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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해서 BJ들과 친해지기!-90화 (90/193)

< 90화 > 90.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일들

지인을 만났기에 다시 착석하게 된다.

4인석을 커플끼리 나눠서 딱 맞게 앉는다.

“어… 소개할게. 여긴 대학 동기들, 윤미나랑 이정수. 여기는 내 여자친구, 이선화.”

“안녕하세요. 이선화에요.”

“안녕하세요! 이, 이이이정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각자 소개를 마치자 다들 속으로 짠 듯이 대화의 맥이 끊긴다.

둘 다 대학동기였기에 연수와 달리 관계설명은 쉬웠지만, 그보다 무거운 적막한 긴장감이 흐른다.

미나는 시종일관 안절부절 떨고, 이정수는 기분 나쁘게 선화를 힐끔 쳐다보고, 선화는 옆머리를 당기며 이 자리가 지루하다는 티를 낸다.

‘숨 막혀 죽겠네…!’

집게로 멱살을 붙잡고 흔든다. 그래도 숨통이 죄인다.

무대에서 연수에게 농락할 때가 지옥인 줄 알았거늘, 자리에 앉아서 대놓고 사자대면을 하니 등줄기가 뻣뻣해진다.

물론 이 불편한 자리에서, 수면 아래에 있는 탑 시크릿을 가진 사람은 나와 미나 뿐.

둘 중 하나가 실수만 안 하면 화약고는 터지지 않는다.

더구나 둘 다 자신에게 독이 될 이야기를 꺼낼 멍청이가 아니다.

이때, 쭈뼛대던 미나가 선화를 물끄러미 보다가 질문을 하나 던진다.

“저기, 이선화…씨라고 했나요?”

“네.”

“두 분은 사귄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눈을 깜빡거리는 선화.

뜬금없이 무슨 질문인가 싶다가도, 내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지 성심성의껏 답한다.

“음… 그게 두 달 정도? 날짜로 따지면 딱 58일이겠네요.”

잘 모르는 척 하지만, 일수까지 정확하게 계산한다.

…나는 막 50일이 넘은 줄 알았는데, 제대로 기록해둬야겠다.

듣고 나서 더욱 불편해지는 미나의 심기.

“꽤 오래됐네요….”

“그런가요? 100일도 안 됐는데.”

“그게, 전혀 몰랐거든요. 선우가 누구랑 사귄다고 우리한텐 아무 말도 안 해줘서.”

“으흠!”

미나가 버려진 강아지 눈망울로 쳐다보자 외면한다.

쳐다보면 십중팔구 마음이 약해질 터라 그저 어두운 창밖만 바라본다.

이때, 선화가 어깨를 으쓱 흔들고 나를 두둔한다.

“그건 어쩔 수 없죠. 제가 부탁한 일인 걸요.”

“네? 부탁했다구요?”

“공개되면 제 입장에서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요.”

“불편한 부분이 뭔데요…?”

“글쎄요. 아무리 선우 지인 분이라지만 프라이빗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겠네요.”

우리만의 비밀이라는 듯, 싱긋 웃으면서 테이블 위에 내 손을 잡는다.

어쩐지 한껏 우쭐해진 여왕님.

콧대가 한 층 더 높아진다.

사귈 당시, 본인은 방송을 하는 입장이니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건 그 비밀을 잘 지켜준 고마움이 아닐까 싶다.

주변 인물, 하물며 동창이라는 가까운 지인에게도 관계를 감췄다는 사실이 플러스에 플러스가 될 만큼 기특한 모양이다.

다정하게 손깍지를 끼고 보드라운 엄지로 슥슥 손등을 문질러 칭찬해준다.

선화의 보드라운 아기피부가 기분 좋다.

“……(부글부글부글)”

미나의 눈이 헤까닥 돌아간다.

화륵화륵 불타는 안광으로 선화와 깍지 낀 손을 노려본다.

정열적인 시선에 손바닥에서 삐질 땀이 흐른다.

“뭐어~ 그래봤자 우리보단 오래 안 됐네! 그치?”

“놔라.”

질 수 없다는 의미인지 이정수가 은근슬쩍 미나의 어깨를 끌어안으려했으나 딱딱한 두 음절로 거부한다.

