즐길 입장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통장에 쌓이는 돈 없이 하루를 벌어먹고 사는 입장이다.
비인기 BJ들의 처량한 민낯이다.
우리 셋은 삼국지로 치면 도원결의를 맺었다.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30평 아파트 월세를 분담하며 함께 떠보자고 방송계에 뛰어들었다.
나는 종합게임 여자 스트리머로, 화영이는 브이로그와 얼굴을 내세워 뷰티유튜버로, 혜경이는 SNS, 브이로그로 활동해 운동하는 모습이나 춤, 일상을 보여주는 틱톡커로.
여섯 손 꽉 붙잡고 너도 나도 이미 포화됐다는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모두가 성공해서 이 우정을 이어나가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이건 이상편이었다.
현실은 사회의 반응이 맹숭맹숭해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은 처지에 놓였다.
그 중 내 수익이 제일 저조해 눈치가 보인다.
심각해지기 않기 위해 언제나 장난으로 넘어가지만, 켕길 수밖에 없다.
“웅… 그래도 여자애들끼리 노는 것도 질리고, 하루만 좀 기분 전환하면 좋잖아?”
“그래서 그 가면 쓴 변태나 부르겠다고? 만나면 뭐해? 술 먹다가 방송처럼 몸이라도 대줄 거야?”
“그냥 순수하게 함께 놀자는 의도야! 흥, 그렇게 매일 틱틱대니까 라운드걸 짤리지.”
“야 너 진짜…!”
역린을 건들이자 화영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일당 협상하다가 실패한 거라고! 매일 빤스만 입혀서 보내면서 더럽게 적게 주잖아 드러운 새끼들이…. 그런 너는 근성 없어서 아이돌 연습하다가 뛰쳐나오냐?”
이번에는 내가 발끈한다.
“어, 엄청 힘들었다고! 소속사가 악질이라 밀린 돈도 제대로 못 받고, 무리해서 연습하느라 더 버텼다간 연골 다 나갔을 거라니까!?”
필사적으로 변명한 뒤,
“그리고 내가 부르려는 사람은 단순한 변태가 아니야! 따져보면 니가 쓰는 플랫폼에서 재수 없다고 한 사람 쫓아내준 은인도 이 사람일 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봤어.”
“…재수없다니, 누구?”
“왜, 논란됐던 사람있잖아. 매일 베스트 목록에 나왔는데… 커뮤니티에 실체 올라와서 매장됐잖아. 전에 너랑도 합방하자고 했다가 거절당했고.”
“아… 그 돼지? 시발 노골적으로 몸뚱이 노리는 게 보이는데, 누가 거길 가냐.”
“그러니까, 그런 나쁜 놈 퇴치해줬으니 나쁜 사람 아니지?”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게다가 거의 비슷하게 데뷔해서 거의 동기야. 아, 오히려 우리가 선배라 친하게 진할 수 있을 걸?”
“뭐?! 시발 넉 달도 안 돼서 떴다고?”
“따지자면 세 달 될까 말까?”
“아 진짜, 인생 개 불공정하네 진짜!”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는 화영이.
이때, 현관문이 열린다.
“나 왔어.”
가벼운 스포츠웨어를 입은 혜경이가 집에 도착했다.
오면서도 뛰었는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현관문을 넘는다.
방안에 우리가 몰려있자 수건으로 땀을 닦은 후, 다가온다.
혜경이는 지속적인 운동으로 몸에 윤각이 잡혀있고 피부가 타 건강미가 돋보이는 미인이다.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친해지기가 쉽고, 인기 또한 많다.
워낙 둥글둥글한 타입이라 화영이와 갈등이 생기면 주로 혜경이가 풀어주는 역할이다.
무엇보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먼저 뜬 우러러볼 위인님이기도 하다.
사실 혜경이가 이런 시장에 대해 가장 무지해서 가장 늦을 거라 생각했으나… 역시 초심자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단순히 운동하는 모습을 찍어서 올리고 의사소통하는 방송인데, 인기가 하루하루 쭉쭉 올라갔다.
뭐 우리 기준에서 떴다지, 바다 생태계에 사는 많은 물고기와 대보면 엄청나진 않을 사이즈다.
혼자 밥벌이는 될 정도? 구체적 액수는 알 수 없으나 사회초년생 수준의 수익은 나오고 있을 거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혜경이에게도 말해본다.
수건으로 구석구석 땀을 닦은 혜경이가 쿨하게 대답한다.
“재밌겠네. 우리끼리만 노는 시간도 너무 많아졌고, 외부인이 끼면 더 신나지 않겠어? 여자만 있는 공간에 남자가 가끔 와주면 좋지 뭐.”
“그렇지?!”
“제정신이야…?”
“그냥 술만 마시고 노는 건데 어때. 조금은 현실적인 생각 떨치고 놀아도 좋지 않아? 그 후까지 가는 것도 아니고.”
“어………….”
여기서 무심코 말을 끌자 화영이가 눈 밑을 꿈틀대며 노려본다.
뒤늦었지만 서둘러 변명한다.
“그, 그냥 생각만 해본 거야!”
“얼굴은 제일 순진하게 생겨선 진짜 개밝히네… 친구들 있는 자리에서 그러고 싶냐? 나는 절대 싫다.”
“아, 안다고! 생각만 해본 거야.”
“생각도 하지 마.”
“그냥 술만 마시는 걸로 하자.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했어?”
“으, 응! 내일 오시기로 했어.”
“그럼 술 좀 사둬야겠네. 내가 내일 헬스장에서 오는 길에 좀 사올게.”
“……고마워.”
“신경 쓰지 말래두.”
아무래도 돈을 가장 많이 버니 혜경이가 우리 새어나가는 생활고 매워주는 마개를 담당하고 있다.
어쨌든 모두의 동의하에 금사자님을 초대하기로 결정난다.
혹시 해서 보내본 메일이 이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다니, 가슴이 두근두근 댄다.
혜경이는 가벼운 파티로 여기는 모양이고, 화영이는 도통 내키지 않는지 신통치 않은 표정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편견이 화영이의 좁은 시야를 가리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보면 다를 거다 보면!
그의 팬으로서 그렇게 확신했다.
***
“안녕하세요.”
인터폰을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온 금사자님.
실제로 마주하니 번듯한 키가 생각보다 컸다.
운동으로 가꿔진 몸 또한 멋졌다.
영상으로 볼 때마다 더 다부지게 어깨가 벌려져 있다.
여기에 패션을 파티 분위기에 맞춰 훤칠하게 잘 꾸며서 정말 멋졌다.
거기다 양손에 쥐어진 하얀 비닐봉투에는 술이 한가득.
선물까지 제대로 챙겨왔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함께 마중 나온 둘의 눈빛은 다소 변해있었다.
그야말로 “어라?” 한 방 먹었다는 표정.
기대감이 높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는 느낌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안녕하세요…♥”
당연히 팬으로서 그를 바라보는 내 눈은 하트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