깨갱한 이정수는 머쓱하게 팔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고자 미나는 선화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끈덕지게 질문세례를 날린다.

“그나저나 두 분, 어디 가시는 길 이었나요?”

“아 선우가 크리스마스 기념이라고 호텔 예약을 잡아놨다고 해서요.”

“호, 호텔…!”

“그리고 보니 체크인 시간이 넘었네요. 간단하게 소개도 받았겠다, 슬슬 이동해야겠습니다. 이만 실례할게요.”

마침 얘기가 나와 잘 됐다 싶었는지 벌떡 일어서는 선화.

당연히 손깍지를 낀 나도 딸려 올라간다.

“자, 잠깐만요!”

“네? 볼일이 남았나요?”

“아… 아직 들어갈 시간으론 이르잖아요!? 흔치 않은 우연인데 같이 대화 좀 하다가 가시죠!”

“그래도 저희는 이미 커피도 다 마셨고─”

“그럼 또 주문하면 되죠! 카페인은 마시면 마실수록 좋으니까! 야, 얼른 내려가서 아메리카노 네 잔 뽑아와.”

다급하게 이정수 옆구리를 퍽퍽 치는 미나.

“내, 내가 왜?”

“사오라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릉거리는 미나의 불호령.

“…쳇.”

그저 미나의 하수인일 뿐인 이정수는 엉덩이를 뗄 수밖에 없었다.

툴툴거리며 일어나 카페 계단을 밟고 1층으로 내려간다.

그렇게 겉절이는 빠지고, 진짜들의 게임이 시작된다.

남자친구가 빠지자 선화를 노골적으로 노려보기 시작하는 미나.

영문을 모르는 적의에 눈썹을 찌푸리는 선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창문 밖을 보는 나.

…돌겠다.

가슴이 웅장해지다 못해 터질 것 같다.

이정수라도 남아주는 편이 나았다.

우리의 발을 붙잡을 명분도 생겼겠다, 미나가 서서히 수사망을 좁혀온다.

“두 사람, 사귄지 50일이라고 했죠?”

“58일이에요.”

“어, 어쨌든 그 정도면 제가 선우를 알았던 시간보단 짧네요!”

“오래 아시는 사이인가요?”

“네, 적어도 그쪽보다는!”

“…동기니까 당연히 그렇겠죠. 그런데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죠?”

“뭐어~ 별 의미는 없어요. 제가 그쪽보다 좀 더 선우를 오래 알아왔다는 뜻 외에는.”

“……?”

미나는 마치, ‘꼬투리 잡았다!’ 이런 표정이었다.

반면 선화는 이게 뭔가 싶은 표정.

묘한 포인트를 물고 늘어진다.

화로 뒤덮였던 안면에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조금은 이겼다는 미소가 새겨진다.

미나의 수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나저나 그만큼 사귀셨다면 못 만났다는 부분이 더 이상하네요.”

“…이상하다니요?”

“전에 선우가 이사했을 때, 그때 한 번 만났어야하지 않았나요?”

“아, 이야기는 들었어요. 당시 친구들을 부른다고 했고 선우가 올 필요 없다고 했으니 딱히 갈 필요가 없─”

“저런~ 진심인가요?”

“예?”

“그런 힘든 날 도와주지 않다니. 십중팔구 빈말이었을 텐데, 정말 코빼기도 안 보여서야 여자친구가 맞나요?”

“…그쪽은 가셨나요?”

되물음에 한껏 뽕이 올라가는 어깨.

“물론이죠! 가장 친한 친군데 가서 집 구석구석 온몸을 다해 성심성의껏 도와드렸죠♥”

“……? 도와‘드렸죠’?”

“아 실수했네요. 호호.”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힐끔 나를 보는 미나.

당장이라도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꼬리를 흔들 음탕한 암캐의 얼굴이다.

이제 모가지까지 뻣뻣해진다.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비켜가는 공격들이 이어지자 심장이 벌렁거린다.

노골적으로 여왕님의 심기를 건드린다.

…대체 이 상황 뭐냐고.

다소 유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초면부터 일방적으로 자극하며 으르릉대는 미나와, ‘어쭈, 이것봐라?’가는 눈초리가 된 선화.

여자친구라는 부분이 미나에게 묘한 경쟁심이 자극됐는지 계속해서 선화에게 잽을 날렸고, 둘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게 된다.

더구나 여왕님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 주의였다.

파리처럼 거슬리는 발언이 이어지자 냉담히 입술을 다물었다.

“후우.”

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헛짓인가 싶은지 어깨에 힘을 뺀다.

미나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적의에도 한 번 참아준다.

“왜 그렇게 쏘아붙이는지 몰라도, 제가 남자친구에게 무심하긴 했네요.”

“호호, 뭐 벌써부터 애정이 식은 사이라면 그럴 수 있─”

“미안. 앞으로는 신경 자주 써줄게.”

쪽♥

선화는 곧장 뺨에 가볍게 뽀뽀를 해준다.

사랑스러운 바닐라 향을 잔뜩 내뿜으며 다가와 뺨에 따스한 온기를 베풀어 주신다.

그리곤 손깍지를 더욱 강하게 쥔다.

단 한 번의 가벼운 무브먼트.

여왕님의 품격 있고 간결한 반격이 돌아간다.

마치 ‘너는 이런 것 못하지?’하듯 놀리는 행동이었다.

몸짓 한 번만으로 미나의 깐족을 잠재워버린다.

“…….”

이 일격에 미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아니, 가벼운 펀치에 넘어질 정도로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은 얼굴이 됐다.

“(뿌득뿌득뿌득뿌득!)”

눈빛은 불타다 못해 증오와 질투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더는 못 참겠다.’

“나 화장실 좀….”

“야, 여기서 어딜 가?”

“미안. 속이 뭐가 잘못됐는지 진짜 쌀 것 같아.”

“……참나.”

급하다는 신호로 배까지 부여잡자 어쩔 수 없이 여왕님이 손깍지를 푼다.

아까부터 위액이 역류하듯 속이 쓰린 건 사실이라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지옥에서 일시적으로 후퇴한다.

***

“아메리카노 4잔이요.”

“네, 아메리카노 4잔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더럽게 긴 줄을 기다리고, 사비를 털어서 더럽게 비싼 콩국물을 4잔이나 산다.

속이 쓰리지만 별 수 없다.

나가기 귀찮다는 미나를 어떻게든 꼬셔서 나왔는데, 아무것도 되는 게 없었다.

가는 곳마다 티켓 매진에 만석이라 헛걸음만 2시간.

차도 없어서 이 추운 날에 서울의 길거리구경만하다 끝났다.

종처럼 부려도 할 말이 없다.

‘그나저나 그 새끼가 어떻게 그런 년을 꼬셨지?’

솔직히 놀랐다.

진심으로 채선우에게 저런 여자친구가 있을 줄 몰랐다.

귀티나는 외모에 꼭 어울리는 백금발.

갸름한 얼굴에 도도하고 세침한 눈빛, 백옥같은 피부까지.

얼굴을 보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고 느꼈다.

SNS스타 윤미나도 한눈에 들어오는 눈부신 외모지만, 다른 빛나는 보석을 만나자 눈길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잠깐. 아주 잠깐 옆에 여자친구가 안 보였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4잔 나왔습니다!”

어쨌든 쟁반에 종이용기에 담긴 커피 4잔을 가지고 카페를 오른다.

자리에 도착하니 있는 사람이 없었다.

딱 한 명.

자신을 채선우 여자친구라고 소개한 이선화를 제외하고 말이다.

“응? 다 어디 갔나요?”

“어… 둘 다 화장실 갔어요.”

“미나도요?”

“네, 뭐 짜증이 난다던가. 뭐라던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폰을 만지며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이선화.

“…….”

“…….”

어쩌다보니 단둘이 되자 어색해진다.

이선화는 앞도 제대로 안 보고 폰질을 하고 있지만 이정수는 멋대로 지레짐작 긴장을 한다.

‘…다시 봐도 예쁘긴 하네.’

보다보니 불순한 생각이 든다.

채선우의 이빨이 들어갔다면 혹시…하는 착각이 든다.

당연히 내가 더 낫지 않냐는 착각.

여자친구를 두고 분수 넘게 김칫국을 드링킹한다.

“저기… 혹시 몇 살 이세요?”

찔러보듯, 사냥을 개시한다.

“음… 죄송해요. 오늘 본 사이에 자세히 알려드리긴 조금.”

“그러시구나… 그럼 무슨 일 하시는데요? 직장인? 대학생?”

“죄송해요. 그것도 좀 그렇네요.”

“아, 네…… 아! 그러면 혹시 인스타나 페북은 하세요?”

“글쎄요. 한가하면 찾아보시던가요.”

철통방어.

무슨 질문을 하든 성의없는 답변으로 피해간다.

나중에는 못 들은 척, 아예 흘려버린다.

‘거 더럽게 도도하네!’

속으로 침을 뱉는다.

눈으로 욕하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선화를 속으로 씹는다.

순식간에 비호감으로 돌아섰다.

‘…가만, 얘가 채선우 여친이라면 그때 침대에서 씹질했던 애 아냐?’

떠올랐다.

이사한 그날 울렸던 천박한 울음소리.

그 여자가 이선화면 이야기가 딱 맞아 떨어진다.

‘시발 걸레같이 울어놓곤 해놓고선 도도한 척이야.’

고까운 표정으로 노려보자 기척을 느낀 선화가 고개를 든다.

“?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 아뇨.”

“저기, 부담스러우니까 오래 쳐다보진 마세요.”

“…….”

‘커다란 좆 좋다고 앙앙 거리던 년이….’

또 한 번, 속으로 경박하게 욕한다.

이런 헤픈 걸레보다 청순한 내 여친이 훨씬 예쁘고 낫다.

그렇게 속으로 습관적인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

“건방진 계집애….”

윤미나가 여자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며 씹는다.

주인님이 나간 뒤에 랠리를 좀 더 이어갔지만 어쩜 한마디 지는 법이 없었다.

지 앉은 자리만 옥석에 고귀하고 잘났는지 시종일관 도도하다.

외모는 좀 먹어주는 것 인정하겠는데, 높은 콧대가 몹시 거슬린다.

거기에 여자친구라고 인식하니 공격적으로 물어뜯게 된다.

왠지 나와 주인님의 비밀의 정원에 침범당한 기분이었다.

“……에휴.”

그나저나 충격적이다.

주인님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니, 옆에 손을 잡은 여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세상이 일순간 노래졌다.

하지만 둘의 관계에 배가 찢어질 듯 아프더라도, 윤미나는 채선우를 비난할 입장이 못 됐다.

자신도 이미 공식적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당연히 할 말이 없다.

채선우와 윤미나의 관계는 애시당초 섹스프렌드에 위험한 불장난으로 시작됐을 뿐이다.

사회적 구속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시발 내가 왜 그랬을까….’

윤미나의 머릿속엔 갑자기 2년 전 사건이 떠오른다.

스킨헤드로 자신에게 고백했던 채선우.

그리고 코웃음 치며 거절한 윤미나.

그 어설픈 고백을 받았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속으로 떠올려본다.

분명 그때와 인상과 몸매가 180도 달라졌긴 했지만, 후회된다.

되돌아보고 좌절하지만 버스는 진작 떠나가 버렸다.

연이은 한숨에 거울에 비친 얼굴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그 패배자 같은 안면을 보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안 되지, 안 돼!”

이럴 때야말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

그 건방진 계집애에게 한 방 먹여야하고, 주인님 앞이니 언제든 예쁘고 좋은 인상을 남겨줘야 한다.

윤미나가 억지 섞인 스마일을 장전하면서 화장실에서 막 나오는 이때,

“어?”

“아!”

드라마 같은 타이밍에 화장실에서 손 씻고 나오는 채선우와 조우한다.

그야말로 신이 내려주신 것 같은 기회.

주인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펌핑하며 대뇌에 스위치가 올라간다.

빠릿빠릿 머리가 돌아간다.

마침 여자화장실은 아무도 없었다.

“미나야? 어, 어?!”

윤미나는 다짜고짜 채선우를 끌고 여자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제일 끝 칸에 들어간다.

찰칵!

“드디어 주인님과 단둘이 있을 수 있게 됐네요…♥”

굳게 걸어잠근 화장실 안에서 하아하아, 흥분되는 뜨거운 숨결을 뱉는다.

야릇하게 원피스를 올리면서 노골적으로 주인님의 그곳을 바라본다.

주인님을 여자화장실 칸으로 납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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